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46)
“……일단 오늘은 들어가고 내일 다시 봅시다.”
“알겠습니다.”
“그래요. 우린 회의가 있어서 마중까지는 못 나가고, 조심히 들어가요.”
“그럼, 이야기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화랑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손을 모으며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아쉬움 없이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을 나왔다.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다.
우산을 펼치고, 상가 건물을 나와 골목을 걷는 화랑의 걸음은 차분했다.
그렇게 NRY 엔터테인먼트가 위치한 골목을 빠져나온 그 순간.
“흐어어어.”
화랑은 비가 온 바닥에 무릎이 지저분해지는 건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어…….”
* * *
NRY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들어선 순간.
TaKa 엔터테인먼트에 비해 좁고 작기만 한 사무실을 보고 조금 놀랐었다.
TaKa 엔터테인먼트를 위협할 정도라면 적어도 빌딩까지는 아니어도 사옥 건물은 있을 줄 알았다.
이렇게까지 평범한 상가 건물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들어선 내부의 분위기는 소박했던 겉모습만큼이나 반전이었다.
평화롭고 따뜻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두 제 일에 ‘자부심’이라는 게 있는, 집중하는 직원들.
‘이런 회사 분위기를 얼마 만에 보는 건지…….’
TaKa의 나태한 직원들의 모습과는 딴판인 내부 분위기에 몸이 긴장되는 게 느껴졌다.
“누구 왔어? 애들이 이렇게 조용하게 올 리는 없을 텐데…….”
멀지 않은 곳에서 박창석 대표님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애들’이라는 건 이응 남매를 말하는 건가?’
의문을 가진 그때였다.
“그쪽은, 누구십니까?”
소문으로만 들었던 박창석 대표가 나왔다.
‘와…….’
박 대표는 흔한 하얀 반소매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옷 태는 평범한 차림에 비해 흔하지 않은 태였다.
TaKa의 송 대표와는 신체부터가 달랐다.
양복을 입어도 감춰지지 않는 좁은 어깨.
톡 튀어나온 아랫배가 눈에 띄는, 비유하자면 외계인 몸매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에 반해 NRY의 박창석 대표는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건 그를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듬직한 넓은 어깨와 팔뚝의 도드라진 근육 라인.
그의 와이셔츠 소매 부분이 터질 듯 팽팽했다.
‘여긴 어떻게 대표님 몸매까지 완벽해…….’
이미 결심을 세우고 왔지만, 대표님을 직접 본 순간.
‘여기다.’
이곳이다.
회사의 분위기를 몸소 느껴 본 그때 나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에 꼭 들어오고 말겠다고.
“안녕하십니까!”
최대한 씩씩한 목소리로 허리를 깊이 숙이며 인사했다.
“그쪽은…….”
“김화랑입니다!”
“그, 그래요…….”
박창석 대표님의 동공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나를 안으로 안내했다.
이후에는 이곳에 들어오고 싶다며 대표님께 밀어붙였다.
대표님의 반응은 물론 좋지 않았다.
나를 반기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가지고 온 물건을 꺼내려 했는데, 그때였다.
“어, 손님이 계셨었네요.”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따라서 고개를 돌린 순간.
‘와…….’
절로 감탄이 먼저 터져 나왔다.
이응이 노래를 잘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송 대표가 강요하듯 보여 준 비디오에선 춤 선과 무대 매너에 집중하느라 얼굴은 어떤 ‘표정’인가 에만 집중한 채 영상을 봤었다.
하지만 카메라가 그 사람의 모든 걸 담아낼 수 있는 건 아니었나 보다.
실제로 두 사람을 봤을 땐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게 느껴졌다.
밝은 분위기와 거친 행동.
거기다 비에 젖어 흐트러져 있었음에도 처연하다고나 할까.
그 남매에게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밝은 분위기에 감춰진 그림자 같은 묘한 매력이었다.
나는 홀린 듯 그 남매를 가만히 바라보다, 어떻게든 이야기를 섞고 싶어서 입을 뗐다.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말을 뱉고 봤다.
“NRY의 연습생이 될 김화랑이라고 합니다!”
“……예?”
차분하게 가라앉은 이은호 선배님의 눈빛에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조금 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미, 미쳤나 봐. 나 미쳤나 봐!’
패닉 상태였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아 보였지만 머릿속은 이미 폭탄이 펑펑 터지고 정리되어 있던 ‘생각’이라는 자료들이 재가 되어 휘날렸다.
“저, 혹시 ‘브앤시’ 아니십니까?”
“지금은 아닙니다, 선배님. 제가 여기 오면서 해체했거든요.”
선배님이 물었고, 나는 기계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한편, 내 마음은 입가에 띤 미소와는 정반대에 가까웠다.
아마 은지 선배님이 ‘언니’라면서 다가왔던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미 내 이성은 증발하고, 나는 고장이 났다.
‘그따위로밖에 말 못 하냐! 싹수없어 보이잖아! 어떡해! 선배님 표정 안 좋으셔! 김화랑, 나 자신 그따위로 말할 거면 그냥 닥치고 있어. 제발 닥쳐, 나 자신! 제발!’
많은 이야기를 늘어놨던 것 같은데 머릿속은 그냥 새하얬다.
‘그냥 아는 걸 몽땅 털어 내 버리자!’라는 마음에서 일단 주저리주저리 늘어놨던 것 같다.
녹음기도 이래서 자주 지니고 다녔었다.
수업 때 몰려드는 설명이나 혼날 때면 패닉 상태가 되면서 설명을 몽땅 까먹는 탓에 혼자 연습할 때 듣기 위해서.
‘그마저도 자주 잃어버리기 일쑤였지만…….’
그 우연한 버릇이 그런 대화들을 물어 올 줄은 상상조차 못 했었다.
「“넌 안 그렇게 보이면서 되게 덜렁거리더라. 자, 내가 챙겨 놨어. 이거 비싼 펜이라며.”」
펜은 조 실장님이 매번 챙겨 주셨었다.
그리고 조 실장님은 송 대표와 자주 술자리를 가지는 측근 중 하나였다.
「“폭탄이라고 하면, 설명은 충분할까요?”」
나는 왜 말을 그따위로밖에 못한 걸까.
이러니까 데뷔를 못 했지, 멍청한 김화랑.
‘G-MISIC’ 파이가 어쩌고저쩌고, 더듬더듬 기억을 곱씹어 보니 뻔뻔한 이야기가 한둘이 아니다.
녹음기는 이렇게라도 발악해 봐야 할 것 같아서, NRY 엔터테인먼트에 ‘쓸모가 있다’라는 걸 증명하고 싶은 마음에 챙겨 왔었다.
하지만 이렇게 거만하게 드릴 생각은 아니었다.
‘꼭 ‘이걸 줄 테니까 날 받아라!’ 하는 것 같잖아!’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바지는 이미 무릎 위까지 젖어 버린 후였다.
‘딱 나하고 잘 어울리는 꼴이네, 어휴!’
내일 NRY 엔터테인먼트 건물에 오늘처럼 들어가는 순간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니라고 하면서 당장 나가라고 하시는 거 아닐까.
‘하, 계약 끝났다고 보여 주려고 TaKa 계약서도 가지고 왔었는……, 어?’
맞다, 계약서. 뒤늦게 손을 보자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TaKa 계약서를 담아 뒀던 서류 봉투가 없다.
‘노, 놓고 왔나?’
* * *
“어, 저건 뭐예요?”
“응?”
은지가 입구 앞에 떨어진 서류 봉투 하나를 집어 들었다.
“TaKa 엔터테인먼트?”
“화랑 씨가 두고 간 것 같은데, 야야야야!”
확인하지 말라며 말릴 시간도 없었다.
이은지는 아주 빠른 속도로 곧장 봉투 안을 확인했다.
“어? 이거 계약서야.”
“그걸 그렇게 바로 열어 보면 어떡하냐.”
“열려 있었는데?”
“……됐다. 내가 너한테 뭘 바라냐.”
“아, 뭐! 왜 시비야!”
은지가 버럭 소리치는 동안, 대표님은 은지한테서 서류 봉투를 받아 들었다.
봉투 안에 있던 종이를 꺼내 읽으시더니 대표님이 중얼거리며 말을 흘렸다.
“재계약을 안 했다면, 화랑 씨가 한 말이 거짓말은 아닌가 보구나.”
난 목을 빼며 대표님과 함께 계약서를 같이 확인했다.
화랑 씨는 우리가 믿지 않을 것을 대비해서 꼼꼼하게도 준비해 온 모양이었다.
화랑 씨의 말은 결론적으로 거짓말은 아니었다.
계약 기간은 족히 몇 개월 전에 끝난 계약서였으니까.
그녀의 말 그대로.
재계약을 진행하지 않은 채 활동을 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이중 계약에 관한 문제는 없었다.
“대표님, 이중 계약 문제나 브앤시의 멤버였다는 걸 빼고 보면, 화랑 씨 대표님 기준엔 어때요?”
내 질문이 의외였는지, 대표님은 잠시 놀란 듯하더니 이내 생각에 잠기셨다.
“괜찮은 정도지. 송 대표라서 못 키웠던 거니까. 연습생 생활만 7년이면, 적어도 은호 너 예전 실력보다는 월등히 좋으니…….”
옆에서 이은지가 낄낄거리며 재수없게 웃었다.
난 갑자기 들어온 옛날 실력 이야기 공격에 삐끗하며 자세가 무너졌다.
반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 아무튼, 저 녹음기들 말이에요.”
민망해서 주제를 돌리려고 녹음기로 이야기를 돌렸다.
“당연히, TaKa 대표랑 그 대화하는 직원의 동의는 안 받고 녹음된 거겠죠?”
“그렇겠지. 저런 내용을 녹음 중이라고 밝히고 녹음했을 리는 없으니까.”
시작은 단순히 주제를 돌리려고 꺼낸 건데, 막상 녹음기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니 할 말이 생겼다.
“이거 저희 쪽에서 먼저 공개하는 순간, TaKa도 타격은 입겠지만 저희 또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겠네요.”
이 녹음본은 총과 같았다.
발사하는 순간 상대가 죽고 사는 건 우리 손에 달렸다.
하지만 그 피해 또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감당하기란 쉽지만은 않을 일이었다.
게다가 화랑 씨는 TaKa를 무너뜨리고 톡신을 데려오기를 바랐지만…….
나는 대표님을 돌아봤다.
굳이 이런 것까지 써 가면서 손을 더럽힐 필요가 있을까?
“우리 회사가 그렇게 비전이 없는 곳도 아니고, 없어도 선배님들을 모셔 오는 건 가능하지 않아요?”
“하하, 그렇지.”
대표님을 향한 내 신뢰가 마음에 들었던 건지, 대표님은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TaKa 엔터테인먼트는 화랑 씨 말씀대로면 내부가 많이 망가지긴 했다지만, 그런데도 밖에서는 여전히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고 있잖아요.”
대표님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큰 회사는 그만큼 많은 돈이 얽혀 있을 테고, 그쪽 대표가 많은 걸 망쳤다고 하지만 ‘주식회사’인 만큼 주주들이 지금 대표를 끌어내리고 다른 대표를 세워 버리면.”
회생의 여지가 있다.
고로 이 폭탄을 ‘당장’ 밝힌다는 건 오히려 우리가 지뢰를 밟는 격이 될 수 있다.
“그럼 우리 이거 안 써? 무대 뺏은 거 복수 겸 한 방 먹이고 싶었는데.”
은지가 볼펜 녹음기를 흔들며 물었다.
“내 말은 가능성 배제하지 말자는 의미라고. 진정해, 쌈닭아.”
“쌈닭이라니, 이은호 니가 과하게 사리고 사는 거지.”
“우리가 먼저 쏘지 말자는 것뿐이야. 저렇게까지 일 벌여 놨으면 굳이 우리가 시작 안 해도 조만간 누군가는 쏠 테니까.”
비유를 했더니 못 알아들은 듯 은지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갸웃거렸다.
“이번에 TaKa에서 우리 일을 방해했잖아.”
“응.”
“이번 같은 때가 혹시나 또 오면, 그때.”
“오, 오오! 그렇겠네. 그때, 우리가 터뜨려 버리면 그쪽이 X되겠…… 아.”
‘X된다’라는 말을 입에 담고 나서야, 은지는 옆에서 대표님이 보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은지가 눈치를 보자, 대표님은 ‘조심해’라는 의미로 빤히 노려보기만 하다가 이내 한숨을 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