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61)
“한 시간.”
페이옵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페이옵 씨 곡을 그대로 재현하는 거.”
도발에 걸린 듯 페이옵의 미간에 주름이 짙어져 갔다.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보라는 듯 페이옵이 헛웃음을 켜며 다리를 꼬았다.
저렇게 앉아 있으면 웬만하지 않고서야 분위기가 나올 텐데.
페이옵은 오히려 바지 밑단으로 빼꼼히 튀어나온 앙상하게 마른 복숭아뼈 때문에 안쓰러운 마음만 더해졌다.
그래서 애잔한 마음에 말을 덧붙였다.
“불협화음이 무슨 의미인지까지.”
당신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노래로 보여 주겠노라고.
“지, 지금 한 시간 동안 곡을 뽑겠다고?”
따라 만들고 고치는 거라고는 하지만…….
한 시간은 무리다.
절대 무리다.
페이옵이 질겁하자 원하는 반응이었는지 은지가 환하게 웃으며 시원하게 기지개를 켰다.
이후 은지는 모니터에 빠져들 것처럼 익숙한 손길로 프로그램을 바쁘게 굴리기 시작했다.
고급스럽고 거대한 스피커에선 아직 제대로 된 리듬이 갖춰지지 못한 음들이 통통 튀어 올랐다.
그렇게 10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새 은지는 페이옵의 곡에 들어간 가상 악기들을 모두 찾고, 이어서 왜곡된 음향들도 흡사하게 찍어 냈다.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보라던 페이옵은 서서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스피커 너머로 나오는 음악이 점점 형태를 갖추더니 페이옵이 가져왔던 그 곡과 거의 흡사하게 완성됐으니까.
‘들었죠?’
은지는 회전의자를 페이옵 방향으로 돌리며 고개를 까딱였다.
귀가 있으면 알 수밖에 없었다.
페이옵은 몰려오는 패배감에 치를 떨었다.
‘사, 삼 주를 붙잡은 곡이었는데…….’
사실 작업 자체는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다.
다만 이번에 곡을 선보일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은지’니까, 조금 더 신경을 썼다.
냈다 하면 팬인지 사이비 교단인지 모를 정도로 찬양하는 무리가 우르르 쫓아와 음원 사이트 순위를 집어삼키는, 팬층이 두꺼운 그 이은지.
어쩌면 당연한 거겠지만, 페이옵이 긴장한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은지는 TV 프로그램에 자주 비추지 않았다.
험한 말버릇 탓에 박 대표와 은호가 뜯어 말린 덕분이었다.
그런데도 은지는 온전히 음악으로만 거대한 팬층을 다져 냈다.
이 곡은, 그런 이은지에게 보란 듯 감탄을 터뜨리기 위해…….
페이옵은 삼 주간 머리를 쥐어뜯으며 만들어낸 곡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붙잡아 가며 완성한 곡이 ‘불협화음’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거기다 그사이 마실 것을 가지러 갔던 매니저가 돌아왔을 때였다.
이은지의 매니저는 갑자기 펼쳐진 녹음 환경에 당황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페이옵의 곡이 다 재현됐을 때.
“쟤가, 저렇게 구린 곡을 만들 애가 아닌데……?”
매니저가 진심이냐는 듯 은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은지는 듣지 못했지만, 페이옵은 들었다.
‘구리다’, ‘불협화음’.
‘경력도 모자란 X이, 그래. 얼─마나 잘 만드나 두고 보자.’
페이옵을 이를 갈았다.
은지는 보았느냐는 짧은 고갯짓 후 곧장 재현한 페이옵의 곡을 정리하고 뜯어내는 것에 집중했다.
물론 이때부터는 헤드셋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미리 밝혀지면 재미없으니까.’
화면에 빼곡하던 수많은 불협화음을 단호하게 삭제하고 분리해 내며, 은지는 옆에 놓인 마이크를 끌어왔다.
뜯어낸 불협화음 속 쓸 만한 느낌의 멜로디를 다시 밀어 넣기 위해서였다.
녹음이 시작되고, 시끄럽기만 하던 불협화음들로 만들어졌던 멜로디는 깊은 중저음이 매력적인 은지의 목소리로 다시 담겼다.
녹음이 끝난 후에는 많은 작업 없이 곡의 앞뒤에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해 리버브로 빈 곳을 메워 주기만 할 뿐이었다.
은지의 행동에 페이옵은 갸웃거리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모든 작업이 끝났을 무렵, 고개를 돌리자 시계는 예상했던 그대로 정확히 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중 30분은 재현을 위해 페이옵이 사용했던 가상 악기와 왜곡된 음을 찾고 만드는 곳에.
남은 10분은 페이옵의 곡을 그대로 따라 만드는 것에 쓰였다.
그리고 남은 20분만 페이옵의 곡을 수정하는 데에 사용됐다.
즉, 곡을 만드는 데에 쓴 시간은 고작 30분뿐이었다는 말이다.
직접 봤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짧은 시간 때문일까.
페이옵의 인상이 더더욱 와락 구겨졌다.
“X랄. 30분 동안 무슨 곡을 쓴다고.”
“하하.”
“음악 한다는 X이 작곡을 무슨 애들 장난으로 알아?”
“…….”
페이옵이 중얼거리며 들으라는 듯 말을 흘렸다.
그가 바란 대로 똑똑히 들렸다.
은지는 의자를 돌려 페이옵을 바라봤다.
은지와 눈이 마주친 페이옵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있잖아요, 페이옵 씨. 나랑 내기 하나 할래요?”
이은호랑 내기할 땐 대부분 장난이다.
이은호가 이겨도 웃으며 ‘맞네, 아니네’ 농담 따 먹기를 하며 깔깔거릴 그런 장난.
하지만 이건 달랐다.
작곡은 내 인생이다.
나는 많은 생각을 음악으로 하듯이, 작곡이라는 건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페이옵과 마주 보며 은지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무슨 내기?”
은호를 따라 하는 가면 같은 가식적인 미소도, 그렇다고 평소의 장난기를 담은 그 웃음도 아니었다.
태연함만 존재하는 여유로운 입꼬리였다.
한편 그 위로 페이옵을 노려보는 은지의 밝은 갈색의 눈동자는 살벌한 빛을 띠고 있었다.
페이옵은 은지의 기묘한 미소에 긴장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쪽 곡을 걸고 내기 어때요?”
“하! 내 곡을 걸라니? 내가 미쳤어? 내가 왜?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다고.”
페이옵이 거칠게 소리치자, 가만히 지켜보던 매니저가 사납게 그를 쏘아봤다.
은지는 NRY 엔터테인먼트의 보물 같은 존재다.
그래서 은지에 관한 문제는 무엇보다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페이옵은 은지는 만만하면서 매니저는 무서웠는지 눈에 띄게 시선을 피했다.
“괜찮아요, 오빠.”
“…….”
은지가 손을 들어 매니저를 제지했다.
“패도 내가 패.”
“하, 은지야. 그럴까 봐 차라리 우리가 나서려는 거야…….”
은지는 보물이다.
비유하자면, 비밀번호를 한 번이라도 잘못 누르는 순간 일대를 날려 버릴 폭탄을 품은 보물…….
은지가 웃으며 흘린 말에 매니저는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페이옵은 조금 당황스러운 눈으로 매니저와 은지 사이를 오갔다.
페이옵이 상황 파악에 한창이던 그때였다.
은지는 내기에 관해 마저 이야기를 이었다.
“무슨 이득이 있냐고 물었죠?”
“…….”
“당신, 내 이름 써먹으려고 여기 왔잖아요.”
은지가 정곡을 찌르며 활짝 웃자, 속내를 들킨 페이옵이 주춤했다.
페이옵의 상황은 은지의 예상대로 절실한 상황이었다.
언제부턴가.
임시 회원으로 자리하던 사운드메이트에서 자신에게 따로 연락 없이 모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작업을 넘겨주는 일이 잦아졌다.
같은 대학 후배였던 동생의 히트곡 개수는 벌써 열 손가락을 넘어가고 있건만.
자신은 과거에 멈춰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돈이라든가, 가진 능력이라든가, 결과물이라든가.
사람을 이용하거나 술을 먹이는 것도 뭐라도 있어야 통하는 작업이니까.
의미 없이 나간 술값과 미친 듯이 쌓여 버린 빚더미.
빚더미에 깔려 죽기 전에 결과를 내야 했다.
작업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선 곡을 받아 주는 곳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두 가지의 선택지가 필요했다.
좋은 곡을 쓰거나 또는 유명한 작곡가라는 이름값.
둘 다 챙기면 당연히 좋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자신이 이 고생을 하고 있을 리가.
히트곡이 필요했다.
꾸준히 곡을 내면 언젠가 하나는 나오겠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은행 빚은 물론, 특히 사채는 하루가 다르게 숨통을 조일 정도로 액수를 불려 가니까.
몇천이 몇억이 되는 게 순식간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필요했다.
‘떴다’ 하면 일단 차트를 휘어잡는 가수가.
고로, 탑 텐 킬러, 차트 킬러인, ‘냈다’ 하면 순위에 앨범 수록곡 줄 세우기를 하던 ‘이은지’.
은지는 음원 순위 킬러로 유명했다.
페이옵에게 필요한 조건 두 가지 모두가 통용되는 가수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작곡하기에 다른 작곡가에게 곡을 빼앗길 확률도 낮다.
거기다, NRY 엔터테인먼트에 때마침 과거에 돈을 빌려 갔던 녀석이 최근에 자리를 잡았다.
완벽했다.
이런 기회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꼬시기 힘든, 사납기 그지없는 이은지의 성격을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단, 내가 고친 곡이 반응이 더 좋으면 나 이거 내 이름만 걸고 낼 거예요.”
페이옵의 인상이 구겨졌다.
곡을 빼앗겠다는 말이었다.
“내기는 왜 하려는 거야?”
그때였다.
매니저가 순수하게 궁금했던 모양인지 조심스럽게 은지한테 물었다.
은지는 페이옵을 살벌하게 노려볼 때와는 다르게 평소의 장난기 많은 모습으로 매니저를 돌아보며 답했다.
“재미있잖아.”
“허?”
맹랑한 은지의 대답을 들은 페이옵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30분 안에 자신이 3주간 고생하며 완성한 곡을 뛰어넘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절대 없다.
페이옵은 확신하고 있었기에 당당했다.
“그래요. 내기합시다.”
그래. 해 봐. 해 보자고.
페이옵의 대답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은지가 제안했다.
방식은 단순하게 오튜브를 이용하는 것으로, 은지가 다음 곡이 될 노래라며 활동 중인 오튜브에 두 곡을 동시에 올린다.
은지의 오튜브 채널인 만큼, 은지의 팬들이 대다수다.
그러니 불리할 수 있는 페이옵을 위해 페이옵의 곡에 달릴 긍정적인 글은 추가 점수 3점을 부여.
100점 만점에 3점이면 나름대로 후하게 들어가는 추가 점수였다.
반대로 은지의 목소리가 담긴 리메이크곡은 긍정적인 댓글이 달려도 아무런 의미 없음.
승부는 누가 봐도 페이옵이 유리하게 배치가 되었다.
은지와 페이옵은 동시에 서로의 승리를 점치며 환하게 웃었다.
두 곡을 업로드한 뒤, 은지는 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페이옵 씨, 짧은 시간 동안 곡을 만드니 뭐니 하는 게 애들 장난이라고 하셨죠.”
“예.”
그 생각은 변함없는지 페이옵은 당당했다.
은지는 그런 페이옵을 보며 여유롭게 웃었다.
“그런데 있잖아요. 그렇게 시간을 들여 발표한 그쪽이 만든 곡들, 그래서 결과는 어땠어요?”
“…….”
페이옵의 표정이 굳었다.
‘그 ‘애들 장난’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시는 것 같길래. 내가 가르쳐 드리려고.‘
은지가 관능적으로 눈을 흘겼다.
페이옵은 거대한 구렁이가 몸을 휘감는 듯 소름 끼치는 섬찟한 기분에 몸을 털었다.
‘내가 한 곡을 이 시간 안에 만들어 내기까지, 당신은 내가 어떤 삶을, 어떤 생활을 해 왔는지 뭐 하나 아는 게 없지.’
하고 싶은 뒷말이 있었지만, 말을 아꼈다.
당신이 직접 듣고 판단해 보라고.
이게 과연 ‘애들 장난’으로 치부될 능력인지 말이야.
“그건 알죠?”
“……?”
“당신이 말하는 ‘애들’이 결국은 시대에 뒤떨어진 당신을 밟고 오르는 거.”
은지의 입꼬리가 위험하게 비틀렸다.
은지의 도발을 매니저가 말릴 새도 없었다.
은지는 이야기를 끝맺음과 동시에 헤드셋을 뽑아 리메이크한 페이옵의 곡을 스피커로 틀어 버렸다.
아직 가이드만 나왔기에 당연히 다듬을 구석은 많았다.
하지만 음악이 흐르면 흐를수록 페이옵은 마치 얼굴에 감각을 잃어 가는 기분을 느꼈다.
어떤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여유라는 것도 잃어 버렸다.
“어, 떻게…….”
페이옵의 입이 열린 지 한참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튀어나온 말은 고작 그뿐이었다.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 음악을 더 좋게,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삼 주간을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건만.
어린애라고 여겼던 눈앞의 여자는 단 하루, 아니, 고작 30분 만이었다.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은지는 페이옵이 바라던 느낌 그대로 곡을 뽑아냈다.
바라던 ‘반면교사’로써 페이옵의 곡은 훌륭할 정도로 완벽했다.
“많이 배웠습니다.”
은지는 웃으며 페이옵에게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