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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35화 (135/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35)

“와, 어떡하지.”

“그러게. 어떡하지.”

은지가 먼저 계단을 보고 한탄했다.

나 역시 마음은 같았다.

‘어쩌겠어.’

쉬기 위해서는 올라가야만 했다.

무거운 다리를 난간을 손으로 잡으며 온 힘을 지탱한 채 한 걸음씩 올랐다.

2층에 도달한 순간, 난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목을 들 힘도 없어서 난 땅바닥만 바라보며 쳐져 있었다.

다리가 파업이라도 해 버린 것 같았다.

“냐.”

그때, 고양이 울음소리에 귀가 뜨였다.

“연탄아!”

“냐옹.”

은지가 연탄을 반기며 이름을 불렀다.

연탄은 ‘연탄’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안 드는지, 짜증 섞인 ‘냐―’ 울음소리를 흘렸다.

“아, 잠시만.”

은지는 연탄을 쓰다듬다 말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게 운동량의 차이인지, 이은지는 아직 앉았다 일어나는 게 가능할 정도로 기운이 남은 모양이다.

‘어우, 대단하다. 대단해.’

감탄밖에 안 나오는 체력이다.

반면 난 고개를 드는 것도 힘들어서 느리게 겨우겨우 목을 젖혔다.

“으, 배 아픈데, 변기 이제 뚫렸겠지?”

웬 변기.

고개를 젖힌 채, 눈알만 굴려 이은지를 봤다.

「“X됐어. 변기 막혔어.”」

아, 한 박자 늦게 은지가 아침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은지는 연탄을 내버려 두고 곧장 집 안으로 향했다.

옥상에는 기운 빠진 나랑 변기보다 뒤로 밀려 이은지한테 버림받은 연탄만 남아 있었다.

『뭘 봐.』

연탄이 말했다.

시비에 가까운 어조였다.

난 황당함에 헛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넌 왜 이은지한테는 온갖 아양만 떨고, 말은 안 하냐?”

『그건 내 맘이니까 신경 끄셔, 그나저나 너는 네 문제가 더 궁금한 거 아녔냐?』

“속 시원하게 말해 줄 거 아니면 그냥 애초에 말을 하지 마.”

요즘 안 그래도 생각이 많은데…….

이 자식 때문에 당장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더 늘어나는 건 질색이었다.

『그래. 그럼, 말 안 할게.』

연탄이 까만 꼬리를 살랑거리며 슬금슬금 이쪽으로 다가왔다.

막상 안 한다고 하니까 또 그것대로 거슬린다.

‘이 녀석한테 휘둘려서 이불킥에 이은지 앞에서 개X도 당하고…….’

어제저녁, 오늘 아침. 그리고 방금까지 포함하면 세 번.

와중에 녀석의 꼬리 끝이 약이라도 올리듯 까딱거리고 있었다.

마침 사정거리 안에도 있겠다.

난 홧김에 방심하고 있는 검은 털 뭉치의 겨드랑이에 손을 밀어 넣었다.

『야, 뭣!』

몸이 갑자기 번쩍 들리자 놀란 건지 연탄의 노란 눈이 커다래졌다.

뒷발로 발버둥 치려는 걸 보며 때를 놓치지 않고 녀석을 흔들었다.

“말해, 말해, 말하라고.”

『으우에이에에.』

연탄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이거 놔! 시끼야!』

“아!”

연탄은 내 손등에 얕은 생채기를 낸 뒤, 가뿐히 허공에서 뛰어내렸다.

순간 따끔거리긴 했지만,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아프진 않았다.

햐악!

연탄은 털까지 바짝 세우며 화를 냈다.

두 번은 당할 생각이 없는지, 이제 손이 닿지 않을 지점까지 멀어져 있었다.

『얌마, 그렇게 알고 싶어? 알려 줘?』

“어.”

『그럼 키워.』

“뭘.”

『나.』

“……?”

뭐라는 거야?

“뭐라고?”

『날 키우라고.』

순간 졸려서 잘못 들은 건가 싶었는데, 아닌가 보다.

……이게 말로만 듣던 집사 간택인가?

* * *

덜컹.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은지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까지 화장실 청소라도 하고 있었는지, 은지의 손에는 화장실 청소 솔이 들려 있는 채였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방금 막 집 안에 들어온 은호 때문이었다.

“뭐, 뭐 해?”

은호는 현관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양손에는 축 늘어진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들고 있는 채였다.

살짝 무섭기까지 한 분위기에 은지가 목을 빼며 질겁하듯 물었다.

“뭐 하냐니까?”

“우리 얘 키우자.”

“뭐?”

안 그래도 어이없던 은지의 표정이 더 구겨졌다.

“언제는 질겁하더니……. 갑자기?”

“얘가 내가 회귀한 이유를 알고 있대.”

“뭐?”

“그거 알고 싶으면 자기 키우라는데.”

은지의 눈빛은 어이가 없는 듯했다가 점점 화를 내는 듯하더니 이내 걱정스럽게 변했다.

“……이, 이은호, 어디 아파?”

평소라면 어떻게 정리라도 해서 말을 했을까.

하지만 지금은 안무 연습으로, 말 그대로 조져진 탓에 그럴 정신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은호는 손에 힘이 풀린 듯 연탄을 떨어뜨렸다.

“냥.”

연탄은 활기차게 뛰어내리며 은지에게 달려갔다.

쿵.

그동안 은호의 무릎이 바닥을 찍었다.

다가오던 연탄을 바라보던 은지의 시선이 ‘쿵’ 소리에 한순간 다시 은호에게 다시 돌아갔다.

은지의 눈이 커졌다.

“이은호! 야, 이은호!”

은호의 상체가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고.

그 모습에 당황한 은지는 청소 솔도 내던지고 다급하게 달려갔다.

“……잡았다. 이 X친.”

다행히 은호가 바닥에 얼굴을 박기 전에 은지가 먼저 은호의 목덜미를 잡았다.

천만다행이긴 했다만, 순간 심장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큰 문제인가?

걱정하던 그때였다.

“푸후우…….”

은호의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소리를 보아하니 단순히 뻗은 모양이다.

하긴 아무리 그저께 바닥에서 잤다고는 해도 그간 피로를 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놀랐잖아, 미친 X아! 하, 씨.”

쫙!

은지는 홧김에 은호의 등짝을 내려쳤다.

“씨X, 진짜.”

일부러 화를 식히려고 욕한 거였는데 본의 아니게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살짝 눈물이 맺혔던 건지 눈매 끝에 거슬리는 축축함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연탄이가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은지는 민망한 기분에 아무것도 아닌 척 눈물을 대충 닦아 냈다.

은호는 말 그대로 제대로 뻗어 버렸는지 움찔거림조차 없었다.

최근 일정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였다.

하루하루가 흐르면서 이은호가 회귀했다던 ‘그때’의 기억들이 대부분 돌아왔다.

이은호가 쓰러진 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은호!”」

그날도 딱 오늘처럼 이렇게 쓰러졌다.

당시 이은호의 매니저였던 도진인가, 도전인가.

이은호 휴대폰을 꺼내, 내가 지저분해서 싫어하던 매니저한테 전화를 걸었다.

「“어.”」

「“누구야?”」

「“아, 은호요.”」

매니저 오빠는 다행히 마침 퇴근하려던 순간이었던 건지, 건너편에선 대표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어? 왜 여자 목소리가, 아, 혹시 은지 씨?”」

「“은지가 전화했어?”」

대표님 목소리가 들리자, 불안했던 기분이 파도처럼 몰려오며 눈물로 터져 나왔다.

「“끅, 이은, 호, 가, 끅, 문, 앞에, 끅…….”」

전화가 끊어지고 채 몇 분이 지나기 전에 매니저 오빠가 달려왔다.

이은호는 매니저 오빠 등에 업혀서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난 조용해진 집에서 혼자 남아 이은호를 기다렸다.

이은호는 그날, 새벽이 넘어갈 시간이 되었음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이 밝고, 내가 녹음을 마치고 왔을 때도 이은호는 집에 없었다.

또 하루가 더 지나고, 방송 MC를 보고 온 그다음 날에도 이은호는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나 ‘설마’하는 그 불안함이 나를 더 두렵게 만들었다.

이은호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집이 너무 조용했다.

일부러 건반을 더 두드리기도 하고, 만든 비트들을 계속 틀어 놓기도 했다.

그날은 불안한 마음에 일기도 두 번이나 썼다.

「얼른 와라. 오빠. 내가 죽어도 너는 살아야지. 망할 새끼야.」

그때 그 말을 쓴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얼른 오라고 쓴 건데.’

정말 이은호만 두고 가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애초에 내가 그렇게 한순간에 세상을 떠날 거라는 것도.

이은호가 한심하게 내 일기장을 생명줄처럼 붙잡고 있는 모습.

“아, 씨.”

괜히 그때 생각나서…….

신경질적으로 눈물을 대충 엄지로 훑어 내고 이은호 목덜미를 붙든 채 질질 끌며 거실 중앙에 내려놨다.

신발은 애초에 들어올 때 뒤꿈치 부분을 밟아서 벗겼다.

해 줄 건 다 해 준 것 같아서 곧장 방으로 가려다, 문득 아침처럼 또 투덜거릴 것 같아서 이번엔 이불까지 대충 덮어 줬다.

‘덮어 줬다’라기엔 개어진 형태 그대로 이은호 등에 올려 둔 정도이긴 했지만, 아무튼.

나는 해 줬다.

나중에 정신 차리면 본인이 알아서 덮겠지.

“냐앙.”

옆을 보자, 어느새 연탄이 옆까지 다가와서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검은 털이라 그런가.

바깥에서 오래 돌아다녔을 텐데도 신기하리만큼 연탄이는 깨끗해 보였다.

“그루밍 열심히 하나 보네, 우리 연탄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연탄이 고로롱 소리를 내며 몸을 빙글 뒤집었다.

‘까만 털, 노란 눈…….’

왠지 그때 본 고양이도 연탄이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게다가 크기가 적어도 연탄이보다 조금 더 작았던 것 같은데, 아닌가.

검은 고양이는 비슷하게 생겨서 헷갈린다.

물론 사람 얼굴도 못 외우는 내가 고양이 얼굴이라고 외울 수 있을 리가.

“연탄아, 우리 언제 본 적 있었어?”

은지의 다정한 물음에 연탄은 기대감이 가득 들어찬 노란 눈을 반짝이며 은지를 바라봤다.

* * *

이은호가 회귀하기 전, 그 당시.

그리고 내가 죽기 전 그 당시.

한 고양이를 만났다.

반질거리는 까만 털과 노란 눈, 연탄이와 똑같은 털과 눈 색.

갑자기 문 앞에서 마주친 낯선 손님이었다.

뭐라도 챙겨 주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땐 안타깝지만 내가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고양이를 키우시는 대표님이라면 뭔가 알지 않을까.

“뭐야, 너 아직도 집이야?”

“금방 출발할 거였어요! 그보다, 대표님 고양이한테 뭐 줘야 해요?”

“뭔 고양이?”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자 대표님은 찬찬히 설명을 이어 갔다.

사람이 먹는 참치 통조림, 우유 등등. 절대 주지 말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 뭘 줘야 해요?”

“물만 많이 챙겨 줘.”

대표님의 답은 예상과 달리 굉장히 간단했다.

“물만 줘도 돼요?”

“혹시나 간식을 많이 얻어먹는 녀석이면 염분 수치가 엄청 높을 테니까. 괜히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잘못 챙겨 주면 상태만 더 나빠지거든. 그리고 길고양이들한테 제일 부족한 건 깨끗한 물이기도 하고.”

속사포 같이 쏟아지는 설명에 살짝 혼미할 지경이었다.

어쨌든 물만 챙겨 주라고 했으니까.

난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서 널려 있는 그릇 중에서 제일 깔끔한 걸로 골라 물을 따랐다.

너무 차가우면 또 혹여나 어딘가에 나쁠까 봐, 적당히 미적지근한 새 생수통을 깠다.

“천천히 먹고 가.”

“냐.”

달그락거리는 물그릇을 자리에 놓자, 고양이는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듯 울음소리로 답했다.

뿌듯한 기분을 안고 1층으로 향하자, 아래에는 매니저 오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또 작업하다 저기서 잔 거야?”

“응.”

“잠은 집에 들어가서 자라니까.”

“저기도 예전엔 집이었는 걸, 뭐.”

출발할 땐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고양이를 만났다는 것만 제외하면 그랬다.

끼이익.

몸이 한쪽으로 쏠렸다.

안전띠를 등 뒤로 넘기고 있던 나는 그대로 강하게 차 창문에 머리를 박았다.

무슨 일인지는커녕, 정신을 차릴 겨를조차 없는 찰나였다.

정신이 잠시 들어 눈을 떴을 땐, 부풀어 오른 에어백 위에 머리를 댄 채 쓰러진 매니저 오빠가 보였다.

귀는 시끄러운 이명만 들리고, 온몸은 유리 파편이 곳곳에 박힌 듯 욱신거렸다.

금방이라도 감길 것 같은 눈꺼풀을 겨우 들어 주변을 둘러보던 그때였다.

“먀―옹, 먀―옹.”

먹먹하던 귀 새로, 나는 멀지 않은 곳에서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목이 쉬었음에도 마치 누구든 이곳을 봐 달라는 듯 서럽고도 서러운 울음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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