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32)
‘두둠칫’ 포즈를 위해 높이 든 한 팔이 바르르 떨렸다.
답답한 마음에 일단 이렇게 직접 표현한 건데, 순간 내 모습을 깨닫자 갑자기 수치심이 몰려 들었다.
난 높이 들었던 팔을 천천히 내리면서 자세를 갈무리했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괜찮―.”
“X쳐. 조용해. 아무 말도 하지 마.”
“어, 어어. 알겠어…….”
차라리 평소처럼 웃을 것이지.
은지는 진심으로 걱정스럽게 보며 대답했다.
젠장, 이건 다 그 망할 고양이 때문이다.
* * *
이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은지는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고, 난 먼저 나가 있기 위해 집을 나서려던 그때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 했던가.
현관문을 열자, 이은지가 준비해 둔 박스 집 앞에 그 검은 고양이가 식빵을 굽고 있었다.
‘…….’
‘…….’
샛노란 눈과 정확히 마주친 그 순간.
『하이?』
고양이가 검은 식빵 안에서 한 발을 꺼내 들며 인사했다.
왠지 늙은 고양이가 ‘뮈야아―옹’거리면서 성질낼 때 같은 어제 들은 그 목소리였다.
“……이, 이, 이은지! 야!”
그사이 어딘가로 사라질까, 고양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다급하게 이은지를 불렀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밝힐 절호의 기회였다.
그동안 검은 고양이는 꺼낸 발로 여유롭게 세수를 한 뒤, 다시 식빵 속으로 발을 쏙 집어넣고 있었다.
“왜.”
잠시 후, 이은지는 검은 반바지에 불도그 캐릭터가 그려진 펑퍼짐한 가오리 티 차림으로 방에서 나왔다.
“아까 말했던 고양이 여기 있다고. 그 까만 고양이.”
“오. 오늘은 일찍 왔네?”
“냐―.”
이은지를 향해 고양이가 얌전하게 울었다.
이은지가 현관을 나오자, 고양이는 이은지 다리에 얼굴을 부딪치며 애교를 부려 댔다.
방금까지 말을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고양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녀석을 황당하게 바라보고 있던 그때.
“잠깐만 기다려.”
“뭘 기다려.”
“너 말고, 인간아.”
이은지는 갑자기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온 이은지 손에는 웬 사료가 담긴 밥그릇이 들려 있었다.
“뭐야. 너 사료는 어디서 났어.”
“대표님이 주셨어. 얘 챙겨 주라고.”
못 들은 이야기라, 고양이에게 밥그릇을 내어 주는 은지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이은지는 내 생각을 잘 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일부러 말 안 했어.”
“왜?”
마침 궁금해하고 있던 부분이라 좀 놀랐다.
“고양이 안 좋아하는 거 같길래.”
“내가?”
“어. 니가.”
고양이만 놓고 보자면, 솔직히 좋아하는 편에 가까웠다.
물론 이 이상한 검은 고양이는 예외지만.
“어딜 봐서?”
“그때 얘 보고 비명을 지르질 않나, 엄청 살벌하게 노려봤었잖아.”
“그건, 그땐…….”
창백한 이은지가 다시 나타나서 놀란 탓이 컸다.
이은지는 검은 고양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소름 돋을 정도로 다정하게 말했다.
“쟤 이상해. 갑자기 네가 말을 할 수 있대, 애기야.”
“냐―.”
속이 안 좋아졌다.
“으웩.”
이은지는 소리를 들었는지 이쪽을 싱긋 웃으며 바라봤다.
꼿꼿하게 세운 중지랑 같이.
‘확 깨물어 버릴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쪽을 노려보는 샛노란 눈이 신경 쓰여서 참았다.
따지고 들고 싶은 게 참 많았는데, 이구름 선생님 수업이니까 참는다.
“수업 늦어.”
“아, 응. 가자.”
이은지는 쪼그려 앉아 있다가 무릎에 힘을 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만 좀 씻고 나올게.”
“그러던가. 난 먼저 내려간다.”
“어어.”
은지가 집 안에 들어간 뒤. 난 밥을 먹고 있는 검은 고양이를 잠시 노려봤다.
이 녀석도 밥 먹는 걸 관두고 나를 빤히 본다.
묘한 기류가 흘렀다.
“너.”
“…….”
“정체가 뭐야.”
예전이라면 단순히 내 환청이라 여기고 넘어갔을 일이었다.
창백한 이은지가 실제 이은지라는 걸 알게 되기 전이라면 아마 이번에도 그랬을 거다.
검은 고양이는 내 질문을 무시하고 다시 식사를 이어 갔다.
사료 한 알 한 알을 씹는 바삭한 소리만 났다.
“고양이, 너 말할 수 있잖아.”
“…….”
“아까도 ‘하이’ 하면서 발도 들었고, 어젠 이상한 포즈도 취했었잖아, 인마.”
혹여나 집 안에 있는 이은지가 들을까 목소리를 죽이며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밥을 먹던 검은 고양이의 귀 한쪽이 파닥였다.
왠지 ‘저리 꺼져’라는 의미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이렇게 나오시겠다…….’
당장 이놈 앞에서 돗자리 펴고 앉아서 붙들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건 많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일정이 있다.
그것도 늦으면 10kg 모래주머니 형벌에 처하는 이구름 선생님 수업 일정.
‘이구름 선생님만 아니었으면 붙들고 물었을 텐데…….’
이은지 말에 따르면 이 녀석은 일주일에 여러 번 이렇게 밥을 먹으러 온다 했었다.
일단은 나중에 이야기해도 되니까.
오늘은 그냥 모른 척 계단 방향으로 향했다.
솔직히 어떤 이야기를 들을지 몰라서 피하려는 마음도 아주 약간, 있긴 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였다.
『으잉? 야, 인마, 왜 물어봐 놓고 대답은 안 들어?』
마음 접고 먼저 내려가려고 했더니 이번엔 약 올리듯 녀석이 날 붙잡았다.
저 고양이가 사람 놀리나.
“바로 대답하는 거 아니면 안 듣고 말아.”
『오호, 짜슥, 승깔 잉네!』
살짝 신경질이 더해진 말투였다.
“곧 이은지 나오는데 너 이은지 앞에선 말 안 할 거잖아.”
“냐옹.”
고양이 녀석은 갑자기 귀를 세우더니, 다시 평범한 고양이처럼 울어 댔다.
“뭐야.”
갑자기 왜 이러나 했더니, 잠시 후.
쾅, 3초도 채 지나지 않아 이은지가 문을 열고 튀어나왔다.
“뭐야, 아직 안 내려갔어?”
“……어.”
그나저나 묻는 이은지 표정이 어두웠다.
“뭔 일 있냐?”
“어. X됐어. 변기 막혔어.”
손 씻고 온다는 놈이 변기는 왜 막고 와.
딱히 입 밖으로 낸 말이 아니었는데 이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이은지가 소리쳤다.
“신호가 오는데 어쩌라고!”
“……더러운 소리 그만하고 일단 갔다 와서 뚫어.”
“많이 늦었나.”
“아직은 천천히 가도 괜찮은 정도. 모래주머니행은 피할 듯.”
일부러 이쪽을 빤히 보는 고양이는 모른 척 이은지한테만 대답했다.
“다녀올 게, 블랙아!”
“냐―.”
블랙?
“이름도 지었냐.”
“어. 까마니까.”
“까마면 까망이라고 하지. 왜.”
“음. 별로, 취향 아니야.”
“먀―.”
흐음.
이은지는 팬 닉네임을 대뜸 ‘응가’라고 던질 때도 그랬듯, 작명할 때면 나름 본인만의 포인트가 있었다.
한편, 고양이는 블랙이라는 이름이 좋은 듯, 왠지 표정이 기뻐 보였다.
그리고 난 그게 조금 거슬렸다.
「“흐엉, 저 멈무이 나 싫은갑다.”」
「“왜 집에 찾아온 괭이들은 죄다 오빠한테만 가냐.”」
어릴 때부터 그랬지만, 이은지는 동물들 기분을 파악할 줄 모른다.
개는 이은지가 자꾸 꼬리를 잡아서 피했고, 고양이들은 싫다고 하는데도 이은지가 다가가니까 싫어했었다.
그런데도 이은지는 동물을 어지간히도 좋아했다.
반면, 나는 이은지처럼 동물을 쫒아다니는 타입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도 너 안 건들 테니까, 너도 내 구역을 지켜 줘’라는 느낌.
하지만 이편이 오히려 동물들에게는 좋았던 건지 정신 차리고 보면 이은지를 피해서 나한테 들러붙어 자는 경우가 많았었다.
‘흐음―.’
뻔뻔히 이은지한테 머리를 비비는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나름 소심한 복수를 할 방법을 말이다.
저 자식 때문에 나도 밤새 이불만 차 댔으니까.
“야, 이은지.”
“왜.”
“고양이 이름, 연탄은 어때.”
“연탄?”
“먀, 먀―옹.”
이은지가 흥미 있다는 듯 반응하자, 고양이가 다급하게 울었다.
“아니면 석탄이라던가.”
“석탄, 연탄, 오. 연탄, 연탄.”
“먀앙!”
“봐, 쟤도 마음에 든대.”
“먀옹.”
“꼭 하고 싶단다.”
고양이는 성질이 난 듯 날이 선 눈빛으로 날 노려봤다.
조금 전 날 놀릴 때만 해도 왠지 약 올리던 표정과는 전혀 다른 눈빛과 표정이었다.
고양이를 비웃으며 바라보자, 고양이의 검은 꼬리가 바닥을 탁탁 때렸다.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는 행동이었지만, 나한테는 좋은 먹잇감이 됐다.
“야, 봐라. 꼬리까지 흔들잖아.”
“오! 그러게, 블랙이 연탄 할래?”
탁탁탁탁탁!
검은 꼬리가 신경질적으로 바닥을 내려쳤다.
‘어쩌냐.’
이은지는 개처럼 고양이도 꼬리를 흔들면 기분이 좋다는 줄 알고 있거든.
녀석은 이어서 입꼬리를 뒤로 밀며, 곧 하악질을 할 것처럼 이를 드러냈다.
억울하시면 나한테 하듯이 말을 하던가.
“이은호, 연탄이가 웃는 거야?”
“어. 블랙보다 연탄이 훨씬 마음에 드나 봐. 야, 근데 시간 한번 봐 봐.”
“시간? 헉, 이제 출발해야겠다. 안녕! 나중에 봐, 연탄아!”
이은지가 고양이 아니, 연탄에게 인사하자, 연탄은 충격이라도 받은 듯 입을 떡 하니 벌리고 있었다.
‘내가 이겼다, 하하. 어떠냐, 이 연탄 자식아.’
연탄을 비웃어 주며 이은지를 뒤따라서 신나게 2층을 뛰어 내려왔다.
‘…….’
이상한 고양이 한 마리한테 이겼다고 좋아하다니…….
자괴감이 이긴 기쁨보다 더 커지면서 기쁨은 그다지 오래가진 못했다.
‘요즘 나 진짜 유치하게 도대체 왜 이러냐…….’
* * *
이은지랑 같이 클라우드의 연습실로 가는 길.
“오늘 안무가 ‘해가’였나?”
“어.”
“‘해가’가 앨범에서 뭐였지?”
“아침 부분.”
“어, 맞다, 맞다. 으!”
이은지는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며 말을 이었다.
“으으, 이건 그래도 제대로 활동할 수 있겠지?”
“그럼.”
“선배님하고 같이 한 거에 대해서 불만은 없는데, 역시, 무대를 못 하는 건 아쉬웠거든. ‘Wise’ 막방도 취소돼 버렸고…….”
‘연탄’ 생각에 정신이 팔려 있던 것도 잠시.
이은지가 던진 이야기는 연탄에 대한 생각이 날아갈 만큼 적잖게 거슬리는 주제 중 하나였다.
“이번에 못 한 만큼 뛰어야지…….”
“응.”
<더운 오후>의 뮤직비디오 공개가 있었음에도, E-UNG의 약 3주간의 일정은 한 회사의 반대로 인해 통째로 증발한 상황이었다.
* * *
쥐
마지막 방송도, <더운 오후>도 무대를 못 한다.
대놓고 말해서, <더운 오후>는 애초에 시작 전부터 망해 버렸다.
방송에 노출되지 않은 곡이 높은 순위에 자리를 잡기란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으니까.
곡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대부분 팬분들이 극찬했고, 팬이 아닌 사람들 역시 좋다는 소감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했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톡신 선배님들과 연관된 것.’
단체 톡방에서 선배님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TaKa는 최근 톡신의 개인 일정까지 크게 경계하고 있다 했다.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곧 있을 재계약을 이야기를 앞두고 톡신을 놓아 줄 생각이 없는 TaKa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박창석 대표님과 그 대표님의 소속사 가수인 우리.
톡신과 우리 E-UNG(이응) 관계를 언급하게 되면 대표님과 톡신의 과거 일은 자연히 다시 물 위로 올라오게 된다.
본인들을 정상에 올려놓은 이야기긴 하지만, 어쨌거나 적이 된 TaKa 엔터테인먼트의 입장에선 고까운 일일 뿐일 터였다.
하지만 기자들은 달랐다.
TaKa 엔터테인먼트와 NRY 엔터테인먼트 사이 떡밥이 던져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때 펑 터진 게 바로 <더운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