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60)
페이옵은 당시 내가 세운 결과물 때문일까.
그때 그 사람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랐다.
‘사람 자체는 다르지 않았던 것 같지만.’
* * *
강남의 NRY 엔터테인먼트 신사옥.
7층에 위치한 내 작업실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아유, 이렇게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일단 앉으시죠. 매니저 오빠, 마실 것 좀.”
미팅.
물론 소개팅이나 이런 미팅은 아니다.
「“만나기만 해도 된다고 말을 해서. 대리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 씨인가, 이 씨인가…….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우는 편이라, 어쨌거나 이 자리는 얼마 전 기획팀에 새로 들어온 한 팀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만들어진 자리였다.
앨범 준비로 정신이 없을 때다 보니 나는 작업실에서 그를 맞이했다.
매니저 오빠가 마실 것을 챙겨 오기 위해 작업실을 나가고, 나는 자연스레 소파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
“성함이……?”
“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강돈엄, 작곡가로는 페이옵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돈엄.
돈이 없다, 그래서 페이옵……?
순간 연결된 생각에 입술에 바람이 새듯 웃음이 터질 뻔했다.
난 입술을 꽉 물어, 웃음을 참았다.
이런 아재 개그를 정말 싫어했는데, 하.
이건 다 이은호가 어디서 배워 먹은 헛소리를 던지던 게 묻어서 그렇다.
“돈엄 씨.”
“아, 실례지만 페이옵으로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제 이름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특이하고 좋은데 아쉽네요. 네. 그럼 편하신 대로 페이옵 씨.”
“예.”
“저랑 그렇게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하셨다면서요?”
“아, 예. 맞습니다.”
페이옵의 시선을 보니 다행히 일단 이성적인 감정으로 이곳에 온 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한결 긴장을 풀며 그의 말을 들었다.
“그게, 그, 으, 은지 씨께서 내신 곡들이 대부분 호평을 많이 받―.”
“말은 바로 하셔야죠. 대부분이 아니라 ‘다’죠.”
기분 좋은 씰룩임보다는 아니꼬운 느낌으로 근육이 튀어 대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만든 곡들을 좋아한다.
특히 앨범에 올라간 곡들은 선별하고 또 선별한 끝에 꼽힌 좋은 곡이었으니까.
게다가 그렇게 내가 고른 곡들은 전곡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이은호는 내가 이렇게 말을 할 때면 싸가지가 없다느니, 재수가 없다느니 지껄이지만.
솔직히, 내가 이뤄 낸 결과물인데 자랑할 만하잖아.
감추는 건 내 타입이 아닌걸.
그래서 페이옵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아유, 그럼요. 다였죠. 오빠분도 같은 가수라고 들었는데, 하하. 아무래도 은지 씨의 능력이 워낙 더 출중하셔서 NRY에서―.”
그런데 이 남자.
입을 열 때마다 묘하게 이은호를 낮추면서 나를 치켜올린다.
‘X같네. X새끼가 지가 이은호에 대해서 뭘 안다고…….’
이 자식이 낮춰 대는 이은호의 실력을 따라잡기 위해 내가 목에서 피가 터져 나올 때까지 연습한 나날이 몇 년인데.
이은호와 나의 음원 성적과 인지도만 놓고 보자면 내가 훨씬 높다.
하지만 나는 성공을 바란 적 없다.
그저 내가 만든 곡을 사람들이 많이 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소소하게 바랐을 뿐이다.
그리고 마침 그 곡이 시대의 흐름과 잘 맞아떨어졌고, 그렇게 이름을 알렸다.
덕분에 나는 자연히 다음 곡을 들어 줄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나는 그저, 그러니까…….
단순히 운이 더 좋았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어쨌든.
페이옵인지 뭔지.
이은호는 이 개뼈다귀 생긴 X같은 새끼가 함부로 말할 사람은 아니라고.
그래.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이름을 까먹은 새로 온 팀장의 말에 따르면, 이 남자. 사운드메이트 소속이라고 했던가?
아, 그냥 단순히 사운드메이트에 연줄이 있다고 했던가?
이러나저러나 불쾌하다.
‘듣도 보도 못한 X놈 새끼가.’
지가 뭔데.
이은호는 까도 내가 까.
이 X 새끼한테 능력이 있네, 뭐네.
그딴 소리 들을 만큼 이은호가 못 하는 놈도 아닌 데다, 솔직히 가창력으로는 이은호가 더 낫다고.
“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터졌다.
한편, 내가 그냥 웃었다고 생각한 건지 페이옵의 입꼬리가 뒤따라 씰룩였다.
비웃음 띤 그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더 찝찝한 기분만 커졌다.
‘잘나가니까 내가 봐준다’라는 듯한 시선.
예의를 차리기보다 떡 하나 떨어지기를 노리며 굽신거리는 몸짓.
‘생긴 것도 XXXX 같이 생겨선, X같네. X새끼.’
난 이런 쪽으로 감각이 좋다.
길거리 생활 덕도 있겠지만, 워낙 주변에 담을 쌓고 사는 이은호가 가까이 있기 때문일까.
이은호가 ‘쎄하다’라고 표현하는 사람 중 대다수가 몇 년 뒤 일을 치곤 했었다.
그리고 그랬던 사람들을 모아 보면 대부분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그 덕분에 나까지 그런 쪽에 감각이 좋아졌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 남자에게 그 ‘감각’이 경보등을 울렸다.
페이옵은 명백히 불청객이었다.
새로 들어온 팀장이 ‘바쁘다’라며 여러 차례 반복한 내 거절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나 자리를 부탁했다.
페이옵 측에서 그 팀장을 그만큼 압박했다고도 하던데.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난 찝찝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물론 그 기분을 티 내지는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은 했다.
노력은 했는데, 음.
“하하, 제가 많이 불편하시죠?”
“예. 알긴 아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아.
속으로 생각한다는 게 그만, 입 밖으로 튀어 나갔다.
역시 난 이은호처럼 가면을 뒤집어쓰는 건 무리인가 보다.
그래서 그냥 말했다.
“저, 아시다시피 제가 아주, 아주, 아주 바쁜 몸이거든요.”
“아유, 알고 있습니다.”
알기는, X랄.
‘이 싹수없는 꼬맹이 새끼가…….’
굽실거리는 몸짓과 다르게 날 보고 부들거리는 페이옵의 머리통 속이 훤히 보였다.
하지만 명백히 이 자리에서 갑은 나였다.
게다가 난 이 사람한테 그다지 잘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이은호는 업계 사람들한테 잘 보이라고 자주 조언했다.
입소문이 무섭다든가, 사람들이 뭐라 한다든가. 그런 잔소리 말이다.
하지만…….
‘싫은 건 싫은걸.’
떠들 거면 떠들라지.
사람들이 날 보고 떠드는 건 어쨌든 좋다.
결국 그렇게 떠드는 것 역시 내가 알려지는 방법의 하나니까.
같은 업계 사람 중에 이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지예찬 선배님.
「“그럼, 한 가지만 물읍시다. 은지 양은 악플 같은 건 어떻게 넘겨요?”」
「“‘그런 글밖에 남길 줄 모르는 네 인생이 더 불쌍하다?’라고 넘겼던 것 같아요.”」
선배님의 웃음소리가 대기실을 새어 나갈 만큼 커졌다.
「“그럼 있죠. 비난이 아닌 비판은요? 악플 같지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그런 댓글들.”」
「“당근 빠따, 도움이 되면 써도 삼켜야죠. 대신 내 속을 썩게 할 것 같은 쓰레기는 바로 ‘퉤’ 해야죠.”」
선배님은 내 이야기에 눈물까지 맺힐 정도로 웃으셨다.
나는 음유시인이고 광대다.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배님은 그런 날 더러 ‘멘탈이 좋다’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글쎄,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런 나도 약점은 있었으니까.
내 욕은 잘 넘길 수 있다.
내 비판 역시 잘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이은호를 향한 비난과 비판에는 나도 모르게 욱하곤 한다.
“알면 좀, 감히 그 주둥아리에 우리 오빠는 그만 들먹이고 빨리 본론이나 꺼내 주시죠., 돈엄 씨.”
지금처럼 말이다.
일부러 페이옵이 싫어한다던 본명을 들먹이며 말하자, 페이옵의 미간이 코 풀고 버린 휴지처럼 쭈그러들었다.
“그쪽은 일이 없어서 여유가 X나 넘치나 본데, 그쪽이랑 달리 난 정말 많이 바쁜 사람이거든요.”
잘난 척하는 것 같지만 솔직히 ‘척’은 아니다.
오늘 저녁에만 나갈 방송이 두 곳에다 일주일에 쉬는 날 한 번 없을 정도로 잘나가니까.
게다가 바쁜 일정이 쏟아지는 와중에, 나는 조금 전까지 곧 발표할 앨범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시간이 모자라서 작업실에 페이옵을 직접 불렀다.
거기다 한창 작업을 하던 와중에 이 사람을 맞아 주기까지 했다.
내 나름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 준 것 같은데.
이따위 입바른 소리 듣겠다고 내가 귀한 내 시간을 내준 건 아니라서 말이지.
“이런,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네. 기분 나빴으니까 그 야리는 것 같은 시선도 좀 죄송해지세요.”
“야리…… 예?”
“아, 노려보는 게 기분이 조금 나빴거든요.”
순간 욱하는 마음에 본심이 먼저 마중 나갔는데, 뒤늦게 정정해 봐야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
난 대충 이은호가 자주 짓던 가면 같은 미소를 흉내 내며 웃었다.
페이옵의 표정은 나를 따라 가식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바뀌었다.
“뭐, 본론을 말씀하시라니, 곡을 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공짜로요?”
반은 농담이었는데.
페이옵이 정색하며 굳었다.
“하하. 농담이에요.”
난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페이옵은 이마에 아직 지워지지 않은 주름이 있는데도 뻔뻔히 ‘하하, 그렇군요.’라며 웃어 보였다.
‘흐음.’
솔직히.
조금 전엔, 한 80% 정도?
진심으로 그가 이 자리에서 뛰쳐나가길 바라고 던진 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자존심이 짓밟히면서도 이 자리에 얌전하게 버티고 앉아 있는 꼴을 보아하니…….
“많이 절박하신가 봐요.”
“……하, 하.”
페이옵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직접 보이진 않지만,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가 눈에 훤했다.
“그래서, 어떤 곡인데요? 일단 들어나 보죠.”
그렇게 들은 곡은 참, 잡탕도 이런 잡탕이 또 없다.
개밥이나 돼지죽도 이 곡보다는 맛있을 것 같다.
아.
듣는 걸로 비유하자면 고장 난 TV에서 사이렌이 울리면서 동시에 교회 꼭대기에 달린 종이 치고 있다.
교회 종 아래에는 스님들이 염불을 외우고 건너편에는 성가대가 랩을 하고 있다.
‘이게 뭔 상황인데?’라는 딱 그 상태, 딱! 그런 느낌이다.
“과해요, 모든 게. 조잡한 불협화음부터 쳐 내고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껏 싸가지 없게 대한 것도 있어서 없던 예의도 주워 갖추며 나름 ‘예쁘게’ 조언을 건넸다.
페이옵이라는 이 사람에게 내 나름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
“어허, 불협화음이라니. 뭘 잘 모르시네. 그게 포인트인 건데. 아직 어리셔서 그런가?”
이 X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표정은 분명 웃고 있는데, 와.
속에 기름에 축축하게 절어 버린 장작 위로 툭 불씨가 던져진 느낌이었다.
겨우 좀 착하게 굴어 주려 했더니 너님이 나를 빡이 돌게 만드는구나.
“이걸 모르시네.”
페이옵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난 그간 ‘이성’이 단디 목줄을 붙잡고 있던 ‘본능’이라 불리는 사냥개의 줄을 놓았다.
“그쪽은 늙어서 그런가?”
“뭐, 뭐라고?”
“‘포인트를 잘못 잡았다’라는 말을 좋게 ‘불협화음’이라고 표현해 줬는데, 왜 못 알아들으시나 싶어서요.”
“하!”
페이옵은 거칠 게 헛웃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그럼 그렇게 잘난 듯이 말하는 당신이 만들어 보시던가!”
뜬금없이 나온 이야기에 이성이 다시 본능이라는 사냥개의 목줄을 잡아챘다.
“어디서 들어 본 트랙밖에 못 만드는 주제에 못 하면 못 한다고, 모르면 모른다고 할 것이지.”
저 인간의 곡이라는 게 찝찝하긴 하지만…….
「“사람이든 뭐든 나쁜 점에서도 배울 점은 있어. 알아야 안 하는 그런 것들.”」
이걸 뭐라고 하더라?
아, 생각났다.
이은호 말을 빌리자면 ‘반면교사’였던가.
나는 바쁘다.
하지만 곡에 시간을 쓰는 거야, 부정적인 측면의 가르침도 나름 배울 점이니까.
‘딱 되려나.’
난 나불거리는 페이옵을 지나치며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다.
‘말이 아니라 음악으로 대화를 원한다면, 나야 환영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