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55)
“오빠가 결혼했어요?”
“네.”
“오…….”
은지가 감탄하던 그때.
화랑은 개인적인 호기심에 조심스레 물었다.
“선배님은, 혹시 결혼하고 싶으신가요?”
“저요? 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이었는지, 은지는 화들짝 놀라며 팔짱을 낀 채 진지하게 고민했다.
미간에 잡힌 주름이 얼마나 고심하고 있는지가 눈에 보였다.
“진짜, 진짜, 진짜…… 이― 사람이면? 평생을 함께해도 좋겠다? 싶으면, 하지 않을까요?”
물음표가 유독 많이 들어간 대답이었다.
“그럼, 선을 봐서 결혼하는 건요?”
“선? 선이 뭐예요?”
“중매로 소개를 받아서 결혼할 사람을 만나는…….”
“아. 아하.”
낯선 단어였는지, 은지는 재차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해한 듯했다.
결혼.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던 영역인 탓일까.
은지는 이해랑 별개로 대답은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 언니, 있잖아요. 혹시 선까지 보면서 굳이 낯선 사람이랑 결혼하는 이유가 뭐예요? 아, 막 비꼬는 건 아니고, 궁금해서.”
“음, 부모님이 원해서, 또는 가정을 원해서……?”
화랑의 설명은 마치 특정인을 지칭하며 말하는 듯한 어투였다.
은지가 갸웃거리자, 화랑은 짧은 숨을 뱉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희 오빠는 장남이라 부모님이 보채셔서 결혼을 일찍 했거든요.”
“장남이면 결혼을 일찍 해야 해요?”
“하하. 꼭 그런 건 아닌데, 저희 부모님이 유독 그런 면이 있었어요.”
부모님은 좋은 분이다.
결혼이든, 돈이든,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으시니까.
나한테는 말이다.
「“화랑이 넌 어련히 알아서 잘할 테니까.”」
그래, 좋은 분들이다.
어릴 땐 나한테 어떤 기대도 없다는 게 서운하던 때도 있긴 했었다.
하지만 크고 나서는 ‘장남인 네가 그래야지’ 같은 오빠한테 하는 잔소리보다는 무관심이 좋았다.
“아하, 그럼 오빠분은 선보고 결혼하신 거예요?”
“두 번은 실패였지만 삼 세판이랍시고 마지막에는 괜찮은 새언니 만나서 좋아 보이더라고요.”
“두 번은 실패……?”
“아, 재혼했거든요.”
“아하.”
“오빠는 본인이 행복해졌다고 저도 얼른 결혼하라고 닦달을 엄청 했었어요. 하하.”
“아.”
“개인적으로 선배님은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궁금해서 여쭤본 거였어요.”
“아하, 그래서…….”
“불편하시면 못 들은 걸로 하고 넘어가셔도 괜찮아요!”
“아, 불편한 건 아니에요. 그냥, 음, 저는…….”
은지는 고민하다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은지는 낯선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멜로디나 음악으로 생각들이 떠오르는 탓에 은지는 종종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을 정리하곤 했었다.
화랑에게는 낯선 방법이었는지, 조금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흥얼거리는 은지를 바라봤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은지가 눈을 뜨며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저는, 역시 모르겠어요.”
고민한 시간에 비해 굉장히 허탈한 대답이었다.
“그게, ‘부모님’이 원해서? 음, 그, ‘부모님’이라는 단어부터가 이해하기가 힘들어서 더 생각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라는 단어가요?”
“아, 그게, 이은호랑 저는 고아거든요. 이은호는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그 사람들에 대해서 전혀 아무런 기억도 없어서…….”
“아, 아아…….”
은지가 태연하게 ‘고아’라는 입에 올린 그때.
화랑은 꼭 메두사라도 마주친 듯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헤헤. 언니 반응 보니까 우리 고아인 거 티 안 났었나 보네요.”
“네.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사정이었다.
화랑은 TaKa의 연습생으로 있는 그동안 송 대표의 집착에 반강제로 이응의 영상을 시청했었다.
데뷔 때의 길거리 버스킹을 빙자한 쇼케이스부터 활동한 대부분 영상을 모두 봤다는 말이었다.
데뷔 때부터 무대 위에서 여유 넘치던 모습.
세상에 무서울 것 하나 없다는 듯 자신감 넘치는 그 모습들.
당연히 평범하고 평화로운 가정이라던가.
적어도 애정을 담뿍 받으며 자랐으리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모든 상상을 뛰어넘은 두 글자.
‘고아라니.’
상상 속 ‘고아’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많이 먼 모습 때문일까.
어색했다.
“다 대표님이 잘 챙겨 주셔서 그래요.”
은지가 헤실헤실 웃자, 그 미소가 너무 예뻐서 화랑은 잠시간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은지는 침대에 상체를 뉘었다.
다리는 여전히 앉아 있던 그대로 둔 채 분주하게 동동거렸다.
“대표님 만나기 전에 이은호랑 나랑 둘이 돌아다닐 때가 있었거든요.”
“…….”
“그땐 어디 가기만 하면 꼬질꼬질하다던가, 거지 같다거나, 거지 남매라거나, 부모 없는 놈들이라거나 뭐, 그런 말을 많이 들었었어요.”
술기운이 더해져서 평소 하지 않던 이야기도 술술 나오던 걸까.
화랑은 묵묵히 은지의 혼잣말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어떤 말을, 대답을 해야 할지도 몰라서, 그냥 듣기만 하했다.
거지 남매라니…….
식당에서 박창석 대표님께 우리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은지 선배님은 은호 선배님의 어깨에 이마를 댄 채 조용히 기대 있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에 얼굴이 가려져 표정을 전혀 볼 수 없었음에도 그 분위기는 씁쓸함을 넘어 슬플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힘든 일을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아니,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해 주는 가족이 있다는 게.
그땐 아무것도 몰랐기에 부러운 마음이 컸었다.
어떻게.
대체 어떤 일들을 겪었기에 그런 관계가 될 수 있었을까.
아무것도 몰랐던 그땐,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사정을 알고 보니, 대단하면서도 복잡한 기분이다.
짧은 시간 지켜본 선배님들의 사이는 가깝다.
너무 가까워서 말썽도 잦을 만큼.
하지만 두 분은 의외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할 듯 아슬아슬하게 ‘선’은 넘지 않는다.
식당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그때.
나는 그 기묘한 선배님들의 세계를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신기했다.
나 역시 오빠라는 사람이 있는 처지라 그런가.
우리 남매를 두고 비교하자 더더욱 그러했다.
“흐으음.”
한편, 은지는 여전히 화랑이 물었던 결혼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결혼, 가정을 원해서라……. 음.”
가져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은지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상상이 잘 안 됐다.
“모르겠어요. 역시.”
“…….”
“결국 ‘남’이잖아요.”
“그렇죠.”
“그게, 나는 이은호만 해도 수십 년을 같이 지낸 아직도 저 새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저 새끼.
격한 호칭에 화랑은 괜히 헛기침을 한 번 하며 일부러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한편, 은지는 덤덤히 천장을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하나뿐인 가족이라는 놈도 그 꼬락서니인데, 다른 사람을 어떻게 믿겠어요. 그것도 평생.”
예상치 못한 은지의 대답에 화랑은 더더욱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혼란스러워졌다.
그때였다.
은지가 침대에서 다시 벌떡 일어나, 침대 난간에 걸터앉으며 말을 이었다.
“언니, 어떻게 보면, 저랑 이은호한테는 대표님이 아버지거든요?”
“네? 아, 네.”
대표님이 아버지?
가족 같다는 걸까.
아니면 실제로 연관이 있다는 걸까.
“만약, 정말, 만─약요. 대표님이 나더러 갑자기! 누구랑 갑자기! ‘결혼해라!’ 하면…….”
하면?
화랑은 조금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키며 은지의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아니야. 몇 번을 생각해도 나는 누가 됐든 역시 그냥 싸울 거 같아요.”
“그런가요?”
“네! 당연한 거죠! 자기들이 내 인생 살아 주는 것도 아니잖아. 왜 해! 싫어! 난, 음, 나는 노래랑 결혼할래. 헤헤.”
“하하하…….”
술기운 때문인지, 은지는 저도 모르게 툭툭 반말이 튀어나왔다.
‘노래랑 결혼이라…….’
화랑은 자신이 틀렸을까 봐.
그간 차마 입 밖으로는 하지 못했던 답을 은지가 대신해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후련한 마음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어진 한밤중의 수다는 길었다.
아직은 낯설지만 편안한 느낌인 은지에게 화랑은 저도 모르게 많은 일들을 털어 뒀다.
경청하면서도 필요할 때마다 공감해 주는 은지의 진심 어린 반응 덕분이었을까.
화랑은 이야기할 생각이 없던, 지난 7년간의 홀로 속으로만 앓았던 이야기들을 털어 뒀다.
다른 사람에게 이런 개인사까지 이야기해 본 건 처음이었다.
“저는 가진 거 하나 없이 마냥 노래하고 춤만 좋아했던 고3이었어요.”
화랑의 오빠.
호랑은 처음부터 화랑의 연예계에 대한 도전을 나쁘게 보진 않았다.
하지만 7년간, 남매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호랑은 ‘가족을, 부모님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라는 말을 화랑에게 자주 했었다.
실제로 그 말 그대로 호랑은 부모님이 떠밀 듯 진행했던 결혼을 택했다.
하지만 끝내 하나가 될 수 없어서 선택했던 이혼을 두 번이나 반복했다.
그러다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재혼한 가정.
“새로운 가족들은 꽤 마음에 들었던 건지, 오빠는 이제 제가 연습생 생활을 어서 접고 본인처럼 결혼하길 바라요.”
“어떻게 보면 이은호가 나한테 결혼하라고 하는 거네요.”
“하하. 그러게요.”
“헐, 으! 상상했는데, 대표님이 하라는 거보다 더 짜증 나고 싫어요!”
“하하하하. 저도 그랬어요.”
“게다가 언니는 결혼으로 성공하는 게 아니라, 언니 스스로 일로써 성공하고 싶다? 이쪽 아니에요?”
“맞아요.”
일로써.
즉, 노래로 성공하고 싶다.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화랑은 확신이 없는 스스로가 싫었다.
그리고 호랑은 그런 화랑을 알고 있었다.
「“7년 동안 해 놓고도 여전히 자신 없다는 놈이 뭘 하겠다고!”」
20대 중반이 넘어간 이후로 그런 말을 자주 들었다.
화랑은 그런 말을 하는 호랑을 진심으로 원망했다.
정신을 못 차리는 동생이라며 호랑 역시 화랑이 갑갑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였을까.
‘죽어버려’, ‘망해버려’, ‘쓸모없는’, ‘실패한 인생’ 등.
서로에게 독한 말임을 알면서도 계속 공격을 주고받길 반복했다.
받은 상처만큼 많은 상처를 줬기에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흔히 말하는 ‘쌤쌤’이라는 말이 딱이었다.
“최근엔 그냥 그 인간이 했던 말이 다 옳은 건가 싶어요.”
“무슨 소리에요!”
“결국은 오빠 말대로 ‘브앤시’는 진짜 망해 버렸잖아요. 하하.”
브앤시가 망한 이후로는 더더욱 찝찝한 사이가 됐다.
“난 정말 안되는 사람인가 싶고…….”
화랑의 입은 부들거리면서도 웃었지만, 눈은 울었다.
은지는 그런 화랑을 당겨 품 안에 끌어당겼다.
“언니, 괜찮아요.”
키와 타고난 덩치 차이일까.
화랑은 은지가 끌어당기자 꼭 어린아이처럼 품 안에 폭 안겨 버렸다.
은지는 화랑의 어깨를 토닥이며 속삭였다.
“괜찮아요. 언니의 7년은 고스란히 언니의 탄탄한 실력으로 남아 있었어요. 내가 봤어.”
“…….”
“TaKa 대표가 못한 거고, 같은 멤버였던 그 남자 문제였던 거지, 언니는 잘했어.”
“흐…….”
은지는 어느새 화랑을 토닥이며 함께 울고 있었다.
왠지 무언가 다 알고 있는 듯한 위로에 화랑은 저도 모르게 울컥, 자신도 잊고 있었던 긴 시간의 설움이 한 번에 몰아쳤다.
“제가 그 무대를 봤을 때, 언니는 빛났어요.”
“끅…….”
“잘될 거야. 언니.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게.”
은지의 품 안에선 씻고 나왔음에도 옅은 술 냄새가 살짝 풍겼다.
하지만 샴푸에 섞여 흘러나오는 술 냄새는 잘 무르익은 위스키처럼 은지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졌다.
꼭 늦은 밤 방문한 바텐더와 단둘만 있는 바에 방문한 듯한 다정한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