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36)
다음 날, 새벽.
또 거실에서 눈을 뜬 후.
난 왠지 후끈한 것 같은 등에 덮인 이불을 치워 내는데, 웬 검은 털 뭉치가 같이 굴러떨어졌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다.
“내가?”
“어. 니가.”
“얘를?”
“어. 연탄이를.”
“왜?”
“내가 아냐? 대뜸 애를 무슨 짐짝처럼 데려와서 갑자기 키우자고 했잖아.”
아침에 이은지가 일어난 뒤에 묻자, 이은지는 오히려 황당하다는 듯 날 보고 말했다.
너무 졸려서 기억이 희미하다.
드문드문 연탄과 무슨 대화를 나눈 것도 같은데…….
「“으우에이에에.”」
연탄이 이상한 소리를 냈고, 내가 연탄을 흔들흔들했다는 것만 또렷하다.
하지만 이제 와 들인 녀석을 내쫓자니 그것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뭘 봐, 인마.』
그냥 내쫓을까.
이 녀석은 내가 일어난 뒤에는 이미 터줏대감처럼 거실 한구석.
그것도 가장 해가 잘 드는 곳에 이은지 옷을 깔고 제 자리를 잡은 지 오래였다.
그나저나 저거 이은지가 잠옷으로 자주 입던 옷인 것 같은데.
“너, 저 옷 괜찮은 거 맞냐?”
“응? 아, 괜찮아. 귀엽잖아.”
지금 와서 입겠다고 해 봐야 이미 연탄의 검은 털에 초토화가 돼서 입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생긴 새 가족, 연탄이었다.
고양이에 대해선 길 고양이밖에 몰랐던 우린 대표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은 예상외로 흔쾌히 허락했고, 잠시 후.
대표님이 챙겨 온 켄넬의 도움을 받아, 연탄을 데리고 동물 병원으로 향했다.
“냨!”
사람 말을 하길래 이런 것도 잘 아는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 듯. 연탄은 검사 중 화들짝 놀라며 번쩍 눈을 떴다.
검사 중에는 면봉으로 엉덩이를, 그러니까…….
항문을 찌르고 나오는 그런 검사가 있다.
“아이쿠, 미안하다. 많이 놀랐니?”
“햐―악!”
“하하, 다했단다. 다 건강하네요. 성격도 고집도 꽤 있는 녀석인 것 같은데―.”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는지, 연탄은 수의사 선생님을 이마에 주름이 질 정도로 노려봤다.
표정만 봐선 당장이라도 한마디 뱉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덕분에 나한테는 예상치 못한 복수 타임이었다.
수의사 선생님이 좋게 이야기를 했음에도 연탄에게 그다지 위로는 안 되는지, 연탄은 이후로 동물 병원에서 나올 때까지 이은지 겨드랑이 틈에서 얼굴을 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병원비와 모랫값은 모두 대표님이 우리한테 매달 주시는 용돈에서 해결하기로 약속했다.
곧, 우리 책임이라는 말이었다.
“여기요.”
태연한 척 표정을 유지하며 카드를 내밀었지만, 손은 솔직하게 덜덜 떨렸다.
이렇게 비싼 줄은 몰랐다.
심지어 대표님은 ‘여기가 싼 편이다’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동물 병원 검사가 끝난 뒤엔 이은지는 토라진 연탄을 데리고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난 대표님과 함께 이것저것 필요한 용품을 사러 대표님이 자주 다닌다던 가게로 향했다.
“개 사료보다 고양이 사료가 비싸네요…….”
“고양이한테 개 사료를 먹이면 영양실조 올 정도로 필요한 양이 다르거든.”
“모래는 꼭 써야 하는 건가요…….”
“그럼, 넌 화장실 없는 집에 평생 살라고 하면 살 수 있겠냐.”
“그, 그건 좀 그렇죠. 그럼 꼭 이 모래 말고도 많은데…….”
“아무 모래나 쓰면 병원비는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나가고 집은 모래 먼지 때문에 개판 난다.”
직접 병원비나 용품값을 다 계산하는데, 가격을 들을 적마다 뒷머리가 다 쭈뼛 섰다.
이게 한 번만 나가는 돈이 아니라는 것에 또 한 번 적잖이 놀랐다.
……한 생명이 늘었다는 게 실감이 날 정도로 무게가 느껴지는 금액이었다.
그리고 다가온 그날 저녁.
연탄 이 자식은 은근슬쩍 내가 잠결에 기억이 안 난다는 걸 이용해서 빠져나갈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띄엄띄엄하던 기억 퍼즐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돌아왔다.
무엇을 조건으로 이 녀석을 키우기로 했는지도 말이다.
“야, 연탄.”
“냐, 냐옹.”
“약속한 건 지키셔야지.”
“냐옹.”
지금 이은지는 대표님한테 연탄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이야기를 듣기 위해 회사 사옥으로 가 있었다.
즉, 이 녀석의 편은 없다는 말이다.
도망치는 연탄의 목덜미를 쥐어 들자, 노란 눈이 나를 안 보고 다른 곳으로 또르르 굴러간다.
“말해.”
“냐옹.”
“…….”
자꾸 평범한 고양이인 척하는 이 녀석을 들고, 난 조용히 욕실로 향했다.
“야, 연탄.”
“냥?”
“너 ‘냥빨’이라고 아냐?”
“…….”
“그 꺼먼 털 하얘질 때까지 빨아 버리는 수가 있다. 생각 잘 해.”
노란 눈에 지진이 일었다.
“아, 뭐 대답 안 하신다면 반신욕부터 가시죠.”
『지, 집요하네! 거, 허! 참!』
“그러니까, 좋게 말로 할 때 말했으면 됐잖아.”
『일단, 익, 이거나, 놔 봐!』
연탄은 발버둥 치며 말캉한 앞발을 휘적였다.
의심이 되긴 했지만, 거래할 생각은 있는 것처럼 보이기에 일단은 녀석을 놓아 줬다.
하지만 놓아 준 즉시 연탄은 협상을 결렬 내고 이은지 방으로 튀어 갔다.
“이 자식이.”
난 연탄을 붙잡기 위해 이은지 방으로 향했다.
아니, 정확히는 향하려던 그때였다.
『이, 이게 뭐냐!』
연탄은 뭐 못 볼 거라도 본 듯 기겁하며 이은지 방을 뛰쳐나왔다.
“왜.”
뭘 봤나 싶어서 호기심에 문을 열자, 펼쳐진 건 평소와 다름없는 돼지우리였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향기?
킁킁거리며 향기에 집중하자, 짙은 라임, 레몬 등등 온갖 상큼한 냄새가 겹쳐 있는 시트러스 향 방향제인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자, 연탄은 앞발로 코를 막은 채 이쪽을 쏘아봤다.
“그러게, 누가 들어가래?”
놀리려고 말을 던진 건데,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다.
『뭐, 뭔데. 뭐.』
“말 안 하면 이은지 방에서 못 나오게 한다.”
협박 맞다.
연탄은 검은 털을 바짝 세우더니 그것만큼은 싫다는 걸 본능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다, 다는 말 못 해.』
“니가 털어놓을 수 있는 거라도 다 좀 털어놓으라고.”
『그건 싫어.』
살짝 욱해서 욕이 튀어 나갈 뻔했지만, 곧 고지가 눈앞이라 생각해서 겨우 참아 냈다.
“그럼, 이것만이라도 알려 줘.”
『뭐.』
“자고 일어났을 때든, 언제든, 알고 보니 모든 게 꿈이라든가. 너도 환각이었다든가. 이런 X같은 상황은 안 생기는 거지?”
『네가 그때 그, 그걸 뭐라고 부르냐?』
“뭘, 회귀 전?”
『아무튼, 넌 이제 그때로 네가 가고 싶어도 못 가.』
듣던 중 희소식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어떻게’라는 건 묻지 마. 그건 안 알려 줘.』
“힌트만 줘.”
『힌트? 음, 바꿨어. 끝.』
“바꿔? 뭘?”
『뭐 들었냐? 끝이라니까. 넌 누구 덕분에 그냥 얻어걸린 거니까 새 인생이나 즐기셔.』
연탄은 수상쩍게 반쯤 뜬 눈을 끔뻑이며 답했다.
의문만 더 늘어난 힌트였지만, 그걸 믿고 말고는 내 마음이었다.
나는 이게 거짓말이라도 좋았다.
「“그때로 네가 가고 싶어도 못 가.”」
적어도 얘는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 * *
하루아침에 생겨 버린 새 가족 연탄 때문도 있었지만, 곧 발표할 두 곡을 동시에 준비하다 보니 정신없는 매일이 이어졌다.
오늘은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다녀올게, 연탄아!”
“먀―.”
“간다.”
“…….”
연탄은 사람 차별이 매우 심하다.
연탄과는 그때 답을 들은 이후, 딱히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은지가 없을 때면 나한테 종종 『야, 나 배고파.』라던가.
『야, 내 화장실 좀 치워. 더럽잖아.』 같은 말은 하긴 하는데…….
뭐지, 생각하다 보니까 열 받네.
“저 고양이 자식―.”
“왜 연탄이한테 성질이야.”
“먀옹!”
은지가 화를 내자, 거기에 ‘맞아!’라고 외치듯 연탄이 울음소리를 보탰다.
이 집의 주인은 인간인데, 떠올려 보면 저 연탄을 떠받드는 모양새다.
밥 줘, 물 줘, 변 치워 줘, 간식 줘.
그뿐만 아니라 털 난리까지 장난이 아닌 수준이라 청소도 훨씬 더 자주 하게 됐다.
어지간하면 돼지우리에 살던 이은지도 깨끗해질 정도였다.
연탄이 들어가기 싫어하다 보니 시트러스 향 방향제도 버리고, 은지는 갑자기 방 청소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던데, 그 탓에 한동안 또 불안하긴 했었다.
다행히 최근 이은지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전에 비해서는 깨끗해지긴 한 것 같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에는 긍정적인 변화였다.
그리고 여전히 은지는 연탄이 말을 한다는 걸 안 믿는다.
‘저런 녀석이 회귀한 건 어떻게 믿었나 몰라…….’
연탄 놈과의 일로 안 그래도 생각할 것들이 많은 내 머리는 최근 더 ‘열일’ 중이다.
* * *
두 곡
차가 항상 다니던 셀라스 숍에 도착했다.
의욕이 가득한 강미주 원장님의 손에 이끌려 빡센 세팅을 마치고, 머리에 반짝거리는 여러 개의 핀을 달고 오랜만에 풀 세팅 상태로 다시 차에 올랐다.
<이 길 위>의 뮤직비디오는 2D, 3D 외 다양한 장르의 결합으로, 이은지랑 난 중간에 아주 잠깐 얼굴을 비추는 정도다.
‘말이 ‘잠깐’이지.’
실상 촬영 자체가 짧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은 <이 길 위>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때와 같은 차림새였다.
이은지는 어깨가 드러나 있는 흰 블라우스와 검은 정장 바지 정도로, 머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구불거렸다.
내 옷은 아직 완성된 옷차림은 아니었다.
머리는 그나마 완성되긴 했는데, 보기엔 어젯밤 술 한 잔이라도 걸친 듯 너저분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게 포인트라며, 실제로는 원장 강미주 선생님이 굉장히 섬세하게 만진 머리였다.
옷차림은 평범한 흰 티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
완성된 차림으로 가는 이은지랑 달리 난 도착하면 갈아입어야 해서, 지금은 이 정도였다.
의상은 같다지만, 오늘은 <이 길 위>가 아니라 <해가> 뮤직비디오 촬영이 잡혀 있는 날이었다.
차에 오르자, 근 한 주 만의 연습이 아니라 일다운 일을 하러 가는 것 같아서 조금 기분이 들뜬다.
차가 속력을 내서 도착한 곳은 회귀 전에도 본 적 없던 낯선 한 펜트하우스였다.
은지는 가장 먼저 마주한 수영장에 입을 떡 벌리며 감탄했다.
“와, X친, 집 안에 수영장이랑 앞마당 다 있네.”
“여기 살면 밖에 안 나가도 되겠다.”
“어우, 안 답답해?”
“난 좋은데.”
내 대답에 이은지는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어 댔다.
낯설기만 한 호텔 같은 내부에 입이 떡 벌어지는 것도 잠시.
“……와.”
“우……와.”
이번엔 다른 의미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주변에 세팅된 조명과 카메라를 보아하니 오늘 촬영을 할 세트장인 것 같긴 한데…….
꼭 하우스 파티가 열렸던 곳 같았다.
지저분하다는 말이었다.
나뒹구는 술병과 곳곳에 버려진 감자 칩, 널브러진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컵까지.
거기다 진짜 술이나 음료수를 흘린 자국인지 왠지 찐득할 것 같은 색색의 자국들까지.
“와, 진짜 파티 열렸던 곳 같네.”
“진짜 파티를 벌였던 곳이니까.”
“……?”
“파티가 끝난 뒤면 말 그대로 파티 벌이고 조금 치워서 다듬는 게 더 느낌 있잖아.”
당황한 기분을 애써 감추며 옆을 돌아보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김철수 PD님?”
“응. 은호 씨, 오랜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