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57)
첫날 일찍부터 바다에서 열심히 뛰어놀았던 탓일까.
이틀 동안 족히 여섯 번은 바닷물에 뛰어들었던 은지와 달리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바다를 두고도 은호는 정작 몸에 물 한 번 묻히지 않았다.
“귀찮아.”
“아, 놀자고!”
“혼자 가서 놀아.”
“뭔 재미로 놀아.”
“나랑 뭔 재미로 놀아.”
“물 뿌리는 재미?”
“응. 안 가.”
“아, 왜!”
“옷 없어.”
“구라 치지 마!”
“진짜 없어.”
“그냥 귀찮아서 안 가는 거잖아.”
“들켰당.”
은호가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장난스럽게 웃는 그 순간, 은지는 저도 모르게 홧김에 손을 올렸다.
본능적으로 은호도 따라서 가드를 올렸다.
“와, 씨, 그렇게 정색하기 있냐?”
“좀 역겨워야지.”
“지는.”
“은지야, 어허.”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대표님이 지켜보고 있어서 살았다.
은호가 약 올리듯 은지를 보며 히죽 웃어 보였다.
“악!”
“이번엔 은호 네가 잘못했어.”
너무 놀렸나 보다.
이번엔 대표님조차도 고개를 저으며 은지의 주먹질을 인정했다.
“화랑 씨랑 가서 놀아. 둘이 잘 놀더만.”
“안 그래도 그럴 거였거든!”
은지는 씩씩거리며 바닷가로 향했다.
“언니!”
“선배님.”
해변에는 먼저 도착해서 발을 담그고 있던 화랑이 은지를 반겼다.
“이은호 안 온대요. 아으 그 귀차니즘 덩어리 자식.”
“선배님한테 귀차니즘이 있어요?”
“네. 엄청 심해요. 저 인간 운동하기 귀찮아서 식단 조절 엄청 빡세게 하고, 또 뭐더라. 아, 맞아. 쉬는 날에 집구석에서 나가는 꼴을 못 봐요.”
“하하하. 저도 쉬는 날 기숙사에만 있긴 했었는데. 선배님은 쉬는 날 어디 가셨었어요?”
“저는, 스승님 스튜디오 놀러 다니기도 하고, 회사 구경도 가고 그러죠.”
“스승님? 아, 트레이너 선생님이요?”
“아, 아뇨. 작곡가 쌤이 있어요.”
스승님 스튜디오.
배진수 작곡가의 스튜디오를 말하는 거였지만, 화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응 팀에서 나오는 곡은 선배님께서 만드시는 거 아니었어요?”
‘휴식 시간’.
즉, 이곳 별장에 출발하기 전.
은밀히 박 대표에게 은호와 은지에게 곡을 받으라는 임무를 받았기 때문일까.
화랑은 다른 작곡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곧장 이해하지 못했다.
“제가 만들죠.”
“그런데 다른 작곡가가……?”
“탑 라…… 아니, 그, 이걸 뭐라고 설명하지? 음, 제가 일단 기본적인 베이스는 만드는데, 아무래도 기술이나 장비 쪽으로는 능력이 부족하거든요.”
“아하.”
“그래서 저한테 작곡을 가르쳐 주신, 어, 음, 정확히는 그…….”
“그?”
“그그, 편곡하는 방법이랑 이것저것 기술들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계세요.”
“아하.”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선생님 스튜디오에 놀러 가서, 거기는 기계가 비싼 게 많아요. 소리가 빵빵해서 만드는 재미도 있고, 그래서 거기서 이것저것 시도를 해 보고 그러는데―.”
은지는 팔을 휘적이며 나름 상세하게 설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화랑은 그 모습이 귀엽다고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실실 미소가 피어올랐다.
덩치도 키도 훨씬 크지만, 화랑에게 은지는 내면이 귀여운 선배님이었다.
* * *
“저러고 있으니까 꼭 자매 같네.”
한편.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고 있던 박 대표가 중얼거리며 말을 흘렸다.
어느새 지정석이 된 벤치에 앉아 있던 은호는 자매라는 말에 귀가 트인 듯 노트에서 시선을 떼며 물었다.
“누가요?”
“화랑 씨랑 은지.”
은지 이야기에 은호의 시선이 그제야 화랑에게 향했다.
‘흠.’
아침 일찍 긴 머리인 화랑에게 은지가 비녀를 꽂아 준 덕일까.
두 사람은 뒤에서 봤을 때 똑 닮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머리 모양은 은지가 했기 때문인지 확실히 닮았다.
하지만.
“안 닮았어요.”
분위기라든가, 덩치라든가.
은지는 조금 더 말썽을 부릴 것 같은 분위기라면, 반대로 화랑의 뒷모습은 마치 ‘아씨’라고 불릴 것 같은 고고한 분위기의 귀족 자제에 가까웠다.
어쨌든 저 왈가닥하고는 안 닮았다는 말이다.
그때였다.
“하하, 그렇게 싸우더니 그래도 동생이라고 빼앗기기는 싫어?”
박 대표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은호는 삐걱거리며 황당한 얼굴로 박 대표를 봤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대표님이니까 곱게 말해서 이런 거지.
은지나 다른 사람이었다면 ‘개소리하지 마세요.’라고 직접 입 밖으로 뱉었을 일이었다.
“크, 크흠.”
박 대표는 심각할 정도로 정색하는 은호 때문에 이내 민망함에 헛기침을 터뜨렸다.
“그, 거, 있잖냐.”
“없는데요.”
“네가 이제 나한테도 태클을 걸기 시작하는 거냐.”
“아.”
조금 전엔 정말 실수였는지 은호가 당황하며 박 대표를 돌아봤다.
박 대표는 헛헛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마저 말을 이었다.
“은지는 화랑 씨한테 어제 곡 주기로 했다던데, 너는.”
“걔는 애초에 ‘주겠다’라고 했잖아요.”
“그랬지. 그랬는데, 더 확신이 생긴 모양이더라고.”
박 대표는 팔짱을 끼며 다시 은지가 뛰어놀고 있는 바다 쪽을 돌아봤다.
은지와 화랑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멀리서 지켜만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밝게 웃고 있었다.
“힌트라도 줘라. 어떻게 하면 가사를 줄 건지.”
박 대표는 화랑과 은지가 밤새 은호를 설득할 작전을 세우던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 대표가 넌지시 던진 압박에 은호는 고개를 저었다.
“힌트랄 게 없지 않나요.”
“왜?”
“화랑 씨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
“애초에 저는 저희 이야기로 가사를 썼었잖아요.”
“그렇지.”
“그건 우리 이야기지, 다른 가수가 공감하면서 부를 만한 좋은 가사는 아니잖아요.”
박 대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톡신 애들하고 같이하는 곡도 써 놓고?”
“그건 저희도 같이 불렀잖아요. 그건 달라요.”
“흠, 은호 네 말은 그럼 다른 가수가 공감할 수 있는 가사를 못 쓰겠다는 말이냐?”
“그렇죠.”
박 대표는 다시 은지가 뛰어놀고 있는 바다를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잠시 후 고민이 끝난 듯, 박 대표는 다시 은호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그냥 쓰던 대로 쓰고 부르게 해 봐.”
“예?”
“모르겠다며.”
“네.”
“일단 쓰던 대로 쓰고 줘 봐. 그리고 어떻게 부르나 직접 들어 봐.”
“그게, 괜찮을까요?”
“괜찮기보다는, 의외로 너희가 놓치고 있던 새로운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거야.”
“새로운 길이요?”
박 대표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더했다.
“노래 한 곡이 있으면 말이다. 어떤 사람은 멜로디가 좋아서, 어떤 사람은 가사가 좋아서, 어떤 사람은 싸비가 좋아서 듣는다.”
“…….”
“어차피 관객들은 제각각 원하는 대로 받아들이잖아.”
은호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기억 안 나냐. 너희 사랑 노래하기 싫다고 떼쓰던 거.”
“친 남매한테 사랑 노래시키는 대표님이 이상한 거예요, 그건.”
“근데 해냈잖아.”
“그건, 그렇죠…….”
“어떻게 보면 지금 너희 곡도 사랑 노래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랑’은 ‘사랑’이니까.
연인과의 사랑이 아닌, 가족에 관한 그런 내용이었으니까.
“은호, 네 가사는 말이다. 해석의 여지가 다분해.”
“…….”
“그걸 이용하라는 말이야. 역량은 그 곡을 부를 놈들한테 맡겨. 넌 해 오던 대로 하면 되는 거야.”
박 대표의 무심하게 던진 조언은 은호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게 만들었다.
“나는 저녁에 먹을 고기 좀 사 오마.”
은호는 고민하던 중에 박 대표가 말한 ‘고기’는 확실하게 들은 듯 휙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소고기로요.”
“알았다. 하하.”
박 대표는 그 모습에 고기에 환장하던 두 꼬맹이를 떠올리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 * *
은지와 화랑의 ‘이은호 설득하기’ 계획의 시작은 같이 바다에 가서 놀자던 그때가 시작이었다.
하지만 첫 계획은 은호의 귀차니즘으로 시작조차 못 하고 무산됐다.
이어진 화랑의 두 번째 계획은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제, 제가 맛집을 알아 놨어요!”
“어? 화, 화랑 씨가?”
“네!”
화랑은 미리 알아 둔 맛집에서 기분 좋은 식사로 은호의 경계를 풀어 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두 번째 계획도 허무하게 실패했다.
“이런, 이거 어쩌지.”
박 대표가 몰래 준비해 둔 통삼겹살과 투플 한우 스테이크를 이길 수 있는 맛집이 이 주변에 없었던 탓이었다.
“대표님.”
“응?”
“좀 번거롭긴 하지만, 저희 밖에서 밥 먹으면 안 돼요?”
“응? 되긴 한데, 네가 웬일이야.”
“내일이면 가는 데 마지막 날이니까, 바다 보면서 식사하고 싶어서요.”
은호는 바다에 들어가지만 않았을 뿐이지, 이번 여행에서 가장 바다를 많이 봤다.
시간이 날 때면 고정석처럼 벤치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들으며 가사를 끼적이던 덕분이었다.
“그래. 운치 있고 좋네. 그러자.”
박 대표와 은호가 대화를 나누는 그동안, 은지와 화랑은 시선을 교환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마지막 기회다.
은지가 화랑에게 계획을 이야기하려던 그때였다.
“화랑 씨.”
“네?”
“여행 끝나면 우리 작업실에 잠깐 와 주실 수 있으십니까?”
“네. 네? 아, 네! 다, 당연하죠!”
무슨 의미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은호는 밖에서 식사를 위해 세팅 중이던 박 대표를 도우려고 곧장 자리를 떠나 버렸다.
화랑은 덩그러니 현관에 선 채 조금 전 은호가 하고 간 말을 되뇌었다.
그때, 옆에 있던 은지가 먼저 은호의 행동을 이해한 듯 눈이 점점 커졌다.
“어, 언, 언니이이이이이!!!”
화랑은 이제 조금 이해되기 시작하던 때였다.
갑자기 치고 들어온 은지의 커다란 목청에 놀란 듯, 화랑은 날뛰는 닭처럼 몸을 파드득 떨었다.
“하하하하핰.”
둘은 잠시 깔깔거리며 웃었다.
‘됐다’라는 안도감과 조금 전 상황이 섞여 터져 나온 웃음이었다.
그 모습을 한 걸음 멀리서 지켜보던 박 대표와 은호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막 바비큐 기계 안에 숯을 부어 넣고 있던 그때였다.
펑.
퍼펑.
멀지 않은 곳에서 바다를 향해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페스티벌에서 폭죽 터뜨리고 있나 보네.”
박 대표는 하늘을 수놓는 폭죽을 구경하며 중얼거렸다.
은호는 박 대표를 따라 폭죽을 바라봤다.
하지만 마냥 좋기보단 어쩐지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저기도 무대가 있겠죠?”
“당연히, 있지.”
“이제 약속대로 쉬었으니까, 대표님도 약속대로 저희 무대 많이 잡아 주세요.”
은호의 고집 있는 부탁에 박 대표는 소리 내 웃음을 터뜨렸다.
박 대표가 키워 낸 아이들은 많았다.
물론, 은호와 은지의 ‘E-UNG’처럼 실험적이기보다는 대부분 프로세스에 맞춰 키워 낸 아이들이었었다.
하지만 그때도 아이들에게 한 번씩 휴가를 주는 건 여전했다.
당시 돌아오는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더 쉬고 싶다.’, ‘기숙사로 돌아가기 싫다.’, ‘좋았는데.’ 등등.
대부분이 보통은 쉬는 시간을 아쉬워했다.
한편, 은호가 바비큐를 준비하기 전까지 앉아있던 벤치에는 펼쳐 둔 검은 가사 노트가 놓여있었다.
쉬라 했음에도 일을 하고 있던 증거였다.
박 대표는 은호를 알기에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일중독인 은호랑 은지는 내일부터 다시 행복하겠구나.”
곧 물밀듯 밀려올 일정 틈,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
화기애애한 바비큐 시간을 마지막으로 ‘휴식 시간’이 끝났다.
이제 다시 본업으로 돌아갈 시간이 돌아왔다.
「최근 톡신의 이동 소식과 관련하여 떠들썩한 NRY 엔터테인먼트의 남매 아이돌 ‘E-UNG’가 이번에 몽환적인 가사로 마음을 사로잡는 신곡 으로 찾아왔다.
……(중략) E-UNG에서 작곡을 맡은 멤버인 이은지는 이번에 톡신의 지예찬과 함께 ‘노을’을 표현한 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