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64)
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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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 첫 번째 미니 앨범 ‘TIME’ 발표 이후 일주일간 선주문량 3만……」
「톡신의 리더 지예찬 민스타에 등장한 ‘EG등’? 신인 아이돌 그룹 이응의……」
「아이돌 팬덤들 사이에 뜨고 있는 ‘비북’? 스타들의 무대 아래에서의 모습을 모은……」
「E-UNG 그룹의 첫 미니 앨범, 쇼케이스 날짜 공개……」
수많은 기대감 어린 기사들이 쏟아지는데, 정작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은 오늘따라 우중충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것도 시작은 대표실에서부터 퍼져 나온 비구름이었다.
“하…….”
박 대표가 푹푹 한숨을 내쉴 적마다 지나치는 직원들은 안쓰럽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그때였다.
짤랑.
회사의 불투명한 유리문이 열리자, 문에 달린 종이 낸 소리에 시선들이 몰렸다.
입구에는 외모는 똑같이 닮은 듯하지만, 분위기는 다른 익숙한 남매가 있었다.
“……?”
“음?”
은호와 은지는 회사 안으로 들어선 순간.
왠지 모를 무거운 분위기에 조금 움츠러들었다.
‘하하.’
눈치 빠른 두 사람이 일찍 분위기를 읽고 경계하는 모습에 수심에 잠겨 있던 박 대표의 얼굴에 헛헛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리고 그제야 우중충했던 비구름을 걷어 내며 둘에게 손짓했다.
“얼른 들어와. 할 말 있으니까.”
“넹.”
“네.”
문을 붙잡고 있던 은지가 혀 짧은 대답을 하며 먼저 들어간 그때.
뒤따르던 은호는 못 들을 걸 들은 양, 미간을 구기며 고개를 저었다.
은지가 먼저 박 대표가 있던 테이블의 건너 자리에 앉았다.
은호는 자연스레 한 칸 떨어진 의자를 꺼냈다.
박 대표가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 은호는 갸웃거리며 ‘아, 앉으면 안 되나요?’라는 듯 시선으로 질문을 던졌다.
박 대표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앉자, 박 대표는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뱉었다.
1층에 있는 NRY 사옥이 지하로 꺼질 것같이 깊은 한숨이었다.
“참, 반대하고 싶은데…….”
“……?”
“이게 좋은 기회이기는 하거든…….”
은호와 은지는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쳤다.
‘너 뭐 들은 거 있어?’
‘이은호 니가 들은 게 없는데 대표님이 나한테 먼저 말했을 것 같아?’
‘하긴.’
미리 들은 바가 아무것도 없는 탓에 은호와 은지는 지금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박 대표는 결심이 선 듯 손등에 대고 있던 이마를 떼며 입을 열었다.
“나가라.”
“예?”
“아니, 미안하다. 주어를 빼고 말했네.”
은호와 은지가 화들짝 놀라며 묻자, 박 대표도 당황했는지 바쁘게 손을 저으며 제대로 설명을 덧붙였다.
“SNJT에서 연락이 왔어.”
“방송국이요?”
“그래.”
“그럼 좋은 일 아니에요? 근데 왜 대표님 얼굴은 죽상―!”
은지가 실수하기 직전이던 그때였다.
은호는 웃으며 다리를 뻗더니 뒤꿈치로 은지의 정강이를 내려찍었다.
은지는 비명을 참으며 이글거리는 눈으로 은호를 돌아보며 읊조렸다.
“이 므츤 스끄으, 갑자기 왜 X랄이야…….”
“말 그렇게 하지 말라니까.”
“그…….”
은지는 욕을 하려다 박 대표의 시선을 느끼곤 이를 악물며 입을 닫았다.
“무슨 제안이었는데요?”
은지가 못 했던 질문은 은호가 마저 이어 갔다.
“‘체인지 파트너’에서 예능 출연을 해 달라더라.”
“…….”
예능이라는 말에 은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은호만큼이나 박 대표의 안색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와! 나 드디어 예능 나가 보는 거야?”
기뻐하는 건 정작 이 우중충한 분위기의 원인인 은지 하나뿐이었다.
‘…….’
은호는 적어도 말실수 같은 쪽으로는 걱정이 없다.
은호의 노래도 말해서 뭐 하겠나 싶을 정도로, 모자란 부분을 찾기가 더 어려울 만큼 잘한다.
그 외 뭐, 진행하는 능력 등등.
솔직히 그런 부분에서도 걱정은 없다.
E-FAN 어플을 통해 생방송을 진행할 때도 은호는 상황 정리를 잘하는 편이었으니까.
다만, 다른 의미에서 박 대표는 은호 역시 걱정이 됐다.
TV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바로 예능감 말이다.
은호는 진지한 성격이다.
태클이 없다면 정말 무뚝뚝하게 있을 뿐이다.
‘……?’
‘크흠.’
박 대표는 빤히 보는 은호의 시선에 양심에 찔린 듯 시선을 은지에게 돌렸다.
‘체인지 파트너’.
이 예능은 PD가 제안하는 각종 미션을 수행하는 게 콘텐츠의 주 흐름이다.
박 대표도 종종 시청하는 프로그램으로, 고정 멤버들이 몇 년을 함께해 온 사람들이라 멤버들 간의 케미가 돋보여서 재미있는 방송이었다.
다만 그래서일까.
오히려 게스트들이 쉬이 얽히기 힘든 예능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곳에 예능감이 부족한 은호와 폭탄 같은 은지를 보내야 한다.
그것도 ‘첫’ 예능으로…….
‘체인지 파트너’ 프로그램은 매시간, 매 미션마다 파트너가 바뀐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모든 미션이 종료됐을 때 모든 멤버가 모여, 1등 파트너를 정하는 비밀 투표를 진행하는 식으로 프로그램이 흘러간다.
이 말은 곧, 은호와 은지를 떨어뜨린다는 말이다.
운이 좋아서 두 사람이 붙을 수도 있지만…….
과연 작가와 PD가 그 상황을 둘까?
그런 상황에 은호가 없을 때 은지가 말실수라도 해 버린다면?
아니면, 은호가 너무 재미없어서 통편집이라도 당해 버린다면?
이러나저러나 아찔한 결과에 박 대표는 눈을 질끈 감으며 다시 암울한 비구름을 생산해 냈다.
한편 그렇게 걱정이 산더미인 박 대표와 달리 은지는 해맑은 표정이었다.
은호는 신나서 들뜬 은지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 ‘체인지 파트너’인가, 그 프로 본 적 있어?”
“당연! 내 최애 프로인데.”
“너 TV 안 보잖아.”
“얼마 전까지는 그랬지.”
“얼마 전까지는?”
“엉. 최근에 오튜브에 그거 짧게 편집된 거 올라오길래 봤었거든. 되게 재밌어서 요즘은 챙겨 보는데?”
“그랬냐?”
“하여간, 하나뿐인 지 동생이 뭘 좋아하는지도 몰라요.”
“그걸 내가 알아서 뭐 해.”
말을 하고 보니까 궁금해졌는지, 은호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야, 그러면 너는 뭐 아는 거 있냐?”
“내가?”
“어.”
“뭘?”
“내가 뭐 좋아하는지.”
“……?”
은지는 ‘왜 저래.’라는 듯 혐오 어린 시선으로 은호를 위아래로 훑으며 답했다.
“그걸 내가 알아서 뭐 해.”
“…….”
대답을 듣고서야 은호는 당했다는 걸 눈치채며 황당한 얼굴로 은지를 가만히 쳐다봤다.
‘얘가 X쳤나…….’
박 대표가 바로 앞에 있는 탓에 차마 입 밖으로 욕을 할 수는 없으니, 눈으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했다.
한편 은지는 은호를 성공적으로 놀린 게 기쁜 듯 여유롭게 눈꼬리를 휘며 활짝 웃었다.
은호는 툭 던지듯 은지의 미소를 본 소감을 말했다.
“하회탈이다.”
“응. 개불같이 생긴 이은호.”
“와, 말 심하게 하네. 해삼같이 생긴 게.”
둘의 투덕거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박 대표의 한숨이 훨씬 더 깊어졌다.
‘이런 녀석들을 어떻게 예능에 내보내…….’
에휴.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좋은 기회를 버릴 수는 없다.
그래서 박 대표는 긴 고민 끝에 결국에는 출연시키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맛있는 거 먹고 와요. 돈은 걱정하지 말고.”
“네. 다녀오겠습니다.”
“차 조심들 하고.”
“네.”
“네!”
점심시간이 되자, 직원 중 기훈 씨가 대표로 박 대표에게 법인 카드를 받아 들었다.
“식사들 맛있게 드세요!”
“두 분도요.”
은지가 인사하자, 직원들도 손을 흔들며 하나둘씩 밖으로 나갔다.
예능 이야기와 관련해서 할 이야기가 남은 듯 점심시간이 다다르자 박 대표는 은호와 은지를 사무실에 남도록 했다.
“저희는 뭐 먹어요?”
“돼지고기 김치찌개로 백반 주문해 뒀다.”
“오!”
박 대표가 선정한 메뉴가 마음에 들었는지 은지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동안 은호는 휴대폰으로 ‘체인지 파트너’에 대해 찾아봤다.
‘체인지 파트너’는 회귀 전에도 상당히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다만 원체 TV를 잘 안 보기도 했던 데다, 나는 그다지 예능 출연을 자주 하는 그런 가수도 아니었다.
‘큼.’
그 시절을 떠올리자 조금 민망해졌다.
당시에는 노래하는 게 아닌 이상 홍보를 위한 목적으로는 활동을 잘 하지 않았다.
‘…….’
사실 불러 주는 곳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라 괜히 더 고집부터 부렸다.
당시 작업을 위해 예능 출연을 자제하는 선배님이 종종 있었다.
그때 난 그 선배님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문제는 그렇게 고집부리다 대표님과 크게 다투기도…….
‘음.’
민망한 기분에 괜스레 간지럽지도 않은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아무튼 나는 그랬었지만, 이은지는 달랐다.
이은지는 회사에서 예능 출연을 반대했다.
그래서일까.
이은지는 예능을 좋아했다.
“이은지.”
“엉?”
“혹시 거기 나가는 날 어떻게 준비하면 좋은지, 뭐 어떤 부분 유의하면 괜찮은지나 그런 거 아는 거 있냐.”
그사이 또 무슨 노래를 떠올린 건지, 녹음기를 켜고 흥얼거리던 이은지는 녹음을 중단하며 입을 열었다.
“아, 거기 언니들이 더 많아.”
“그건 알아.”
눈까지 빛내면서 말을 하길래 중요한 이야기인가 했더니, 조금 전 검색을 통해 알고 있던 정보다.
‘파트너 체인지’의 멤버는 총 다섯 명이다.
MC인 류석현과 다른 개그맨 출신의 한 명을 제외하면 세 사람이 여성 멤버였다.
그것도 찾아보니 이은지처럼 한 성격 하실 것 같은 강한 인상의 선배님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은지는 무언가를 더 떠올리는 중인지, 팔짱을 낀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그, 정, 정, 누구였지?”
“정?”
“되게 묵직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순했던 사람 있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중얼거리는 이은지를 가만히 보고 있던 그때였다.
“그, 그그, 그!!!”
“왜 소리를 질러 싸.”
안 그래도 목소리가 기차 화통 삶아 먹은 것 같은 애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떠오르지 않는지 볼륨이 점점 커졌다.
고막을 울리는 목청에 은호는 한 귀를 틀어막은 채 인상을 구겼다.
“아니, 체인지 파트너 고정 멤버 중에 한 사람이 그, 드라마 어디에 출연했었는데, 그, 뭐더라, 그.”
은지가 계속 ‘그그’거리고 있자, 참다못해 박 대표까지 말을 더했다.
“은지야, 내가 다 숨이 찬다.”
“아, 있는데, 그!”
“뭐. 힌트라도 줘야 알 거 아니야.”
은호가 한숨을 흘리며 말했다.
“그, 있잖아. 예전에 ‘로맨스릴러’인 줄 알았는데 까고 보니 개그물이었다면서 막 화제였던 드라마. 그, 그 앞집 어찌구였는데…….”
앞집이라는 말에 무언가 떠오른 듯 은호의 눈썹이 들썩였다.
“‘그 앞집이 수상하다’ 정배찬 선배님?”
“어어! ‘그앞수’! 정배찬!”
“……그냥 MC분 말고 다른 남자 멤버 이름 뭐냐고 물었으면 대답해 줬을 걸, 뭘 그렇게 힘들게 말해.”
“아.”
“하하, 이은지 멍청한 얼굴 또 나왔다.”
은호는 맹한 얼굴로 입을 벌린 은지를 보며 웃었다.
은지가 떠올리던 정배찬은 ‘파트너 체인지’의 개그맨 출신이라던 두 번째 남자 멤버의 이름이었다.
“흠? 정배찬이, 드라마를 했다고?”
그때, 박 대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걔 연기 공부하고 있다고만 했지, 아직 뭐 출연한 적은 없을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