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63)
나 나나 나 red Light
은정은 이번에 나온 E-UNG의 신곡 가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동아리 방을 나섰다.
수업은 다 끝난 시각이라 그런지 복도는 한산했다.
“나 나나 나 레드 라잇!”
은정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박자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걸었다.
“나 나나 나 레드 나―.”
상상 속에서 은호와 무대를 함께하는 은정.
징, 지잉, 지잉.
상상은 갑자기 쏟아진 진동과 동시에 깨져 버렸다.
은정은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차며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얘가 웬일이지?”
아영이었다.
아영의 연락이 뜻밖이었는지 은정은 갸웃거리며 휴대폰 패턴을 해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영은 은정에게 E-UNG의 데뷔 초부터 열심히 영업하던 친구였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E-UNG의 팬이 된 그 순간.
「“요즘 이응이 활동을 좀 쉬고 있잖아.”」
「“엥. 뭔 소리야, 네가 말했잖아. 이응이 쉬지 않고 달려오다가 인제야 쉰다고, 근데 이제 고작 일주일째인데?”」
「“에이, 어쨌든!”」
아영은 뜬금없이 ‘이응이 활동을 쉬니까’라는 핑계를 대더니, 포스터A인가, 포스터X인가.
갑자기 7인조 남자 아이돌인 다른 돌을 파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아영의 영업 덕분에 이제 막 E-UNG에 발을 들인 은정이었건만, 그녀는 혼자가 됐다.
아영이와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연락해도 서로 다른 돌을 이야기하는 탓일까.
자연히 같은 덕질을 하던 때보다는 눈에 띄게 연락의 빈도가 줄었다.
마지막 연락이 아마, 내가 진성 E%가 되어 버린 그날이었던가?
E-UNG의 이야기가 기사로 쏟아지던 대학 축제 이후 다음 날이었다.
[아영 ― 은!]
[나 ― 엉?]
[아영 ― 이거 봐]
뭘 보라는 거지?
이한 대학교는 시내와 가깝다.
다만, 교내의 우리 동아리방은 뒷산과 가까운 구석 중에서도 가장 구석진 건물이었다.
그 때문일까.
아영이 뭔가를 보라며 보냈지만 그걸 받는 데만 해도 신호가 잘 터지지 않아 시간이 한참 걸렸다.
그렇게 어느새 기숙사 건물까지 다 왔을 때였다.
자동으로 기숙사 건물 안의 와이파이가 연결되면서 훅, 아영이 보낸 사진이 떴다.
“어, 어어, 어어어어어!!!”
나도 모르게 너무 크게 소리 지른 거 같아서 황급히 입을 닫긴 했지만, 미친!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은정은 앉을 생각도 못 한 채 기숙사 방문 앞에 덩그러니 서서 빠른 속도로 자판을 때려 댔다.
[나 ― 미친
(주먹을 문 채, 한 손은 벽을 부숴 버리는 이모티콘)]
은정은 아영에게 깨톡 하나를 칠 때마다 맨몸에 재킷만 걸치고서 흐트러진 꽃다발을 쥔 채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은호의 사진을 보고 또 봤다.
[나 ― 익 이번ㅇㅔ 나온다는 앨ㅂㄴㅁ 포카야?]
[아영 ― ㅋㅋㅋㅋㅋㅋㅋ]
급해서 오타마저 마구 쏟아진다.
아영이는 다급한 내 모습에 ‘ㅋㅋㅋㅋ’를 연달아 치더니 곧이어서 사진 한 장을 더 보냈다.
뭐지?
무드등인가?
아영은 방의 불을 끈 채 무드등의 조명을 켜 뒀다.
하지만 카메라가 그 빛을 다 담지 못한 건지, 사진에서는 무드등의 모습을 제대로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아영 ― 에이 잘 안 보인다]
아영도 알고 있었는지, 곧 밝은 곳에서 찍은 무드등 사진을 이어서 보냈다.
[나 ― ㅁ
― ㅁㅊㅁㅌㅊㅇㅁ나ㅓㅣ오나ㅓ아]
현실에서는 지르지 못하는 비명을 깨톡에서 대신 쏟아 내며 무드등 사진을 다시 확인했다.
[나― 이거 설마]
[아영 ― ㅇㅇ
― 맞음 그 설마 ㅋㅋ]
[나 ― 디럭스에서 그거 맞아?]
[아영 ― 응 ㅋㅋㅋㅋ 넌 샀어?]
[나 ― (지긋이 바라보는 이모티콘)]
[아영― 내가 너무 당연한 걸 물었구나]
[나 ― ㅋㅋㅋㅋㅋ 엉]
[아영 ― 뭐 샀어? 오랜만에 이팬 들어갔더니 종류 여러 개던데]
[나 ― ㅎ…….]
아영의 물음에 은정은 많은 의미가 담긴 ‘ㅎ’ 이후 말이 없었다.
은정은 아영이 찍은 은호의 포토 카드 사진을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은정은 선택해야만 했었다.
덕질을 희생하고 심플 또는 노말 세트를 살 것인지.
아니면 몇 주치의 밥값을 한 번에 희생하여 덕질을 택할지.
고민은 짧았다.
[나 ― 당연 디럭스 ㅎ]
* * *
E-UNG의 첫 미니 앨범 주문은 E-FAN 어플을 통한 상점에서 사전 예약 및 선주문으로 먼저 진행됐다.
「우리야 편해서 좋다고는 하지만 이러면 집계는 안 되는 거 아니야?」
└ 공지만 보고 왔구나?
└ ㅇ? 어떻게 알았어?
└ 굿즈 숍 가 봐 ㅋㅋㅋㅋ
어플을 ‘통한’ 상점.
기존 응원봉과 같은 굿즈들은 E-FAN 어플 내에서 똑같이 판매 중이다.
하지만 앨범은 달랐다.
앨범은 판매량 집계가 순위에 영향을 주는 만큼, 집계되는 곳에서의 선주문과 구매가 매우 중요한 사항이었다.
그 때문에, 박 대표는 굿즈 숍에 버튼을 하나 만들어 넣었다.
【 E-UNG의 ‘TIME’ 주문하러 가기 】
겉보기엔 그저 단순한 버튼 하나였지만, 안에는 NRY 엔터테인먼트 사원들의 노고가 깃들어 있었다.
특히 어플 내 시스템 관리를 맡은 엔지니어 성민의 노고가 가장 컸다.
E-UNG의 앨범 판매량이 집계되는 사이트는 총 세 곳으로, 성민은 버튼을 누르는 순간.
프로그램이 알아서 세 사이트 중 서버가 가장 안정적인 곳으로 연결되도록 세팅해 두었다.
게다가 입이 근질거렸던 박 대표는 사전 예약을 시작하기 몇 주 전 E-FAN의 공지 사항에 미리 글을 하나 올렸던 참이었다.
드디어 E-UNG의 첫 미니 앨범을 낸다는 소식과 동시에 준비된 세트에 어떤 상품이 구성되어있는지에 대해 안내하는 글이었다.
‘심플’, ‘노말’, ‘디럭스’라는 앨범이 포함된 세 가지 세트가 그 시작이었다.
「Simple set」
+ [TIME] E-UNG 1st 미니 앨범
+ E-UNG [TIME] 포토북
+ 랜덤 포스터(10) 1장
+ 포토 카드(100) 5장
심플 세트는 기본만 있기 때문일까.
여타 다른 아이돌 그룹보다 앨범 가격이 상당히 저렴한 축에 속했다.
그 때문일까.
「아… 공지 개너무하네 ㅡㅡ
이퍼들아 공지 보고 왔어?
박창석 대표한테 벽 느껴지지 않냐?」
└ ? 무슨 벽?
└ ★ 완 ★ 벽 ★
└ ㅋㅋㅋㅋㅋㅋ이럴 줄 알았닼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 앞뒤로 붙은 별 때문에 더 어이없어ㅋㅋㅋㅋ
└ ㅇㅈ
└ 랑이랑 지지가 갓창석 씨 만나서 진짜 다행이야 ㅠㅠㅠ
E-FAN에는 또 한 번 함께 다양한 ‘주접’으로 자유게시판이 도배되는 헤프닝이 잠시 일어났다.
당연한 말이지만, 손발이 말려들어 갈 것 같은 칭찬과 애정들을 말하는 그 ‘주접’이었다.
「카드 옆에 ‘(100)’이 100가지가 있다는 걸 뜻한다고 하는데 ㄹㅇ인가요…?」
└ 네
└ 예
└ ㅇㅇ
└ ㄹㅇ입니다
E-UNG는 남매 아이돌인 만큼 멤버가 둘뿐인 탓일까.
원하는 멤버 확률이 50%인 만큼 포토 카드 뽑기가 쉬운 편에 속했다.
그래서일까.
박 대표는 통 크게 카드의 종류를 은호와 은지 각각 50장씩 나눴다.
포즈와 배경 등, 제각각 다른 디자인으로 총 백 장을 준비했다.
「둘뿐이니까
카드 앨범깡으로 다 모으려고 했는데…
에?
100종이라니...?
100종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오!!!
창석 씨ㅠㅠ!!!」
└ ㅠㅠㅠㅠㅠ
└ 좋지 않아?
└ 좋아… 좋은데… 미워
└ 이해햌ㅋㅋㅋ
└ ㅋㅋㅋㅋㄱㅋㅋㅋ
└ 웃프다
└ ㅋ큐ㅠㅠㅠ
대부분 E%는 다양한 포토 카드에 기뻐했다.
꼭 가지지는 못해도 사진으로는 볼 수 있을 테니까.
다만 앨범을 여러 장 사 들여, 흔히 ‘포토 카드 까는’, 줄여서 ‘포카깡’을 하는 E%들이 문제였다.
당연히 좋긴 좋다.
웃음이 나는데, 어쩐지 씁쓸하다.
100장이라는 이야기에 차마 말로 설명하기에는 복잡한 기분이라는, 포토 카드깡을 하려던 E%들의 글이 쏟아졌다.
이어서 노말 세트에는 심플 세트에 있는 구성 외에도 E-UNG 스티커북 및 10cm 고양이 캐릭터 인형 키링이 더 추가되어 있었다.
고양이 캐릭터 인형은 당연히 은호와 은지의 ‘이 길 위 + 해가’ 뮤직비디오에 등장했던 애니메이션 속 그 고양이 캐릭터다.
그간 ‘고양이 인형’이라 불리던 고양이 캐릭터들은 화랑과 함께 바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 깜짝 진행된 생방송에서 이름이 결정됐다.
생방송 당시에는 ‘호박 고양이’, ‘우럭 냥이’ 등.
오튜브를 통해 알려진 두 사람의 별명을 알기 때문일까.
대부분 채팅에 참여한 E%들은 별명과 연관하여 제안했다.
다만, 이번엔 결정을 E%들의 투표로 진행하지 않았다.
그 덕에 가장 평범했던 은호와 은지의 마지막 글자를 딴, 호박 가방을 들고 다니는 얼룩무늬 고양이는 ‘지냥’, 생선 가면을 쓰고 다니는 턱시도 고양이는 ‘호냥’으로 이름이 결정됐다.
「이퍼 님들 한정판 앨범 떡밥 없었죠? 제가 놓친 거 아니죠?
(공지 사항 화면 캡쳐)
[Normal set를 주문하신 E%분들을 위한 추첨 이벤트! [중복O]
> E-UNG 팬 사인회
당첨자: 200명
> [한정판] 이은호, 이은지 커버 앨범
당첨자: 각 1명 총 2명
> …… 지냥, 호냥 쿠션
당첨자: 각 5명 총 10명」」
└ 네. 아직 공개된 건 없는 것 같ㅇ아요.
노말 세트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끈 건 다른 것보다 머그 컵 50명을 시작으로 무지 티, 후드 티 각 10명 등 팬 사인회가 포함된 추첨 이벤트의 응모권이었다.
└ 일단 사면 당첨될 수준인데? 뭐 저렇게 많이 풀어…?
└ 이거 미니 앨범 아니었어요?
└ many 앨범인 듯
└ 와…
└ 팬 사인회나 한정판 추첨 같은 건 흔하게 봤어도;
└ 그러게요. 이렇게 뿌리면 정규 앨범 때는 어떻게 하려고…….
옷부터 시작해서 종류는 물론, 그 인원까지도 절대 적지 않은 탓일까.
일단 주문하면 당첨될 수준이라는 한 E%의 말이 절대 빈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게시판을 폭풍처럼 휩쓸던 응모권 화제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급부상한 한 큰손의 질문 글 때문이었다.
「디럭스로 포카깡은 에반가?」
└ 에반데?
└ ;;진정하세요;
└ 창석 씨 용돈 주고 싶으면 사는 거지
└ 용돈ㅋㅋㅋㅋㅋ 비유 봐
└ 선생님 혹시 장사하시나요?
└ 저 하나만 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ㅠㅠ 노래도 수박에서 못 듣고 다운받아서 들음 ㅠㅠ 앨범으로 듣고 싶어요ㅠㅠㅠ
└ ?다운? 불다?
└ 범죄자가 ㄱ당당하네 오튜브에서 들으면 되죠
└ 범죄자라뇨 ㅡㅡ 광고 때문에 받은 거지 불법은 아님
└ 예 정식 루트로 안 샀으면 불법이고 법 어겼으면 범죄임 ㅋㅋㅋ
└ 에반데 ;;
└ 자랑이다ㅋ
댓글 창이 여러 의미에서 시끄러웠다.
└ 이퍼야 몇 장 주문하게?
└ 30
└ 아하
한편 글쓴이인 큰손은 ‘사 주세요’라는 댓글들은 모두 무시한 채 다른 댓글에서 마저 이야기를 이어갔다.
└ 아 300이야 0 하나 안 쳤어.
└ 응?
└ 300? 제가 잘 들은 게 맞나요?
└ 네 맞아요
└ 300을 디럭스로 산다고?;;;
└ 응
└ 그냥 노말 사;
└ 포카랑 비북 둘 다 모으고 싶어서
└ 아 비북 때문에…;
‘비북’
나옴과 동시에 줄임말이 생긴 ‘비하인드 포토북’.
「Deluxe set」
+ Normal set
+ 포토 카드(100) 랜덤 10장
※Normal set+Deluxe set=15장※
+ EG등 (무드등)
+ E-UNG 달력
+ 비하인드 포토북 (7종 중 랜덤 1종)
비하인드 포토북 7종은 디럭스 세트에만 있는 구성이었다.
기존의 포토북에는 가장 잘 나온 A컷들이 들어간다.
한편, 비하인드 포토북은 곳곳에 은호가 가사를 구상하던 공책의 페이지라던가, 녹음 중인, 식사하는, 대표님한테 혼나는 모습 등.
차마 오튜브에는 올릴 수 없던 그간 촬영한 수많은 장면을 사진으로 인화하여 책으로 엮었다.
E-UNG의 ‘진짜’ 일상.
무대 아래에서의 모습들을 모은, 지금의 E-UNG을 만든 수많은 실패와 그 과정들을 몽땅 사진으로 담은 포토북.
워낙 많은 이야기를 압축한 탓일까.
포토북은 엄선하여 골랐음에도 7권이나 될 정도로 방대한 양이었다.
한편 7권이라는 넘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예쁘거나 화려한 아이돌다운 모습들은 쉬이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이건 무조건 디럭스지」
E%들은 오히려 그런 은호와 은지의 그림자라는 내용에 더 소장욕을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