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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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과 함께 울다 잠이 든 그날 새벽이었다.
달칵.
멀리서 들린 문 열리는 소리에 은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어디 있지.’
침대를 더듬으며 휴대폰을 찾았다.
화면이 켜진 순간.
번쩍.
‘억!’
은지는 퇴마 당하는 악령 체험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갑자기 눈앞에 쏟아진 빛 때문에 눈을 뜨기는커녕 비명이 먼저 튀어 나갈 뻔했다.
“으음.”
옆에 곤히 잠든 화랑의 잠투정만 아니었으면 지르고도 남았다.
찌푸린 눈으로 시간을 보자, 새벽 4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달칵이는 문 여는 소리를 들었는데.
잘못 들었던 건 아닌 듯 현관이 살짝 열려 있다.
‘누가 들어왔나? 아니면 나갔나?’
은지는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주변엔 딱 손에 들어올 만한 무기가 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도둑이면…….’
은지는 잠시 고민하다 조용히 제 손을 바라봤다.
그냥, 뒤지게 패 버려야겠다.
몸에 장착된 무기를 믿고 열린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긴장은 했지만 상대에게 들키지 않으려 당당히 문밖으로 나왔다.
“뭐야, 왜 벌써 일어났어.”
앞마당에 놓인 벤치에는 다행히 도둑이 아니라 은호가 앉아 있었다.
은호는 동그란 안경을 낀 채 가까운 가로등 조명을 벗 삼아 가사 노트를 읽고 있었다.
은지는 긴장이 풀린 듯 굳어 있던 어깨에 힘을 풀며 은호에게 다가왔다.
“뭐야. 도둑이었으면 패 죽이려는 마음으로 나왔더니.”
“와, 합법적 화풀이?”
“어. 어떻게 알았어?”
“하하, 니가 성질머리 죽이고 산 기간 생각하면 알고도 남지.”
“흐음.”
“그렇다고 나를 도둑으로 치부하고 패진 마라. 네 오빠다.”
“오랜만에 한판 뜨자.”
“싫어. 또 흙 뿌리고 시작할 거잖아.”
“그게 필승 전략인데, 당연하지.”
은호는 나른하게 웃으며 중지를 치켜들었다.
은지는 입을 비죽이며 따라 양손 중지를 들었다.
잠시 후, 은지는 다시 노트를 바라보는 은호를 가만히 구경하다 같은 벤치에 앉았다.
물론 거리는 중간에 성인 남자 한 명이 더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벌어진 거리였다.
“근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좋잖아.”
은호는 조용히 아무것도 안 보이는 방향을 돌아봤다.
바다가 있는 방향이었다.
가까운 거리에 바다가 있는 탓일까.
쏴아, 시원한 파도와 어느새 익숙해진 짠 내음이 바람에 몰려왔다.
“이은호.”
“왜.”
아주 오랫동안, 일부러 묻지 않았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넌 엄마랑 아빠라는 사람들 기억해?”
“…….”
노트에 느리게 끼적이던 이은호 손이 우뚝 멈춰 섰다.
어제저녁, 화랑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뒤늦게 호기심이 생겨서 물었다.
사실 솔직한 마음으로는 호기심보단 인제야 아무 원망 없이 들을 만큼 긴 시간이 지나서.
그래서 이야기를 꺼냈다.
“음…….”
이은호는 의외로 왜 묻느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오랫동안 묵혀 있던 기억을 꺼내듯 한동안 새벽노을이 떠오르고 있는 하늘을 가만히 바라봤다.
“기억은 없어. 그땐 나도 어렸으니까. 근데…… 그래도 아는 건 다 기억하지.”
“그래?”
“이야기해 줘?”
“응.”
이은호 특유의 웬일이냐는 등 입에 달고 살던 비꼬는 말이 돌아오지 않아서 조금 놀랐다.
우리 길거리 생활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됐었다.
너무 어린 시절이었기 때문일까.
나는 이은호랑 집을 나올 때까지의 기억이 전혀 없다.
하지만 나는 이은호한테 그때에 관해 단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었다.
호기심보다 혹시나 한 두려움이 더 컸다.
이쪽을 돌아보는 이은호의 시선 속에는 너무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생각이 겉으로 드러나진 않아서 오히려 겉모습은 차분하기만 했다.
“일단…….”
이은호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이모랑 이모부 아니, 삼촌인가.”
‘이모’, ‘삼촌’이라고 부르는 사람의 집에는 항상 담배 연기가 빼곡해서 시야 앞이 흐렸다.
굉장히 특이한, 마치 한약재와 비슷한 독특한 냄새가 나던 걸로 봐선 어쩌면 담배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곳엔 종종 화투를 치는 사람들이 자주 몰려들었다.
한 번 모이면 몇 주, 길 때는 몇 달간을 그곳에서 여럿이 생활하곤 했었다.
빼곡히 들어찬 연기에 본인들도 콜록거리면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모와 삼촌은 검은 비닐로 막아 둔 창문을 단 한 번도 연 적이 없었다.
알고는 있었다.
그 사람들이 진짜 가족이 아니라는 것쯤은.
우리를 대하는 태도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야기를 들었다.
어릴 때였지만 그 말 한마디는 확실하게 기억이 난다.
「“저런 애새끼들을 어디다 써먹으려고 받아 와!”」
삼촌이라고 부르던 남자는 이모라던 여자한테 화를 냈다.
잤느니, 뭐니.
어린 그땐 무엇 하나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들이 오갔었다.
부모라는 작자들이 우릴 팔았다.
정리하자면 그런 말이었던 것 같다.
이모는 우리를 방치했다.
삼촌은 종종 나를 때렸다.
하지만 밥을 챙겨 주던 것도 삼촌이었다.
‘사육.’
그래.
딱 그 단어가 어울릴 법한 생활이었다.
마당에 묶여 있던 잡종 개만도 못한 취급이었던 시간.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공포와 폭력으로 진행된 교육은 아이의 정신을 지배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었다.
그로 인해 난 ‘도망’이라는 단어는 전혀 생각도 못 했다.
은지가 실수로 ‘상품’이라 불리는 비싼 술 같은 병을 깨트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술에 취한 삼촌이 은지를 때리려고 할 때면 은지를 숨겨 두고 대신 내가 그 대상이 됐었다.
잘못한 게 없을 때도 그렇게 맞았었는데…….
잘못했을 땐 삼촌이 어떤 식으로 나올까.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망칠 생각은 못 했다.
「“넌 이제 죽었다. 아니, 저 꼬맹이를 죽이려나?”」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술인지 약인지 무언가에 한껏 취한 이모가 우리를 보고 미친 듯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은지를 잡으려고 한 건지, 이모가 손을 뻗었다.
난 급하게 이은지를 끌어안고 이모를 밀쳤다.
이모는 허공에 손짓하다 그대로 넘어졌다.
혹시나 죽은 건 아닐까 싶어서 뒤를 돌아봤다.
다행히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대로 도망쳤다.
미친 듯이.
아무것도 모른 채 엉엉 우는 은지를 데리고.
그 이후.
굴다리 아래에서 숨어 있던 우리는 어딘가에 다녀온 듯 우르르 몰려오는 노숙자 아저씨, 아줌마 그룹을 마주쳤다.
“끝.”
이후는 은지도 아는 이야기였기에 은호는 이야기를 끝냈다.
은지는 어느새 해가 오른 바닷가를 돌아봤다.
시원한 파도 소리 때문일까.
그렇구나.
그랬구나.
의외로 미루고 미룬 끝에 이야기를 들은 소감은 그게 끝이었다.
“이모랑 삼촌은 하우스 운영하면서 마약 팔던 사람인 건가?”
“몰라.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어. 다시 엮이기도 싫었고. 참, 대신 빵 아저씨한테 이야기했을 때 아저씨가 신고했어.”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싹 다 잡혀 갔지.”
“오, 그건 잘됐네.”
빵 아저씨가 우리와 연결된 악의 고리 중 정말 많은 것을 끊어 냈구나.
“아저씨, 잘 지내실까.”
“잘 지내시겠지.”
“아저씨 보고 싶다. 아저씨 지금쯤이면 결혼하셔서 애기도 있고, 잘 계시겠지?”
“그렇겠지.”
“아, 결혼하니까 생각났는데, 어제 언니랑 이야기하다가 결혼 이야기가 나왔거든.”
“갑자기 결혼 이야기는 왜.”
은지는 어제 화랑과 나눴던 이야기 중.
‘화랑 언니에게도 오빠가 있다.’
‘오빠랑 사이가 나쁘다.’
‘언니의 긴 연습생 생활을 오빠가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오빠가 언니한테 자꾸 결혼을 보챈다더라.’
호랑의 개인사를 제외한 채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은호는 그 정도 이야기만 들어도 어제 상황이 훤히 보이는지, 피식 새는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래서 어제 같이 끌어안고 울었냐?”
“헐, 어떻게 알았어?”
“니 눈탱이가 팅팅 부어 있는데 어떻게 모르냐.”
“나 눈 부었어?”
“어, 완전.”
“에이 씨.”
은지는 손바닥으로 눈을 꾹꾹 누르며 하려던 이야기를 다시 이었다.
“아아, 아무튼!”
“아직 다들 잔다. 소리치지는 마.”
“아씨, 알았어. 아무튼 어제 언니랑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했거든?”
“어.”
은호는 대답은 하지만 눈은 다시 노트로 향해 있었다.
“나는 그, 뭐랄까.”
“어.”
“솔직히 우리가 좀 거지 같은 놈들 많이 겪었잖아.”
“그렇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믿고 그 사람하고 평생 사나 싶어서.”
“어.”
“음, 그런 거 있잖아. 어, 으음…….”
은지가 애써 머리를 굴리며 더 많은 설명을 덧붙이려 하던 그때.
은호는 듣다못해 답답했는지 끼적이던 펜을 멈추며 물었다.
“야. 뭔 말인지 이해했어. 그냥 나는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고 싶은 거 아니냐?”
“어! 맞아!”
은호의 깔끔한 정리가 만족스러웠는지, 은지는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손뼉까지 치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간단한 이야기를 뭐 그렇게 질질 끌어.”
“알잖아. 나 말 못 하는 거!”
“욕은 더럽게 잘하면서.”
“닥쳐.”
“어휴, 빡대가리.”
“지는.”
“난 너보단 나아.”
“아무튼! 어떻게 생각하는지나 말해 봐.”
은호는 ‘굳이?’라는 표정으로 눈썹을 들썩였다.
“넌 어떻게 생각한다고 했는데?”
“나?”
“어.”
“나는 그냥 막 엄청 좋고 평생 함께하고 싶다! 그런 사람 만나면!”
“그런 사람 만나면 결혼을 하겠다?”
“그렇지.”
결혼이라,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생각이 많아지는 단어였다.
‘안경을 매일 끼고 있지 않아서 그런가.’
오래 끼고 있으면 눈이 피곤해서 가끔 잘 안 보일 때나 중요하게 또렷하게 봐야 할 때만 안경을 낀다.
몇 시간 동안 안경을 끼고 있었던 탓일까.
은호는 아린 미간 사이를 문지르며 노트 위에 안경을 벗어 뒀다.
“눈 아프냐?”
“어, 이은지 평생 결혼 못 할 거 생각하니까 눈물이 앞을 가려서 눈이 아프네.”
“미친X아, 왜 갑자기 시비야!”
“하하. 야, 니가 생각해 봐라. 너 데려갈 남자가 어디 있겠냐.”
“남자가 나를 왜 데려가. 내가 데려갈 건데.”
“오. 하긴, 회귀 전에 니 능력이면 충분하긴 하지. 그건 좀 멋있네.”
“아, 아무튼.”
은호가 은지의 능력을 인정하며 말하자 욕보다 칭찬이 더 받아치기가 힘들었는지, 은지는 황급히 질문을 던졌다.
“넌?”
“갑자기 거슬리네. ‘넌’이라니, 새끼야.”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X랄이야.”
“너무 자연스러워서 눈치 못 챈 거지.”
“그럼 뭐라고 그래, 새끼야.”
“오라버니라든가.”
“X랄.”
“오빠라든가.”
“응. 안 해.”
“너한테 난 돈 줄 때만 오빠지?”
“아유,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돈 줄 때는 오라버니시죠.”
“하하, X랄, 진짜. 내가 너한테 뭘 바라냐.”
은호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래서 이은호 넌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야, 이렇게 말 돌렸으면 대답하기 싫다는 거 눈치껏 알아주는 게 매너 아니냐?”
“아닌데? 언제부터 매너 우려먹었다고.”
“난 원래 매너 있었어.”
“X랄하고 있네. 그래서 말해.”
“와, 개끈질기네, 이은지.”
“아, 빨리!”
“아무 생각 없어. 너 같으면 어이슬한테 그렇게 당했는데 여자 만날 생각이 들겠냐?”
“이은호라면? 만나지 않을까 했지.”
“날 뭐로 보고 있는 거야.”
“이은호로.”
“…….”
은호는 영양가 없는 대화를 끝마치기 위해 중지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