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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44화 (144/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44)

나도 작곡 중인 이은지를 따라서 뭔가 써 둘까 싶었지만, 머리를 굴리기엔 쌓인 피로에 눈꺼풀이 무거웠다.

‘신나는 노래라…….’

졸음은 몰려오는데,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도 많아졌다.

‘솔직히 밝은 노래에 가사를 붙이는 건 자신 없는데.’

언제는 뭐, 자신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긴 했다.

하지만 밝고 신나는 노래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자신이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망령처럼 그간 과거에 계속 사로잡혀 있었으니까.

「“넌 이제 그때로 네가 가고 싶어도 못 가.”」

연탄이 했던 말이 효과가 있었던 건지 악몽은 그 이야기를 들은 날부터 차츰 하나씩 바뀌었다.

덩그러니 건반만 남아서 그 위로 소복하게 먼지가 쌓여 있는 풍경이 가장 먼저 사라졌다.

대신 매일 보는 돼지우리 같은 이은지 방 풍경이 꿈에 나온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이후엔 방 안에 이은지가 있을 때도 종종 있었다.

때로는 이은지가 모니터를 보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모습으로.

때로는 그냥 매트에 퍼질러 누워 있는 이은지 모습이.

최근에는 연탄과 같이 잠들어 있는 이은지 모습도 나오고 있다.

‘미래라…….’

미래라는 단어는 어색하다.

솔직히, 난 지금까지 당장 눈앞의 일만으로도 벅찼다.

언제 다시 돌아갈지 몰라서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넌 누구 덕분에 그냥 얻어걸린 거니까 새 인생이나 즐기셔.”」

새 인생.

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흘렀다.

항상 비슷한 주마등이었지만 새로운 이야기가 추가됐다.

이한 대학교에서의 그 공연.

슬펐던 그때와는 정반대의 기분으로 온 힘을 다했던 그 무대.

‘목표, 목표라…….’

오랜만이다.

정말 오랜만에 생각해 보는 미래 계획이었다.

‘일’ 때문이 아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미래’라니.

이은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이은지만 쫓느라고 여유가 없었다.

이은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혼자 남은 세상이 힘들어서 여유가 없었다.

흔히 술에 취하듯 낮에는 일에 취했고, 일이 없을 땐 술에 취해 억지로나마 눈을 붙이기 바빴다.

좋은 일로 마시기보다 나쁜 일로 마신 적이 더 많아서 그런가.

술을 거의 매일 끼고 살았지만, 나는 술을 좋아하진 않았다.

‘왜.’

왜 설렐까?

‘미래 계획. 미래 계획.’

기분 좋은 단어를 난 굴리고 또 굴렸다.

E-UNG은 어떤 노래를 해야 할까?

어떤 콘셉트가 좋을까?

우린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우리 E%는 우리의 어떤 면을 좋아하고 있을까?

그걸 공략할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우리가 가장 원하는 건 뭘까?

이은지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고 있는 건 다를까?

기간은 얼마나 잡는 게 좋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진다.

그날은 처음으로 기분 좋은 꿈을 꿨다.

우리 콘서트가 열리는지, 객석 한가득 ‘이응’ 모양의 응원봉들이 가득했다.

‘E-UNG’ 우리를 칭하는 거울 재질의 이름 글자가 반짝거렸다.

그 외에도 많은 응원 문구들이 보였다.

거기서 나랑 이은지는 주연 씨가 선물했다던 은색, 금색 마이크를 쥐고 노래를 했다.

뜨거운 조명에 땀이 흘러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최선을 다했다.

행복한 꿈이었다.

단 한 번도 꿔 본 적 없던, 희망만 가득한 그런 꿈이었다.

낯설 정도로 조금의 불안조차 없이 그저 행복하기만 한 감정이었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베개가 축축해질 정도로 울었나 보다.

거실에 놓인 선풍기 바람이 닿을 때면 눈물이 흐른 자리가 시원했다.

그냥 이 상태가 좋았다.

비가 새지 않는 지붕.

이은지와 각자 지낼 수 있는 방이 있는 집.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휴대폰.

굶지 않는 배.

아직은 낯설기만 한 ‘아버지’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나를, 이은지를 자식처럼 생각해 주시는 대표님.

하고 싶은 노래를 할 수 있고 만들 수도 있는 이 환경.

당장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살 수 있는 돈.

다시 만난 내 가족, 내 동생.

그리고 다시 가진 가장 후회했던 시간까지.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여유라는 것을.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나한테도 생겼다는 게, 그냥 그 자체가 기뻤다.

* * *

수상한 연습생

TaKa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송남철.

“죄송합니다. 그, 그건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네.”

“네네. 그, 금방 갚습니다.”

“예, 예…….”

송남철은 저보다 높은 사람의 전화라도 받는지 연신 굽신거리기 바빴다.

“토, 톡신!”

“아유, 그거 다 헛소문입니다.”

“에, 에헤이! 싹 다 기레기들이 장난질한 거죠!”

전화를 받던 송남철의 얼굴이 퍼렇다 못해 희게 질려 갔다.

“당연히, 예 다, 당연히 재계약했습죠! 예.”

“고, 곧 예! 시, 신곡이요……?”

“그! 토, 톡신 말고 다른 아이돌이 데뷔…….”

“아……, 브, 브앤시 망한 거 보셨다고요…….”

“아― 아닙니다! 거짓말은 무슨! 톡신! 예! 냅니다! 예! 내요! 나와요!”

통화가 끝난 뒤.

송남철은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아 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송남철을 사내로 연결된 전화의 수화기를 들었다.

“지금 당장! 브앤시 애들, 내 사무실로 오라고 해.”

브앤시의 첫 무대가 공개된 후 짧은 기간 동안 두 차례나 긴급 소집된 이사회.

TaKa 엔터테인먼트의 분위기는 내내 얼음장처럼 싸늘했다.

여론을 뒤집어 보려고 최선을 다해 봤음에도 불구하고 망친 무대를 없던 것처럼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대를 그따위로 하면 어쩌자는 거야!”

“시간이, 부족해서…….”

“그걸 지금 핑계라고!”

송남철은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내던졌다.

수화기는 아슬하게 브앤시의 남자 멤버 동국의 얼굴에 닿기 전,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을 내려찍었다.

동국은 꼴깍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놀라기는 송남철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동국의 얼굴엔 상처를 내면 안 됐기 때문이다.

곁에 있던 브앤시의 여자 멤버 화랑은 모든 걸 체념한 듯, 죽어 버린 눈동자로 송남철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김화랑!”

“네.”

송남철은 껄끄러운 동국보다는 만만한 화랑에게 화살을 돌렸다.

“같은 팀이면 니가 동국이를 가르쳐 주고 도와주고 해야 할 거 아니야! 남매처럼 생각하라고 했잖아, 남매처럼!”

화랑은 픽 웃음이 샜다.

송남철 대표가 이렇게 남매에 집착하는 이유는 알고 있다.

TaKa를 퇴사한 박창석 팀장이 만들었다던 ‘이응’이라는 그룹 때문이었다.

게다가 현재 송남철이 박창석한테 꼼짝도 못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TaKa 내부에 공공연하게 퍼져 있었다.

“네가 동국이를 남매답게 제대로 챙기기만 했으면!”

남매, 남매, 그놈에 남매.

윤동국이랑은 남매라는 이미지로 밀기에는 성씨도 다르고 외모도 다르다.

그렇다고 성격이 비슷하지도 않았다.

실력은 더 달랐다.

연습생 기간은 더더욱!

‘나는, 나는……!’

7년을 이 바닥에서 굴렀다.

시간 낭비라는 말을 주변에서 지긋지긋하게 들으면서도 계속.

‘TaKa의 연습생’이라는 타이틀마저 빠져 버리면 인생에 정말 아무것도 안 남을 것 같아서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들어온 지 2개월은 됐던가.

어디서 나타난 건지도 모를 윤동국이라는 녀석과 ‘브앤시’라는 한 팀이 됐다.

그리고 같이 준비를 하면서 알았다.

윤동국과는 한 팀이었지만, 데뷔에 대해 생각하는 무게가 달랐다.

윤동국한테는 데뷔는 그저 한 번의 유흥거리였다.

연습이 귀찮다고 빼먹고…….

이미 할 줄 아는데 뭘 더 굳이 연습하냐며 빼먹고…….

그리고 데뷔 무대에 올랐다.

‘윤동국한테는 ‘재미’였겠지. 하지만 나는…….’

계약서가 있다.

정확히는 있‘었’다.

기간은 7년.

이미 7년이라는 시간은 지났고, 족히 몇 개월은 더 지났다.

브앤시로 데뷔 전, 송남철 대표한테 나는 ‘재계약’에 관해 물었다.

하지만 송남철 대표는 ‘급하니까 일단 무대를 먼저 하고 그다음에 계약서를 쓰든가 하자’라며 주먹구구식으로 이야기를 넘겼다.

유능한 인재가 빠져나간 회사는 부품이 사라진 로봇이었다.

깡통밖에 없다는 말이다.

‘여기를 어떻게 정상적인 회사라고 할 수 있을까.’

사무실을 둘러보면 절반 이상이 일보다 검색만 하거나, 게임 창만 켜 두다가 월급을 받아 가는 경우가 대부분.

바깥에서 보는 TaKa 엔터테인먼트의 이미지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회사는 지난 1년 사이 개판이 됐다.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과거엔 박창석 팀장과 톡신의 신화 같은 이야기를 듣고 TaKa에 몰려든 연습생들도 많았었다.

오디션을 하면서 새 연습생을 뽑기도 하는 등 분명 ‘잘’ 굴러가던 회사였다.

하지만 딱 1년이었다.

능력 없는 대표가 대기업급에 가까울 정도로 성장했던 ‘TaKa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말아먹기까지 걸린 시간이 말이다.

유 이사님이 회사를 떠난 이후, 현재 하락세에 오른 TaKa 엔터테인먼트에 남은 연습생은 없다.

진작 계약을 파기하고 ‘DI 뮤직’이나 ‘ALV 미디어’ 등 충분히 희망이 남은 엔터테인먼트로 빠져나간 지 오래였다.

‘나도…….’

그때 나갔어야 했다.

연예계에 감이라고는 없는 송남철 대표의 ‘곧 데뷔시켜 주겠다’라는 단 소리에 속지 않고 말이다.

‘썩은 동아줄’을 미련하게 의리라는 이름으로 붙잡지 않고, 일찍이 이곳을 떠났어야 했다.

“당장 나가!”

송남철 대표의 축객령에 동국은 눈치를 보다가 도망치듯 대표실을 나갔다.

“김화랑, 당장 나가라니까―.”

송남철은 순간 고개를 든 화랑의 눈빛에 흠칫했다.

‘7년.’

절대 짧지 않은 세월의 원한이 어린 눈이었다.

유 이사님이 관둔 이후부터 연습 프로그램은 일제히 중단됐다.

지난 1년간…….

나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알아서’ 학원에 다녔다.

데뷔해 보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견디고 견뎌 여기까지 왔었다.

TaKa라는 이름을 믿고 ‘의리’로 버틴 7년이란 시간이, 내 뜻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었다.

하지만 두 번째 무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망해 버린 이 ‘브앤시’가, 그 결과였다.

화랑은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도 주먹에 가해지는 힘은 점점 더 강해지기만 했다.

“이 회사는 당신이 다 망쳤어.”

“뭐?”

화랑은 조금 전 박 대표가 던졌던 전화를 전화선까지 힘으로 뜯어 내 버리며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플라스틱 전화기는 내부가 드러날 정도로 박살 나서 파편이 나뒹굴었다.

“저, 저게 미쳤나! 왜, 왜 저러는…….”

“이 회사도, 당신도, 저 밖에 나간 저 개자식도! 내가, 내가!!!”

화랑은 이를 악물다 몸을 돌려 대표실 문으로 향했다.

어떻게 보자면 저 멍청한 송남철 대표의 그 주먹구구식 일 처리 방식 덕분에 살았다.

이게, 이 거지 같은 기획사를 떠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테니까.

쾅!

문을 있는 힘껏 걷어차자 ‘쿵’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안의 소리를 듣기 위해 문에 귀를 대고 있던 윤동국이었다.

발길질에 넘어진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화랑을 올려다봤다.

“뒤져 버려, X새끼야.”

“아악!!!”

화랑은 보란 듯 웃으며 욕과 함께 윤동국의 발을 짓이기듯 밟았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TaKa 엔터테인먼트 건물을 나섰다.

* * *

“그쪽은…….”

“김화랑입니다.”

“그, 그래요…….”

며칠 뒤.

NRY 엔터테인먼트에는 강한 비바람과 함께 폭풍 같은 한 낯선 손님이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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