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58)
여행에서 돌아온 날 저녁이었다.
은호가 반가운 집 매트에 널브러진 그때.
은지가 문틀에 빼꼼히 머리를 내밀었다.
“이은호.”
“뭐.”
치렁하게 쏟아진 머리칼이 왠지 섬뜩하게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야, 무서우니까 그냥 똑바로 들어와서 말해.”
“응?”
“들어오라고.”
“아, 응.”
웬일로 은지가 얌전히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다.
평소 은지는 이렇게 얌전히 굴 애가 아니었기에 은호가 순간 경계하며 물었다.
“……너 이은지 맞지?”
회귀도 했고 고양이가 말하는 것도 봤는데 빙의라고 안 될까.
설마 싶어서 물은 건데.
“돌았냐?”
이은지 맞네.
돌아온 평소 싹수없는 이은지다운 대답에 안심했다.
은지가 입을 닫자 집 안이 조용해졌다.
새까만 털 뭉치가 없기 때문일까.
연탄은 여행을 가 있던 동안 대표님 부탁으로 철수 PD님이 봐주고 계셨다.
고양이의 습성을 아는 사람이라 따로 방 하나까지 내어 주고 지낼 정도라던가.
고로 오늘은 적어도 나한테는 아주 평화로운 날이었다.
“화랑 언니 있잖아.”
은지가 화랑 씨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진 그랬다.
“오늘은 좀 쉬면 안 되냐.”
바다를 보다 보니 떠오르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덕분에 그간 묵혀 뒀던 어려운 곡들의 가사를 써 내려갔다.
그래서 그런가.
휴식 시간이었다고는 하지만 이틀간 쓴 가사만 여섯 곡.
낯선 곳에 있을 땐 몰랐는데,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이래서 쉴 땐 제대로 쉬어야 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피곤함이 몰려왔다.
“나 언니한테 그 곡 줄까 싶은데.”
“뭔 곡.”
은호가 매트에 늘어진 채 물었다.
“RED CARD.”
그런 곡을 냈던가.
제목만 들었을 땐 처음엔 무슨 곡인가 싶었다.
“그거면 무조건 성공할 테니까.”
“아.”
성공이라는 단어를 듣고 나서야 어떤 곡인지가 떠올랐다.
는 회귀 전 은지가 ‘에이슬’을 저격하던 디스곡이자, 은지가 처음으로 이름을 제대로 널리 알리게 된 그 곡이었다.
“주변 챙기기 전에 너부터 성공하지.”
“나는 이미 해 봤으니까.”
“……재수 없네.”
“하핰.”
은지가 재밌다는 듯 웃자, 은호도 피식 웃으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건 네 곡이니까 네 마음대로 해.”
“내 곡이면 그랬지.”
“……?”
의미심장한 대답에 은호가 갸웃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가사 써 줘.”
“내가?”
“어.”
“왜.”
“써 주기로 했잖아.”
“주기로 한 거지, ‘써 주기’로 한 건 아니었는데.”
“아, 어쨌든!”
“……하.”
은호는 황당함과 귀찮음이 뒤섞인 복잡한 한숨을 흘렸다.
지금은 실랑이 자체가 귀찮달까.
딱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편안한 자세와 오랜만에 만난 익숙한 매트 때문이었다.
“알았어.”
“진짜?”
“어, 진짜. 알겠으니까, 오늘은 나 내버려 둬.”
“아싸! 곡은 드라이브에 올려 둘게?”
약 40곡을 넘어갈 무렵부터였을까.
곡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메신저로 주고받기엔 너무 많은 양이 쌓여 버렸다.
그래서 공용으로 연동 중인 드라이브를 하나 개설했고, 그곳을 통해 최근에는 곡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어. 알겠으니까.”
은호는 뒷말은 대충 손짓으로 전했다.
‘나가, 제발. 잘 거야.’
은지는 원하는 대답을 얻은 덕분인지 별 불만 없이 방을 나왔다.
~♬
방을 나온 직후.
은지는 곧장 현관으로 향하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쌤! 저 은지인데요.”
“…….”
“저, 지금 쌤 작업실 좀 딱 두 시간만 써도 돼요?”
전화를 받은 상대방은 은지의 작곡 스승이기도 한 작곡가 배진수였다.
* * *
그로부터 또 며칠이 더 지난 뒤였다.
기숙사가 있는 1층의 은호와 은지의 녹음 겸 작업실.
소파에 앉아 싱글벙글 웃고 있는 은지와 조금 떨어져 앉아 있는 은호.
그리고 그 건너 자리에는 경악한 얼굴로 놀라고 있던 화랑이 있었다.
‘아직 편곡이 덜 됐다고는 하지만…….’
화랑이 놀란 이유는 은호와 은지가 준다던 곡을 오늘 처음 접했기 때문이었다.
“4일 정도, 걸렸나?”
“그랬지.”
나흘?
화랑은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똥그랗게 뜬 눈으로 은호와 은지를 번갈아 바라봤다.
나흘이라니.
나흘 만에 나온 곡이라기엔 당장 음원 사이트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좋은 퀄리티였다.
사실 이렇게 빠른 작업이 가능한 데에는 회귀 전 히트곡이었던 를 리메이크했다는 이유가 컸다.
이미 한 번 작업해 봤고, 심지어 히트곡인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만져 본 적이 많아서일까.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다시 떠올리는 건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은지다.
NRY 엔터테인먼트의 공장장이라고 불리는 그 이은지.
작업 속도가 빠른 은지로서는 알고 있던 곡을 다시 만들어 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당일, 배진수의 작업실을 빌린 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은지는 화랑에게 맞춰 당시 분노에 절어 강렬하게 찍어 낸 거슬리던 부분을 쳐 냈다.
이후 기술이 부족해서 다듬지 못한 잡음들을 잡아냈다.
특징이었던 사이렌이 번쩍이는 느낌은 여전히 주되, 한결 더 듣기 좋게 말이다.
은지는 배진수 작업실에 있는 천만 원을 호가하는 비싼 스피커의 힘을 빌려, 대중들의 귀를 강하게 낚아챌 수 있도록 베이스 음향에도 강하게 힘을 실었다.
의 리메이크 작업에 들어간 시간은 이후 마무리 작업을 합쳐서 꼬박 몇 시간에 불과했다.
고로, 나흘 중 남은 사흘은 은호가 가사를 수정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가사를 써 주겠다고 귀찮음에 대충 약속해 버린 이후.
은호는 일찍 눈이 떠진 그날 새벽.
그사이 드라이브에 새로 추가된 은지의 새로운 버전의 를 들었다.
은지의 작업 속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놀라지도 않았다.
첫날.
은호는 은지를 통해 얻은 화랑의 연락처로 연락하며 장문의 문자로 화랑의 사연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하루가 더 흘렀다.
이튿날.
은호는 고민했다.
화랑이 보내 준 문자를 읽고 또 읽었건만, 정작 새 의 가사를 써 내려가진 못했다.
화랑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려고 시도해서 그런가.
고민이 정말 많았다.
어지간했으면 가사가 너무 안 써져서 이를 자주 악물어 버려 잇몸까지 시릴 지경이었다.
「“역량은 그 곡을 부를 놈들한테 맡겨. 넌 해 오던 대로 하면 되는 거야.”」
의외로 답은 빨리 나왔다.
여행 당시 대표님이 던진 이야기 덕분이었다.
“일단 불러 보고 생각하죠. 가이드는 듣고 왔죠?”
“네. 듣고 왔습니다.”
“듣기만 한 건 아니죠?”
은호가 장난스럽게 떠 본 그때였다.
장난이었는데.
화랑은 가볍게 물어본 은호와 달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뻣뻣하게 차렷한 채, 군기가 잡혀 있는 모습으로 외쳤다.
“네! 절대 아닙니다!”
“그, 그래요.”
덕분에 오히려 은호와 은지가 당황하며 알았으니 진정하라고 긴장한 화랑을 달랬다.
하지만 효과는 전혀 없었는지 화랑은 손발을 같은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이며 괴상하게 걸음으로 녹음실로 향했다.
그 모습에 은지가 웃음을 터뜨리며 모니터 앞으로 향했다.
“언니.”
―네!
“언니는 잘하고 있어요. 잘해요.”
―……네, 선배님. 감사합니다. 절대로, 실망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응원을 위해 꺼낸 이야기인데, 어째 들은 화랑의 눈빛엔 더 큰 결의가 맺힌 것 같았다.
어쨌거나 응원이 되었으면 됐다고 생각한 듯 은지는 토크 백에서 손을 떼며 웃었다.
그리고 곧이어 익숙하지만 조금 더 세련되게 변한 리메이크 버전의 반주가 이어졌다.
은호는 눈을 감고 훨씬 더 풍부해진 베이스 박자에 맞춰 고개를 까딱이며 리듬을 맞췄다.
인트로가 끝나고, 3, 2, 1.
첫 벌스에 들어서는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화랑은 녹음실에 들어서던 순간 긴장하던 모습은 여전했지만, 그 어색함이 목소리에만큼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인사할게
물결처럼 돌아온 나를 돌아봐
그때 걔 나 맞아
장난기가 다분한 시작에는 은호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회귀 전 은지를 잃은 1년.
그간 살아온 시간에 비해서는 찰나였던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보다 비약적으로 성장해 낸 시간이었다.
가사는 이은지의 그림자에 가려져 힘들었던 당시의 기분을 담았다.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곧 가사를 써 내려가다 보니 깨달았다.
나는 의식하지 못한 새에 많이 달라져 있었다.
더는 누군가의 그림자에 짓눌리지 않았다.
같은 자리에서 함께 걸어가려고 했었다.
같이 서려고 하자, 나는 그제야 회귀 전 내가 바랐던 이은지에게 의지되는 존재가 되었다.
바라던 가족의 형태가 만들어져 있었다.
* * *
「“혹시, 화랑 씨 이름의 의미가 어떻게 돼요?”」
내 이름의 의미는 흔한 꽃 화(花)가 아닌 불 화(火)에 물결 랑(浪)을 쓰고 있다.
이름에 자주 쓰이는 한자는 아니다 보니, 종종 ‘특이하다’라는 말을 자주 듣곤 했었다.
하지만 은호 선배님께선 간단하게 ‘고마워요.’라는 인사를 끝으로 어떠한 말씀도 없으셨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선배님이 쓰셨다는 가사를 받았다.
“와…….”
가사를 처음 받았을 땐, 처음엔 감탄했다.
그리고 조금.
아니,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나는 브앤시로 데뷔를 했었다.
그리고 브앤시가 E-UNG 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적어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선배님들의 무대를 빼앗고, 활동을 잠시 중단하도록 만들어 버린.
나는 그 TaKa 엔터테인먼트의 사람이었다.
E-UNG의 적이었다는 말이다.
‘스스로 원했던 건 아니라고 하지만…….’
그런데도 염치없게 이곳에 와서 회사에 받아 달라.
또한 곡까지 달라며 떼를 부렸다.
나였다면 어땠을까.
짧게나마 생각을 해 봤다.
그리고 고민은 길게 가지 않았다.
곧장 답으로 이어졌으니까.
‘절대 곱게 보지만은 못했겠지.’
나는, 감정적이다.
욱하는 마음에 잘 쌓아 온 것들을 단숨에 부숴 버리기도 하는, 못난 사람이다.
그리고 보통 이런 경우는 흔히 ‘좋은 사람’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었다.
고로, 이렇게 곡을 달라고 했을 때 어차피 거절하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나라면 이리저리 놀려 먹으며 약을 올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선배님들은 그러시지 않았다.
은호 선배님께선 ‘어때요?’라는 짧은 질문과 함께 가사가 쓰인 노트 사진을 보내 주셨다.
노트 사진을 받은 그 순간.
나는 가사들을 읽어 내리다 한동안 바보처럼 꺽꺽이는 못난 숨을 내뱉었다.
이름의 의미를 물은 이유는 가사를 읽자마자 알 수 있었다.
「“물결처럼 돌아온 나를 돌아봐”」
「“이름 따라 불을 붙여”」
신경을 써 줬다는 반증처럼 그 정성이 가슴에 닿아 감동했다.
그리고 이 정성은 곧 노래를 향한 애정으로도 이어졌다.
삐딱하게 올라갔던 입꼬리가 나를 깎아도
이름 따라 불을 붙여
빛바랜 지저분한 종이 위에 그려
내 펜촉이 그려 가는 write
나는 처음 가사를 마주했을 때의 감동을 담아, 노래를 불렀다.
은지 선배님께서 만들어 주신, 황송할 정도로 좋은 곡.
은호 선배님께서 많은 신경을 기울여 주신 게 보이는 좋은 가사.
선배님들의 선물에 위로를 받은 나처럼.
나 또한 지금 부르는 이 노래가 누구에게든 때로는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노래했다.
지금이야
네가 만든 네 가치
달라진 건 새로워진 네 미래
널 위한 선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