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49)
낚시에는 관심이 없는 탓에 은호와 은지는 온종일 컨테이너 건물 안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었다.
휴대폰도 없다.
현대인에게 휴대폰 없는 여유 시간은 생각 이상으로 괴로웠다.
예전엔 이럴 때 뭘 했지?
더 과거에는 어떻게 놀았었지?
은호는 이런 필요 없는 고민을 거듭하다, 어느새 조선 시대를 넘어 원시시대까지 시간을 뛰어넘으며 머릿속 우주를 탐험 중이었다.
한편, 은지는.
“심심해.”
“…….”
“심심하다고.”
“…….”
“아 심심하다고!”
“아 어쩌라고!”
“놀자고!”
“싫어.”
“아아아아아악.”
“시끄러워.”
퍽.
은호가 욱하는 심정을 담아 은지의 얼굴에 정확히 베고 있던 베개를 던졌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은지를 자극해 버린 건지, 은지는 가뿐히 베개를 잡으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었다.
은지는 천천히 컨테이너 숙소 한구석으로 눈을 돌렸다.
“흐흐.”
은호는 새우잠 자세를 한 채 누워 있다가 불길한 은지의 웃음소리에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은지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 마라.”
은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은지의 입꼬리가 수상쩍게 말려 올라갔다.
“하지 말라고 했다.”
“흐흐흐.”
“하지 마, 이 미친 X아!”
은지가 바라본 구석에는 박 대표와 현우의 베개가 있었다.
은호는 재빨리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지만, 이미 달려갈 준비를 마친 은지보다는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퍽퍽퍽.
“이, 윽!”
박 대표의 베개와 현우의 베개와 은호의 베개가 은호의 얼굴에 연달아 정통으로 들어갔다.
“이 망할…….”
은호가 신경질적으로 얼굴에 맞은 베개를 치워 낸 그때.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이채까지 번뜩이고 있는 은지와 눈이 마주쳤다.
‘X됐다.’
은지는 마지막 남은 베개를 꽉 쥔 채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처럼 포즈를 잡고 있었다.
은지의 손을 떠난 베개는 그대로 은호에게 날아 들어갔다.
급하게 팔을 들어 얼굴에 맞는 것만큼은 피했지만, 어지간히 진심으로 던진 건지 막았던 팔이 얼얼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는 은지를 올려다보며 이번엔 은호가 웃었다.
손에는 방금까지 얼굴로 날아 들어왔던 베개를 양손에 꽉 쥔 채였다.
뒤늦게 상황이 파악됐는지, 은지의 입꼬리가 굳어졌다.
“넌 뒤졌다.”
“아악!!!”
은호는 배게 네 개를 휘두르며 은지를 내려찍었다.
“내가, 하지, 말라고, 했, 잖아!”
퍽, 퍽, 퍼퍽, 퍽.
말하는 속도에 맞춰 베개로 두드리는 소리가 맞춰 났다.
은지는 가만히 맞으며 기회를 기다렸다.
“아아악!”
움츠린 채 맞기만 하던 은지는 벌떡 몸을 일으킨 그 순간 베개를 붙잡았다.
“놔라.”
“눼뤠.”
“따라 하지 마.”
“뛔뤠 훼쥐 뭬.”
“야 뜯어져! 놔!”
“니가 먼저 놓으면 안 뜯어지거든!”
“넌 뭐, 밥 먹고 근육만 단련했냐. 뭔 힘만 더럽게 세!”
“응, 내가 센 것도 있는데 이은호 니가 약골이라서 그래―.”
“아니거든.”
이까지 갈며 은호와 은지는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해 베개 네 개를 양쪽에서 잡아당겼다.
“얘들아, 베개 터진다.”
당연한 순서였다.
카메라로 지금 상황을 모두 촬영 중이던 현우가 슬쩍 경고해 줬음에도 소용은 없었다.
뚜둑.
처음엔 실밥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순식간에 베개 끝에 달린 레이스들이 단숨에 뜯겨 버렸다.
쿵, 쿠궁!
그나마 다행인지 속 안이 드러나긴 했지만, 베개가 완전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터져 버리진 않았다.
다만 안쪽에서 잡아당기고 있던 은호는 벽에, 은지는 이부자리가 쌓여 있던 곳으로 날아갔다.
“아야…….”
“아우…….”
은호는 얼얼한 허리를 쓸었고, 은지는 찍힌 꼬리뼈를 문질렀다.
달칵.
“무슨 일이야.”
그때, 그동안 한창 낚시를 즐기던 박 대표가 컨테이너에서 난 큰 소리에 안으로 들이닥쳤다.
난장판이 된 내부를 보며 박 대표는 가만히 문 앞에 선 채 눈을 감았다.
잠시 아찔해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은호와 은지는 박 대표의 눈치를 보며 스멀스멀 컨테이너 중앙으로 기어 왔다.
잘못을 알기는 한 건지 두 사람은 얌전히 무릎을 꿇었다.
박 대표는 다시 눈을 뜸과 동시에 잔소리를 쏟아 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이―.”
하지만 눈을 뜬 그 순간.
은호와 은지가 얌전히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박 대표는 찬물이 끼얹어지듯 불길이 사그라들어 버렸다.
“하아……. 은지야, 은호야.”
“네…….”
“넵…….”
박 대표는 팔을 뻗어 현우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카메라 켜 놨다.”
“네…….”
“네…….”
다 찍고 있으니 제발 주의하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정 심심하면 낚시하러 나와.”
“으, 막대기 까딱까딱만 하는 건 재미 없어요…….”
“은호는?”
“그 미끼로 달리는 벌레가 싫습니다.”
“내가 끼워 줄게.”
“그냥 달려 있다는 거 자체가 싫습니다.”
“거, 거참, 둘 다 단호하기는.”
박 대표는 혹시나 지금이라면 마음이 바뀔까 싶어서 물어봤지만, 여전히 은호와 은지는 낚시가 싫다는 단호한 태도를 표했다.
“그럼 싸우지라도 말고 있어.”
“네.”
“네에.”
박 대표가 아쉬운 듯 눈을 흘기며 다시 밖으로 향했다.
컨테이너 안은 다시 평화가 찾아온 듯싶었다.
“야, 이은호.”
“…….”
누워 있는 은호 옆으로 다가온 은지는 조용히 양손 검지를 내밀었다.
은호는 ‘뭐 어쩌라고’라는 표정으로 은지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떠.”
“못생긴 니 얼굴이나 떠.”
“아, 씨 장난치지 말고 뜨자고.”
“하…….”
은호는 귀찮다는 듯 천천히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넌 아직 이 오라버니한테는 안 돼. 10년은 더 먹고 와야 한다니까?”
“X랄.”
“쨉도 안 되면서 또 또 댐빈다.”
“그거야, 일단 해봐야 알지.”
현우는 대화가 오간 순간부터 꺼 뒀던 카메라를 다시 켰다.
은지는 카메라를 든 현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오빠도 할래요?”
“응? 아니. 난 괜찮아.”
현우는 실수로 카메라를 든 손을 흔들었다.
뒤늦게 아차 싶었는지, 카메라를 다시 박 대표가 지시했던 높이에 고정했다.
현우가 거절한 뒤에는 2차 남매 대전이 발발했다.
은호가 은지와 똑같이 검지를 내민 채 같은 자세로 앉았고, 은지가 진지한 표정으로 건너 자리에서 은호를 쳐다봤다.
은호가 은지의 오른손 검지를 툭 건드리자, 은지의 오른손이 중지까지 펼쳐졌다.
은지의 손은 2와 1을, 은호의 손은 1과 1을 펼친 상태였다.
이후에는 빠른 속도로 서로의 손가락을 치고 나누고 또 치고 나누고를 반복했다.
고요한 분위기에서 오가는 손은 여느 때보다 분주했다.
하지만 끝에는 은지의 손가락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고, 은호는 1과 3 상태.
은호가 3으로 은지의 살아남은 1을 치자 은지의 손은 순식간에 4가 됐다.
은지는 은호의 3을 펼쳐 둔 손을 쳤지만, 끝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은지가 4, 은호가 1이 남았다.
그리고 돌아온 은호의 차례.
“둘로 나누지 그랬냐.”
“어차피 내가 졌잖아!”
“하하, 넌 나한테 안 된다니까?”
날카로운 인상의 다 큰 성인 둘이서 ‘젓가락 게임’에 고도의 집중력을 보이는 모습은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덕분에 현우는 숨죽여 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아, 그럼 용가리 볼 해.”
“오, 그건 오랜만이다.”
“룰 다 기억하지?”
“당연.”
“원기옥?”
“다 빼. 기본으로 해.”
“콜.”
용가리 볼 이야기에 현우는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용가리~볼~!”
“용가리~볼~!”
하지만 설마 했던 쎄쎄쎄의 변형인 ‘그’ 용가리 볼의 시작에 현우는 결국 무너졌다.
“흐, 흡…….”
끅끅거리며 애써 웃음을 참고 있는 현우를 은호와 은지가 힐끔 바라봤다.
‘왜 웃지?’
‘신경 쓰지 말고 시작이나 해.’
‘아, 응.’
어느새 용가리 볼에 진심이 된 은호는 현우를 안중에도 두지 않은 채 게임에만 집중했다.
“용가리~볼~!”
“용가리~볼~!”
짝짝.
“으―.”
“으―.”
짝짝.
“파.”
“막기.”
엄청난 속도로 짝짝 소리와 ‘으’와 ‘파’와 ‘막기’가 오갔다.
게임이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은지가 ‘으’ 세 번을 성공하기 전까진 그랬다.
“에너지파!”
회심의 공격을 외친 순간.
은호는 여유롭게 “순간 이동!”을 외치며 이마를 짚었다.
“흡, 파학. 끅끅끅.”
현우는 웃음을 참느라 새어 나온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곧 은호가 “에너지파!”를 외친 순간.
닦았던 눈물이 무색하게 다시 웃음이 터졌지만, 이번에도 현우는 입을 막으며 웃음을 꾹 참았다.
은호가 그랬듯 이번엔 은지가 “순간 이동!”을 외치며 공격을 피했다.
장풍을 쏘듯 서로에게 “파”를 외치던 그때.
길어지던 싸움은 단 한 번의 실수로 끝이 났다.
“아자아앗! 내가 이겼다!!!”
“아악! X발! 기 모았는데 한 번 더 했어!!!”
은호가 빨라진 속도에 자신도 모르게 실수로 ‘으’라며 기를 두 번 모아 버렸고, 페이스를 유지하던 은지가 “파!!!”를 외치며 게임은 은지의 승으로 끝이 났다.
은지는 돌아온 승리에 주먹을 쳐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로 기뻐했다.
그동안 은호는 머리칼을 움켜쥐며 바닥에 이마를 댄 채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하하하하하.”
현우는 웃음을 참는 건 포기했는지, 둘이 노는 모습을 보며 결국 손으로 틀어막았던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 보니 생각보다 하루라는 시간은 짧았다.
저녁 시간이 되자, 운전대를 잡은 박 대표의 차를 타고 현우와 은호, 은지는 드디어 갑갑했던 컨테이너 지옥을 벗어났다.
갑갑했다고 하기엔 굉장히 재미있게 놀아 버리긴 했지만, 아무튼.
* * *
주변에는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산과 가까이 붙어 있는 덕분에 풍경이 끝내주는 레스토랑과 직접 기른 닭으로 끓인 한방 삼계탕집 등 맛집이 펼쳐져 있었다.
“식사는 어떤 걸로 할래? 스테이크, 삼계탕.”
“삼계탕요.”
“스테이크요.”
은호는 삼계탕을, 은지는 레스토랑의 자갈밭 앞 예쁜 화단이 마음에 들었는지 레스토랑을 택했다.
박 대표는 결정을 내렸다.
“스테이크는 여기서 썰어 먹고, 삼계탕은 포장해 가자.”
“오, 좋아요!”
“앗싸. 야식 삼계탕!”
결론이 난 뒤에 네 사람은 여유롭게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섰다.
꼭 유럽의 저택 풍경을 옮겨 둔 듯한 내부 분위기.
“우와…….”
“딱 이은지가 좋아할 만한 곳이네.”
“어, 맞아. X나 좋아.”
메르헨 분위기를 좋아하는 은지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좋아하기엔 사장님께 죄송하지만.
손님이 없는 덕분에 훤한 창 앞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큰 창 너머로는 나무가 있었고, 푸른 나무들 너머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저수지도 보였다.
“좋네요.”
은호는 자리에 앉으며 바깥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침 딱 저녁노을이 지고 있던 시간이라, 덕분에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나중에 여기로 촬영 와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게요.”
박 대표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자, 은호가 긍정하며 대답했다.
식사 또한 좋은 풍경 덕분인지, 기분 좋을 정도로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