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65)
<그 앞집이 수상하다>
이 드라마의 개봉일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2019년쯤으로 기억한다.
그 말은 곧, 아직 2015년인 이 시간에서는 계획조차 잡혀 있지 않은 이야기였다.
박 대표의 한마디에 은호와 은지는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사무실에는 긴 침묵이 맴돌았다.
“……그.”
뻣뻣하게 얼어 있던 은호가 살짝 벌어진 입으로 들릴락 말락 할 아주 작은 목소리를 흘렸다.
숨이 턱턱 막혀 오는 와중에도 은호는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머릿속을 정리하며 침착함을 되찾아 갔다.
“꿈에서…….”
일단 운은 뗐다.
은지가 잘 받아치기만 하면 이 상황을 어떻게든 넘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빨리 받아쳐.
빨리.
이은지!
은호는 다급함이 한가득 담긴 시선으로 은지를 쏘아봤다.
하지만 정작 신호를 받아야 할 은지는 당황한 나머지 여전히 얼어 있는 모습이었다.
‘뭐. 나, 뭐. 내가 뭐, 뭘 어떻게, 내, 내가 뭘 어쩌라고!’
‘꿈!’
은호는 다급히 다시 한 번 눈짓으로 힌트를 알려 줬다.
‘아, 꿈.’
은지는 겨우 도망치던 이성을 붙잡은 듯 뒤늦게 차분해져 갔다.
“이―은호가 꿈을 꿨었다고 했거든요. 배, 배우, 아니. 그 정배찬 선배님이 ‘그 앞집이 수상하다’라는 드라마를 하는! 네!”
박 대표는 의미심장한 눈초리를 여전히 거두지 않았다.
“은호가 꿈을 꾼 건데 조금 전에는 은지 네가 ‘예전에’라면서 말했잖아.”
“예?”
“‘‘로맨스릴러’인 줄 알았는데 까고 보니 개그물이었다.’, ‘화제가 됐던 드라마였다.’라고.”
박 대표는 정확하게 은지가 했던 이야기를 되짚으며 파고들었다.
은호는 마른세수를 하며 불타는 속을 애써 달랬다.
은지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는지, ‘그게!’라며 급하게 운을 뗐다.
“네. 꿈에서! 예. 그, 이은호랑 저랑 같은 꿈을 꿨었거든요! 그래서 서로 막 놀랐던, 그랬던―.”
흠.
박 대표는 이상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해는 한 듯 ‘그렇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달이요!”
“예, 갑니다!”
때마침 구세주처럼 사무실 앞에서 배달원이 소리쳤다.
박 대표는 음식을 받으러 나갔고, 은호와 은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속삭였다.
“말조심해야겠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대표님한테는 그냥 미래를 알고 있다고 밝히면 좋은 게 좋은 거 아니야?”
“정신병원 끌려가고 싶으면 밝혀 보던가.”
“이은호 넌 밝혔잖아.”
“그건 너니까 말한 거지. 그리고 그때 기억 안 나냐? 니가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따져 대는데 어쩔 수 없잖아. 그리고…….”
대답이 없는 은호를 보며 은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뭐. 왜 말을 하다가 말아. 궁금하게.”
“아니, 그냥 ‘미래를 안다’라고 말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어서.”
“왜? 알잖아?”
“좀, 그때랑은 많이 달라졌잖아.”
“뭐 그건 그렇지. 근데 그건 갑자기 왜?”
“니가 대표님한테 미래를 알고 있다고 밝히고 싶다며.”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무튼, 조심하는 게 좋을 거 같다.”
은지는 투덜거리긴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일을 확신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들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 대표님이 배달원에게 건네받은 듯 푸짐한 비닐봉지를 들고 다시 테이블로 돌아왔다.
이야기는 매콤한 김치찌개 향기에 홀려 이미 끝낸 지 오래였다.
* * *
그로부터 며칠이 뒤.
무대가 아닌 방송은 오랜만이기 때문일까.
은호와 은지는 떨리는 걸음으로 방송국에 들어섰다.
방송국에 도착한 직후, ‘파트너 체인지’의 카메라가 기다렸다는 듯 우리를 비쳤다.
사전에 이야기가 되어 있던 부분이라, 이은지와 난 신경 쓰지 않은 채 곧장 사전 회의 당시 안내받았던 ‘대기실’이라고 부르는 세트장으로 향했다.
“오.”
“미치―.”
세트장의 분위기는 촬영 콘셉트 탓일까.
문을 연 순간.
은지가 순간 방송인 것도 잊고 풍경에 놀라 욕지거리를 뱉을 지경이었다.
내가 급하게 이은지 입을 틀어막지 않았더라면 방송에 새어 나갈 뻔했다.
이유는 있었다.
「“살짝, 아주 살짝 공포 분위기 느낌으로다가 하는데―.”」
7월은 슬슬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시기다.
그리고 이맘때쯤이면 극장이든 TV든 스멀스멀 더위를 날리기 위해 서늘함을 선사하는 공포 특집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이번 ‘파트너 체인지’ 역시 이 시즌을 놓칠 리 없었다.
그나마 다행히 사전 미팅 당시 PD님이 미리 말씀은 해 주셨다는 게 다행이랄까.
다만, 그 ‘살짝’이 이런 건 줄은 몰랐다.
‘싫어. X나 싫어.’
괜찮나 싶어서 옆을 돌아보자, 은지의 간절한 눈빛이 보였다.
은지는 ‘공포물’을 극도로 싫어한다.
특히 귀신이 나올 듯한, 척 봐도 공포 영화의 배경지가 될 것 같은 으스스한 그런 풍경들.
예를 들어 폐교라든가, 폐가라든가 말이다.
대기실의 풍경이 딱 이은지가 싫어하는 그 모든 것의 총집합인 느낌이었다.
불 꺼진 방 안.
으스스하게 연출된 거미줄과 녹슨 사물함.
구석에 세워 둔 교복 입은 마네킹.
그리고 왜 이렇게 해 둔 건지 모르겠지만…….
곳곳에 낚싯줄로 묶여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가발들.
이런 풍경의 중심에 뜬금없이 낡은 학교 책상과 의자가 덩그러니 있었다.
책상 위에는 엎어진 검은 카드 5장이 놓여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우리는 저 다섯 장의 카드 중 한 장을 골라야 했다.
“나, 나 못 해.”
처음에 대기실의 문을 벌컥 열어젖힌 건 은지였다.
이은지는 차츰 한 걸음씩 멀어지더니 지금은…….
카메라를 벗어난 걸 넘어 감독님이 숨어 있는 상자 속에 같이 들어갈 폼이다.
“카드 뽑아야지.”
“니가, 아, 아니. 오, 오빠가 먼저 뽑아.”
“감독님도 있는데 뭐가 무섭다고.”
“그러니까 오빠가 먼저 뽑으라고오…….”
하하, 꼬맹이 시절 처음 폐가에 들어서던 당시 이은지 모습이 겹쳐 보인다.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애써 방송이라 참았다.
“알았다. 그럼 나 먼저 들어간다.”
그렇게 대기실 안으로 발을 들인 그때였다.
쾅!
문이 닫혔다.
문이 닫히던 그 순간, 이은지가 문 너머에서 비명이라도 지른 듯 두꺼운 문을 뚫고 ‘꺅’거리는 소리가 옅게 들리는 것 같았다.
손이 문틈에 낄까 봐 놀라긴 했는데, 이런 연출은 나쁘지 않았다.
‘제대론데?’
그나저나, 이은지한테 안에 감독님도 있는데 뭐가 무섭냐고 말은 했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서자 조명이 워낙 강해서 뒤편에 있는 스태프들은 없는 느낌이다.
아니, 없는 건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내부가 컴컴했다.
다행히 구석구석 설치된 박스를 보아하니 카메라 감독님들은 계신 모양.
난 중앙에 놓인 책상으로 향했다.
엎어진 다섯 장의 카드 중 중앙에 놓인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카드에는 검은 불덩이가 우수수 떨어지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 * *
은호의 모습을 담기 위해 박스 안에 쥐 죽은 듯 숨어 촬영하던 카메라 감독.
“오, 씨.”
놀래라.
은호가 카드를 집어 든 그 순간.
투두두둑, 툭.
일제히 방 안에 걸린 가발들이 흔들거리다 우수수 떨어졌다.
그 광경이 워낙 소름이 끼쳤던 탓일까.
이 풍경에 몇 분째 놓여 있던 카메라 감독마저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내버렸다.
한편, 정작 그 중심에서 가장 무서워해야 할 은호는 오히려 덤덤하기만 했다.
사실 PD의 예상안대로라면 누구든 여기서 소리를 지르며 문밖으로 뛰쳐나가야 했다.
‘파트너 체인지’에선 사전에 설명 없이 애드리브로 진행되는 부분이 하나 있다.
파트너 선택권이 걸린 히든 미션.
이번에 준비된 이 대기실이 바로 그 히든 미션이었다.
카드를 뒤집은 순간부터 가장 오래 견디는 사람이 모든 멤버들의 첫 파트너를 직접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다.
지금까지 ‘파트너 체인지’의 고정 멤버들 중에서 가장 오래 버틴 사람은 단 한 명.
에이스라 불리는 서서운이라는 여자 멤버였다.
그녀마저도 카드 한 장을 공개 후에는 도망치듯 대기실을 빠져나갔었다.
그 기록이 경신되는 순간이었다.
은호는 당시에는 미칠 것 같을 정도로 힘들게 만들었던 ‘창백한 이은지’ 덕분일까.
지금은 생각했던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괜찮아졌지만, 이런 면에선 의식하지 못한 새에 굉장한 강심장이 되어 있었다.
은호는 주변에 떨어진 가발들을 무심하게 돌아보다 조심스럽게 정면의 허공을 보며 물었다.
“이거 더 뽑아도 되나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안 된다는 거면 말리시겠지.’
은호는 알아서 판단한 듯 다음 카드를 오픈했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카드였다.
그 순간.
방에 놓여 있던 유일한 조명인 랜턴이 꺼졌다.
약 20초가량이 흐른 뒤, 조명은 다시 서서히 제 밝기를 찾아갔다.
이후로도 은호는 다음, 또 다음 카드를 뒤집었다.
그렇게 준비된 총 다섯 가지 공포 이벤트를 모두 감상한 뒤에서야, 은호는 느긋한 걸음으로 대기실을 나갔다.
은호가 대기실을 나가고, 카메라 감독은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첫 이벤트 이후로 소리를 내는 실수는 안 했지만 매 이벤트마다 흠칫흠칫했으니까.
한편, 그가 정작 촬영하던 대상인 은호는 표정 한 번 달라지지 않았다.
‘대단하다.’
카메라 감독은 속으로나마 박수를 치며 은호를 인정했다.
“아, 무서워어어억!!!”
“안 무섭다니까?”
“무섭다고! 내가 무섭다고!”
“아, 괜찮다니까? 별거 없었어!”
“어헝헝. 너무 싫어어어억!!!”
“프로답게 할 거라며!”
“이건 그냥 아마추어 할래!”
“헛소리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
“아악!”
잠시 대기실이 다시 세팅되는 그동안, 문 밖에서는 대체 무슨 난리가 있던 건지 한참 시끄러웠다.
그러다 밀어 넣어지다시피 대기실 안에 은지가 들어섰다.
쿵.
이전에 그랬듯, 은지가 들어서자마자 이번 역시 대기실 문이 닫혔다.
은지는 앞서 은호 때 문이 닫히는 장면을 이미 봤었기 때문일까.
의외로 여기선 파들파들 떨고 있긴 하지만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애초에, 은지는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본인도 실수로 욕을 할까 봐 걱정됐는지 양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아서 비명이 새어 나올 틈이 없게 했다.
은지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상으로 향했다.
“흡, 읍! 끕!”
또, 각. 또각.
개미 눈곱만큼은 이동했을까.
그 와중에 본인의 구두 굽 소리에 흠칫, 흠칫 놀라는 은지의 모습은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흐큽.’
조금 전까지 엄청난 강심장이던 은호와 똑 닮은 외모와는 정반대의 모습.
그 덕에 카메라 감독은 이번엔 본의 아니게 웃음 참기를 해야 했다.
들썩, 들썩.
‘뭐, 뭐야, X친 저 박스는 왜 저렇게 들썩대고 X랄이야! X나 무서워!!!’
은지는 카메라 감독이 웃음을 참느라 흔들린 좁은 박스를 본 순간.
공포에 질렸던 눈이 곧 울 것처럼 글썽거렸다.
와중에 혹여나 욕을 할까.
악착같이 손으로 입은 제대로 꼭 틀어막은 상태였다.
은지는 두 걸음이면 도착할 책상을 족히 스무 걸음 만에 겨우 도달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만 근 10분을 넘긴 시간이었다.
“후우…….”
카드 앞에 선 은지는 잠시 손을 풀고 땅이 꺼질 것 같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입 잘 틀어막아라. 욕하는 모습 카메라에 담기면 큰일 난다.”」
들어오기 직전에 던진 은호의 경고를 의식한 듯, 은지는 한 손으로 다시 입을 틀어막았다.
그때, 다른 한 손은 다섯 장 중 왼쪽에서 두 번째에 놓인 카드에 천천히 손을 뻗었다.
느리게 카드로 손을 뻗으면서도 은지는 경계하는 고양이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한참 만에 카드를 뒤집은 그 순간.
‘뭐지?’
은호가 처음에 뽑았던 그 카드.
검은 불덩이가 떨어지고 있는 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