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66)
흔들흔들.
천장에서부터 늘어뜨린 채 걸려 있는 가발들이 은호 때와 똑같이 일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은지는 입을 꼭 틀어막은 채였지만, 손으로 가리지 못해 드러난 얼굴색이 점점 희다 못해 퍼렇게 질려 갔다.
‘여, 여기까진 그래도 괜찮아.’
놀라긴 했지만.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이 정도까지는 괜찮아.
……라며 은지는 애써 자신을 달랬다.
하지만 그 순간.
툭, 투두두둑.
은호 때와 마찬가지로 우수수 떨어지는 가발 중에서 책상 근처에 매달려 있던 하나가 은지가 신고 있던 오픈토 슈즈 틈, 살짝 드러난 은지의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를 간질였다.
“……이, X…….”
욕을 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담기면 위험하다.
그게 어떻게 편집되어 이용될지 모르니까.
하지만 은지는 그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기왕 담긴다면 아예 방송에 담길 수 없을 정도로, 무조건 ‘삐―’처리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들면 된다.
“맙소사.”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던 PD는 일이 터진 순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반응을 원하긴 했지만, 오우야…….’
‘파트너 체인지’의 PD는 은호와 은지의 오튜브를 시청한 적 있었다.
그래서 알싸한 매운맛인 은지의 성격을 알고 있기는 하던 참이었다.
다만, 그 오튜브에서 비치던 매운맛이 그렇게나 많은 편집을 거치고 나온 것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폭포 소리와 새 소리가 흐르는 장면을 넣고 [화면 조정 중입니다.]를 넣으라고 해야 하나…….’
PD는 잠시 고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의 스태프들은 지금 은지의 진심 어린 비명에 다들 빵빵 터지고 있었다.
그렇게 툭 도려내기엔 장면이 아까웠다.
그래서 고민 끝에 PD는 입 모양을 개와 새 스티커로 가리고, 이어서 찰진 욕설은 음성 합성 시스템인 TTS를 이용하여 덮기로 했다.
―너무 무섭다아아아.
그 결과, 방송에선 은지의 우렁찬 비명은 그대로 담기되, 욕설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어색한 TTS 음성이 덮인 채 나가게 되었다.
조화가 되지 않는 두 장면이 섞이자 큰 웃음을 자아냈다.
그뿐만 아니라, 교차로 비친 동생을 걱정하기보다 동생의 주둥이를 걱정하던 은호의 반응도 화제를 모았다.
“이 XX 같은 XXX 아아악! XX―!”
“아…… 이은지, 제발. 아이고.”
결국 터져 버린 공포의 주둥아리에 은호는 당시 마른세수를 하며 문 앞에서 스르륵 흘러내렸다.
은호와 은지의 그런 모습들이 ‘파트너 체인지’를 통해 비치고 난 뒤.
은호와 은지의 케미(?)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E%들이 홍보를 자처하며 ‘오튜브에는 저런 장면이 매 영상마다 있어요 ㅋㅋㅋㅋ’라며 알렸고, 덕분에 E-UNG의 오튜브 구독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배 이상 뛰어 버렸다.
앨범 판매량도 자연히 더 올라갔고,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였다.
정작 은호는 은지의 욕하는 장면이 어떻게 나올지를 몰라, ‘파트너 체인지’에서 그편이 방영될 때까지 불안함에 며칠을 잠 못 이루며 보냈지만 말이다.
다행히 나쁘지 않게 편집된 장면을 확인하고 나서야, 은호는 겨우 제대로 발을 뻗고 잘 수 있었다.
“하, 하하, 하, 하…… 스읍…….”
또르륵.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은 박 대표는 예상했던 일이었는지 웃어넘기려 애썼다.
그러나 박 대표의 왼 눈가에는 눈물 한 방울이 톡 흘렀다.
* * *
파트너
공포 히든 미션을 촬영한 뒤, 은호와 은지는 차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드디어 ‘파트너 체인지’의 고정 멤버인 류석현, 정배찬, 조사랑, 최수민, 서서운을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다!”
TV로만 보던 사람들이 보이자 긴장이라도 한 걸까.
아니면 아직 공포 히든 미션에서의 여운이라도 남은 걸까.
은지는 첫 만남부터 이상한 인사를 했다.
“E-UNG 이은지입니다!”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더 뻔뻔하게 인사를 이어 가서 그런가.
멤버들은 ‘원래 이런 아이인가 보다’라며 은지의 인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듯 보였다.
“E-UNG의 이은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어서 은호까지 인사를 한 뒤에서야 멤버들은 “어서 와요.”, “반가워요.”라며 살가운 인사를 건넸다.
“슬레이트 은지가 칠래?”
“오! 네! 좋아요! 어떻게 하면 돼요?”
“그냥 카메라 앞에 가서 이거 치면 돼.”
촬영 전 짧게 주어진 쉬는 시간 동안.
은지는 대체 어떻게 친해진 건지, 그사이 서서운, 조사랑, 최수민에게 막내로 이쁨을 받으며 여자 멤버들 사이에 섞여 들어 있었다.
“하나, 둘, 셋!”
탁!
슬레이트의 클랩 스틱이 부딪치며 찰진 박수 소리를 냈다.
테이프를 간 뒤 촬영이 다시 시작됐지만 어쩐지 촬영장의 분위기는 여전히 느긋했다.
이런 경험이 적기 때문일까.
은호와 은지는 갸웃거리며 의문을 드러냈다.
그때였다.
“이번 히든 미션 순위가 나왔습니다.”
PD가 외쳤다.
“이번에 그 이상한 방에서 카드 뒤집는 게 히든 미션이었던 거 맞지?”
류석현이 물었지만, PD는 조용히 웃기만 할 뿐 말을 아꼈다.
한편 PD의 알림에 그간 평온하던 멤버들 사이에 승부욕으로 생긴 묘한 기류가 흘렀다.
이런 뜨거운 분위기는 오랜만이라 그런가.
은호도 은지도 오래간만에 바짝 긴장하며 PD의 발표를 기다렸다.
“3위 이은지, 공동 4위 조사랑, 류석현, 5위 최수민, 6위 정배찬입니다.”
PD는 카드를 읽으며 순서대로 순위를 발표했다.
“1, 2위는?”
아직 이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일까.
서서운이 기대감을 드러내며 물었다.
“2위는…….”
PD는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선지 일부러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시간을 끌었다.
“아, 빨리!”
“속 터지겠어!”
조사랑과 서서운이 답답한 마음에 성질을 내자, 도끼눈이 두려웠던 PD는 곧장 발표를 이어 갔다.
“2위! 서서운!”
“어? 언니가? 2위라고?”
“그럼 1위는요?”
조사랑과 최수민이 놀란 눈을 하며 물었다.
“1위는 이은호 씨입니다.”
“대박!”
“만년 1위, 서서운 에이스! 아, 이렇게 2위가 되어 버립니다!”
정배찬이 마치 야구 중계라도 하듯 선크림 통을 잡은 채 소리쳤다.
류석현이 바통을 이어받듯 선크림 통을 건네받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서서운 에이스를 꺾은 이은호 씨는 뉴페이스인데요!”
“맞습니다!”
“이야! 이은호 선수!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등장부터 마녀 서서운을 꺾었어요! 서서운 선수, 서서 우는 걸까요?”
“이것들이, 남에 이름 가지고 또!”
두 사람의 중계는 서서운의 장난기 섞인 발길질에 멎었다.
상황이 정리된 뒤, PD가 은호를 보며 히든 미션의 상품에 대해 설명했다.
‘파트너 선택권.’
히든 미션 1위에게는 첫 미션에 함께할 맴버를 직접 배치할 기회가 주어진다.
다만, ‘파트너 체인지’의 특성상 어차피 모든 멤버들과 한 번씩은 파트너가 되게 되어 있다.
인원이 딱 떨어지는 짝수가 아닌 탓에 미션마다 때로는 3인, 때로는 4인 등 인원수가 다양하게 갈라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렇다고 사람이 많은 쪽이 유리하다고 하기엔 미션지에 도착할 때까지 미션에 유리한 인원수를 알 수 없기에 그것 또한 랜덤.
‘흐음.’
설명을 모두 들은 은호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은지는 팔짱은 낀 채 바닥을 보며 곰곰이 고민하는 은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고민하는 척하기는.’
파트너를 택할 기회가 있다면 최대한 서로를 고르라던 박 대표의 부탁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은 이런 사전의 이야기를 모르는 상황이다.
‘어떻게 놀릴까. ‘역시 이은호 넌 내가 없으면 안 되지?’라고 할까?’
은지는 황당해하는 은호의 얼굴을 상상하며 숨죽여 웃었다.
그동안 PD는 은호에게 퍼즐처럼 생긴 이름표들을 내밀었다.
이름표에는 고정 멤버들의 이름과 은지의 이름이 있었다.
팀이 될 멤버의 이름표 퍼즐을 결합하면 팀으로 결정되는 것이었다.
은호는 조용히 퍼즐을 엮었다.
“결정하시겠습니까?”
“네.”
PD가 묻자, 은호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은호가 PD 앞을 떠나자, 스태프들은 PD와 짧은 회의 후 팀에 맞춰 준비된 의상을 챙겼다.
“이번 체인지 파트너의 첫 번째 팀이 결정되었습니다.”
준비를 끝마친 뒤, PD는 팀을 발표했다.
“레드 팀, 류석현, 조사랑.”
“블루 팀, 정배찬, 이은지, 최수민.”
“에?”
은지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본인의 이름이 나오자, 당황한 표정으로 갸웃거렸다.
“옐로 팀, 서서운, 이은호.”
마지막으로 은호의 팀이 호명되자, 은지의 표정은 더 어이가 증발해 있었다.
“나는?”
은지가 은호를 보며 묻자, 은호가 갸웃거리며 오히려 되물었다.
“너, 뭐.”
“나 왜 안 뽑아!”
“내가 널 왜 뽑아? 너 게임 못하잖아.”
은지가 황당해하는 만큼 은호 역시 황당한 얼굴로 은지를 바라봤다.
“그렇지만, 대표님이…….”
“그럴 수 있으면 그러라고 했지. 꼭 그러라는 말은 안 했잖아.”
은지가 뒷말을 흐렸지만, 은호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한 듯 유연한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체인지 파트너’는 결국 순위를 가르는 게임.
은호는 자신을 알았다.
그 결과, 예능에서 재미를 챙길 자신은 없으니, 대신 승리는 쥐겠다는 마음으로 이기기 위한 에이스 파트너를 골랐다.
“허! 하! 와, 너. 허!”
은지가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계속 터뜨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멤버들이 웃으며 말을 더했다.
“은지 씨가 오빠를 많이 따라다니나 봐.”
“아니요! 미.”
‘미쳤어요?’라고 하려다 겨우 입을 멈췄다.
“맞아요.”
한편, 격하게 아니라며 의견을 피력하던 은지와 달리 은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휴, 그래서 제가 많이 귀찮아요.”
“헐, 사기 치지 마! 내가 언제 이―.”
X자식아!!!
은지가 억울해 미칠 것 같은지 가슴을 퍽퍽 두드리며 답답함을 표했다.
그런 와중에도 욕이 터질 것 같은지, 은지는 애써 이를 악물며 입은 닫았다.
멤버들은 물론 스태프들도 그런 은지의 모습에 하나둘씩 웃음을 터뜨렸다.
한편, 은지는 이를 악물며 은호에게 경고했다.
“두고 봐라.”
“응. 두고 보라는 놈 중에 무서운 놈 없더라.”
“하, 진짜. 내가 넌 이긴다, 이은호.”
“해 보시든가. 게임도 못하는 게.”
“허, 하! 두고 봐!!!”
“잘 해 봐. 어차피 지겠지만.”
둘은 평소처럼, 아니.
오히려 방송이라 조금은 순화된 말싸움을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은호와 은지는 고정 멤버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PD는 흥미 있는 눈길로 은호와 은지를 살폈다.
평소 ‘서서운이 1위를 또 할 수 있을까’가 주 관심사였던 고여 있는 촬영장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오랜만에 다른 사람이, 그것도 게스트가 잘 짜여 있던 틀을 파괴하고 파고들었다.
특히, 지금껏 에이스 서서운을 쉬이 이길 사람이 없었다.
게스트가 와도 고정 멤버들의 케미에 쉽사리 녹아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케미 부분은 은지가 케어를 하면서.
은호는 에이스 서서운과 라이벌 구도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공포심에 사고를 한차례 터뜨리긴 했지만…….
은지는 욱하는 면을 잘 누르는 편이었다.
오히려 그런 감정을 누르는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입을 틀어막는다거나 욕하는 걸 참기 위해 턱에 힘을 주는 모습 등.
그런 면이 툭툭 나올 때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PD는 예상치 못하게 예능계의 보석을 발견한 듯 기뻤다.
물론 아직까지는 추측일 뿐이라, 오늘 촬영을 하는 동안 판단해야 할 부분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