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62)
‘능력은 있어.’
페이옵의 작곡 능력은 냉정히 말해서, 좋다.
그에게 거부감이 있긴 하지만 실력은 인정한다.
잘한다.
다만, 과할 뿐이다.
그 증거로 귀를 어지럽히던 수많은 불협화음 트랙들을 걷어 냈을 때.
트랙을 나누기만 해도, 덜어내기만 해도 결과물이 나왔다.
그것도 여러 곡이 말이다.
페이옵의 곡은 걷어 내면 걷어 낼수록 더 많은 장점을 드러났다.
내가 그의 곡을 재현하면서 느낀 점은 ‘분야’가 너무 다양한 데다, 그걸 한곳에다 몰아 둔 게 문제였다.
페이옵이 작곡한 곡들은 쉽고 따라 부르기가 편하다.
즉, 대중성을 짙게 쫓는다.
그렇게 덜어 낸 트랙들은 그것만으로도 제각각 다양한 곡을 당장이라도 뽑을 수 있을 정도로 대중성을 확실하게 잡을 곡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충분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페이옵이 잊은 건 ‘가수’라는 직업의 존재였다.
음악에서 조금 비는 부분은 목소리로도 충분히 채울 수 있는 것을.
그는 가수를 믿지 않고 자신이 가진 스킬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실수인지, 부족한 감각인지는 본인이 더 잘 알겠지.’
그 결과, 굳이 어울리지 않는 왜곡된 소리를 집어넣고 어울리지 않는 튠을 넣은 게 문제였다.
놀라 굳어 있던 페이옵은 곧 이를 악물며 이를 까득거렸다.
“이런 텅텅 빈 곡이 뭐가 좋다고!”
은지가 재생한 리메이크된 곡을 들었을 때, 페이옵의 표정에는 분명 짙은 패배가 어려 있었다.
페이옵은 무너졌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진 않았다.
은지는 기다렸다는 듯 조금 전 올린 영상을 다시 확인하며 페이옵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 줬다.
「장난이지?」
「오늘 만우절임?」
「언니 장난이라고 해 줘 이게 다음 신곡이라고? 언니 이거 아니야 에바야….」
「뭐냐 이거」
「일단 장르부터 이해 불가임 몇 개가 섞인 거야 ㄷㄷㄷㄷ」
「개구려ㅅㅂㅋㅋㅋㅋㅋㅋㅋ」
오튜브는 대부분 은지의 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옵의 곡에는 대부분 부정적인 의견이 쏟아졌다.
이어서 은지는 리메이크한 곡에 달린 반응을 페이옵에게 보여 줬다.
「아 이거지」
「역시 앞에는 낚시였넼ㅋㅋㅋㅋㅋ」
「휴 이거면 ㅇㅈ」
「진지하게 앨범 주문 취소해야 하나 고민했잖아ㅋㅋㅋㄱㅋ」
「? 이거 말고 뭐 다른 거라도 있었음?」
└ ㅇㅇ 이상한 기계음 떡칠된 영상 올라왔었음 ㅋㅋㅋㅋㅌㅋ
비록 오튜브 안에서였지만 대중의 반응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내기의 조건을 들었을 때만 해도 페이옵은 자신의 승리를 믿었다.
그 정도로 규칙 자체는 페이옵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승리를 믿었던 순간이 독이 되었다.
“XX, 그래. 해 봐! 그딴 곡이 이번에도 뜰 거 같아? 해 봐!”
자존심을 갉아 먹힌 페이옵은 이성을 잃고 버럭 소리쳤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파랗게 어린 X이, 선배도 몰라보고 XX―!”
매니저는 이 상황을 예상한 듯, 인터폰으로 연락하며 경비를 불렀다.
척 봐도 페이옵보다 덩치가 두 배는 커 보이는 남자가 은지의 작업실에 들어왔다.
방금까지 은지에게 삿대질을 하며 온갖 욕을 날리던 페이옵은 경비들이 은지의 작업실에 들어선 순간 정확한 타이밍에 그 주둥이를 다물었다.
은지는 힐끔 매니저를 바라봤다.
‘한 대만 패자.’
‘안 돼. 제발. 대표님 생각해서 참아 줘, 제발.’
은지가 시선으로 툭 던진 물음에 돌아오는 매니저의 대답은 간절했다.
“내, 내 발로 나갈 거야! 놔!”
페이옵은 추할 정도로 투덜거리며 작업실을 떠났다.
은지는 떠나는 페이옵의 뒤통수에 소리쳤다.
“참, 곡을 넘기겠다는 각서는 이틀 안에 우리 회사 변호사를 통해서 전달 드릴게요?”
이후에는 어떻게 됐더라.
페이옵 곡을 리메이크한 그 곡은 한 번 깔끔하게 다듬은 뒤, 말했던 대로 발표를 했다.
대신 디지털 싱글로 발매를 했고, 악의적인 마음을 담아서 낸 곡이라 홍보나 그런 건 일절 없었다.
그런데도 그 곡은 음원 사이트의 10위 권 안에 자리했다.
물론 페이옵의 이름은 없는 상태로.
곡의 제목은 이번 일의 의미를 그대로 담은 이었다.
* * *
애송이로 남기엔
내 실력이 죄송
Two kids Took it
Took it in half an hour
쾅! 쾅! 쾅!
페이옵은 책상을 주먹이 얼얼할 정도로 내려찍으며 씩씩거렸다.
“내 건데, 내 곡인데!”
이를 갈았지만, 그날이 있고 이틀 뒤.
떠나면서 들은 말 대로 페이옵의 작업실로 NRY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한 변호사가 찾아왔다.
「“같이 술이라도 한잔―.”」
「“서명부터 하십시오.”」
그를 어떻게 구슬려서 빈틈을 만들어 볼 생각이었지만, 변호사는 견고한 성처럼 빈틈이 없었다.
계약서는 철저했다.
‘그래, 다 좋다 이거야.’
페이옵이 가장 참을 수 없는 부분은 사운드메이트 때문이었다.
사운드메이트는 최근 자신의 작품들을 모두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듯한 시선으로 넘기곤 했었다.
‘그랬는데, 그랬던 놈들이!’
이은지 그 X이 발표한 ‘내’ 곡 에는 ‘좋은 멜로디’, ‘빠지는 곳 없이 완벽한 곡’, ‘천재’ 등 온갖 수식어를 붙여 가며 극찬했다.
그러면서 날 더러 말했다.
「“보고 배워. 곡은 저렇게 써야지. 하하.”」
내가 쓴 곡으로 나를 가르치다니.
“아아악!”
페이옵은 거칠게 빨간 스티커가 붙어 있는 냉장고를 열어 소주의 뚜껑을 따 병째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컥! 콜록! 콜록!”
와중에 사레가 들렸다.
알싸한 알코올이 밴 기침을 하던 페이옵은 바닥에 주저앉으며 흐느꼈다.
주변을 돌아보자 페이옵 주변엔 하얗고 노란 각종 업체에서 날아온 독촉장이 펼쳐져 있다.
가구고 가전 제품이고 구분 없이 ‘이 집에 네 물건은 없다’라는 것을 증명하듯 곳곳에 빨간 스티커까지.
히트곡에 취해 그 수익이 꾸준히 유지될 거로 생각하며 아무렇게나 돈을 쓰고 빌리고 했던 과거의 산물들이었다.
“X발…… 난, 나는…….”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리고 나서야 인정하게 됐다.
자신의 ‘포인트’라 여겼던 부분들을 모두 걷어 낸 의 성공이 그 증거였으니까.
그동안 내 방식이 틀렸다는 걸.
* * *
투덜거리며 페이옵에 대한 불만을 쏟아 내던 화랑에게 은지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언니, 길거리 개똥 치운다고 굳이 수천만 원짜리 신발을 더럽힐 필요는 없어요.”
“아.”
“언니 입은 소중하니까.”
더럽힐 필요 없다.
방향은 비록 다르지만.
회귀 전과 다를 것 없는 페이옵은 이미 그때와 비슷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으니까.
의미심장한 은지의 분위기를 눈치챈 듯 은호는 힐끔 은지를 바라봤다.
식사가 끝난 뒤 화랑은 두 사람의 작업에 방해되기 싫다며 곧장 작업실을 떠났다.
“야.”
“응?”
화랑을 배웅하고 스튜디오로 돌아온 은호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던 은지를 불렀다.
“너 페이옵하고 무슨 일 있었냐?”
흠칫.
모른 척 넘기려고 했건만.
정곡을 찌른 이은호 때문에 몸이 본능적으로 화들짝 놀라 버렸다.
회귀 전 기억은 이은호와 관련되어 서로 공유한 일부터 빠르게 돌아왔다.
다음은 그 일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람들과 얽혔을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관은 없지만 관련된 사람, 물건, 상황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즉, 페이옵과의 일을 오랜 기간 떠올리지 못한 이유는 이은호하고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늦었지만, 이은호도 에이슬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줬기에 나도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 * *
앨범
와 이 발표되고 동시에 나온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껏 디지털 싱글로 낸 곡들을 한데 모은 미니 앨범 ‘TIME’이 나온다는 소식이었다.
그와 동시에 한참 늦어 버린 선물이긴 했지만…….
‘E%’라는 팬 명을 지어 준 한 팬에게도 당시 약속했던 포토 카드와 상품권이 지급되었다.
박 대표는 늦은 배송에 미안함을 담아 이번 앨범을 구매한 팬들에게 선착순 선물로 지급될 무드등인 ‘EG등’도 함께 배송했다.
* * *
E%의 이름을 지은 아영은 진성 E%는 아니었다.
그땐 이응을 미친 듯이 파고 있긴 했지만, 현재는 흔히 철새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었다.
‘세상에 아이돌은 많고, 취향인 그룹도 많은걸.’
이번에 E-UNG의 앨범이 나왔다고 했을 때 일단 주문을 걸어 두긴 했는데.
가장 저렴한 앨범만 사는 것으로 할지 아니면 다른 것들이 다 포함된 디럭스 버전으로 살지는 지금까지도 고민 중이었다.
팬심이 떨어진 데에는 포토 카드가 늦은 것도 이유가 됐다.
배송이 늦어지니 기대감이 컸던 만큼 아쉬움도 커졌으니까.
그래서 이번에 앨범을 사는 것도, 이번에 도착한다던 포토 카드도 원래는 다 팔 생각이었다.
지인 중에 은정이라고 최근 대학 축제 이후로 이응에 푹 빠진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포토 카드만 덩그러니 올 줄 알았는데.’
기대를 오히려 버렸기 때문이었을까.
미안하다며 사과의 선물로 온 디럭스 버전에 포함된 무드등을 본 순간, 아영은 저도 모르게 조금 기뻤다.
“이거…… 하하.”
추억을 자극하는 무드등의 등 부분 때문에 더 그랬다.
익숙한 모습에 아영은 휴대폰을 뒤적이며 그 당시 캡처본을 찾았다.
이응의 응원봉이 아직 없던 당시.
1, 2, 3번으로 번호를 매겨 팬들에게 고르게 한 응원봉들이 있었다.
“뭐야. 하하, 이런 재활용은 환영이지.”
아니나 다를까.
자꾸 툭툭 떨어져서 은지를 당황하게 했던, 그때 봤던 그 1번 응원봉의 머리 부분이 맞았다.
아영의 예측에 대답하듯, 무드등을 검은 상자에서 꺼내자 아래로 작은 카드 하나가 흘러내렸다.
「안녕하십니까, E%님.
항상 E-UNG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 드리며, 혹시 ‘EG등’의 디자인이 어딘가 익숙하진 않으신가요?
사실 ‘EG등’은 응원봉을 정하던 당시 아쉽게 떨어졌던 ‘1번 응원봉’의 디자인을 은호의 아이디어로 재구성해서 만든 상품입니다.
실제로 은호가 잘 때나 작사를 할 때 간접 등으로 이용 중인……(중략).」
작지만 짧지 않은 편지에는 아영의 예측이 맞았다는 것과 함께.
이미 실제로 은호는 이 제품을 애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은호가 사용 중이라는 이야기 때문일까.
‘저건, 내가 써도 괜찮을지도…….’
아직 마음이 E-UNG에서 완전히 떠 버린 건 아닌지, 아영은 조금 생각을 바꿨다.
달라진 생각을 증명하듯, 거칠게 꺼낼 때와는 달리 아영은 검은 박스에 무드등을 다시 조심스럽게 넣고 곁에 놓아 뒀다.
옥수수 충전재를 뒤적이자, 박스 안에는 오늘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검은 봉투 하나가 더 놓여 있었다.
아영은 무심한 손으로 검을 봉투를 열며 생각했다.
‘이건 은정이한테 팔아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봉투 속 잘 코팅된 사진을 꺼내 들었을 때였다.
“미친.”
생각이 참 여러 번 바뀌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건 아니다.
이건 못 팔지.
아니, 안 팔지.
은정이가 다니는 대학교에 이응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은정이는 그날 내가 선물로 줬던 고양이 인형 덕분에 무대에서 은호의 손을 잡고 노래를 들었다고 했다.
갑자기…….
아, 배가 너무 아프다.
‘나도 갈걸.’
‘혹시나’라는 생각이 속을 쓰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내 손에는 대신 포토카드가 있다.
[나 ― 은
― 은
― 은!]
[은정 ― 엉?]
[나 ― 이거 봐]
아영은 택배 상자를 뜯기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생각으로 예쁘게 받은 선물들을 촬영했다.
그리고 은정에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