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59)
아, 걔
삐끗하다 꺾여 버린 바보 같던 나를 알아도
실패 끝에 여기 왔어
화랑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넘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래, 실패 끝에 거기 갔지. 거지 같은 놈들만 득실거리는 곳으로.”
“멍청한 년. 곡을 받았으면 그거나 부를 것이지.”
“데뷔부터 말아먹고 한 놈은 빽이라도 있다지만 저건 무슨 정신머리로 저기로 간 건지…….”
광대가 도드라져 보이는 얼굴과 손등으로 뼈가 드러나 보이는 마른 체형의 한 남자.
벼랑 끝 몰려 있던 나는 이제 없어
그림자가 가라앉은 light
이곳이야 내가 만든 내 자리
실패 따윈 적이 아냐
“쯧, 가사도 X나 구리고 베이스랑 드럼이랑 뭐가 더 들어간 것도 없어서 트랙도 텅텅.”
남자가 혀를 차며 한숨을 흘렸다.
“사메(사운드메이트) 새끼들은 이게 뭐가 좋다고 X나게 빨아 대는 건지…….”
남자의 신랄한 비난에도 스피커 너머의 화랑은 밝은 목소리로 노래를 이어 가고 있었다.
빛바랜 종이 위
내 펜 촉이 그려 가는 write
지금이야 달라진 난
새로운 네 선물―
띠―.
스피커와 연결된 리모컨인지, 남자가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누른 순간.
화랑의 목소리가 스피커 전원과 동시에 끊어졌다.
“화랑인지 화장인지, 양심이 있으면 한다고 해라, XX아.”
기분 좋은 노랫소리로 가득 차 있던 방 안에는 투덜거리는 남자의 목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남자는 거칠게 집어 든 휴대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아, 여보세요. 화랑 씨 휴대폰 맞나요?”
“하하. 아, 인사가 늦었죠? 일전에 같이 작업했던 작곡가 페이옵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화랑 씨?”
언제 온갖 욕지거리를 입에 달고 있었냐는 듯, 그는 소름 돋을 정도로 살가운 인사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 * *
레드 카드의 리메이크 곡은 회귀 전 히트곡답게 결과가 정말 좋았다.
이미 한 번 잘나가 봤으니 괜찮다던 은지는 전혀 빈말이 아니었는지 홀가분한 얼굴로 화랑의 등반을 축하해 주었다.
한편, 은호는 E-UNG의 곡이 아닌 화랑의 곡이 음원 사이트 TOP 10에 오르는 걸 보며 아쉬우면서도 기쁜,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심경이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화랑의 성공적인 두 번째 데뷔를 축하했다.
화랑은 은지가 만들어 준 곡과 은호의 가사 덕분이라며 두 사람의 덕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충성을 다했다.
‘충성.’
단어가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정말 ‘충성’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렸다.
화랑은 두 사람을 때로는 왕처럼, 때로는 신처럼 모셨다.
이젠 박 대표가 굳이 은호와 은지의 식사를 챙기지 않아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화랑이 은호와 은지를 찾았다.
화랑이 들어선 곳은 대문이 없는 평범한 가정집을 개조한 구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 건물이었다.
똑똑.
올록볼록한 모자이크 유리로 덮인 1층 철문을 노크하자, 안에서 “잠시만요!”라고 외치는 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연 은호는 당황한 눈으로 머리 하나 아래에 있는 화랑을 내려다봤다.
“화, 화랑 씨? 오늘 방송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네! 선배님 식사 챙겨 드리려고 끝나자마자 방송국에서 달려왔습니다!”
급하게 달려왔다는 화랑의 손에는 명절 세트라도 들어 있을 것 같은 두툼한 보자기가 들려 있었다.
“그건…….”
“도시락입니다.”
화랑이 웃으며 보자기를 들어 보였다.
“같이 드시는 거죠?”
“네. 선배님께서 그편이 편하다 하셔서 더 푸짐하게 싸 왔습니다.”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닌 건지 은호는 못 말리겠다는 듯 웃음기 섞인 한숨을 내쉬며 몸을 틀었다.
“들어오세요.”
“그럼 오늘도 실례하겠습니다, 선배님!”
화랑이 스튜디오 방까지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은지는 곧 있을 앨범 발표 때문인지 곡 작업에 집중하느라 화랑이 왔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이런 상황도 익숙한 듯 화랑은 살금살금 의자에 앉아 조용히 보자기를 풀고 도시락을 세팅했다.
고기 러버인 은호와 은지의 맞춤 식단인 건지 화랑이 꺼낸 도시락은 여섯 가지 반찬 중 다섯 가지가 고기 반찬이었다.
그마저도 나머지 하나는 잡채.
“오.”
은호는 화랑이 준비한 도시락이 굉장히 마음에 드는 듯 감탄하며 먼저 자리를 잡았다.
진한 음식 냄새에 뒤늦게 정신이 돌아온 은지가 킁킁거리며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뒤를 돌아봤다.
“뭐야. 언니, 언제 왔어!”
“이제 막 도착했습니다, 선배님.”
화랑이 웃자, 은지가 따라 웃으며 의자를 이끌고 도시락이 세팅된 테이블 앞으로 다가왔다.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평화로운 식사가 이어졌다.
화랑의 휴대폰이 울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 전화가…….”
화랑이 눈치를 보며 전화를 받을지 말지 고민하던 그때, 은호가 말했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받으셔도 돼요.”
“그럼,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네, 여보세요.”
화랑이 전화를 받는 순간, 은호와 은지는 아무 일도 없던 양 다시 바쁘게 젓가락질을 이어 갔다.
―아, 여보세요. 화랑 씨 휴대폰 맞나요?
화랑은 휴대폰을 귀에서 멀리 떨어뜨리며 전화가 온 번호를 확인했다.
아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처음 보는 번호인 모양.
화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전화를 귀에 가져다 댔다.
그 상황을 모두 듣고 있던 은호와 은지는 본능적으로 좋은 전화는 아닌 것 같았는지 식사를 멈추고 화랑을 바라봤다.
“누구시죠?”
―하하. 아, 인사가 늦었죠? 일전에 같이 작업했던 작곡가 페이옵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화랑 씨?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통화 내용이 자세히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는 또 아니었다.
화랑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그 부분은 이쪽으로 전화해 주시기보다 NRY 엔터테인먼트 측을 통해 전해 주셨음…….”
상대가 말을 끊고 이야기를 이어 간 건지, 화랑의 말이 어색하게 끊어졌다.
동시에 화랑의 미간에도 사나운 주름이 자리를 잡았다.
“불편한 점이 있다면 말씀하라 하셔서 말씀드리겠습니다.”
―…….
“선생님께서 창작한 곡은 자식과 같아서 곡에 대한 애정이 큰 것이야 알고 있습니다. 이해도 하고요. 말씀하신 대중성 역시도 마찬가지로, 저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한마디 한마디를 읊는 화랑의 얼굴에는 단호함마저 어려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 함께 작업을 할 적에도 그랬습니다만, 선생님의 작업 방식이 현재 저와 제가 소속된 NRY 엔터테인먼트에서 바라는 방향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
“제안은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말씀 주셨던 그 부분에 대해선 확답을 드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후 화랑은 “죄송합니다.”만 거듭하다 통화를 종료했다.
은호는 일부러 모른 척하며 식사를 다시 이어 가려던 그때.
“누구예요?”
은호와 달리 은지는 그사이 호기심을 못 참고 물었다.
“야, 넌!”
“아, 왜. 궁금하잖아.”
“……됐다, 됐어.”
은호는 어이가 없었는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화랑은 조금 전 통화 때문에 굳어 있던 표정을 풀고 대신 미소를 띠었다.
이미 이런 일상을 여러 차례 겪은 듯 익숙해 보이기까지 했다.
“페이옵이라고, 브앤시 데뷔곡 작곡가 선생님이세요.”
“…….”
페, 뭐?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은호의 반찬을 집으려던 젓가락질이 멈췄다.
은지의 장난기 어린 표정이 감춰졌다.
예전에 두 사람에게 일어났던 일을 모르는 화랑은 두 사람의 짧은 침묵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듯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이분 작업할 때도 그랬는데, 성격 되게 이상해요.”
페이옵에게 어지간히 시달렸던 건지, 다른 사람 이야기는 잘 안 하는 타입인 화랑이 페이옵과 있었던 일을 늘어놓으며 불만을 내비쳤다.
“본인이 만든 노래를 아끼는 모습은 이해하는데, ‘좋은 곡’보다는 ‘내 곡’에 집중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하핰, 맞아. 딱이네요.”
은호가 묵묵히 듣던 중, 은지는 화랑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예전엔 저더러 ‘듣보잡’이라느니 별소리를 다 해 놓고, 이번에 선배님들 곡으로 성적 잘 내니까 뻔뻔하게 곡 하나 같이 할 생각 없냐는 거 있죠.”
화랑이 투덜거리며 페이옵과의 이야기를 속사포처럼 쏟아 내던 그동안.
‘페이옵, 페이옵…….’
은지는 왠지 익숙한 그 이름을 재차 굴리고 또 굴렸다.
‘아, 기억났다.’
그리고 떠올렸다.
* * *
페이옵과는 악연이었다.
데뷔 초, 곡 문제로 투덕거린 일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기억은 그때가 아니었다.
더 전.
아니.
이건 더 ‘후’라고 해야 할까.
회귀 전 기억은 드문드문 빈 곳이 있다.
일을, 이름을, 이야기를 직접 듣거나 본인들을 마주치기 전까진 떠올릴 일이 없어서 그런지 평소엔 생각조차 나지 않으니까.
그 사람.
그 작곡가와의 작업은 절대 좋은 기억은 아니어서 딱히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간 페이옵을 단독적으로 떠올린 적은 없었다.
하지만 화랑을 통해 그 이름을 들은 순간.
머릿속 한편에서부터 번쩍이며 빛이 지나가듯 그 사람과의 일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나는 페이옵에게 자존심을 짓밟혔었다.
그래서 더 광적으로 그를 이길 곡을 미친 듯 뽑아내려고 했었다.
그 사람이 잘 썼다던 대중적인 곡을.
히트곡이 있어서 그렇게 우쭐거린다면, 나 역시 히트곡을 그만큼 뽑아내겠다.
같은 수준까지 올라가서 밟아 주겠다.
그런 마음이었다.
아직 회귀에 대한 기억이 없던 그때의 나는 그랬었다.
지금은, 글쎄.
페이옵과의 일에 대한 기억을 되찾은 지금, 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는다면?
‘애송이.’
딱 이 세 글자로 정리됐다.
나는 이은호와 함께 페이옵 작곡가와 작업하기 전에 이미 그와 나름대로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있었다.
‘나눠 본 적 있었다.’
이 말은 즉, 이야기만 했지 실제로 작업을 하진 않았다는 소리다.
페이옵은 당시 운 좋게 걸린 히트곡 이후, 세상의 귀를 사로잡을 만한 노래는 단 한 번도 낸 적이 없었다.
150점, 많을 땐 180점 곡일까.
촉박하고 급박해질수록 페이옵의 노래는 점차 중심을 잃고 더 심각하게 망가졌다.
트랙들은 과할 정도로 빼곡해졌다.
그 빼곡해진 트랙들 사이에는 가수의 목소리를 담을 틈조차 없었다.
나는 당시나 지금이나 좋은 곡이란 것은 100점을 맞추는 곡이라고 생각했다.
반주로 50점을 맞췄다면 가수의 노래로 남은 50을 맞춘다.
또는 반주가 낮은 20점이라면 기교가 화려하거나 음색이 귀를 사로잡는 가수의 노래로 남은 80점을 빼곡히 채운다는 말이다.
「“과해요, 모든 게. 조잡한 불협화음부터 쳐 내고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나는 회귀 전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날 찾아온 그를 맞은 적 있다.
당시 페이옵에게 나는 이 생각을 그대로 전달했었다.
내 조언에 페이옵은 이렇게 답했다.
「“그게 포인트인 건데 아직 어리셔서 그런가, 이걸 모르시네.”」
「“그쪽은 늙어서 그런가?”」
「“뭐, 뭐라고?”」
「‘포인트를 잘못 잡았다’라는 말을 좋게 ‘불협화음’이라고 표현해 줬는데, 왜 못 알아들으시나 싶어서요.”」
그때나 지금이나 내 성격은 여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