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42)
그리는 미래
“아, 재밌었다.”
“그러게.”
“어서 와요. 멋있었어요.”
은호와 은지가 차에 오르며 이야기를 나누자, 슬기가 두 사람을 맞으며 인사했다.
“후! 긴장 많이 하고 있었는데 잘 풀려서 다행이에요.”
“은지 님이요? 언제부터요?”
은호와 은지는 무대 위에 오른 그 순간부터 마치 집 앞마당처럼 신나게 뛰어다니며 호응을 유도했다.
그랬던 사람이 긴장했다고 하니, 슬기가 놀라며 물었다.
“무대에 서는 것도 오랜만이라서 많이 떨렸고, 관객분 무대로 모시고 나올 때도 긴장했었어요. 하하. 거절당하면 어쩌나 싶어서요.”
“아하.”
슬기는 무대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파트너의 손을 꼭 붙잡은 채 두 사람이 노래를 불러 주는 장면은 영화 속에서 프러포즈하듯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이었다.
슬기는 그렇게 노래를 감상할 기회를 얻은 신일과 은정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헤헤. 언니도 손잡고 노래 불러 줄까요?”
“에이, 됐어요. 하하하.”
속마음을 꿰뚫듯 훅 들어온 은지의 능글맞은 장난에 슬기가 웃으며 손을 저었다.
슬기는 조금 생각이 많은 얼굴로 달리는 차의 정면을 바라봤다.
* * *
“저, 저는 E-UNG의 팬입니다!”
슬기가 NRY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하기 전, 1:1로 면접을 보던 때의 일이었다.
박 대표는 공고를 올릴 때 코디에 한해서는 E-UNG의 팬이면 가산점을 더 주겠다는 식의 문구를 추가했었다.
그래서 슬기는 면접 자리에서 자신이 E-UNG의 팬이라는 말을 당당히 입에 올렸다.
하지만 돌아온 시선은 공고에서 말하는 ‘긍정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차이가 있었다.
“……그 소속 가수의 팬이라는 건 어떤 회사에서는 부서에 따라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하지요, 슬기 씨?”
“네!”
“나는 단순히 내 아이들의 팬인 직원을 쓰고 싶은 게 아닙니다.”
“네?”
처음 박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을 땐, 슬기는 혼란스럽기보다 ‘네가 가산점 준다며!’라는 생각이 더 컸다.
그것도 잠시.
“나는 ‘팬심’을 올바르게 ‘일’로써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이어진 대표님의 이야기에 어떤 의미로 하신 말이었는지는 뒤늦게나마 이해했다.
이후 박 대표는 슬기에게 단순히 ‘팬’이기에 지원을 한 거라면 당장 뒤돌아 이 문을 나가는 것을 더 추천해 드린다며 말했다.
슬기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저는 E-UNG의 팬입니다.”
입에 올린 이야기는 처음과 같았지만, 처음의 가볍던 마음과는 사뭇 차이가 컸다.
이어서 슬기는 ‘팬심’을 ‘일’로써 승화하여, 애정이 담긴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라는 말을 덧붙였다.
“저는 그래서 NRY 엔터테인먼트에 지원했습니다.”
“……알겠습니다. 뭐, 결과는 나중에 따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박 대표는 현우 때와는 달리 즉답을 피했다.
이후로도 많은 사람을 더 살펴봤다.
하지만 누구 하나 슬기가 직접 제작해 온 포트폴리오 속 그녀가 말한 ‘애정이 담긴 최고의 작품’을 뛰어넘는 사람은 없었다.
박 대표는 처음에 반쯤은 도박하는 심정으로 슬기를 채용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팬’을 직원으로.
그것도 아티스트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는 사람을 팬으로 쓸 경우 최악의 상황까지 갈 가능성이 많은 일이었다.
“그 매니저도 팬이라면서요?”
그렇다면 그 매니저도 팬인데, 매니저는 어째서 바로 뽑은 거냐며.
박 대표는 고민 상담을 하던 당시, 가족 고양이를 키우던 철수 PD에게 그런 질문을 받은 적 있었다.
‘현우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라는 관상에서부터 오는 든든한 믿음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박창석 자신이 대표이기에 내릴 수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현우에 비해 슬기는 그런 쪽의 확신이 부족했다.
인상에서 일은 정말 잘할 것 같은 느낌은 있었지만, 글쎄.
‘차라리 팬이 아니었더라면 더 괜찮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때도 있었다.
그 작은 불안함을 남겨 두고 싶지 않아서.
박 대표는 ‘팬으로서 입사하긴 했으나, 그건 일에 있어 더 애정을 가지기 위함일 뿐, 사적인 감정을 담지 않겠다’라는 의미의 조항들이 가득한 추가 계약서도 따로 작성하게 했다.
‘후후.’
슬기는 추가 계약서를 쓰던 그때를 떠올리며 웃었다.
박 대표가 이응 남매에게 가진 애정이 얼마나 큰지는 계약서를 읽었을 때 알 수밖에 없었다.
빼곡하게 채워진 20가지 조항들에는 하나같이 NRY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손해’가 아닌, 오히려 ‘남매의 불편’을 걱정하는 문장들로 가득했다.
그래서 슬기도 현우도 오히려 더 안심하며 계약서에 서명을 할 수 있었다.
* * *
슬기가 과거 일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은지는 꾸벅꾸벅 졸던 은호의 어깨를 내려찍으며 물었다.
“맞다, 이은호!”
“그래. 이은호 맞았다. 아야.”
“뭐야, 그 이상한 개그는. 칠 거면 좀 정성이라도 들이던가.”
“남이사, 개그를 치든 말든. 넌 나한테 호칭이나 그만 팔아먹으세요.”
“아이고, 아재요.”
“저게 진짜. 나이 처먹은 건 이제 너도 똑같거든.”
“아무튼! 아까, 아까 그거!”
“그거 뭐.”
“그거 원래 할 줄 알았어?”
“와, 그거?”
“어! 어! 그거!”
나른하게 퍼져 있던 몸을 일으키며 이은지한테 되묻자, 단번에 이야기가 통한 줄 알았는지 은지는 더 신나서는 소리쳤다.
“몰라, X발. 원래 할 줄 아냐니, 뭘 말하는 거야?”
밝아진 은지한테 찬물이라도 끼얹듯, 난 다시 만사 다 귀찮은 자세로 돌아가며 되물었다.
은지는 살짝 짜증이 난 듯 보였지만 설명이 부족했다는 건 본인도 인정하는지,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덧붙였다.
“예에!!! 하면서 올라가던 거 있잖아. 쭈우우욱 겁나 높아졌던 그거!”
“쭉 높아졌던 그게 뭔…….”
아아, 뭘 말하는 건지 알았다.
이한대 관객들의 환호성에 취해서 장기랍시고 소리를 질렀던 그걸 말하는 모양이다.
“그냥 소리 지른 건데, 난 또 뭘 했다고…….”
“그냥? 그으냥?”
그때, 이은지는 갑자기 눈을 부라리며 내 인중에 정수리를 밀어 넣었다.
와, 씨.
“야, 냄새나! 치워.”
“내 정수리 냄새나 맡아라, 빠가사리야! 그냥 같은 개소리 하고 있네!”
“치우라고 했다, 이은지.”
재차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호박 대가리는 치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난 잘 익은 수박을 두드리듯, 이은지 정수리를 내려찍었다.
“냄새난다고, 좀! 치우라니까.”
“악! 아, 씨!”
은지는 맞은 정수리를 문지르며 버럭 소리쳤다.
“누구는 거기까지 올리고 싶어도 안 되는데! X나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지 마! X나 재수 없어!”
“뭐래. 그리고 솔직히 좀 이상하잖아. 혼자 좀 과하게, 좀, 그런 거 같아서.”
이은지가 치켜올리는 거에 비해, 사실 난 조금 그때 과하게 분위기에 취했던 것 같아서 오히려 민망한 기분이 더 컸다.
그 순간을 떠올리자 또다시 밀려오는 멋쩍은 기분에 괜스레 짧은 뒷머리만 긁적였다.
“이상하기는, 솔직히 이은호만 아니었으면 X나 멋있었다.”
칭찬인 건 알겠는데, 옆을 돌아보자 이은지는 옆에서 양손 가운데 중지를 빳빳하게 편 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손가락들 꺾어 버리기 전에 그건 접고 말씀하시지?”
“아, 내가 누구 칭찬을 하면 중지가 저절로 서지는 병이 있어서. 이해 좀 부탁드립니다, 아재요.”
“X랄, 진짜.”
“응. 이은호는 이거나 드세요―.”
내가 웃으면서 꼴 보기 싫은 이은지의 중지를 은근슬쩍 꺾어 버리려던 그때였다.
이은지는 재빠르게 중지를 감추며 주먹을 제 뺨에 갖다 붙였다.
‘뭐 하는 짓이지.’
이은지를 가만히 바라보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설마 지금 귀여운 척하냐?”
“X랄. 엿인데.”
“……진짜 X랄 한다. 허이고…….”
뻔뻔한 게 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터졌다.
한바탕 장난이 있고 난 뒤, 어지간히 그 순간이 감명 깊었던 건지 이은지는 다시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 갔다.
“아무튼 옆에서 노래 부르다가 끝없이 높아지니까 소름 돋았다고.”
“알았어, 인마. 그만해.”
“그래서 그건 언제부터 할 수 있는 거였는데?”
“뭘.”
“고음 깨끗하게 쭉─! 올리는 거.”
대충 ‘알아서 뭐 하게’라며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
그렇다고 솔직하게 ‘네가 세상을 떠난 뒤에’라고 하기에도 쉽지는 않았다.
많이 나아진 줄 알았는데 아직 그때 이야기를 가지고 농담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워지지는 못했나 보다.
그사이 이은지도 알아챈 듯, ‘아’ 하더니 제 쪽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쟤는 참 모자란 것 같다가도 꼭 이럴 땐 눈치가 기가 막히게 좋더라…….’
나도 이은지를 따라 내 쪽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이은지가 세상을 떠난 뒤, 다시 첫 무대에 올랐을 때였다.
다시 만난 관객들을 봤을 땐 기뻤고, 응원을 받았을 땐 감사했다.
한편, 거지 같은 악플이 떠올라 괴로웠고, 먼저 간 동생을 원망하며 마이크를 쥐어 들었다.
MR은 이미 인트로를 지나 첫 벌스까지 넘겼건만 난 그동안에도 내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입을 떼기가 무서웠을까 싶을 정도로 바보 같은 순간이다.
그런데 그땐 그 작은 행동.
고작 입을 여는 그 작은 행동 하나를 하는 순간 세상이 다 무너질 것처럼 두려웠다.
그런 와중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누구 하나 화를 내지 않고 기다렸다.
꼭 이해한다는 듯 고요했던 그 관객석이, 결국은 내 입을 떼게 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죽어야 하는 백 가지 질문에 답을 달아 봐
쉽게 써 내려 버린
날 저주하는 말들이 빼곡히 채워진 종이를 바라봐
노래는 거의 2절 벌스에 다 와서야 겨우 시작할 수 있었다.
목이 메는 소리로 꾸역꾸역 입을 벌리며 노래했다.
그렇게 하이라이트에 다다랐을 때였다.
니가 떠나고 혼자 남은 우리 집에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미련한 나는 네가 남겨 둔 고작 한 줄에 바보같이 목숨을 내걸어
악에 받쳐서 음을 올리고, 또 올리고.
숨이 가빠 심장이 터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소리를 끌어 올리고 또 끌어 올렸다.
후에는 모든 걸 터뜨린 탓에 속삭이는 것에 가까울 정도로 목에 힘이 풀렸다.
백 가지 이유를 가득 채워도
살아야만 하는 네가 남긴 하나의 이유에 모든 걸 내걸어
바보같이 난 모든 걸 내걸어
울음 이를 악물고 꾹 버틴 탓일까.
바이브레이션을 넣은 게 아니었음에도 내 목소리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구슬프게 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얻은 기술, 아니.
이걸 ‘기술’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하니까.
아무튼 소리를 깨끗하게 올리는 방법은 그때, 그렇게 깨우쳤다.
그래도 이번엔 그때와는 정반대의 심정으로 정말 기뻐서, 행복해서 내질렀던 고음이었다.
* * *
차 안이 조용해진 지 10분이 안 되었을 때였다.
“이은호.”
“왜.”
“오늘 마지막에 ‘Wise’ 불렀잖아.”
무거운 분위기를 못 견디는 이은지가 직접 분위기를 바꿔 볼 생각이었는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