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43)
“응?”
“앵콜곡 말이야, ‘Wise’ 불렀잖아.”
“아, 어. 그랬지.”
말을 더 이어 갈 줄 알았더니 이은지는 갑자기 생각에 잠긴 듯 입을 멈췄다.
곧이어서 튀어나온 이야기는 조금 뜬금없었다.
“나, 다음 곡은 신나는 곡으로 만들 거야.”
“갑자기?”
“오늘 되게 좋았는데, 뭐랄까. 그, 그거 있잖아.”
은지는 허공에 손을 휘적이며 기분을 표현하려고 저 나름 애썼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물었다.
“Wise는 예찬 선배 곡이라서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아니. 내가 선배님한테 자존심까지는 아니지. 그…… 그 있잖아.”
자존심까지는 아니었다? 그럼…….
“아쉬웠다?”
“어, 맞아! 그거야.”
휴, 오늘도 해냈다.
은지도 속마음을 표현할 단어가 나온 게 후련했는지, 답답함에 불타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웃었다.
“아쉬웠어. 내가 만든 노래가 아닌 게.”
“‘Wise’도 편곡은 네가 했잖아.”
“그래도 내가 만들어서 낳은 새끼는 아니잖아.”
“새끼라니…….”
새끼.
살짝 멈칫하긴 했지만, 딱히 이해 못 할 표현은 아니었다.
나도 내가 쓴 가사들을 돌아보면 꼭 자식처럼 소중했다.
“그러니까 이런 축제 분위기에 맞는 신나는 분위기 곡도 있으면 좋겠다. 이 말이지, 내 말은.”
“마음대로 해.”
“오케이. 좋아!”
“제발 가이드만 얼버무리지 말고 잘 넣어 주셔.”
내 말을 듣기나 한 건지…….
이은지는 주먹을 뻗으며 ‘아자!’라고 외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 * *
“냐―.”
“연탄아!”
집으로 돌아오자, 평범한 집고양이가 된 연탄이 이은지를 반겼다.
바짝 꼬리를 세우고 다가오던 연탄은 그대로 이은지 다리에 꿍 머리를 박았다.
“냐―.”
만져 달라는 듯 온갖 애교를 다 떨고 있는 연탄.
그 모습을 한 걸음 뒤에서 가만히 보고 있자니, 왠지.
마음에 안 든다.
“이은지, 손부터 씻어.”
“아.”
이은지가 연탄을 만지려던 그때였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긴 한데, 사납게 쏘아보는 연탄을 보며 난 보란 듯 어깨를 으쓱여 줬다.
거실에 앉아서 이은지가 나오는 걸 기다렸다.
“잔소리. 잔소리.”
잠시 후, 이은지가 투덜거리면서 욕실에서 나왔다.
그러면서도 말은 또 잘 들으면서.
“너도 손 씻어!”
“너 나오면 안 그래도 그럴 거였거든.”
이은지는 욕실에 들어가려는 나를 지나쳐서 곧장 제 방으로 향했다.
“야, 이은지!”
“왜!”
욕실에서 손을 씻으면서 이은지를 불렀다.
“저녁은 뭐 먹을 거야.”
“몰라. 대충 아무거나.”
“아무거나……. 진짜 ‘아무거나’ 한다?”
수건에 손을 닦으며 밖으로 나오자, 목이 늘어난 반소매 티와 반바지로 갈아입은 이은지가 욕실 앞에 있었다.
“또 뭐 하려고.”
“유자청에다가 밥 비벼 버리게.”
“아니, X친.”
“니가 아무거나라며.”
“아니, 미친X아 그래도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걸로 해야 할 거 아냐.”
“왜, 유자청도 먹을 수 있는 거고 밥도 먹을 수 있는 거잖아.”
“아, 나 저녁 안 먹어. 너나 처먹어!”
뻔뻔하게 따지자 이은지는 험악하게 미간을 구기며 소리쳤다.
“오―예. 오븐 치킨 시키려고 했는데, 개꿀~.”
웃으며 말하자, 이은지 얼굴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곧 뭐라도 날아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저, 씨! 몰라, 너 혼자 다 처먹어!”
“하하하.”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와서 문을 잠갔다.
『뭐 하냐.』
“아, 씨. 아, 야, 깜짝이야!”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아래를 보자, 연탄이 있었다.
얘는 언제 내 방에 들어와 있었던 거야.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던 그때였다.
“왜.”
왠지 지긋이 나를 보는 노란 눈이 오늘따라 뭔가 거슬렸다.
평소에도 거슬리기는 마찬가지지만,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인달까.
『나 오늘 그 네모난 거 보다가 재밌는 거 배웠어.』
네모난 거?
“아, TV?”
『그게 TV야?』
“어.”
이은지는 집에 혼자 있는 연탄이 심심할까 봐 최근 평소에는 보지도 않던 유선방송을 신청했다.
회사에서 남아도는 것 중 TV 연결이 가능한 모니터에 연결해서 쓰는 중이라 화면이 크지는 않았다.
그걸 보고 말하는 거 같은데.
“뭐.”
뭘 배웠길래 내 방까지 온 건가 싶어서 호기심이 차오르던 그때였다.
“…….”
연탄은 자리에 털썩 앉더니 양 앞발을 X자로 포개며 나한테 보란 듯 내밀었다.
“이게 뭐.”
『뻐큐!』
황당해서 순간 머리가 멈췄다.
도대체 무슨 프로그램에서 이걸 배운 건지는 일단 뒤로하고.
이은지한테 시도 때도 없이 먹는 엿을 이젠 고양이한테도 먹어야 하나.
복수를 위해 연탄을 붙잡으려던 순간, 연탄은 내 방을 활보하며 이리저리 재빠르게 몸을 피해 댔다.
처음엔 딱히 진심으로 화가 난 건 아니었는데, 농락당하다 보니 진심이 됐다.
“이, 망할!”
매트에 걸려서 넘어질 뻔한 그때였다.
연탄은 문 여는 법을 알고 있던 건지, 내가 문 앞에서 나온 타이밍을 노려 문손잡이에 매달렸다.
손잡이는 묵직한 연탄의 무게에 잠금이 풀렸다.
문이 흔들리면서 연탄은 바닥에 ‘쿵!’ 턱을 찍으며 떨어졌다.
‘멍청이.’
그 모습을 매트에 가만히 앉아서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 연탄은 기회라고 생각한 듯 후다닥 내 방을 빠져나갔다.
굳이 따라 나가지 않아도 이은지 방으로 갈 게 뻔했다.
‘참 나…….’
조금 전 상황 모든 게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터졌다.
한편으로는 이 유치한 평화가 좋아서 웃음이 났다.
“아으, 피곤해.”
늦은 저녁이긴 하지만 체력을 위해선 뭐든 챙겨 먹어야 하는데…….
‘귀찮다.’
오늘 열심히 뛰어서 그런가, 눈꺼풀이 무거웠다.
그렇게 천천히 눈을 감는데…….
‘아―.’
이게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지금 잠들면 큰일 난다고 직감이 외쳤다.
벌떡,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이은지 방으로 향했다.
“야, 집 앞에 오븐 치킨 시킨다.”
“어.”
“반띵 한다.”
“어어. 알았어.”
이은지는 뭘 하고 있는지 방 안에선 수상한, 달칵달칵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난 어플을 이용해서 종종 시켜 먹던 오븐 치킨 전문점에 주문을 넣었다.
그리고 정확히 계산을 끝마친 그 순간.
♬♪―.
소름 돋았다.
휴대폰 화면에 떡 하니 박혀 있는 ‘대표님’.
“네, 대표님.”
“밥은?”
“안 그래도 마침 오븐 치킨 시켰어요.”
“그래? 얼마야?”
“이만 삼천 원이요.”
“알았다. 두 마리지?”
“예.”
대표님은 안부 인사나 고생했다는 말은 일단 뒤로 제쳐 두고 바로 본론부터 들이밀었다.
‘조금 아쉽……기는 무슨. 역시 우리 대표님이 최고다.’
“사랑합니다, 대표님!”
“하하하. 둘 다 밥 잘 챙겨 먹으라고 주는 거야.”
“네!”
“그래. 오늘 잘했다고 이야기 들었다. 고생 많았으니까 푹 쉬고 내일 회사에서 회의 때 보자.”
“네!”
“그래.”
전화는 금방 끊겼다.
잠시 후, 전화가 한 통 더 왔다.
“저, 여기 NRY 엔터테인먼트라고 쓰인 곳 앞에 왔는데요. 불이 다 꺼져 있어서―.”
“아, 네. 금방 내려가겠습니다.”
치킨이 도착했다는 배달 직원의 연락이었다.
난 간단히 슬리퍼를 끌며 골목으로 나왔다.
배달 음식을 시킬 때 집 주소는 일부러 회사 쪽으로 찍어 뒀다.
지금 집에는 대문이 없다.
CCTV가 충분히 설치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냉정하게 말해서 보안이 ‘좋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걱정에 이렇게 음식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떠나는 배달 직원을 확인한 후에야 난 가벼운 걸음으로 치킨 두 마리와 빨간 콜라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흔들며 회사 건물 쪽으로 몸을 돌렸다.
♩♬♬♬♬
♩♬♬♪♬♬♪
2층에 오르자 이은지가 비트를 쌓고 있는지 가상 악기 소리가 들렸다.
“야, 저녁에 헤드셋 껴.”
“아, 응. 치킨 왔어?”
“어. 밥 먹고 해.”
이은지는 자리가 모자랐는지 건반을 옆으로 치운 후 겨우 방을 빠져나오면서 물었다.
“만 천오백 원 주면 되지?”
“됐어. 오늘은 그냥 먹어.”
“응?”
진심으로 놀란 듯 이은지가 방에서 나오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XX은행 박창석 100,000 입금]
휴대폰을 다시 보자, 입금 알람이 여전히 메인에 떠 있었다.
“이은호,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아니거든. 날 뭐로 보고.”
“뭐로 보긴, 돈 뜯어 먹는 구두쇠로 보지.”
역시 내 동생,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확하네.
치킨 봉지를 뜯기 전, 난 이은지 앞에서 뻔뻔하게 웃으며 알람 위 ‘X’ 표시를 눌러 입금 내용을 화면에서 없애 버렸다.
아주 살짝 양심이 따끔거리긴 했지만 굴하진 않았다.
봉지를 뜯은 후, 안에 굴러다니던 하얀 무 팩을 들고 싱크대로 향했다.
‘7만 원이나 이득 봤는데.’
무 국물 정도야 넓은 아량으로 버려 줄 수 있었다.
이은지는 그런 내 모습을 생전 처음 본다는 듯 내내 놀란 눈이었다.
“와, 우리 이은호가 달라졌어요…….”
“고마우면 내일은 네가 사.”
“김밥 정도는 살게.”
“그러시던지.”
“와, 진짜 웬일이래.”
“빨리 앉아서 먹기나 해.”
“어, 응. 잘 먹을게.”
“그래.”
대표님이 사 주신 치킨은 정말 맛있었다.
연탄은 옆에서 ‘니들만 입이냐?’라는 얼굴로 나를 빤히 봤다.
적어도 이은지는 줄 줄 알았는데, 대표님이 절대 주면 안 된다고 경고라도 했던 건지 애써 연탄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침까지 뚝뚝 흘리며 보고만 있는 게 안쓰러워서 냉동실에 가득 채워 둔 북어 큐브를 꺼내 건넸다.
“퉤.”
“저, 씨…….”
연탄은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더니 입에 문 북어 큐브를 뱉어 버렸다.
“하, 그래. 먹지 말든가.”
순간 한마디 하려다 그냥 큐브를 치우는 쪽을 택했다.
한편 다시 가지고 가는 건 또 싫은 듯 바지 끝자락에 날카로운 발톱이 걸렸다.
“뭐, 어쩌자고. 안 먹는다며.”
“먀―.”
“뭐.”
『줘어…….』
난 이은지를 슬쩍 쳐다봤다.
겨우 이은지 앞에서 말을 하도록 유도했건만…….
연탄은 일부러 울음소리처럼 말을 한 건지 은지한테 걸리지는 않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은지는 지금 닭 날개에서 뼛조각을 발굴하는 데 정신이 팔린 건지 지금은 내 목소리도 안 들리는 상태인 것 같았다.
치킨을 다 먹은 뒤.
이은지는 혹여나 연탄이 잠든 사이에 닭 뼈를 먹을까 봐 걱정이라도 한 걸까.
웬일로 가위바위보를 하자는 둥 그런 말 없이 스스로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동안 난 소화를 위해 이리저리 분주하게 집안일이나 했다.
내가 거실을 치우는 동안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온 이은지는 본인 방바닥에 널려 있는 옷 무덤을 치웠다.
‘정말 귀찮지만…….’
그것도 왜 이은지가 아니라 나한테 X랄인 건지.
이렇게 안 하면 연탄이 본인 화장실을 안 치웠다던가, 집에 냄새가 난다는 등 밤새 내 머리맡에서 중얼거려서 어쩔 수 없었다.
* * *
집안일이 모두 끝나고 나자 시간은 어느새 한밤중에 가까워졌다.
이은지는 방 청소가 끝나자마자 다시 건반 앞에 앉은 모양.
달깍, 달깍달깍, 달깍.
이은지가 끼고 있는 헤드셋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비트 소리와 건반을 누를 때마다 들리는 달깍거리는 작은 소음이 들렸다.
「“나, 다음 곡은 신나는 곡으로 만들 거야.”」
이만하면 피곤할 만도 할 텐데, 쟤도 참 어지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