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54)
은지는 대답이 없었다.
거실로 나오자, 닫힌 욕실 문 너머에선 수압이 강한 샤워기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야!”
“아, 왜에!”
거실까지 나와서 다시 한 번 더 소리치자, 그제야 아직 제정신은 아닌 듯한 혀 꼬인 은지 대답이 들렸다.
“아까부터 뭐 하는데!”
“뭐 하기는! 욕실에서 할 게 씻는 거밖에 없잖아!”
“넌 뭐 코끼리도 아니고 씻는다는 애가 욕실 다 때리 뿌사 뿌는 소리가 나냐.”
“뭔 개소리야! 그냥 씻고 있는데! 그냥, 좀, 으으, 넘어졌어.”
“대가리 안 깨지게 조심해! 제발!”
“X랄 마아라! 나 안 취했거든! 술 약한 이은호나 취했겠―찌!”
“X랄은 지가 하고 있네.”
은호의 술은 은지가 욕실에 들어간 뒤 쿵쿵거리는 소리가 세 번 반복됐을 때 이미 깨 버린 지 오래였다.
그때 이후로 은호의 머릿속에는 최악의 시나리오만 계속 떠올랐다.
혹시나 씻다가 머리라도 깨지는 거 아닌가, 혹여나 정말 재수 없게 나쁜 일이 생기는 건 아닌가 하고.
은호는 스트레스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달래기 위해 관자놀이를 누르며 겨우 평안을 되찾았다.
그리고 잠시 후, 욕실 앞 거실 소파에서 기다리고 있자 달칵.
샤워기 소리가 끊기고 한참 뒤에 욕실 문이 열렸다.
은지는 잠옷은 똑바로 차려입긴 했다.
다만 술에 취한 건 여전한 듯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욕실을 나왔다.
조명도 안 켠 채 난 별장 거실 중앙에 앉아 이은지가 나오는 순간만 기다렸다.
“아악!”
걱정도 걱정이었지만.
사실 걱정시킨 게 약 올라서 이렇게 놀라게 하려한 건데.
정작 진짜 놀란 은지의 비명에 나까지 민망할 정도로 움찔해 버렸다.
“이 X발, 깜짝아!!!”
“니 비명에 내가 더 놀랐거든.”
“아니! X발 왜 그러고 있어! X나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귀신인 줄 알았냐?”
“어!!!”
심장 부근을 쓸어내리는 은지를 보며 그제야 속이 후련해졌다.
은호가 시원하게 웃자, 은지는 그런 은호를 아니꼽게 쏘아봤다.
둘은 가만히 서로를 바라봤다.
은호가 뭐라 말이라도 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뭐.”
“…….”
“뭘 그렇게 쳐다봐.”
“에휴.”
“뭐─어!”
은지는 풀린 눈을 한 채 은호를 따라서 멀뚱히 바라보다 물었다.
“됐다. 취한 X하고 뭔 말을 하냐…….”
“뭐, X발. 안 취해따니까? 왜에 시비야.”
“빨리 기어들어 가서 잠이나 쳐 자.”
“니는?”
“나도 이제 잘 거야.”
“지금까지 안 자고 뭐 했대.”
“…….”
이게 몰라서 묻나.
은호가 살짝 짜증이 더해진 눈길로 은지를 쏘아봤다.
“에휴.”
뭐라도 한마디 할 것 같은 기세였는데.
의외로 은호는 고개를 저으며 그냥 제 방으로 향했다.
쾅.
방문이 신경질적으로 닫혔다.
* * *
“왜 저래.”
은지는 은호가 닫은 방문을 바라보다 투덜거리더니 이내 화랑과 함께 쓰기로 한 반대편 방으로 향했다.
“어, 언니. 아직 안 자고 있었어요?”
“아, 네.”
방문을 열자, 화랑이 침대에 걸터앉아 짐 정리를 하고 있었다.
“선배님은 이제 다 씻으셨나요?”
“네.”
“아, 그, 그렇죠. 다 씻으셨으니까 오셨겠구나. 그…….”
화랑은 태연한 얼굴로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젠 화랑의 성격을 알고 있던 은지는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 씻고 왔어요. 언니는 안 씻으셔도 돼요?”
“저는 선배님 씻으시는 동안 먼저 현관 쪽 욕실에서 씻고 왔어요.”
“아하.”
은지는 그제야 입고 나갔던 회색 후드 집업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와, 저 한 시간 동안 씻었어요?”
시간을 확인한 순간, 은지의 풀린 눈이 크게 뜨였다.
“네. 아, 그, 이은호 선배님께서 선배님이 욕실에 계시는 동안 큰 소리가 자주 나서 아무래도 걱정되셨는지 40분 정도를 밖에 앉아서 기다리고 계셨었어요.”
“40분…….”
화랑은 당연히 걱정시킨 부분에 대해 미안해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은지였다.
“미X, 무슨 그 잠깐 놀라게 하려고 저 어두운 데 40분을 쳐 앉아 있었어요? 어우, 독한 새끼…….”
“……아?”
화랑의 예상과 달리 은지의 초점은 굉장히 다른 곳에 있었다.
‘그건 아닌데’라며 화랑은 오해를 정정하려다, 은지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마주했다.
‘…….’
은호를 향한 분노에 불타는 눈빛이었다.
“응? 왜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은지가 시선을 눈치채고 평소와 다름없는 평온한 얼굴로 돌아오며 물었다.
화랑은 다급하게 양손과 고개를 바쁘게 저어 대며 온몸으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표현했다.
“아, 참!”
그때, 무언가 떠오른 듯 은지가 손뼉을 치며 거칠게 화랑의 옆자리에 앉았다.
침대가 잠시 출렁이며 화랑의 몸이 잠시였지만 공중에 떠올랐다.
“언니!”
“……네?”
아직 술이 덜 깬 듯 은지가 훅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갑작스럽게 가까워진 거리에 화랑이 당황하며 흠칫 숨을 참았다.
“언니도 오빠 있다고 했죠?”
“아, 네.”
‘오빠’라는 단어에 잠시 놀랐던 화랑의 어깨가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언니네 오빠는 어때요? 이은호 같아요?”
“네? 아, 이은호 선배님 같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음, 이은호는 뭔가 어른인 척하면서도 속 알맹이는 꼬맹이 같기도 하고 가끔 멍청한? 그래도 오빠랍시고 나름 먼저 나서 주려는 모습은 있는? 음, 뭐, 그런 느낌? 이죠?”
화랑은 이걸 ‘네’라고 해야 할지, ‘아니요’라고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방금까지는 딱히 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닌 듯 은지가 헤실헤실 웃으며 다시 물었다.
“언니네 오빠는 어때요?”
“아, 저희 오빠는…….”
오빠의 이야기를 꺼낸 화랑의 안색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그게, 이은호 선배님이랑 선배님은 서로 사이가 굉장히 가까운 그런 분위기이신데, 저희 남매는 그다지 가까운 분위기랑은 거리가 멀어서요.”
“저랑 이은호가 가까운 분위기에요?”
“하하. 네.”
뭐 그런 당연한 말을 묻느냐는 듯 화랑이 웃으며 답했다.
“다른 사람들, 아니. 언니네는 어떤데요? 아, 이런 이야기는 불편하려나?”
“하하, 아뇨. 괜찮아요. 음, 저희 집은 그냥 남이에요.”
“남?”
“네.”
“저희도 남은 남이지 않아요?”
은지는 화랑의 말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한 듯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화랑은 웃으며 차이점을 늘어 뒀다.
“선배님들께선 대화를 자주 나누시잖아요.”
“그렇죠. 같이 사니까.”
“음…… 그게 같이 살아도 대화 한마디 안 하는 남매도 있거든요.”
“사이가 나빠요?”
“중학교 들어가기 전만 해도 매일 손까지 잡고 다닐 정도로, 나쁘진, 않은데…….”
“나쁘진 않은데?”
은지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갸웃거렸다.
“그냥 자연히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
“저는 오빠랑 놀러 갔다거나, 제대로 된 대화를 한 게 중학교 때 이전이 전부일 거예요.”
“아…….”
“사실 그마저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딱 그런 사이에요. 심지어 오빠가 결혼하고 난 뒤로는 더…….”
더…….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우리는 서로 나이를 먹었다.
「“넌 네 인생에 책임감이라는 건 안 가지고 살지?”」
「“이게 내 책임감이야! 지금까지 내가 고생한 시간, 노력 같은 걸 데뷔를 해내려는 게 내 책임감이라고!”」
「“그건 책임이 아니라 미련한 거다, 김화랑. 엄마랑 아빠가 그만큼 이해해 줬으면.”」
「“관심도 없는 동생한테 쓸데없는 잔소리할 시간에 본인 가정이나 잘 챙겨.”」
「“난 잘하고 있어. 우리 집에서 네가 제일 문제아인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7년이다, 김화랑. 너 벌써 20대 중반이라고.”」
「“하, 내가 제일 문제아라고? X랄하고 있네.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
「“언제까지 쓸데없이 시간만 날릴 건데? 남들은 네 나이에 결혼해서 자식까지 있는 거 보면서 너는 아무 생각도 안 드냐?”」
흘러간 시간만큼 서로에게 더 소중한 사람, 소중한 것들이 생기면서 틈이 생겼다.
오빠에게 우리 가족이 아닌, 또 다른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생기면서 틈은 더 크게 벌어졌다.
「“엄마, 아빠 마음고생 그만 시키고 너도 얼른 결혼해서 시집이나 가.”」
「“시집? 하, 적어도 결혼 두 번이나 실패한 김호랑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던지면서 선을 넘어 연을 끊는 말까지 서슴없이 던져 댔다.
「“좋은 말로 할 때, 그따위로 하지 마라, 김화랑.”」
「“누가 먼저 말을 이따위로 했는데? 아니, 오빠는 나한테 언제 ‘좋은 말’을 한 적이나 있어?”」
「“하…….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겠냐. 그냥 가련다.”」
「“그래. 우리 집에서 빨리 꺼져.”」
「“‘우리’ 집? 하, 7년 연습하고 데뷔 X망하라고 누구보다 X나 빌어 줄게, 김화랑.”」
「“X까. 가는 길에 뒤져 버려, 김호랑.”」
「“너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그 틈이 벌어지고 멀어지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지경까지 멀어졌다.
한편.
다른 NRY 엔터테인먼트 사람들에 비해선 나는 이은호, 이은지 선배님들을 알거나 직접 겪어 본 시간은 적다.
하지만 그래도 알게 된 것들이 있을 만큼 함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
이은호 선배님과 이은지는 선배님은 ‘대화’라는 것을 한다.
이은호 선배님과 이은지 선배님은 서로 장난을 굉장히 자주 친다.
매일 한 번 이상.
……대표님의 말씀에 따르면 많을 땐 시간 단위로 정해 둔 듯 투덕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할 정도였다.
다만 두 분은 그렇게 격하게 장난을 치면서도 신기할 정도로 서로가 지정해 둔 선은 철저하게 지켜 주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수십 년간 호흡을 맞춘 듀오 같았다.
「“저거 또 갑자기 씻다가 엎어져서 코 깨지는 거 아니야?”」
이은호 선배님께선 은지 선배님이 걱정됐는지 거실에서 40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렸다.
「“아으, 머리야…….”」
술기운에 머리가 지끈거려서 당장이라도 눕고 싶어 하던 모습이었지만, 선배님은 은지 선배님이 욕실에서 나올 때까지 계속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면은 이은지 선배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은호 선배님이 이른 오후에 욕실에 씻으러 들어갔을 때였다.
「“아, 안에 수건 없을 텐데.”」
은지 선배님은 중얼거리듯 말을 흘리시더니 곧 방 안에서 본인 수건을 챙겨 나와, 문고리에 걸어 뒀다.
조금 전까지 휴대폰을 가져오는 데 5천 원이라는 돈을 걸었던 모습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수건, 화랑 씨가 챙겨 주셨어요?”」
「“아, 제가 아니라…….”」
화랑이 대답하던 그때, 은지가 끼어들며 물었다.
「“와. 이은호, 이젠 수건도 잊어 버렸냐?”」
「“아니거든. 그냥 수건 마침 없어서, 그냥 누가 걸어 뒀나 싶어서 여쭤본 거야.”」
「“그럼 일단 ‘감사합니다’부터 했어야지.”」
「“그래. 적어도 니가 가져다 둔 게 절대 아니라는 거는 확실하네.”」
「“하하핰.”」
이은호 선배님이 욕실에서 나오셨을 때였다.
이은호 선배님이 수건을 가져다 둔 사람을 찾을 때.
은지 선배님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본인이 수건을 가져다 놨다는 사실을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조금의 서운함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서로한테 그렇게 짓궂은 모습을 보였지만 그만큼 서로를 가장 생각해 주는 사이.
세상에 같은 지붕 아래에 있어도 일주일 내내 말 한마디 안 오가던 나랑 내 친오빠와는 차원이 다른 우애 좋은 남매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