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52)
“자, 옷.”
“땡큐.”
은지는 챙겨 온 옷을 내밀던 그때.
예상치 못한 행동에 은호가 물었다.
“뭐 하는 짓이지?”
은지는 살포시 눈을 휘며 웃더니 가지고 온 옷을 뒤로 빼냈다.
대신 비어 있는 손을 내밀었다.
“돈.”
“새끼……. 옷은 먼저 줘야, 내가―.”
“아, 사장님 장사 한두 번 하시나.”
“…….”
대어를 기다리며 웃고 있던 은호의 이마에 금이 갔다.
뒤늦게 별장 안에 들어온 화랑의 당황스러운 시선이 두 사람을 오갔다.
“줄 테니까, 옷 먼저…….”
“먼저 달라고요, 사장님.”
“야, 가족끼리 치사하게 굴래?”
“가족이니까 치사하게 구는 거로 생각하면 되겠네.”
“와,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
“야, 내가 언제 약속 안 지킨 적 있냐?”
“응.”
“……X발.”
은호가 웃으면서 욕을 뱉었다.
솔직히 낚은 적이 더 많기는 했다.
특히, 회귀 전을 포함하면 오히려 손에 꼽을 정도로 약속을 지키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입금 먼저.”
“알았어. 내 휴대폰 가져와.”
“…….”
은호가 부탁하자, 은지는 웃으며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왜, 입금해 준다고. 휴대폰 가져와.”
“추가금.”
“허?”
은호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은지를 쏘아보자, 은지는 더 뻔뻔하게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 천 원.”
“누구 코딱지에 붙이라고, 요즘 껌 값이 천 원이야.”
“그냥 좀 가져오면 안 되냐?”
“어. 안 돼.”
“진짜 성격 더럽네.”
“내가 누구를 닮아서.”
은호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은지는 가식적인 미소를 유지하며 대꾸했다.
“3천 원.”
“5.”
“4.”
“5.”
“X발. 알았어. 가져오기나 해.”
“네~.”
은지는 언제 고집을 부렸냐는 듯, 눈 깜짝할 사이에 은호의 휴대폰을 들고 다시 자리에 돌아왔다.
“이딴 건 누구한테 배워 먹었냐?”
“그거, 진짜 몰라서 묻는 거야?”
은호가 휴대폰을 받으며 묻자, 은지는 오히려 그런 은호를 빤히 보며 되물었다.
“나쁜 X.”
“누가 누구보고.”
은지가 보란 듯 중지를 치켜들며 답했다.
은호는 빠르게 휴대폰을 두드리며 통장 어플을 켰다.
“입금했다.”
“오.”
은지는 곧장 휴대폰을 확인했다.
[입금 55,000원 먹고 떨어져ㅗ]
뒤에 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듯 은지는 기분 좋게 웃으며 은호에게 옷을 건넸다.
“네, 입금 확인했습니다.”
“아오.”
그 모습에 은호가 한숨을 흘리며 옷을 받아 들었다.
* * *
욕실이 입구 바로 앞에 있는 탓에 얼떨결에 들어가지도, 그렇다고 다시 나가지도 못하던 화랑은 덕분에 남매 싸움을 직관할 수 있었다.
처음엔 당황스럽기만 했던 싸움이지만 몇 시간 동안 같이 있으면서 그사이 적응이라도 된 걸까.
‘선배님들, 사이가 좋으시구나.’
사이가 좋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남매가 투덕거린다는 건 그만큼 가깝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오빠는…….’
화랑은 누군가를 떠올린 듯 표정이 굳어졌다.
한편으로는 조금 씁쓸해 보이기도 했다.
화랑에게도 오빠가 있었다.
하지만 은호와 은지와는 다르게 저런 장난은커녕 대화 한마디 없는 그런 남매 사이.
어릴 때 사진을 보면 자주 오빠 손을 잡고 놀러도 다니고 했었는데, 언제부터였을까.
마치 남남처럼 멀어졌다.
대화를 해도 잔소리뿐.
「“언제 정신 차릴래? 연습생 때려치우고 일이나 구해. 그 나이 먹고 아직도 데뷔 못 했으면 넌 안 된다는 거라고.”」
은호가 은지에게 하는 장난기 가득한 잔소리가 아닌, 정말 화를 내는 잔소리.
누구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줄 아느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할 자격이 없었다.
해 봤자 이해보다는 그럼 관두라는 윽박으로 돌아올 게 뻔했다.
20대 중반.
오빠는 지금 내 나이에 번듯한 직장도 있었고 결혼도 했다.
그러니 연습생 생활에 목매는, 심지어 회사에서도 버림받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자신이 얼마나 멍청해 보였을까.
“야, 이은지.”
“뭐.”
“받아.”
은호가 은지에게 날린 건 쪽지처럼 접힌 만 원짜리 한 장이었다.
“뭐야?”
“주머니에 있길래 주는 거다.”
“오빠, 고마워!”
“그래. 너한테 나는 이럴 때만 오빠지.”
“당연한 거 아닙니까.”
“하하.”
은호는 산뜻하게 웃으며 은지처럼 중지를 치켜올렸다.
‘하하.’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화랑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첫날, NRY 엔터테인먼트에 방문했던 그날.
처음 들어섰던 회사의 내부는 일에 푹 빠진 열정적인 직원들로 가득해서 비가 오는 서늘한 날씨임에도 후끈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랬던 직원들도 남매가 투덕거리며 회사에 들어섰을 때.
그간 기다렸던 프로그램을 시청하듯, 모두가 한마음으로 잠시 일을 멈추고 남매의 투덕거리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 모습에 ‘하하’ 웃다가 싸움을 끝내고 남매가 자신과 대화를 나누던 그땐 다시 일제히 일에 집중했었다.
그 환경과 풍경이 참 인상 깊었다.
열정은 불과 같아서 장작이 없을 땐 지속되기가 힘들다.
사람은 지치기 마련이고 생각 이상으로 사람의 집중력은 길지 않으니까.
그래서 휴식이 중요했다.
휴식은 장작이고, 일 처리에 부스터를 달아 준다.
이 NRY 엔터테인먼트에서 E-UNG는 일의 주체이자, 회사의 휴식이라는 장작이었다.
남매를 지켜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다가가기 두려울 정도로 강한 인상의 소유자들이었다.
하지만 그 행동은 연예인보단 평범하면서도 조금은 거친 듯한 일상적인 남매의 모습.
인형 같은 두 사람이 이렇게 장난치고 있을 땐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이구나’ 하고 실감이 났다.
‘외모만 보면 귀하게 자랐을 것 같기도 한데…….’
어떤 면을 보면 많은 고생을 겪으며 자란 것 같기도 하고…….
화랑은 두 사람을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호기심이 깊어졌다.
* * *
“저녁은 어떤 곳으로 가서 먹어야 하나…….”
“식사!”
박 대표가 저녁 메뉴를 고민하며 말을 하자 화랑이 번쩍 한 팔을 들며 외쳤다.
“제가 맛있는 집 알아 놨습니다!”
은호와 은지가 기대감 어린 시선으로 화랑을 돌아봤다.
“두 분, 고기 좋아하신다고 들긴 했는데 그, 그래도 바다니까 해산물을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알아보긴 했는데.”
또박또박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횡설수설하는 듯한 화랑을 보며 은호와 은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저희 맛있으면 뭐든 좋아해요.”
은지가 당황한 화랑을 달랬다.
“화랑 씨, 당황하면 티가 잘 안 나는 듯하면서도 많이 나네요.”
“아…….”
‘들켰다’는 생각에 화랑의 귀가 살짝 붉어졌다.
“그게 언니 매력이네.”
은지가 웃으며 말을 보태자, 핑크빛에 가까웠던 귀 끝이 새빨갛게 봉숭아 물이 들듯 붉어졌다.
“가, 가죠!”
화랑은 못 들은 척 두 사람과 대표님을 이끌고 일단 밖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곳이라 대표님이 끄는 차를 타고 시내 방향으로 나왔다.
톤 다운된 하늘색 바지, 아이보리 색에 가까운 하얀 리넨 셔츠 차림의 은호는 어울리지 않는 회색의 얇은 후드 집업을 더 걸치고 있었다.
딱히 의상에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닌지라, 매칭과 관계없이 대충 입은 옷이었다.
한편, 은지는 자연스럽게 뜯어진 짧은 청반바지와 검은 나시.
위로는 지퍼를 반쯤 잠근 은호와 비슷한 얇은 회색 후드 집업을 걸쳤다.
차를 근처 공용 주차장에 댄 후, 차에서 내려 거리로 나왔다.
거리는 생각보다 사람들로 북적였다.
곧 근처 해수욕장에서 열릴 페스티벌 때문에 사람들이 더 몰려 있는 모양이었다.
은호와 은지는 자연스럽게 걸친 얇은 후드 집업의 모자를 뒤집어쓴 후,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둘은 닮은 차림새와 똑같은 걸음걸이로 앞서 걷는 화랑을 얌전히 뒤쫓았다.
잠깐 뒤를 돌아본 화랑은 얼굴을 가려도 똑 닮은 둘의 분위기에 소리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박 대표는 그런 화랑을 이해한다는 듯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화랑이 안내하는 가게로 향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길쭉한 키와 닮은 분위기 탓일까.
지나가는 사람들은 족족 눈을 돌리며 은호와 은지를 한 번씩은 꼭 바라봤다.
“어서 오십쇼!”
도착한 가게 주인조차 잠시 멈칫했다.
척 봐도 일반인은 아닌 분위기였는지, 젊은 사장님의 표정에서 ‘오?’라며 감탄하는 듯한 생각이 빤히 보였다.
‘내 새끼들이 좀 있어 보이지.’
박 대표는 잘 키운 자식 둘이 자랑스러운지 더 턱을 빳빳하게 쳐들며 ‘크흠’ 헛기침을 흘렸다.
젊은 사장님은 뒤늦게 정신을 되찾고 물었다.
“네 분 맞으시죠?”
“네.”
화랑이 그에 답하자, 사장님은 직접 자리를 안내했다.
화랑이 일부러 신경 써서 고른 가게이긴 했는지, 칸칸이 사생활 보호를 위한 듯 칸막이가 쳐져 있었다.
가게는 횟집이자 조개구이도 함께 하는 곳이었다.
“모둠 회 3인분이랑 모둠 조개 3인분. 아, 그리고 소주 한 병까지도 부탁합니다.”
박 대표가 주문하자, 사장님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뒤 자리를 떠났다.
“차 가져와서 술은 안 되지 않아요?”
“대리 부를 거야.”
“아하.”
은호가 묻자, 박 대표는 가볍게 답하며 화랑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화랑 씨는 어때? 술 좋아합니까?”
“아, 저는……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 정도라서요.”
“오호. 뭐, 화랑 씨가 아무리 못 마셔도 우리 애들보다야 잘 마시겠지. 많이 마시진 않을 거니까 적당히 기분 좋을 만큼만 마시자고.”
화랑은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땐 ‘아, 다들 술을 굉장히 잘 드시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박 대표가 마치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탓에 오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해는 금세 풀렸다.
모둠 회와 함께 나온 조개구이가 이제 막 불판 위에 올라갔을 때였다.
“첫 잔은 원샷이지!”
은지가 외쳤다.
은호와 은지는 그 ‘적당히’에도 취할 만큼 알코올 쓰레기들이었고, 덕분에 화랑은 황당한 표정으로 은호와 은지를 바라봤다.
그 한 잔으로 바로 얼굴에 취기가 드러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은호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수준이었다.
은호가 술잔을 딱 한 잔.
아니, 한 입.
그것도 고작 절반만 넘겼을 때 은지와 비슷한 수준까지 취기가 올라 있었다.
“으음.”
화랑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은호와 은지를 바라봤다.
둘은 얼굴에서 알딸딸한 술기운이 느껴졌다.
“우리 애들이 술에 많~이 약해.”
박 대표는 그제야 화랑에게 간단하게 설명했다.
기본 소주 주량 두 병은 가뿐히 넘을 것 같은 외모건만, 한 잔도 안 되는 주량이라니…….
‘귀, 귀여우셔.’
화랑에게는 어쩐지 반전으로 다가온 매력이었다.
“자, 그래서 화랑 씨 호구조사 좀 해도 됩니까?”
“호구조사…….”
왠지 가벼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묵직한 단어에 화랑이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입니다. 화랑 씨 이야기 좀 해 줘요. 가족들은 어떤지, 어떤 삶이었는지?”
박 대표는 힐끔 은호와 은지를 보더니 다시 화랑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일할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곡을 쓸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박 대표가 이야기한 말 속에 내포된 의미는 단번에 눈치챘다.
그래서 더더욱 화랑은 딱히 거부감 없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늘어 뒀다.
“저희 집은 되게, 음. 딱 평범한 가정이에요. 저 하나, 남동생이 하나 있고 엄마랑 아빠 계시고, 오빠 하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