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45)
박 대표는 떨리는 동공으로 건너 자리에 앉은 화랑을 바라봤다.
“받아 주세요.”
“그, 마음은 알겠는데 말이죠.”
“부탁드립니다, 박창석 대표님.”
“휴, 화랑 씨…….”
박 대표는 곤란한 부탁이라도 받은 듯 재차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만 내뿜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화랑 씨는 이미 ‘브앤시’로 데뷔를 하셨으니까…….”
“계약 기간이 연장되지 않은, 언제든 끝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니. 거기서부터 내가 이해가 안 돼서…….”
그때였다.
“10만 원!”
때마침 멀지 않은 곳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돈을 받았으면 받았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내가 왜? 대표님이 딱히 말하라고 한 것도 아니었거든.”
“아니, 인간적으로 5만 원이면 절반이니까 내가 이해라도 해! 7만 7천 원을 날름해 버리는 놈이, 이은호 니가 인간이냐!”
“오예, 오늘부터 인간 안 하면 되겠네~.”
“아, 이은호! 개 싫어!”
“오, 극찬! 감사―.”
“악!!!”
이 익숙한 남매의 싸움을 평소라면 한숨부터 뱉으면서 들었을 텐데.
오늘은 달랐다.
낯선 손님 탓에 이미 박 대표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귀에 익은 남매의 싸움 소리에 오늘은 오히려 미소가 살아났다.
“절반 뱉으라고오오오!”
“이미 식비로 써서 배 속에 들어갔음.”
“X랄하지 마! 남았잖아아!”
“진짜 들어갔다니까?”
“그래, 니 배 속이겠지.”
“이~열, 우리 빡대가리 똑똑해졌네? 어떻게 알았지.”
“X새끼야!”
차츰 커지던 싸우는 소리가 어느새 문 앞까지 가까워졌다.
“왜, 너도 며칠 전에 오븐 치킨 먹었잖아.”
“아니, X새끼야. 치킨 하나잖아! 그러면 남은 7만 7천 원은 어디 갔냐고!”
“어디 갔긴, 내 통장.”
“이익, 씨!”
짤랑.
회사 문에 달린 작은 종이 울렸다.
문이 열리고, 우산을 접는 걸 봐선 분명 우산을 쓰고는 온 것 같은데…….
회사 안으로 들어온 건 영락없이 물에 젖은 생쥐 꼴인, 양쪽 눈가가 팽팽하게 당겨질 정도로 머리를 ‘쥐어뜯기고’ 있던 은호와 ‘쥐어뜯고’ 있던 은지였다.
“비가 쏟아지긴 하지만, 좋은 아침입니다!”
“내 5만 원 내놔아아아아!!!”
곧 머리가 다 뜯겨 버릴 것 같은 상태로 은호가 뻔뻔하게 직원들에게 인사하자, 회사 내부는 웃음소리로 한바탕 뒤집어졌다.
이런 풍경을 처음 접한 화랑은 갈 곳을 잃은 동공으로 등장부터 야단법석인 남매와 말리기는커녕 웃기만 하는 직원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어, 손님이 계셨었네요.”
“……?”
그때였다.
은호가 먼저 화랑을 발견한 순간.
개 껌처럼 은호의 팔뚝을 물어뜯기 바빴던 은지도 뒤늦게 낯선 손님을 봤다.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화랑이 꾸벅 인사했다.
“NRY의 연습생이 될 김화랑이라고 합니다!”
“……예?”
뜬금없는 이야기에 은호는 삐걱거리며 고개를 돌려, 박 대표와 눈을 마주쳤다.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달라는 ‘SOS’ 의미를 담은 눈빛이었다.
하지만 박 대표도 아직 이해하지 못한 상황인지라, 조용히 고개를 젓고만 있을 뿐이었다.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아…….’
은호는 다시 화랑과 눈이 마주친 그때, 생각났다.
“저, 혹시 ‘브앤시’ 아니십니까?”
“지금은 아닙니다, 선배님.”
“지금은 아니라고요?”
“네, 선배님.”
은호가 되묻자, 화랑은 웃으며 답했다.
“제가 여기 오면서 해체했거든요.”
무대를 망치고 사라졌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그 당사자 본인이 저렇게 웃으면서 말하기엔 절대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라, 해체라는 단어에 우리는 일제히 굳었다.
난 겨우 이성을 붙들며 고장 난 입을 열었다.
“일─단, 그건 알겠어요. 근데, 그쪽 TaKa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니신가요?”
“브앤시 활동은 계약 없이 진행했던 거니까, 거기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뭐, 뭐?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질문을 던진 건데 오히려 머리 위로 수십 개의 물음표가 배로 불어나기만 했다.
대표님을 돌아봤지만, 이번 역시 모르는 일인 듯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그럼 아는 게 뭔데요.’
‘없어.’
‘저 사람 그럼, 여기 왜 왔는데요?’
‘몰라. 갑자기 들이닥쳤다니까.’
‘우리 자리까지 뺏어서 데뷔해 놓고 갑자기 우리 회사에요?’
‘어. 그렇다니까?’
‘왜 저러는 거예요?’
‘나한테 묻지 마. 나도 알고 싶으니까.’
* * *
은호와 박 대표가 몸짓으로 소통하는 동안, 은지는 그런 두 사람을 ‘뭐 하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가만히 바라봤다.
자연히 은지의 시선은 이 상황의 원인인 화랑에게 옮겨 갔다.
‘흐음.’
흔히 ‘똥머리’라 불리는 바짝 올린 올림머리.
외모는 평범.
하지만 특유의 앳된 분위기 때문인지 많이 쳐 봐야 20대 초반 정도일까.
“언니, 언니.”
“네. 말씀하세요.”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스물여섯입니다.”
어?
전혀 예상치 못한 나이에 ‘헉’ 했다.
“와, 언니 되게 동안이시네요.”
진짜 놀랐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아, 선배라뇨. 저 아직 스무 살밖에 안 됐으니까, 언니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아니에요. 나이보다도 한두 달, 짧게는 하루 이틀 차이로도 선배와 후배가 갈리잖아요. 그러니 선배님께선 선배님이세요.”
“그건, 아, 네…….”
본인이 나이가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화랑의 태도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깍듯했다.
내가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건 괜찮은데…….
성격상 부담스럽기만 한 ‘선후배’ 호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회귀 전에는 경력 때문인지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언니, 동생들이 많았다.
그래서 ‘은지야’ 또는 ‘언니’라고만 불러 달라는 말을 거의 입에 달고 다니다시피 부탁하던 때도 있었다.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저는 이은지라고 해요.”
“네. 전 김화랑이라고 해요.”
다시 대화가 끊어졌다.
“브앤시 무대, 잘 봤어요.”
“그 끔찍했던 무대를 보셨다니 부끄럽네요. 저도 선배님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또 대화가 끊어졌다.
침묵이 앉을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편하게 은지라고 불러 주세요, 언니.”
“그럴 수는 없죠, 선배님.”
또, 또, 또 끊어졌다.
‘김화랑…….’
이 언니.
할 말 다 하는 건 솔직히 마음에 든다.
하지만 여러모로 불편한 부분이 참 많은 사람이었다.
유연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예상대로 바짝 틀어 올린 머리처럼, 상당히 고집 있는 성격인 것 같았다.
이렇게 된 이상, 더 돌리기도 힘든데 이판사판 본론부터 박자.
“우리 무대를 싹 다 빼앗았던 그룹 멤버잖아요, 언니.”
“네. 그랬죠.”
“연습생이 되겠다는 핑계 말고, ‘염치없게’ 여기까지 온 진짜 이유가 뭐예요?”
은지는 입가에 띤 미소를 유지하며 물었다.
‘잘했다, 오늘은.’
‘역시 이은지.’
마침 박 대표도, 은호도 물어보고 싶던 질문이라, 둘은 오늘따라 은지의 돌직구 스타일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진심으로 NRY 엔터테인먼트에 들어오고 싶어서 왔습니다.”
“장난하지 말고요. 언니 이미 4대 기획사라 불리는 TaKa 엔터테인먼트 출신이시잖아요. 망치기는 했다지만 데뷔도 하기는 했었고요.”
“……그랬죠.”
순간 화랑의 분위기가 싸늘했지만, 이내 표정을 갈무리하며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왜 옮기려고 하시는데요?”
은지의 질문에 박 대표와 은호는 후련해진 것도 잠시.
이어지는 화랑의 이야기에 연이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대표가 기자를 매수해서 거짓 기사를 흩뿌렸다.’
여기까지는 그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상했던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TaKa 엔터테인먼트의 내부는 현재 죄다 월급만 먹고 관두자는 분위기라고.
“유 이사는…….”
“유 이사님은 몇 년 전에 송남철 대표랑 파가 갈린 이후로 갈라서겠다고 하시더니 1년도 더 전에 다 정리하시고 해외로 떠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 하하. 그러면 그맘때부터겠네.”
“어떤게요?”
은지가 묻자, 박 대표는 중얼거리듯 말을 흘렸다.
“TaKa 대표가 착실하게 회사를 말아먹기 시작한 게, 그맘때부터일 거라고…….”
TaKa 엔터테인먼트.
족히 십 년 이상 몸담으며 키워 냈던, 한때는 모든 능력을 쏟아부으며 작은 중소에서 대기업까지 키워 냈던 회사였다.
잠시나마 라이벌이라고까지 여겼던, 그런 회사가 망해 가고 있다는 소식은 마냥 기쁘게 느낄 수만은 없었다.
“근데 있잖아요, 언니.”
“……?”
한창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은지가 갸웃거리며 화랑에게 공격적으로 물었다.
“언니는 우리가 ‘TaKa’랑 ‘브앤시’한테 적대감 가지고 있는 거 뻔히 잘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잘 알죠.”
“그래요. 그렇게 잘 알면서 왜 많고 많은 소속사 중에 왜 ‘하필’ 우리 회사에 왔어요?”
은지가 ‘하필’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묻자, 화랑의 시선이 은지를 향했다.
“NRY 엔터테인먼트가 적대감이 가장 클 테니까요.”
“……무슨 의미예요, 그거?”
은지가 미간을 구기자 안 그래도 사납던 눈매가 더 험악해졌다.
화랑은 보란 듯 은지와 똑바로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저는 제 7년이라는 시간을 날리게 만든 TaKa 엔터테인먼트와 그 송남철 대표가 다시 살아날 가망조차 없이 망해 버렸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거든요.”
와.
이건, 올곧게 삐딱하다고 해야 할까.
눈빛은 지금까지 만나 온 그 누구보다도 올곧은데, 입으로 뱉는 말은 깊이를 알기 힘들 정도로 큰 한을 품은 듯했다.
그래서 누구 하나 쉽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김화랑의 감정을 이해하기엔, 모두가 지금이 가장 평온하기 그지없던 나날이었으니까.
“NRY 엔터테인먼트는 톡신을 살린 박창석 대표님이 세운 회사잖아요.”
“…….”
“지금까지 유일하게, 지예찬 선배님의 ‘G-MISIC’ 소속사를 제외하면 톡신이 이동할 회사로 지목되기도 했고요.”
가만히 화랑의 이야기를 듣던 박 대표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잠시만, 그럼 오히려 화랑 씨는 예찬이네 회사로 가면 더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지 않나?”
“아니요.”
화랑은 단호했다.
“송남철 대표가 ‘G-MISIC’ 지분을, 파이를 세 번째로 크게 가지고 있어서 안 돼요.”
“파이?”
단번에 못 알아들은 은지에게 은호가 소곤거리며 간단하게 설명했다.
“주식 말하는 거야.”
“아. 근데 이은호 우리 회사도 주식 있는 거 아니었어?”
“어. 아니었어.”
“어? 그래? 왜?”
“대표님은 스스로 결정하는 타입이시잖아. 누구 눈치 보는 거 싫어하고.”
“그렇지?”
“딱히 돈이 끌어와야 할 만큼 부족하지도 않고.”
은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혼자 하실 수 있는데 머리를 나눌 필요는 없으니까.”
“아―.”
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은호의 설명은 곧 화랑이 NRY 엔터테인먼트를 찾아온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화랑씨가 지금 하는 말은 송 대표가 망하길 바라서 TaKa의 톡신을 우리 회사로 끌고 올 수 있도록 돕겠다. 이 말인가?”
“네.”
“화랑 씨가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박 대표가 냉정하게 묻자, 화랑은 꼭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가방을 뒤적였다.
그리고 테이블 위로 볼펜, MP3 등 여러 물건을 늘어 뒀다.
“이게 뭡니까.”
박 대표의 질문에 화랑은 대답 대신 볼펜을 돌리며 무언가를 작동시켰다.
―톡신이 TaKa를 떠나? 하하. 그놈들도 결국은 사람 새끼들이야. 사고 터지면 묻히는 건 다 똑같다고.
―톡신이 사고를 친 게 있어요?
―사고? 없지. 근데, 없으면 만들면 돼. 가장 쉬운 건 그거 있잖아, 그―.
평범한 볼펜인 줄 알았더니 녹음기였다.
화랑은 중요한 부분에서 버튼을 눌러 볼펜 모양의 녹음기를 멈췄다.
“뭐냐고 물으셨죠.”
“…….”
“폭탄이라고 하면, 설명은 충분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