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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41화 (141/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41)

“거기! 잘생긴 남자분!”

“……?”

은지가 외치자 많은 남자 관객들이 여럿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정작 시선이 마주친 건 딱 한 사람이었다.

“저, 저요?”

“네! 잠깐 무대에 올라와 줄 수 있어요?”

은지가 눈을 휘며 웃자, 신일은 어안이 벙벙한 듯 은지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잘생겼니, 뭐니. 머리만 짧게 잘라도, 아니.

‘그냥 저대로도 남녀 구분하지 않고 상대를 수도 없이 울렸을 것 같은 사람이 저런 말을 하니까…….’

진심이고 자시고 신일은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 더 컸다.

“오오, 뭐야, 뭐야!”

“넌 X랄 하지 말고 나와 봐.”

호들갑 떠는 룸메이트를 밀어내고 신일은 무대 쪽으로 다가갔다.

앞서 있던 다른 사람들을 다 제치고 앞으로 나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안전 요원의 도움으로 펜스를 넘어오자, 은지가 손을 내밀며 물었다.

“저 좀 도와줄래요?”

“예? 아, 에, 예.”

여기까지 나왔는데 그냥 들어가는 게 더 민망하니까.

……라는 핑계를 두르며 신일은 홀린 듯 은지가 내민 손을 잡고 무대로 향했다.

“누구셔?”

“몰라!”

은지의 해맑은 대답에 은호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신일을 돌아봤다.

그동안 신일은 은호와 은지를 번갈아 바라보며 감탄했다.

와, 씨. 이쪽도 장난 아니네.

“오. 과잠? 맞나요?”

“예, 맞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정신일이요.”

“되게 뻔한 질문이긴 한데 무슨 과세요?”

“저, 기공…….”

그때였다.

관객석에서부터 웬 우렁찬 환호성이 쏟아졌다.

“오, 기계공학? 맞나요?”

“예.”

간단하게 대답하는 신일과 달리 관객석에서 또 한 번 우렁찬 ‘예!!!’가 이어졌다.

예상은 했었는데, 같은 기계공학과인 학생들의 목소리인 것 같았다.

“나이는―.”

“12학번, 스물셋입니다.”

질문보다 빨랐던 신일의 대답에 은호의 표정이 밝았다.

“오! 93 닭띠?”

“예. 93.”

“오, 동갑이네요!”

“오, 그래? 반갑다, 친구야.”

신일은 태연하게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뻔뻔한 신일의 행동에 은호는 웃음을 터뜨리며 신일의 손을 잡았다.

“내 짝이야, 이은호.”

“알았다, 알았어.”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은지가 투덜거리며 신일의 손을 당겼다.

신일은 놀란 나머지 동그래진 눈으로 은지를 돌아봤다.

그때, 은지가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

“오빠, 제가 아까 도와달라 했던 거 기억하시죠?”

“아, 예. 근데, 뭘 도우면…….”

“다음 곡이 되게 다정한 노래인데, 아무래도 저 인간 보고 몰입하는 건 쉽지 않거든요.”

은지가 검지를 뻗어 은호를 가리키자, 은호는 보란 듯 은지의 손가락을 접어 버렸다.

그 모습에 넓은 운동장에 웅성거리는 웃음소리가 맴돌았다.

“그렇다고 하니까 저도 이은지 말고 몰입할 수 있는 한 분 모셔 오고 싶은데, 제 상대가 되어 주실 분, 손!”

여기저기서 번쩍번쩍 손이 올라왔다.

그중에선 남자도 있었던 터라 은호는 당황하며 마이크를 다시 쥐었다.

“어우, 형님들!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하하하.”

치열하게 올라오는 손끝에 은호가 파트너로 고른 관객은 처음에 고양이 인형을 흔들던 한 E%로 추측되는 여자분이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김은정이요!”

“오, 이한대 학생이세요?”

“네!”

“어디 과―.”

“화학과요!”

“와아아아아!”

노리고 있었던 걸까.

기계공학과가 외쳤을 때보다 훨씬 더 큰 함성이 쏟아졌다.

“어랍쇼? 질 수 없지. 기계공학과 언니 오빠들, 소리 질러!!!”

“와아아아아아!!!”

은지는 보란 듯 유도하며 외쳤다.

살짝 자존심 싸움에 불이 붙기 직전이던 그때.

기운을 눈치채고 있던 현우가 스태프에게 신호하면서 때맞춰 기타 연주와 함께 피아노 연주가 이어졌다.

“마지막 곡입니다! 이번 곡은 잘못 들으면 사람 이름 같기도 한 ‘이 길 위’라는 저희 이응의 신곡입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은호가 이야기하는 동안 은정과 신일은 스태프가 급하게 가지고 온 의자에 앉았다.

은호는 심호흡과 함께 노래에 몰입을 준비했고, 은지는 노래 시작 전에 신일의 손을 꽉 잡으며 입을 열었다.

어둑해진 밤

이 길 위로 빛이 고요함이

가라앉아 눈을 감기고

이어서 은호도 은지를 따라 은정의 손끝을 조심스럽게 쥐며 노래를 이었다.

은정은 은호가 한마디 입을 뗄 때마다 얼굴이 차츰 붉어졌다.

민망했던 건지 은정은 곧 반대 손에 쥐고 있던 고양이 인형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노래를 감상했다.

한편, 신일 또한 은정 못지않게 귀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우리만 아는 그 시간조차 쫓아오지 못하게

멀리 더 멀리

얼굴도 얼굴이지만 마이크 없이도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들은 남매의 노래는 여러모로 심장을 뛰게 했다.

노래 시작부터 끝까지 잡고 있던 두 사람의 손은 축축할 정도로 땀이 흘렀다.

그런데도 은호와 은지는 하이라이트에는 손에 깍지까지 끼며 태연하게 노래를 이어 갔다.

잘 자

오늘 밤도 너의 길 위 밝은 별이 뜨길

노래가 끝나고, 마이크를 떼어 낸 뒤 은호는 은정 씨에게, 은지는 신일 씨에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짧게 인사했다.

“도와주신 두 분께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와아아아!!!”

친절한 이한대 관객들의 쏟아지는 박수와 함께.

은호와 은지는 선물로 챙겨 왔던 상품권 만 원짜리를 두 사람에게 건네며,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은정과 신일은 자리에 돌아온 이후에도 정신을 차리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와아아아!

‘발라드라 분위기가 우울해지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최선을 다한 덕인지 분위기는 밝기만 했다.

노래가 끝나고 이은지와 난 폴더 폰이 접히듯 곧장 허리를 숙이며 인사 후, 무대 뒤로 향했다.

“아아아아아―.”

내려가려고 하자 아쉬운 듯 한탄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우리가 가는 걸 아쉬워하는 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씁쓸한 기분을 안은 채 무대를 내려가던 그때였다.

“앵─콜, 앵콜, 앵콜!”

“앵콜!! 앵콜!!! 앵콜!!!”

몇몇이 따로 외치던 앵콜 소리가 갑자기 하나로 뭉쳐지더니 무대 뒤편까지 넘어올 정도로 커졌다.

“어…….”

“…….”

이은지도 나도 방금 내려온 무대를 돌아봤다.

기분이 묘했다.

여기에 오기 전, 톡신 선배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기에 더 그랬다.

「“신인들한테 앵콜이 나오는 경우가 많지는 않아.”」

「“만약 앵콜이 나온다면…….”」

그건 너희가 정말 잘해서 나온 거라고, 선배가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더 우린 일말의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계속 이어지는 긴 앵콜 소리에 이은지는 결국 눈물을 터뜨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일어나. 가야지.”

“어. 끅, 알아.”

이은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밖으로 향하려고 했다.

“어디 가.”

“가야 한다며!”

은지는 울어서 부어오른 눈을 흘기며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난 조용히 무대 방향으로 팔을 뻗었다.

“앵콜 공연 가자고.”

“어? 우리 집에 돌아간다는 거 아니었어?”

“원하시잖아.”

“아, 씨. 진작 그렇게 말했어야 할 거 아냐!”

이은지는 엄지로 아이라인 인근을 다듬더니 결의에 찬 얼굴로 말했다.

“……가자.”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앵콜’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다시 무대로 올라가기 전.

기왕이면 밝은 곡으로 마무리하자는 생각에 우린 스태프분께 를 틀어 달라며 부탁드렸다.

그리고 심벌 사운드가 스피커로 터져 나온 그 순간.

“와아아아아아!!!”

지금까지 들은 중에서 가장 큰 환호가 쏟아졌다.

‘가슴이 벅차오른다’라는 문장이 실제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숨이 턱 틀어막힐 정도로 기분이 찢어지게 좋았다.

“정말, 이 곡을 마지막으로 내려가겠습니다!”

얼굴은 아직 비추지 않은 채 이야기를 전했다.

그동안 곡은 윌리저 피아노가 사라지기 전 리버브 사운드가 나왔고, 이어서 귀에 익숙한 808 베이스가 얹어졌다.

은지는 반짝이는 큐빅들에 거친 마이크를 꾹꾹 누르며 낯익은 비트에 호흡을 맞췄다.

그리고 무대에 올라가면서 동시에 입을 열어 소리를 터뜨렸다.

의미 없이 던진 한마디가

줄이 되어 그를 얽매어

‘꺄아아악’, ‘와아아악’ 두 비명에 가까운 함성이 섞여 터졌다.

울기를 바랄 너를 위해

입꼬리를 끌어 올려

이은지는 노래에 몰입한 듯 희대의 악녀처럼 날카롭게 웃었다.

‘와, 진짜 못돼 보인다.’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어째선지 남녀 구분 없이 운동장에 퍼지는 함성은 더 강력해지기만 했다.

이은지가 무대를 휘젓는 그동안, 내 파트가 찾아왔다.

내 머리 위 춤추는

Three monkeys

은지한테 지지 않을 정도로 큰 함성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What are you doing now!

은지가 끈적하게 시작하며 곧 ‘now’에서 버럭 소리치자 함성도 함께 쏟아졌다.

―Hear no evil!!

하하, 목소리를 들었다면 귀를 막아!

―See no evil!!

그 녀석이 보였다면 눈을 감아!

―Speak no evil!!

혹여라도 소릴 낼까 입을 가려!

이후에는 누구라고 가를 것 없이 학교를 울릴 정도로 떼창이 이어졌다.

처음 들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evil’ 시리즈 가사 때문인지, 못지않은 떼창이었다.

워어―

이예에 에이에에, 악, 예!

훠우!

하하하.

분위기에 취해 터져 나온 듯, 은호의 끝없이 올라가는 고음 애드리브에 은지마저 놀란 눈으로 감탄을 터뜨렸다.

이에 질세라 은지도 나름의 장기들을 꺼내 두며 승부를 겨뤘다.

은호와 은지는 핸드 마이크를 들고 라이브와 동시에 안무를 했다.

이하늘의 스파르타식 수업의 효과인 건지, 둘은 호흡 한 번 달리지 않는 듯 흔들림조차 없었다.

사실 난 괜찮지 않아

이힉

이어지는 웃음소리 같은 장난스러운 테이프를 되감는 소리를 끝으로 공연은 정말 끝났다.

“헉…… 허억.”

오래간만에 숨을 헐떡일 정도로 최선을 다한 진짜 무대를 해낸 기분이었다.

어느새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운동장은 회귀 전 이은지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헉…… 헉. 이상, 저희는 이응의 이은호, 이은지였습니다!”

은호는 이마에 숨을 내뿜으며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넘긴 뒤, 꾸벅 또 한 번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은지도 한 방향으로 머리를 완전히 쓸어 넘긴 뒤, 간단하게 마무리 인사를 건넸다.

또 한 번 앵콜 요청이 쇄도했지만, 약속대로 무대를 내려가야 했다.

곧 있을, 사실상 오늘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다른 아이돌 그룹을 위해서였다.

그렇게 은호와 은지는 무대를 떠났다.

초반에 두 사람이 무대를 너무 씹어 삼킨 탓일까.

얼떨결에 뒤에 온 유명 그룹도 한껏 귀가 높아진, 흥분한 이한대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했다.

이후 온갖 SNS에는 오늘 은호와 은지의 공연을 촬영한 영상들이 줄줄이 올랐다.

(이한 대학교 이응 앵콜 공연 동영상)

[야 미쳤다. 무대 찢었다는 게 뭔 말인지 오늘 알음.

#이응 #이한대학교 #무대 #동영상]

└ 와 고음;;; 지렸다;;;

└ 와 저 정도인데 스피커 안 터지냐?

└ 스피커 중간에 끊겼는데도 ㅈㄴ 성량 자체가 개쩔어서 구석에 있는 여자 기숙사까지 다 들렸대

└ 누구야?

└이응이래

└ㄷㄷㄷㄷ 소름 돋는다 ㅁㅊ

[#이한대 #공연 나 실제로 봤는데 이거 전에도 대박이었어]

└ 뭐 더 있었어??? 나 늦게 와서 앵콜 공연밖에 못 봤음

└ 기공과 남자 하나랑 화학과 여자 하나 무대에 올라갔는데 손잡고 이 길 위인가? 신곡이라면서 그거 불러 줌.

└ 헐… 미쳤다. 팬 서비스ㅋㅋㅋㅋ

└ 둘은 이제 못 빠져나오겠네ㅋㅋㄱㅋ

└ 심장 안 멎었대냨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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