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30)
고양이
첫 계획과는 크게 달라진 생방송을 나름대로 잘 마친 뒤였다.
이은지와 난 대표님한테 끌려가다시피 붙잡혀서 저녁을 먹었다.
“너희는 그래도 카메라가 켜져 있는데, 내가 혹시나! 어? 우리 애들 사진을 미리 챙겨 둬서 다행이었지. 방송에서도 그렇게 싸우면―.”
잘못이 확실했기에 오늘만큼은 조용히 대표님의 잔소리를 들었다.
원래라면 카메라 앞에서 그런 실수는 웬만하면 안 했을 텐데, 오늘따라 이게 참…….
‘쩝.’
내가 생각해도 핑계를 대는 자체가 민망해서 차마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회귀했다고는 해도,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일까.
아니면…….
뒤바뀐 평온한 일상에 취해서 나도 모르게 점점 힘든 시절 동안 단단하게 세웠던 벽들이 허물어진 건가.
머리는 ‘이렇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행동으로 연결되고 유지하기까지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이러니까, 예능에서 연락이 와도 너희를 추천하기가 무서워. 아주 그냥 하루에 한 번은 꼭 서로―.”
“저…… 대표님, 죄송하지만 체할 것 같습니다.”
약 한 시간 하고도 40분간 쏟아졌던 잔소리 틈에서 현우 형님이 조용히 말을 얹었다.
구원의 손길이 따로 없었다.
평소에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 덕분일까.
“아이고. 이런, 벌써 두 시간이 다 됐구나. 이야기가 길었네. 밥 먹자. 그래. 앞으로 카메라 앞에서는 조심해. 알겠어?”
“네.”
“네.”
대표님은 형님의 한마디에 잔소리를 갈무리했다.
‘이, 이걸 막으셨어?’
‘매니저 오빠가 대표님 잔소리를 막았어?’
대답하면서도 이은지랑 난 놀란 눈으로 현우 형님을 돌아봤다.
항상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던 대표님이었는데, 현우 형님이 순식간에 중간층에서 대표님과 같은 층으로 이동한 순간이었다.
대표님은 약속을 지켰다.
마지막 말을 끝으로 우리는 정상적인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밥이 코로 들어오는 건지 귀로 먹는 건지 모를 지경이었는데, 이제야 맛이 제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까 진짜 삐졌냐?”
“삐졌…… 화난 거거든.”
“얼. E%한테?”
“E%한테 화난 게 아니라 니가……!”
“내가 뭐.”
“하, 됐다.”
‘니가’까지 말을 꺼내긴 했는데 차마 뒷말을 이어 갈 수가 없어서 그냥 흘러 넘어가는 척 한숨을 내쉬었다.
‘휴지를 붙인 게 잘못이다’ 같은 그 외의 여러 문장이 머리에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뱉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나같이 바보 같고 쪼잔해 보이는 데다, 그게 ‘잘못’이라기에도 애매해서.
짜증.
짝!
“아! 왜 때려!”
화풀이 겸 이은지 등짝을 내려치고 달렸다.
“저 미친…….”
사실 처음엔 장난처럼 도망쳤던 거였다.
하지만 잠시 뒤를 본 순간.
‘이 X새끼가 감히 날 쳐?’
뒤에서 웬 황소 한 마리가 맹렬하게 콧김을 뿜으며 미친 듯이 달려왔다.
난 진심으로 살기 위해 달렸다.
잠시 스쳤던 이은지 눈빛에 그 생각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은호, 잡히면 뒤질 줄 알아.’
이건 잡히면 진짜 어디 하나는 무조건 뜯길 것 같았다.
쾅!
“헉. 허억. 헉. 헉.”
회사에서부터 2층 옥탑방까지 미친 듯이 달렸다.
폐가 터질 것 같았다.
“문 열어! 이 미친X아!!!”
“동네 시끄러워!”
“문 열라고!”
“안, 안 때린다고 약속하면 엶.”
“…….”
약속하는 척이라도 하면 열어 주려는 마음이 1%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이은지는 대답이 없다.
“안 열어, X발.”
“X새끼야 니가 먼저 때렸잖아!”
“니가 먼저 놀렸잖아!”
“안 놀렸거든! 내가 뭐라고 놀렸는데!!!”
“니가……!”
어라?
생각해 보니까 얘가 놀린 건 아니네?
휴지로 때리긴 했지만, 솔직히 이건 내가 말 대신 평소처럼 행동으로 이야기를 전했으니까.
그래.
오해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리고 휴지도…….
없어져서…….
쾅!
‘옴마야.’
이은지 발길질에 알루미늄 문 아래가 휘었다.
기분 탓인가 싶어서 살펴보던 그때, 문 너머에서 살벌하게 깔린 이은지 목소리가 들렸다.
“셋 세기 전에 문 열어라. 진심으로 박살 내 버리기 전에.”
지난 경험담에 따르면, 저건 절대 거짓말이나 빈말이 아니다.
난 다급하게 머릿속으로 이 문을 연 즉시 내 방으로 튀어 갈 수 있는 노선을 그렸다.
“셋.”
이은지가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일단 신발을 먼저 벗었다.
“둘.”
찰―.
현관문 잠금장치를 엶과 동시에 광속으로 방에!
깍.
문이 열린 그 순간.
난 그대로 철퍼덕 방바닥에 엎어졌다.
문을 열자마자 이은지가 진짜 투우를 하는 황소처럼 내던진 탓에 생긴 사고였다.
“내가 니 수법에 한두 번 당한 줄 알아?”
다행히 얼굴이 깨지기 전에 급하게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고 버텼다.
덕분에 아픈 곳은 얼얼한 손바닥뿐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더 아파질 예정인 거 같다.
‘얘도 회귀 전 기억…….’
이은지도 회귀 전 나랑 지낸 약 7년이라는 시간을, 100%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는 걸 잠시 잊었었다.
7년.
회귀 전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서로 다른 활동 탓에 얼굴을 안 보던 시기 외에는 시도 때도 없이 싸우던 건 솔직히 지금이랑 비슷했으니까.
그러니까, 이은지는 내가 장난을 치고 보복을 피하고자 했던 온갖 수작을 이미 다 꿰고 있다는 말.
쫘악!
왠지 잠잠하다 싶던 그때.
뭔 가죽이 찢어지는 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뜨, 허……!”
뒤늦게 등에서부터 살가죽이 날아간 듯 강렬한 통증이 몰려왔다.
“쌤쌤이다. 흥.”
이은지는 협찬받은 하얀 하이힐을 조심스럽게 벗어 둔 뒤 홀가분한 걸음으로 제 방으로 들어갔다.
‘저건 손바닥이 근육으로만 이뤄져 있나,’
복수하고 싶었는데…….
충격이 살을 뚫고 내장까지 퍼진 듯 속이 다 욱신거렸다.
그렇게 엎어져 끙끙 앓았다.
* * *
‘어.’
정신을 차렸을 땐 날이 어둑해진 후였다.
스읍.
왠지 찝찝한 입가를 닦고 일어나자, 허리가 뻐근하게 비명을 질렀다.
아무래도 한동안 밤샘 작업의 여파인지, 엎어져서 누워 있을 때 그대로 잠들어 버렸나 보다.
거실도 이은지 방도 다 불이 꺼져 있다.
열린 방문 틈으로 보이는 이은지는 이미 대자로 뻗어 있었다.
그르르륵, 털털털털.
이은지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내 방 한구석에 박혀 있던, 이 집에 하나뿐인 선풍기는 대체 언제 꺼내 간 건지.
이은지는 이 한 대뿐인 선풍기를 회전은커녕 본인 방문 앞에 떡 하니 고정한 채 틀어 두고 있었다.
‘나쁜 X.’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은지는 방바닥에서 잠든 날 보고도 버려 둔 거다.
속으로 투덜거리긴 하지만 의외로 딱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거실에서 자는 게 예상치 못하게 괜찮은 수면법인지 평소와 다르게 악몽은커녕 꿈 하나 안 꾸고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났다.
“음.”
창밖을 보니 시간은 벌써 한밤중이었다.
고요한 집 분위기가 무서울 법도 한데, 우스운 일이다.
<더운 오후> 뮤직비디오의 여파인가.
밤마다 보이는 창백한 이은지와 함께 그때 지새던 밤들이 떠올랐다.
수면제도 사 올 수가 없어서 대신 매일 술 두어 잔을 마시고 잠들던 매일.
그때는 이은지 때문에 미칠 것 같았는데, 지금은 이은지 코 고는 소리에 긴장이 풀렸다.
‘집에 있다’는 그 안전한 기분 덕분이었다.
‘희한해.’
이게 가족이라는 단어가 가진 힘일까.
별거 아닌 일상인데, 마음이 편안하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자 오늘따라 밤치고 하늘이 밝았다.
‘이게, 새벽 감성 때문인가.’
갑자기 밤바람이 맞고 싶었다.
슬리퍼를 신으려다 오늘 회사에 갈 때 신었던 단화가 가까이 있어서 그냥 그걸 신고 문을 열었다.
덜컹.
이놈에 알루미늄 최대한 문은 살살 열었음에도 동네 사람 다 깨울 것처럼 시끄럽게 열렸다.
“음…… 냐 라마느멈머 쿠후…….”
“쟤는 또 뭐라는 거야.”
선풍기의 덜덜거리는 소리 너머로 이은지가 중얼거리는 잠꼬대를 흘렸다.
저런 걸 보면 몸만 컸지, 어릴 때랑 똑같아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바깥에서 들어온 선선한 밤공기가 훅 몰아쳤다.
동시에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함께 몰려왔다.
고요해서 오히려 기분이 들뜬달까.
‘아.’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보니 밝은 이유가 여기 있었나 보다.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밤하늘이었다.
달과 함께 별인지 인공위성인지 모를 빛나는 것들이 많았다.
목에 있는 초커가 거슬려서 검지를 이용해서 조금 숨통이 트이게 했다.
그렇게 가만히 하늘을 보고 있었다.
“냐―.”
잠시 후, 익숙한 듯 낯선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근처에서 들렸다.
옆을 돌아보자, 경계심 가득한 노란 눈의 검은 고양이가 털을 바짝 세우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 너, 걔구나.”
알고 있던 녀석이었다.
착각인지 그냥 붙어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전에 창백한 이은지와 같이 나타나서 놀라게 했던 그 녀석.
쪼그려 앉아서 고양이를 보고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어린 시절 이은지와 둘이서 폐가에 숨어 살던 그때, 그 집에 지나다니던 길고양이들을 구경하다 알게 된 소통법이었다.
긴장한 몸을 풀고 그 고양이를 빤히 보며 아주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난 위험한 존재도 아니고 널 공격할 생각도 없다’라고 의미가 담긴 행동이었다.
검은 고양이는 바짝 세운 털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더니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머리에서 등을 타고 엉덩이를 팡팡 쳐 주자, 검은 고양이는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 다리를 말았다.
“그나저나…….”
조용히 말을 흘리자, 샛노란 눈이 나를 돌아봤다.
밤기운을 빌어서 생각해봤다.
회귀하게 된 이유 같은 것들.
처음엔 꿈일까 싶어서 의심했던 모든 것들.
그것들을 차분히 되짚으면서 말이다.
그러다 닿은 게 이 고양이었다.
창백한 이은지. 아니, 이은지의 영혼?
그래. 그게 좋겠다.
이은지의 영혼이 이 고양이랑 같이 있었던 거에 무슨 이유가 있진 않을까.
“넌 이은지랑 무슨 관계가 있어서 같이 있었니.”
고양이의 목덜미를 긁어 주며 물었다.
“냐.”
꼭 대답이라도 하듯 고양이가 울었다.
왠지 소통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또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혹시 네가 나를 이 시간으로…….”
갑자기 현자 타임이 밀려오면서 차마 말을 이어가기 힘들어졌다.
다 말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간 꼭 어딘가에든 던져 보고 싶던 말이어서 그런가.
조금이나마 후련한 기분은 있었다.
이런 말을 하면 혹여나 원래 그 시간으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그런 상상도 해 봤었기에 더 불안해져서.
그래서 입 밖에 내지 못하던 것도 있었다.
“만약에, 너도 아니면…… 뭘까, 그냥 내가 바라서 이 시간에 온 걸까?”
이 모습을 남들이 보면 ‘미친 X’이라고 수군댔겠지.
이은지만 해도 ‘중2병이냐?’라고 했을 테니까.
그때, 고양이가 입을 열었다.
『이~야! 이제야 궁금한가 보다?』
……?
진짜 입을 열었다?
머릿속 무수한 물음표들의 악수를 요청한다.
『캬, 하! 언제 물어보나 했어!』
걸쭉한 아저씨 같은 말투를 하던 고양이는 순식간에 내 손을 뿌리치고 난간 위로 뛰어올랐다.
인사라도 하듯 “냥!” 하더니, ‘두둠칫’ 포즈를 취한 뒤, 그대로 펄쩍.
난간 아래로 뛰어내렸다.
“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