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67)
PPL인 듯 팀에 맞춰 브랜드명이 보이는 빨강, 노랑, 파랑 셔츠를 나눠 입은 뒤.
인트로 장면 촬영을 위해 팀별로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레드!”
“레드!”
“크로스!”
“크로스!”
류석현과 조사랑이 서로의 팔을 겹쳐 ‘X’ 모양을 만들며 외쳤다.
“오케이. 컷. 다음.”
PD의 컷 신호에 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를 떠났다.
이어서 블루 팀으로 결정 난 은지와 정배찬, 최수민이 카메라 앞으로 향했다.
“하나, 둘, 셋!”
그사이 뭔가를 짜 온 건지, 세 사람은 숫자를 세며 호흡을 맞추더니 착착 자리를 잡았다.
은호는 앞으로 나서던 은지의 신발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쟤는 언제 신발까지 갈아 신었대…….”
은지는 구두를 굉장히 좋아한다.
하지만 일상에선 큰 키 때문에 본인만 톡 튀어 보이는 게 싫다며 잘 신지는 않았다.
그래서일까, 은지는 무대나 방송에서는 항상 구두를 신고 싶어 했다.
그런데 지금 은지는 갑자기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아마 이후 게임에서 본격적으로 이기기 위해서인 것 같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러나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우리는!”
그때였다.
은지와 정배찬이 먼저 양쪽에 서더니, 곧이어 최수민이 달려왔다.
“블루!”
“팀!”
“윽, 티, 티임.”
최수민은 정배찬의 허벅지를 밟아 높이 올라섰다.
이어서 은지의 허벅지를 밟더니 태양을 향해 활짝 양팔을 펼쳤다.
끙끙거리며 버티는 정배찬과 안정적인 은지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굉장한 포즈였다.
은호는 물론 스태프들까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오케이! 컷!”
감독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외치자, 세 사람은 “아자!” 기합을 내지르며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이어서 옐로 팀인 은호와 서서운의 차례가 찾아왔다.
“어쩌죠.”
“그러게요…….”
“제가 동생이니까, 말씀 편하게 해 주세요, 누님.”
“그럴까? 너도 그냥 편하게 불러.”
“네.”
서서운은 다른 멤버들을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너 뭐 할 수 있는 거 있니?”
“음.”
서서운은 희망을 품으며 은호에게 기대감 어린 눈빛을 보냈다.
“아뇨.”
돌아온 은호의 대답은 단호했다.
“너 동생이랑 성격이 되게 다르구나.”
“네. 그런 편이긴 해요.”
“굳이 꼽자면 나도 쟤보다 네 쪽에 가까워서 이해는 하는데, 방송 참 어렵다. 어려워.”
“일단 뭐든 해 볼까요.”
“그러자. 일단 지르다 보면 하나는 걸리겠지.”
편집되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에이스들의 집합!
〔옐로〕
뉴 에이스! 이은호!
현 에이스! 서서운!」
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
두 사람은 방송에서 평범하게 등을 맞대고 선 첫 번째 포즈로만 나갔다.
그 외 수많은 노력들은 ‘싹둑’.
재미가 없는 나머지 통으로 잘려 버렸다.
* * *
인트로 촬영이 끝난 뒤.
체인지 파트너 멤버들과 은호, 은지는 다 함께 관광버스에 올랐다.
“이번에 앨범 냈다던데, 본격적으로 게임 시작하기 전에 소개 좀 해 봐요.”
“그러게, 나 듀오 많이 들었는데 이번 앨범에 그것도 들어간다며?”
“네. 맞아요.”
다음 촬영지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 류석현은 은호와 은지에게 관심을 가졌다.
은호와 은지는 신난 얼굴로 이번에 나오는 앨범을 소개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는 모습들을 담은 앨범으로.
이응의 과거 이야기 그리고 현재 이야기를 섞어 가며 낸 앨범이라는 이야기를 더했다.
“보통 아이돌들은 그룹을 소개하거나 만나서 반갑다거나 예쁘게 봐 달라는 식으로, 밝게 시작하지 않아?”
1세대 아이돌이었던 조사랑이 던진 질문이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던 은호는 선배님의 질문인 만큼 나름의 예를 갖춰 답했다.
“저희가 뮤직비디오로 전달하는 세계관이 있는데…….”
세계관이라는 이야기에 ‘오―.’라며 류석현과 정배찬이 몸에 밴 듯한 익숙한 리액션을 보였다.
반응이 낯설었던 은호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마저 이야기를 이었다.
“세계관에 맞춰서 이별 이후 새로이 ‘다시’ 만나서 반갑다는 느낌으로 시작해 봤습니다.”
“하긴, ‘듀오’라는 단어 자체가 딱 너희를 소개하는 단어이긴 하니까.”
급하게 ‘회귀’를 나름의 세계관에 빗대어 에둘러서 말을 하긴 했지만,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와, 그런데 남매끼리 아이돌이라니 새롭긴 한데 너희가 고생이 많겠다.”
조사랑 선배도 나름대로 이해한 듯 주제를 넘겼다.
“나도 오빠 하나가 있어서 아는데, 어우! 그 인간이랑 춤추라고 하면, 으으. 난 못 할 것 같아.”
하하하하.
조사랑에 이어 최수민이 예시를 들자, 은호와 은지를 포함한 전 멤버들이 웃었다.
홍보를 약속한 출연인 만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장면은 그대로 방영됐다.
관광버스는 꽤 오랜 시간을 달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에 도착했다.
“놀이, 공원?”
“갑자기?”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도착지는 바로 에러랜드 테마파크.
“자, 잠시만요! PD님 오실 거예요!”
멤버들이 도착과 동시에 우르르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자 스태프들이 막아서며 외쳤다.
스태프의 말대로 잠시 후.
PD는 수상한 카드를 한가득 쥔 채 관광버스 안에 들어섰다.
“지금부터 이전 히든 미션 순위 순서대로 내리도록 할게요.”
“왜요?”
“맞아. 왜요?”
은지가 버릇처럼 묻자, 최수민이 은지에게 호응해 주며 한 번 더 PD에게 물었다.
“내려 보면 알아요.”
PD는 두 사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여유롭게 두 사람에게 답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그럼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그래.”
“하하. 막내야, 비켜 줘.”
은호가 내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앞에서 버티던 은지가 조사랑의 부탁에 은호를 사납게 쏘아보며 비켜섰다.
한편, 그런 은지를 가볍게 무시하며 버스에서 내린 은호는 PD가 있을 줄 알았건만, 내리자마자 보인 낯선 얼굴에 당황했다.
“안녕하신가.”
“아, 예. 안녕하십니까.”
웬 3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한 남자가 할아버지 분장을 하고서 새파란 포장마차 플라스틱 테이블을 펼쳐 두고 근엄하게 앉아 있다.
무엇 하나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은호는 애써 터져 나올 뻔한 어이없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그때였다.
“안녕 못 하네.”
“……?”
“뭐 하나!”
“네?”
“어서 앞에 앉게.”
“아, 네.”
은호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노인인 척하는 상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는 주변을 누가 봐도 수상할 정도로 두리번거리더니, 은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이걸 받게.”
그가 내민 건 흰 봉투였다.
수상한 봉투를 받아 든 은호는 곧장 봉투 안을 확인했다.
봉투 안에는 2만 원이 들어 있었다.
거기에 왠지 돈보다는 더 두꺼워 보이는 종이도 함께였다.
봉투에서 종이를 꺼내며 위로 쓰인 빼곡한 글자들을 보자 눈치챌 수 있었다.
‘이거, 미션이구나.’
아니나 다를까.
꺼내 든 종이에는 미션이 쓰여 있었다.
같은 팀원의 눈을 피해 2만 원을 모두 써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쓰는 부정행위는 일절 금지이며 오롯이 본인에게만 사용※
종이에 쓰인 건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순위 순서대로 나오라던 건 이것 때문인 모양이었다.
히든 미션의 1등에게 주어진 플러스 힌트!
→ 추가 미션을 받은 스파이가 ‘체인지 파트너’에 숨어들었다.
스파이를 찾아 낼 경우, 마지막 미션 시 S급 힌트 지급!
힌트였다.
은호는 봉투를 들고 뒤로 놓인 여분의 의자에 앉았다.
이어서 2위를 한 서서운이 버스에서 내렸다.
서서운을 비롯한 다른 모든 사람도 은호처럼 카드를 받았다.
일절 변화가 없는 사람도 있었지만, 은지처럼 표정이 훤하게 드러나는 멤버들도 있었다.
모두 봉투를 받은 후,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다 함께 놀이공원 안으로 향했다.
“꺄아아악!”
“오! 류석현이다!”
“서운한 언니!!!”
들어가던 중, 체인지 파트너의 애청자인 듯 멤버들을 보며 비명을 지르는 팬들이 있었다.
“음.”
“…….”
은호와 은지는 서로 시선을 맞추며 아쉬운 얼굴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최근 인지도를 얻고 있다고는 하지만, 벌써 오랜 시간 방영된 체인지 파트너의 멤버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 테니까.
머리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아쉬웠다.
“갸악!”
그때였다.
은호와 은지가 비명에 놀라서 돌아본 그곳엔 익숙한 키링 인형을 달고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어떡해!!!”
“미쳤나 봐!!!”
“은지 언니, 은호 오빠!!!”
저돌적으로 달려온 학생 무리 중 몇몇은 곧 울 것처럼 울먹였다.
“흐어어엉!”
아니, 진짜 운다.
“왜, 왜 울어!”
“괜찮아요?”
은지와 은호는 당황하며 우는 친구를 달랬다.
“어떡해. 저 허엉, 너무 팬이에요! 사진 끅, 찍어 주후으으, 허어어엉.”
무슨 말인지 단번에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왠지 귀여워서 은호와 은지는 소리 내어 웃어 버렸다.
학생들과 사진을 찍고 있자, 뒤이어 소란스러웠던 탓인지 팬보다는 구경꾼으로 추측되는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스태프들도 이젠 다시 촬영을 이어 가야 할 때였는지, 어서 들어가자며 재촉했다.
“안녕!”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멤버들과 은호, 은지는 놀이공원 입구의 한구석 자리에 모였다.
“촬영 허락을 받은 구역이 여기, 여기, 여기까지니까. 그 외 다른 구역으로는 이동을 자제해 주시고! 앞으로 4시간 동안 자유롭게 즐겨 주시면 됩니다.”
주의 사항에 대한 설명과 함께 4시간이라는 넓은 자유 시간이 주어지자 정배찬이 당황하며 물었다.
“자유롭게요?”
“네. 자유롭게요. 카드, 다들 받으셨잖습니까.”
“아.”
PD가 수상한 눈빛을 던지자, 멤버들과 은호와 은지까지.
모두가 서로를 수상하게 바라봤다.
아무래도 본인들이 받은 카드 속 미션을 떠올린 듯 보였다.
“그럼, 7시에 다시 이곳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7시.
수상쩍은 시각에 은호가 갸웃거렸다.
그리고 회의 당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살짝 공포 느낌으로 가겠다고 했었던 게 설마……?’
살짝의 수준은 이미 히든 미션을 통해 체험해 본 상황.
‘저녁 놀이공원이라…….’
저녁에 은지가 또 한 번 빽빽 소리를 지를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은호야.”
“네, 누님.”
“스페이스 익스프레스 타 봤어?”
“……아니요.”
스페이스 익스프레스.
에러랜드에서 가장 빠르고 높다는 롤러코스터.
대표님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대표님이 우리와 가까워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붓던 그 무렵.
나와 은지는 대표님에게 못 이긴 척 함께 에러랜드에 온 적 있었다.
그땐 하필 스페이스 익스프레스가 마침 공사 중이었기에 스릴을 좋아하는 이은지랑 난 아쉬움을 가득 안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타러 갈래?”
“음, 잠시만요.”
은호는 주변을 돌아보더니 블루 팀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하고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이은지.”
“어?”
“스페이스 익스프레스 타러 갈 건데, 같이 가실?”
“헐.”
은지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곧 하회탈 같은 활짝 웃는 얼굴을 하더니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릴 넘치는 놀이 기구를 탈 생각에 기쁜 걸음으로 블루 팀과 옐로 팀은 같이 스페이스 익스프레스로 향했다.
다만, 스페이스 익스프레스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누구도 그곳이 남매 전쟁의 시작이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