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53)
가족의 형태
“오빠랑 사이가 안 좋습니까?”
박 대표가 물었다.
가족 관계를 설명하며 밝던 분위기가 유독 오빠를 말할 때 순식간에 어두워진 탓에 물은 질문이었다.
“안 좋지는 않은데…… 하하, 아무래도 이 나이에 연습생을 준비하는 게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다 보니까. 이미 따로 가정까지 차려서 독립했기 때문에 없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어서요.”
화랑은 웃으면서 말을 했지만, 기분이 좋아서 웃는 웃음이 아니라는 건 찌푸려진 미간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 그래도 엄마랑 아빠는 응원해 주세요. 제가 7년이라는 긴 기간에 데뷔도 못 하고 연습생 생활을 하는 동안 엄마랑 아빠는 저를 굉장히 믿어 주셨거든요.”
“오호…… 좋은 분들이시네.”
“그렇죠. 그래서 제가 오히려 죄송한 마음에 더 알아서 해 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죠.”
엄마랑 아빠.
‘이 단어가 뭐라고.’
알딸딸한 술기운 탓일까.
은호와 은지의 표정에 눈에 띄는 그늘이 드러났다.
젊은 가게 주인은 KM 음악 채널을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흰 벽에 쏘고 있었다.
음악 채널에서는 한창 밝은 최신곡들이 흐르고 있었다.
박 대표와 화랑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은호와 은지는 풀린 눈을 감은 채 노래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잠시 눈을 떴을 때 시선이 마주쳤다.
“개 못생겼네.”
“지는.”
‘평범한 가정’은 두 사람이 절대 끼어들 수 없는 이야기 주제였다.
복잡한 심경이 드는 이야기였지만, 은호는 괜찮냐는 질문 대신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처럼 은지를 놀렸다.
은지 역시 평소처럼 그에 답했다.
피식.
텅 비어 버린 새는 웃음소리가 흘렀다.
마음을 감추려고 했지만 서로였기에 알 수밖에 없었다.
은호와 은지는 서로를 위해 시선을 돌렸다.
한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박 대표와 화랑은 두 사람끼리 대화를 나누느라 은호와 은지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편이 은호와 은지에게는 편했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때였다.
어둑해진 밤
이 길 위로 빛이 고요함이 가라앉아 눈을 감기고
익숙한 목소리와 가사가 들렸다.
은호가 고개를 들자, 빔프로젝터가 쏘고 있는 흰 벽에는 아주 익숙한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있었다.
KM 음악 채널에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할지, 마음이 복잡해졌다.
‘하필이면 ‘이 길 위’네.’
복잡한 마음은 은지 또한 마찬가지였었는지, 은지가 은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술기운이 더해진, 평소라면 절대 안 할, 은지의 어릴 적 버릇이었다.
흘러내린 은지의 긴 머리카락 때문에 표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은호는 빔프로젝터 속 ‘이 길 위’ 뮤직비디오의 두 고양이를 바라보다 무거운 눈꺼풀을 닫았다.
* * *
시설에서 몇 번을 떠돌다 다니게 된 초등학교의 은지네 담임 선생님은 운이 좋게도 좋은 분이었다.
경계심 강한 이은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오시면서 그 반에 어울리도록 잘 유도해 주셨다.
그래서 그 당시 은지는 같은 반 친구들과의 차이는 크게 느끼지 못했나 보다.
차라리 차이를 겪었더라면, 덜 크게 닥쳐왔을까.
은지는 그 학교에서 처음으로 운동회에 참가했다.
신나는 날이었다.
처음으로 ‘축제’라는 걸 눈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곧 들떠 있던 은지의 얼굴엔 그늘이 생겼다.
“야, 너희 아줌마 오셨어!”
“어? 엄마! 와, 아빠도 왔다!”
평소 다를 것 없던 반 친구들과 처음으로 자신은 다르다는 걸 실감해 버린 날이었다.
엄마나 아빠 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 이모나 이모부, 고모나 고모부.
즉, 대부분이 ‘보호자’가 있는 친구들이었다.
밥을 같이 먹기 위해 이은지네 교실 자리로 찾아갔을 때였다.
“은지야, 너 오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나던 같은 반 아이가 날 먼저 발견하며 이은지한테 말을 전했다.
나 역시 어렸지만, 그때 이은지는 더 어렸다.
내가 다가갔을 때, 은지는 나를 창피하게 여기고 있었다.
혼자만 부모님이 아니라 오빠가 오는 게 어린 이은지는 부끄러웠던 것 같다.
은지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이은지를 찾은 건 아무도 없던 뒤뜰 한쪽의 냉장창고 앞이었다.
우유를 보관해 두던 냉장창고였다.
당시 우유 급식은 돈을 내야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인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며 이은지는 그 창고를 자주 기웃거리곤 했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그곳으로 갔는데, 다행이었다.
“이은지.”
이은지가 무슨 마음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다만 같은 시기의 나한테는 아무도 없었고 다행히 지금 이은지한테는 나라도 있었다.
나는 이은지의 엄마이자 아빠여야 하니까.
“나보다 키도 작으면서 자꾸 어른인 척하지 마! 재수 없으니까!”
내가 12살 때, 이은지는 10살이었다.
내 키가 급속도로 자라기 시작한 건 막 6학년에 들어서던 그때였다.
즉, 나는 아직 키가 자라기 전이었고,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성장이 빨랐다.
내가 이제 막 자랄 무렵.
이은지는 하루가 다르게 커지더니 순식간에 내 키를 넘어섰다.
덩치가 비슷해지던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은지는 나를 싫어했다.
정확히는 내가 지금까지 해 오던 것처럼 ‘어른’인 ‘척’을 하는 걸 싫어했다.
그때 우리는 서로 큰 소리를 내며 싸웠다.
내가 너보다 오빠라고, 지금까지 업어 키웠더니 맞먹으려고 드냐 등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여러 말을 늘어놓으며 일단 화부터 냈다.
하지만 내가 큰 소리를 내면 낼수록 이은지도 따라서 소리쳤다.
그래 봐야 두 살 차이, 나랑 키도 비슷하다는 등.
서로 상처가 될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일단 뱉고 봤었다.
그리고 그 말은 곧 그대로 화살처럼 날아와 나를 내려찍었다.
이은지가 어리긴 했지만, 은지가 하는 말에는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숨이 거칠어질 때까지 큰 소리로 한참을 싸우던 그때였다.
“끅, 흑, 흐어어어엉. 허어어어엉!”
은지는 곧 창고 구석에서 콧물에 거품이 생길 정도로 오열했다.
나도 어렸고, 이은지도 어렸다.
이은지가 우는 모습에 나까지 울컥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뭘 잘했다고 울어!”
“닥쳐!”
나름 달래 주기 위해 내가 옆으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을 때였다.
어린 꼬맹이 때의 이은지는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옆으로 다가간 나를 밀어내진 않았다.
이은지는 내 어깨에 이마 중앙을 들이받으며 미는 건지, 기댄 건지 구별이 되지 않는 자세를 한 채 엉엉 울었다.
그게 나름 이은지의 자존심이었다.
나도 소매로 대충 붉어진 눈가를 닦은 뒤, 그냥 그대로 창고 벽에 머리를 기댔다.
냉장창고의 윙윙거리는 기계음에 맞춰 기대고 있던 머리가 진동했다.
잘 자렴
어미가 자식에게
아비가 자식에게 하는 인사가 이럴까
우리 노래가 옛 생각에 빠져 있던 나를 이끌며 현실로 데려 놨다.
어깨에 이마를 대고 있던 은지는 술기운 탓에 감정이 격해진 모양이다.
상상만 해 봤던 인사를 너한테
이 길 위 끝이 부디
이은지를 굳이 보지 않아도 닿고 있는 이마를 통해 떨리는 몸이 느껴졌다.
‘울고 있나.’
금방 알 수 있었다.
커튼처럼 얼굴에 쳐진 머리카락 때문에 표정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곧이어 이은지가 낸 코 먹는 훌쩍임 소리에 확신했다.
“왜 울어, 멍청아.”
“……닥쳐, 이은호…….”
“하하.”
이은지 마음은 알고 있었다.
일기를 몇 번이나 다시 읽고 또 읽었기에 알고 있었다.
나는 이은지한테 부모님이 되어 주려고 했다.
부모 같은 오빠가 되어 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은지는 그런 오빠를 바라지 않았다.
일기 속 이은지는 내가 어른인 척 군 날은 항상 화를 내고 있었다.
이은지가 바란 건 늘 같은 자리에서 때로는 티격태격하며 같이 고생을 이겨 낸 동료이자, 때로는 친구 같은 나였으니까.
예전엔 그걸 몰랐다.
그래서 이은지한테 내 힘듦을 말할 생각은커녕, 항상 내가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회귀 전의 에이슬 일도 결국은 모두 이은지한테 알리지 않고 혼자 처리하려다 생긴 문제였었다.
여전히 모든 걸 알리진 않았다.
아마 그건 이은지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냥 딱 그 정도까지.
돌아온 이 시간에서는 딱, 후회하지 않을 정도만 나는 나대로, 이은지는 이은지대로.
할 수 있는 만큼만 솔직하게.
어른이 될 수 있는 만큼만 어른처럼.
때로는 나이에 맞지 않게 유치해져도 그냥.
그게 나니까.
그게 우리니까.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길
내 꿈 같은 하루가 매일 언제 깨어질까
은호는 ‘이 길 위’의 익숙한 음을 허밍으로 따라 불렀다.
연습을 미친 듯이 해 오면서, 간주가 들리면 노래를 부른다는 건 이제 본능과 같았다.
그동안 은지는 흐느꼈다.
처음엔 박 대표도 화랑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은호가 흥얼거리면서 관심이 그쪽으로 돌아갔을 때.
박 대표와 화랑은 뒤늦게 두 사람을 바라봤다.
한편, 화랑은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겠는지 당황한 눈빛으로 은지를 바라봤다.
“저.”
“…….”
화랑이 입을 연 그때였다.
쉿.
은호가 검지를 입술에 대며 술기운에 풀린 눈을 휘었다.
그냥 지금은 이대로 두라는 신호였다.
* * *
박 대표는 가만히 은지와 은호를 지켜보다 차 있던 술잔을 들이켰다.
“크흐.”
목을 타고 내려가는 씁쓸하고 독한 향.
박 대표는 한숨을 쏟아 내며 재빠르게 젓가락을 움직여 회 한 점을 입으로 가져갔다.
“여기 싱싱하니 맛있네.”
그때였다.
박 대표가 은근히 흘린 말을 들은 걸까.
그동안 은호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있던 은지가 갑자기 긴 머리를 휙 넘기며 언제 그랬냐는 듯 뻔뻔히 고개를 쳐들었다.
하지만 은호한테까지 그 뻔뻔함이 통하진 않았다.
“다 울었냐?”
“닥쳐, 안 울었거든.”
“질질 짜 놓고는.”
“아니라고!”
“아!”
은지는 짜증 섞인 대답과 함께 이마를 기댔던 은호의 어깨에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은호뿐만 아니라 박 대표도 화랑도 은지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다.
은지의 대답과는 다르게 은지의 코끝이 막 울음을 그쳤을 때처럼 붉어서였다.
“울었으면서.”
“아, 아니라고!”
“울었잖아.”
“아! 이은호, 자꾸 X랄 하면 너도 여기에 회 떠서 올려 버린다!”
“응. 그러시든가.”
은지가 모둠 회 접시를 가리키며 말하자, 은호는 태연하게 그런 은지를 비꼬며 밑반찬으로 나온 단호박을 토막 냈다.
일부러 호박을 토막 내는 은호의 젓가락질에 은지는 왜인지 묘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티를 내자니 지는 것 같아서 그냥 무시하고 회 한 점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게 시작이었다.
화랑이 맛집이라며 소개했던 이야기가 틀린 말은 아니었는지, 회는 물론 조개구이도 굉장히 싱싱하니 맛이 좋았다.
한 잔만 마시려던 술잔은 저도 모르게 석 잔까지 들이켜 버렸고, 은지의 주량은 이미 초과한 지 오래였다.
“잘 먹었습니다!”
“많이 파세여어!”
“하하, 조심히 들어가십쇼!”
배부른 식사를 마친 뒤.
젊은 사장님의 인사를 받으며 네 사람은 가게를 나왔다.
박 대표는 처음 말했던 대로 대리를 불러 차와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
* * *
쿵!
‘하.’
쿵, 캉!
‘망할.’
캉, 틍그르르르.
‘마지막.’
쿠당탕!
은지는 낮에 했던 말대로 저녁에 씻으려고 했지만, 술 한 잔 이후의 샤워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쿠당탕거리기를 몇 차례나 반복했을 때였다.
은호는 술기운에 무거워진 머리를 베개에 붙였다가 네 차례 이상 이어지는 쿠당탕거리는 소리에 결국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야, 이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