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68화 (168/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68)

“이동하실 장소는 결정하셨습니까?”

“네!”

전 멤버가 활기차게 대답하자, PD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잘 다녀오세요.”

오늘따라 PD의 행동이 평소와 다르기라도 한 건지, 류석현이 의심쩍다는 듯 PD를 보며 친근하게 물었다.

“라PD, 진짜 놀기만 하면 돼?”

“그럼요.”

“진짜지?”

“네. 다들 받으신 카드 잊지만 마세요.”

PD의 찝찝함 가득한 마지막 말을 끝으로 레드 팀은 튤립 구역으로.

은지가 속한 블루 팀과 은호가 속한 옐로 팀은 함께 스페이스 익스프레스로 향했다.

구역과 시간별로, 촬영을 위해 양해를 구한 탓에 탑승 가능한 놀이 기구가 정해져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촬영이라 자유롭게 놀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호와 은지는 그 안에 스페이스 익스프레스가 있다는 점에 마냥 만족하는 중이었다.

체인지 파트너 촬영을 위해 마지막 손님이 탑승한 이후부터는 대기 줄이 사라진 탓일까.

촬영을 구경하는 인파 외에 스페이스 익스프레스 앞에는 직원밖에 없었다.

“신나아아!”

놀이 기구의 당당한 위용 앞에서 은지는 흥분한 기분을 감추지 않고 팔을 대자로 벌리며 소리쳤다.

태연하게 뒤따르던 은호도 줄 없이 놀이 기구 안으로 들어섰을 땐 은지 못지않게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돌아봤다.

“보면, 은호 씨가 어른스러운 듯하면서도 둘 다 똑같은 꼬맹이 같지 않아?”

“꼬맹이라니, 너하고 별로 차이도 안 나는데.”

“어쨌든!”

“하하.”

“둘 다 겉모습만 보면 그런 성격이 전혀 아닌 거 같은데.”

“사람 겉모습보고 파악하지 말라는 게 이런 건가 싶고, 그러네.”

최수민과 서서운은 짧은 수다를 나누며 빙빙 돌아가는 길을 따라 탑승장으로 향했다.

여자들의 수다에 섞이기 힘들었던 정배찬은 조용히 두 사람을 지나치며 먼저 앞으로 나섰다.

그렇게 탑승장에 도착했을 때.

이제 막 테스트를 끝마친 스페이스 열차가 정차장에 들어섰다.

“잠깐만요. 스트레칭 좀 하고 갈게요!”

“갑자기?”

“왜. 너…… 아니, 오빠도 하든가.”

“아니, 할 거면 진작 오는 길에 할 수 있었는데 인제 와서 하는 게 좀 수상하잖아.”

“근, 육이 놀라면 안 되잖아.”

갑자기 근육?

에러랜드에 입장하기 전.

전 멤버는 버스 앞에서 노인인 척하는 수상한 남자에게 미션지를 받았다.

히든 미션의 1등이었던 은호는 추가 미션을 받은 스파이가 있다는 힌트를 받았다.

“빨리 타. 딴소리 말고.”

“아, 자, 잠깐만! 나 스트레칭해야 한다고!”

“왜? 미션이라서?”

“아니거든!”

“그래? 그럼 내가 너희 팀 선배님한테 네가 갑자기 스트레칭을 하려고 했다고 말씀드려도 문제가 될 건 없겠네?”

은호도 ‘같은 팀원의 눈을 피해 2만 원을 모두 써야 한다’는 미션을 받았다.

그렇다면 은지 역시 ‘같은 팀원’의 눈을 ‘피해야 한다’라는 조건부 미션을 받지 않았을까.

“아, 타! 타면 되잖아! 조용히 해라, 진짜.”

은호가 능글맞게 묻자, 은지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역시.’

은지의 대답에 은호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 * *

은호는 스페이스 익스프레스로 향하는 내내 받은 미션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보통 몰래 미션을 한다면 상대팀에게 숨긴다거나 하지 않나?

그럼 어째서, 이 미션은 ‘같은 팀’에게 숨겨야 하는 걸까.

‘스파이가 있다고 했었지.’

히든 미션에서 1등을 한 덕분에 받은 힌트에서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스파이를 찾아낼 경우, 마지막 미션 시 중요한 힌트 지급한다.

그럼 그 스파이를 알아낼 방법이 있다는 건데, 그게 뭘까.

머리를 너무 쓴 나머지 이마가 살짝 지끈거렸다.

한창 고민하던 중에 도착한 스페이스 익스프레스.

‘일단, 즐길까.’

잠시 끙끙 앓던 생각을 내려 두고 놀이 기구를 즐기기 위해 탑승장으로 향하던 그때였다.

“잠깐만요. 스트레칭 좀 하고 갈게요!”

이은지가 소리쳤다.

‘아.’

우리가 신난 나머지 너무 일찍 달려온 탓일까.

주변을 돌아보니, 정배찬, 최수민, 서서운 선배님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 보였다.

‘같은 팀원의 눈을 피해라.’

이 말은 곧, 다른 팀원에게는 걸려도 된다는 의미였다.

물론 알려지면 위험할 테지만, 이은지는 거기까진 생각하진 않았던 걸 수도 있다.

그때였다.

그간 잡히지 않던 부분이 잡히는 것 같았다.

입꼬리가 실실 말려 올라갔다.

‘체인지 파트너’ 프로그램의 특징.

파트너는 ‘미션마다 바뀐다’는 것.

그리고 그 파트너는 중복되는 경우가 ‘없다’.

그 말은 곧, 지금 첫 팀원은 후에 내 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었다.

‘PD님은 자유 시간이라고 했지만…….’

이건 스파이를 찾아낼 기회이기도 했다.

그때, 웅성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선배님들이 어느새 모두 도착한 듯 보였다.

“야, 이은지.”

“왜.”

“맨 앞에 탈 거지.”

“어.”

“같이 타자.”

나는 놀이 기구를 탈 땐 맨 앞자리를 좋아한다.

바이킹 같은 건 제일 뒷자리가 좋다.

하지만 롤러코스터에서는 앞자리만 느낄 수 있는, 가장 먼저 정상에 도달한 뒤 급격하게 하락하기 전 그 풍경이 좋았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나는 제일 앞자리 칸에 서 있었다.

이은지는 내 제안에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노려보며 답했다.

“싫어.”

“그럼 혼자 두 번째 타든가.”

“……같이 타.”

꼭 이럴 거면서, 고집은.

앞자리에 같이 타자는 건 할 말이 있어서였다.

잠시 후 뒤늦게 도착한 최수민, 서서운 선배님이 두 번째 칸에 앉고, 세 번째 칸에 쓸쓸히 두 분을 기다리던 정배찬 선배가 앉았다.

선배님들이 제각각 자리를 잡자, 스페이스 열차가 출발했다.

털털거리며 열차가 오르막을 오르는 그동안.

“너, ‘같은 팀원의 눈을 피해 놀이 기구를 타기 전에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뭐, 이런 미션 받았지.”

“소름, 어떻게 알았어.”

“그렇게 티 팍팍 내면서 하는데 어떻게 모르냐.”

“헐.”

이은지는 진심으로 들켰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난 이은지한테 그간 내가 정리했던 생각을 전달했다.

“야, 나 히든 미션 1등 했잖아.”

“자랑하냐?”

“와, 기껏 챙겨 주려고 했더니만, 마음 뚝 떨어지게 만드네.”

“아, 미안, 미안. 뭔데?”

여전히 불만은 있었지만, 씁.

‘미션마다 달라지지 않는’ 파트너를 얻으려면 한 번은 참아야 했다.

“……미션 받을 때 힌트도 받았거든.”

“근데?”

털털거리며 올라가던 스페이스 익스프레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위치에 도달하면서 서서히 속도를 늦췄다.

곧 수직에 가깝게 떨어지기 전.

은호는 받은 힌트를 은지에게 공유했다.

“멤버들 중에 스파이가 있어. 그 사람을 찾아야 해.”

은호의 목소리는 곧 이어진 강한 바람과 열차에서 울려퍼지는 비명에 묻혔다.

* * *

“하하하하!”

스페이스 익스프레스에서 내린 뒤 출구에는 기념품 가게가 연결되어 있었다.

기념품 가게 정중앙, 계산대 위에는 조금 전 스페이스 열차가 떨어지기 직전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사진 속 서서운, 조사랑, 정배찬은 만세를 지르며 떨어지는 그 순간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한편, 그에 비해 은호와 은지는…….

“푸핫! 은호 얼굴이 왜 저래. 하하하하.”

뒤늦게 사진을 확인한 서서운도 조사랑과 정배찬을 따라 웃음을 터뜨렸다.

은지도 은호 못지 않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색을 한 채 굳어 있는 얼굴이었다.

한편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은호는 얼굴이 흐리게 찍혀 있었다.

“아무래도 카메라가 찍는 타이밍에 고개를 숙이거나 한 모양인데…… 하하.”

어째 그 모습이 영혼이 빠져나가는 형상과도 흡사해서 더 웃음을 자아냈다.

“볼 때마다 웃기네. 은호야, 이거 사진 내가 사가도 돼?”

“아, 네. 괜찮아요.”

“내 매니저 어디 있어요? 용수야!”

“예!”

“내 지갑 좀 가져와 봐!”

“예!”

사진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정배찬은 개인 소장을 위해 사진을 구입하기까지 했다.

정작 사진 속 본인인 은호와 은지는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기 바빴다.

특히 은지는 금방이라도 ‘락앤롤!’을 외칠 것 같은 노란 손가락 장난감에 관심을 보였다.

“가지고 싶어?”

“아, 아니요! 괜찮아요. 그냥 재미있게 생겨서.”

정배찬이 묻자, 다급히 은지는 양손을 저으며 말했다.

“은호랑 같이 원하는 거 골라 와. 재미있는 너희 사진 소장하게 허락해줬으니까 하나 사 줄게.”

“오!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면야…….”

기회는 올 때 잡으라고, 은지는 사 준다고 한다면 굳이 거절은 안 하는 타입이었다.

“이 오빠는 또 어디 갔어.”

은지는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며 은호를 찾았다.

에러랜드에는 마스코트인, 왠지 애잔한 얼굴을 가진 기어 인형이 있다.

기어 인형은 다양한 억울한 표정을 하고 있고 다른 기어 인형과 연결을 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오빠!”

은지가 은호를 발견한 곳은 그 기어 인형들이 나란히 엮여, 귀엽게 세워져 있는 곳이었다.

은호는 꼼지락거리며 기어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이은호!”

“어? 엉?”

은지의 큰 목소리에 은호는 화들짝 놀라며 기어 인형을 손에서 놓았다.

“정배찬 선배님이 기념품 하나 사 주시겠대.”

“어? 아, 괜찮은데.”

“대표님이 나쁜 일 아니면 호의로 주는 건 줄 때 받으랬어!”

“응?”

은호는 갸웃거리다 이내 은지의 말을 이해한 듯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난 이거.”

은호는 손바닥만 한 작은 기어 인형을 가지고 계산대에서 기다리던 정배찬에게 다가갔다.

은지는 미리 점찍어 둔 락앤롤 노란 손가락 봉을 챙겨 들고 계산대로 찾아왔다.

‘둘이 취향이 눈에 보이네.’

정배찬은 속으로 생각하며 웃음을 삼켰다.

“은호는 그것보다 더 큰 거 가져오지, 왜.”

“아니, 괜찮아요! 이것만으로도 감사한걸요.”

“그럼 이거 사 주세요!”

그때였다.

은호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은지가 은호가 챙긴 기어 인형보다 약 세 배는 더 훨씬 큰 기어 인형을 들고 오며 외쳤다.

“하하, 그래. 그 정도는 사 줘야. 어디 가서 내가 이응이한테 뭐 사 줬다고 생색낼 수 있지!”

“아, 그럼 이건 놓고 올게요.”

큰 걸 사 주겠다고 하자, 막상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은 듯했다.

표정 또한 훨씬 밝아진 얼굴이었다.

“됐어. 뭘 다시 놓으러 가려고 그래. 다 가져와, 다!”

정배찬은 계산을 마친 뒤, 은호에게는 기어 인형 두 개와 은지의 락앤롤 손가락 장난감을 건넸다.

“나 이거 방송 나가서 자랑해도 되지?”

“네. 그럼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좋은데 티를 내자니 민망한 듯, 오묘한 그 감정이 살짝 상기된 채 오그라든 은호의 표정에서 느껴졌다.

“은호나 은지나, 키나 덩치나 인상이나 세상 다 씹어 먹을 거 같이 생겼는데, 하는 짓은 왜 이렇게 귀엽냐. 하하하.”

계산을 마치고 돌아온 정배찬에게 조사랑이 웃으며 말했다.

“쟤 봐. 하하.”

그때, 서서운이 한 곳을 가리키며 정배찬과 조사랑을 불렀다.

서서운이 가리킨 곳에는 은지가 있었다.

은지는 정배찬이 사 준 락앤롤 손가락을 들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 저 감독님이 저렇게 헤벌쭉 웃는 거 같이 일하는 몇 년 동안 처음 봐.”

“언니, 언니, 저쪽도 봐 봐.”

“하하하하.”

서서운이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말하는 동안, 조사랑이 서서운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조사랑이 가리킨 반대편에는 품 안에 두 기어 인형을 한가득 안아 들고 있는 은호가 있었다.

둘에게 기념품을 쥐여 준 정배찬은 크게 만족하는 은호와 은지를 보며 소리 내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어서 더없이 뿌듯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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