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29)
예찬 선배가 처음 준 곡을 들었을 땐 별 생각이 안 들었다.
그저 곡을 만든 예찬 선배와 주송민, 서승연 선배가 나란히 떠올랐고, 세 분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만 했었다.
하지만 이후에 이은지가 ‘이별’이라는 주제를 제시했을 때, 난 잠시 고민했다.
보통 이별 이야기를 할 땐 대부분 밤과 새벽 또는 비가 오는 날씨에 비유를 많이 한다.
이별을 소재로 나온 노래들 대부분이 그러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내 가장 아픈 이별은 소설이나 영화나 노래에서 흔히 나오던 ‘비 오는 날’이 아니었다.
당시 매니저였던 도진이 형이 이은지의 소식을 알렸던 그때.
그때 시간은 저녁과 비는 무슨, 해가 높이 뜨다 못해 쨍쨍하던 점심쯤이었다.
노래의 분위기도 단순히 비가 오는 날이나 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더 떠올랐던 것 같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은지가.
내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이별은, 바로 옆에서 낄낄거리고 있는 얘가 세상을 떠났을 때였다.
흔히 밤에 그리웠던 사람을 떠올리며 아픈 것과 다르게, 나는 오히려 낮에는 아팠고, 밤에는 두려웠다.
낮에는 희미하던 창백한 이은지의 형상이 꼭 아플 때나 어두울 때 짙어진 탓이 컸다.
‘이제는 ‘그 이은지’와 ‘이 이은지’가 같다는 걸 알지만…….’
그 사실을 몰랐던 당시에는 정말 괴롭던 시간이었다.
‘미쳐 있었지. 아주.’
잊어야만 한다는 자아.
어떻게 잊냐며 발악하는 자아.
둘의 한편에서 그저 다 포기하고 싶다며 같이 죽어 버리자는 자아.
이은지 일기장 하나에 매달려, ‘죽지 말라잖아!’라는 자아.
그들은 내 내면에서 치열하게 싸워 댔다.
승리자는 없었고, 나는 그렇게 미쳐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차마 아버지 같은 대표님만큼은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정상’처럼 보이기 위해 강제로라도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그럼에도 큰 효과는 없었던 건지 대표님은 걱정을 많이 했다.
‘대표님의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지.’
나는 그게 또 미안하고 죄송해서 괴로웠다.
병원을 스스로 가 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병원에는 발 하나조차 들이질 못했다.
발이 문턱을 넘기는커녕 멀리 병원이 스쳐 보이기만 해도 이은지가 침대에 누워 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곧 물속에서 숨을 쉬는 것 같은,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불쾌한 과호흡이 몰려왔다.
차라리 이대로 죽어 버렸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미련하지만 살고 싶었다.
「내가 죽어도 너는 살아야지. 망할 새끼야.」
살아야만 했다.
이은지가, 그랬으니까.
그게 유일한 내 가족, 내 동생의 유언이었으니까.
내 인생에 기억에 남은 이별은 그것뿐이라서.
<더운 오후>는 그때 그 시간을 떠올리며 쓴 가사였다.
방 안에서 이를 악물며 쓴 탓일까.
마지막 가사는 얼마나 펜을 꽉 눌러쓴 건지 노트 마지막 페이지까지 자국이 남았다.
그렇게 쓴 가사를 노래할 땐 예상은 했지만, 내 예상보다도 더 힘들었다.
나설 때만 해도 좋았던 기분이었어
근데 왜 지금 나는 울고만 싶을까
클라이맥스의 갈라진 고음.
억누르다 억누르다 결국 터져 버려서 잘 감췄던 진심이 원치 않게 튀어나와 버렸다.
그래서 빼고 싶었다.
갈라진 목소리는 듣기에도 그랬지만, 겨우 잘 억눌렀던 것이 드러나 버린 순간이라 듣기에도 보기에도 차마 좋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귀에만 그랬던 걸까.
「“새로 부를게. 목소리 다 갈라졌다.”」
빼려고 먼저 말을 꺼낸 그때였다.
「“아니야! 이대로 가. 이거 이상 못 담아. 이은호 너 다음번엔 이렇게 안 부를 거잖아!”」
이은지는 귀신같이 그 부분을 잡아채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버렸다.
하지만 이은지가 옳았던 걸까.
내 귀에 듣기 싫던 부분에 다다르자, 처음에 웃고 놀리기만 하던 채팅창에 눈물이 도배됐다.
“윽, 끅.”
응?
흐느끼는 소리를 따라 옆을 돌아보자 얘는 또 왜 우는 건지.
코디인 슬기 씨가 다급하게 들어와서 이은지한테 휴지를 건넸다.
정작 휴지를 건네는 슬기 씨도 눈가가 젖어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패앵!’
이은지는 받은 휴지에 시원하게 코를 풀었다.
……이때 난 그냥 모른 척해야 했다.
* * *
고개를 돌리고 코를 푼 은지가 다시 카메라를 향해 얼굴을 돌렸을 때였다.
‘칠칠맞기는.’
화면 속에 보이는 이은지의 반대쪽 뺨에 휴지 조각이 묻어 있었다.
이은지는 뮤직비디오에 푹 빠진 듯, 휴지 조각의 존재를 전혀 모른 채 계속 울먹이고만 있었다.
처음엔 호의였다.
‘야.’
‘뭐.’
평소였다면 놀리는 데에 더 바빴을 텐데, 카메라가 켜져 있어서.
그래서였다.
차라리 평소처럼 놀렸다면 괜찮았을까.
이미 늦긴 했지만, 그래도 더 늦기 전에라도 알려 줘야 할 것 같아서 이은지한테 신호를 보내 줬다.
은지를 툭 친 후 은호는 본인의 뺨을 가리켰다.
‘너 여기 휴지 붙어 있어.’
전달에 오류가 났는지, 은지는 눈과 코가 뻘게져서 훌쩍거리고 있으면서도 눈빛은 웬 쌈닭이 따로 없었다.
‘니 뺨따구가 어쨌는데.’
명백한 전달 오류였다.
은호는 다시 한번 조용히 이은지가 들고 있던 휴지를 가리키고 다시 뺨을 가리켰다.
‘휴지, 여기, 묻었다고.’
이쯤 되면 평소라면 알아들을 만도 할 텐데.
그때였다.
“뭐 하냐.”
“이래 달라며?”
“허?”
은지는 대뜸 휴지를 들고 은호의 뺨을 때렸다.
뜬금없이 휴지로 뺨을 얻어맞은 은호는 한 손은 고이 맞은 뺨을 쥔 채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황한 은호를 빤히 보던 은지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내가 대체 언제?”
“방금!”
은호가 묻자, 은지는 도리어 황당하다는 듯 크게 대답했다.
“이렇게 휴지 가리키고! 뺨에 대면서! 때려 달라며.”
“사람 하나 이상한 놈 만들지 말고 니 뺨따구를 보세요, 가시나야.”
차분히 말했는데, 그때였다.
저 휴지 조각 하나가 조금 전까지의 감성적이었던 마음을 깨부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은호는 크게 후회했다.
“뺨에 뭐.”
은지가 고개를 돌린 그 순간.
그동안 은지의 뺨에 찰떡같이 붙어 있던 휴지 조각이 허공에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은지는 뒤늦게 카메라로 찍히고 있는 캠 화면을 살폈지만 이미 떨어진 휴지 조각이 뺨에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잖아.”
“있었어.”
“없잖아!”
“있었다고! 얘 아까 울면서 코 풀었을 때 뺨에 휴지 묻었었죠!”
은호는 억울함을 E%들이 해명해 주길 바라며 카메라 쪽을 돌아봤다.
[그랬던가? ㅎㅎ]
[난 못 봤는데? ㅋㅋㅋㅋㅋ]
[랑아……. 어디 아파?]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진 않았다.
‘아니, 허?’
‘설마 지금 방송 보고 있는 사람들 다 이은지 팬인가?’
‘아니면 진짜 못 본 건가?’
‘잠깐 그사이에 송출이 끊어졌나?’
‘화면이 깨져서 안 보였다기엔 척 봐도 보일 정도로 컸는데?’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지만, 저 채팅들 뒤에 붙은 ‘ㅎㅎ’와 ‘ㅋㅋㅋㅋ’가 아무래도 신경을 긁었다.
“대표님, 영상 뒤로 돌려줘요. 저 이대로는 억울해서라도 오늘 집 못 가요.”
박 대표는 보드에 ‘지금 못 본다’라고 써서 들어 보였다.
은호는 뒷목을 붙잡았다.
“진짜 있었다니까? 아, 그래! 옆에 봐! 옆에 휴지 조각 떨어져 있잖아!”
“아, 왜 이래.”
“아니, 내가 하, 옆에 보라고! 떨어져 있는 거 있다니까?”
“알았어! 볼게! 옆에 뭐! 아무것도 없구만!”
“아까 그 큰 조각이 떨어졌는데 아무것도 없다고? 구리치지―, 어?”
은지는 정말 옆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은호도 따라 몸까지 일으켜 가며 구석구석 살펴봤다.
하지만 귀신이 곡할 노릇인지, 진짜 그 휴지 조각이 없어졌다.
“뭐야, 아까 여기 떨어졌는데. 여기 떨어졌었어!”
“어오, 하여간. 민망하니까 뻥까지 치기는.”
“뭘 하여간이야. 뻥 아니라고! 진짜 있었다니까? 아니, E%분들 중에 진짜 보신 분 없어요? 나 진짜 억울해서 그래.”
진심으로 도움을 구한 건데, 채팅창에는 도움은커녕 ‘ㅋㅋㅋㅋㅋ’가 비처럼 쏟아 내렸다.
[어떡해 ㅠㅠㅠ]
[ㅋㅋㅋㅋ아 배 아파]
[랑아ㅋㅋㅋㅋ]
[미안ㅋㅋㅋㅋㅋㅋ]
[난 진짜 못 봤어ㅋㅋㄲㅋ]
[오빸ㅋㅋㅋㅋ 되게 억울해 보여서 이런 말 미안한데 귀엽닼ㅋㅋㄱㅋ]
[랑이 혹시 M?]
채팅창에서 쏟아지는 ‘ㅋㅋㅋㅋㅋ’틈으로 ‘M’ 글자만큼은 확실하게 보였다.
“나 M 아니에요!”
놀리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아도 틀린 건 틀렸다고 밝혀내야만 하니까.
그래서 차마 포기할 수가 없었다.
증거는 사라졌고, 녹화본은 못 돌려 본다고 하고, 팬들은 봤을 줄 알았는데 안 보였다고 모르쇠.
‘돌아 버리겠네, 진짜.’
그때 이은지가 한마디를 더 거들었다.
“알았어. 붙었었다고 쳐. 떨어졌으면 됐지.”
“아니, 아.”
그 순간 뭔가 머릿속 한구석에서 툭 하고 끈 하나가 끊어진 느낌이었다.
“붙었었다고 치는 게 아니라, 붙었었다니까?”
“왜 화를 내!”
“화 안 냈어!”
“지금 화내고 있잖아!”
“아니야! 이건, 그러니까, 니가―!”
그때, 박 대표는 혹여나 이런 상황이 올 걸 예상했는지, 말없이 화면에 미리 준비해 둔 고양이 사진을 띄웠다.
삼색 고양이 사진 위에는 ‘화면 조정 중입니다.’라는 짧은 자막 쓰여 있었다.
[앜ㅋㅋㅋㅋㅋㅋ]
[찐 남매 싸움 터졌나 보다ㅋㅋㅋㅋ]
[ㅋㄲㅋㅋㅋㄲㅋㅋㅋ]
[아 왜 가려요! 랑이 놀리는 거 재밌는데ㅋㅋㅋㅋㅋ]
[우리도 보여 줘요! 왜 거기만 봐!]
[ㅋㅋㅋㅋㅋㄱㅋㅋ]
채팅창은 여러 반응이 쏟아졌다.
화면 조정이 들어간 그동안 은호와 은지는 어느새 진심 모드로 싸움을 이어 갔다.
“아니, 알았어! 붙어 있었다고 믿어 준다니까?”
“믿어 주는 게 아니라 있었다고!”
“알았다고! 그래! 있었어!”
“그래!”
“지금 떨어졌잖아!”
“그래!”
“그럼 된 거잖아!”
“그! 그, 그래.”
“됐지?”
“그래…….”
되긴 됐는데.
아, 씨. 뭔가, 찝찝하다.
“니가 진작 인정했으면 끝날 문제였잖아.”
“아, 예. 예. 알았어요. 알았어.”
“야, 그따위로 말하면―.”
“그따위류 먈햐뮨―.”
“…….”
은호는 조용히 입을 닫고 은지한테서 고개를 돌렸다.
“헉, 미안해. 미안해. 오빠, 장난 그만 칠게.”
은지는 무슨 기류라도 느낀 듯 다급하게 양손까지 모으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E%분들까지 놀렸던 게 어지간히 데미지가 강하게 들어갔나 보네.’
은호는 평소와 같은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아주 살짝, 입술이 더 튀어나와 있었다.
이건 ‘진짜’였다.
족히 몇 년 만에 돌아온, 이은호가 진심으로 삐진 날이라니.
‘오늘 일기 써야겠다.’
이런 날은 기념으로 남겨야 하니까.
하지만 피곤해지는 건 질색이라서.
사과를 먼저 한 이유는 그래서였다.
이 상황이 재미있기만 한 은지와 다르게, 주변을 돌아보니 어지간히 놀라운 상황인지 박 대표는 말까지 잃었다.
은지는 평소 성인이 된 이후부터 은호한테 ‘오빠’라고 부르는 걸 피했다.
‘지는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먼저 사과하는 은지 때문이었다.
은지는 박 대표의 생각이 빤히 보였다.
‘어쩔 수 없지.’
은지는 어깨를 으쓱거리고 은호를 돌아봤다.
“야.”
“…….”
“내가 오늘 욕실 하수구 청소할게.”
“…….”
“설거지도 할게. 한 번.”
“두 번.”
“알았어. 두 번.”
“콜.”
은호의 화를 푸는 방법은 단순했다.
[뭐지?]
[ㅋㅋㅋㄲㅋ되게 많이 생략된 거 같은데?]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지지 뭔가 아까보다 되게 피곤해 보여ㅋㄱㅋ]
방송 화면에 걸려 있던 고양이가 사라진 뒤.
채팅창에는 갈고리들이 또 한 번 무수하게 쏟아졌다.
은호는 언제 큰 소리를 냈었냐는 듯 뻔뻔하게 웃고 있고, 은지는 한편에서 ‘아, 피곤해’라는 생각이 얼굴에 훤히 드러나 있었다.
시작은 분명 ‘뮤직비디오 같이 봐요!’였던 것 같은데, 얼떨결에 남매 싸움 생중계가 더 중심이 되어 버린 생방송은 그래도 이후에는 나름 잘(?)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