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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28화 (128/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28)

자유게시판을 이용한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서버는 다행히 폭발 직전에 빠르게 안정권을 되찾아 올 수 있었다.

정상적인 송출이 가능할 때는 뮤직비디오 공개까지 약 3분이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10, 9, 8, 7, 6…….

시간에 맞춰 채팅들이 흘러갔다.

[와 시작한다!]

* * *

검은 화면.

“먼저 가 볼게.”

“갈게.”

“안녕.”

너머로 들린 은지의 인사.

이어서 누군지 모를 두 여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잠깐만!”

서승연이 손을 뻗었다.

손을 클로즈업한 화면은 다시 멀어졌을 때 서승연이 아닌 주송민을 비추고 있었다.

배경 또한 다른 곳이었다.

“가지 마, 제발.”

주송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외쳤다.

천천히 고개가 다시 들렸을 땐 어느새 화면에는 은호가 있었다.

“……내가 잘못했어.”

세 여인은 답을 하지 않았다.

짤랑거리는 방울 소리.

문에 달린 방울 소리인 것 같았다.

이어서 또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긴 머리칼의 여자가 가장 먼저 열린 하얀 문밖으로 떠났다.

이어서 다른 장소로 보이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파란 문으로 바뀌고, 긴 머리칼의 여자처럼 짧은 머리 여자가 문밖으로 떠났다.

마지막으로 오래된 가게의 문인 듯 나무 문에서도.

앞서 두 여자가 그랬듯 곱슬곱슬한 머리칼이 눈에 띄는 여자가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고개를 숙였던 세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찢어진 눈매와 진한 눈썹이 눈에 띄는 샛노란 머리의 서승연.

쌍꺼풀이 진한 갈색 머리칼, 주송민.

두 사람이 순서대로 지나가고 은호의 얼굴이 가장 오랫동안 비춰졌다.

빛이 닿음에도 불구하고 새까만 머리칼.

날카로워 보이지만 그림자에 눈꼬리가 올라간 것처럼 보일 뿐 실제로는 살짝 내려간 눈매.

그 안에 담긴 짙은 갈색의 무덤덤한 눈동자.

은호의 얼굴이 비치는 순간부터였던가.

굳어 있는 분위기와 달리 808 베이스와 스냅에 맞춰 통통 튀는 카우벨 사운드가 흘러나왔다.

은호는 고개를 돌려 여자가 앉아 있던 자리인 듯, 거기에 놓인 커피를 가만히 바라보다, 앞선 여인들을 따라 문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흔한 시내의 길거리 풍경이었다.

고개를 든 은호는 신경질적으로 인상을 구긴 채 쨍쨍한 빛에 눈이 부신지 손 갓을 세워 쏟아지는 햇빛을 가렸다.

카우벨은 정확히 벌스에 들어가는 순간 멎었다.

햇빛을 숨겨 줄 떨어지는 빗줄기가 그리워

은호가 걷자, 날이 흐려지고 잠시 소나기가 지나간 뒤 다시 하늘이 맑아졌다.

지나간 시간처럼 내리던 소나기처럼

정각에 떠오른 이 해가 지나가면 다시 돌아올까

하늘을 잡던 화면이 내려오자 은호가 있던 자리엔 주송민이 있었다.

해가 높아 내 기분도 high했어

주송민의 손이 창문에 닿자, 너머에서 갸름하면서 곱상한 손이 주송민과 창문을 사이에 두고 손바닥을 겹쳐 왔다.

창 너머로 보인 손이 반가워

기쁘게 달려간 발걸음

짙은 커피향

손이 멀어지고, 화면은 커피숍 의자에 앉아 있던 은호를 비췄다.

노래는 여전히 주송민이 이어가고 있었다.

에어컨 바람에 땀을 식히고 앉은 자리

어째서 돌아 나오는 길은 무겁기만 해

은호가 일어나서 문밖으로 나가던 첫 장면을 누군가 뒤에서 촬영하듯 화면이 담겼다.

가게를 나온 은호.

화면은 트래킹 샷으로 은호의 측면을 화면 정면에 둔 채 뒤따랐다.

오늘 따라 날까지 해가 더워

창 너머로 멀리 떠난 그 걸음

은호가 갑자기 속력을 내며 달리자, 속도만큼이나 배경도 빠르게 흘러갔다.

급하게 달려가 붙잡기만 해도 안 될까

곱슬거리는 여자의 머리칼이 가까워졌다.

손을 뻗었지만 손끝은 차마 닿지 못하고 떨어졌다.

은호는 하늘을 바라보며, 지나가던 카페의 의자에 등을 기댔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한숨만 쉬고 있어한숨만 돌아 나오는 길은 외롭기만 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종업원이 커피를 한 잔 내어 왔다.

은호는 입만 한 번 댄 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카메라는 여전히 카페를 비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은호가 화면 밖으로 떠나고, 서승연이 그 카페에 나타났다.

승연은 어딘가에 전화를 하는 듯, 휴대폰에서 눈을 떼질 못했다.

그러다 맑기만 한 하늘을 원망하듯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숨겨 줄 떨어지는 빗줄기가 그리워

지나간 시간처럼 증발한 소나기처럼

정각에 떠오른 이해가 지나가면 다시 돌아올까

그때 누군가 전화를 받은 건지 서승연은 눈물을 닦아 내는 것도 잊은 채 급하게 전화를 받으며 화면 밖으로 달려 나갔다.

다시 찾아온 훅의 코러스에는 은호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함께였다.

화면이 바뀌고, 은호는 막 들어온 옷차림으로 침대에 누웠다.

창문 틈새로 넘어온 햇빛을 찌푸린 눈으로 올려다봤다.

내 머리위 저 빛이 달빛이었으면 좋겠어

비가 쏟아졌으면 했어

비디오 속 은호는 중얼거리듯 말하고 있었지만, 노래는 서서히 고음에 치달으며 클라이맥스로 향했다.

나설 때만 해도

좋았던 기분이었어

근데 왜 지금 나는

울고만 싶을까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갈라진 고음이 터졌다.

왠지 진정으로 울음을 참고 있는 듯, 속을 긁는 듯한 음성이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은호는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 걸터앉은 은호는 천천히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난 여전히 믿기지가 않는데

입만 바깥에 내어 둔 채 은호의 속삭이는 듯한 클라이맥스가 끝나고, 불이 꺼지듯 화면이 검게 변했다.

서서히 피어오른 불빛은 서서히 형태를 갖춰 가며 하늘의 태양이 됐다.

아래에서 위를 보는 듯한 시야에 주송민의 얼굴이 비쳤다.

달궈진 아스팔트 해가 뜨거워

화면은 주송민이 바라보던 물웅덩이의 시점이었다.

화면이 또 한 번 바뀌고, 주송민은 마치 화가처럼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미 떠난 널 보내 주라며

비 대신 나를 달래듯 선선한 바람이 불어 와

그림 속에 있는 갈대밭에 붓질을 몇 번 하자, 바람이 부는 듯했다.

한 편의 작품이었음에도.

주송민은 가장 넓은 붓으로 검은색을 칠했다.

곧 검은 물감을 머금은 붓은 바람 부는 갈대밭을 그린 그림을 뒤덮었다.

머리 위 해조차 곧 찾아올 밤을 위해 하늘을 색칠해

시간이 되감기기 시작했다.

한숨을 숨겨 줄 떨어지는 빗소리가 그리워

지나간 시간처럼 증발한 물 자국처럼

모든 일이 없었던 것처럼 그림은 원래대로 돌아오다 못해 새하얀 도화지로 변했고, 침대에 누워 있던 은호는 뒤로 걸으며 첫 카페로 향했다.

송민과 승연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세 사람 모두 문을 막 나서던 그때로 돌아왔다.

정각에 떠오른 이 해가 지나가면 다시 돌아올까

한숨을 숨겨 줄 떨어지는 빗소리가 그리워

은호가 처음과 같이 손 갓을 세워 쏟아지는 햇빛을 다시 바라봤다.

하지만 처음과 달리 어딘가 씁쓸한 느낌이었다.

은호의 노래 또한 그 분위기가 표정과 마찬가지였다.

지나간 시간처럼

떠나간 빈자리처럼

정각에 떠오른 이 해가 지나가면 다시 돌아올까

세 사람의 하모니가 이어졌다.

박자에 맞춰 호흡 따라 은호와 송민과 승연의 장면이 겹쳤다.

화면에 선을 두고 나뉘어 있던 은호와 승연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선 너머의 중간에 선 송민을 바라봤다.

끝난 사이일까

은호의 읊조리는 듯한 마지막 가사를 끝으로, 배경의 소음들이 몰아쳤다.

그때, 여전히 찌푸린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송민이 중얼거렸다.

“……술이나 마시러 갈까.”

“그거 좋네요.”

거기에 은호가 말을 거들었다.

“가자.”

이어서 승연은 짧게 답하더니 팔을 뻗었다.

뻗은 승연의 팔은 둘 사이를 가르고 있던 흰 선을 넘어 송민의 어깨를 쳤다.

그리고 셋은 다 같이 화면 밖으로 걸어나갔다.

한편 배경에 덩그러니 남은 각각 다른 세 문은 조용히 닫혔다.

조용해진 영상.

화면이 빠르게 회전했다.

한 카페에 세 여인이 모여 있다.

두 머리들 틈으로 보이는 은지.

다른 두 사람의 얼굴은 뒷 모습이라 볼 수 없었지만, 머리 모양만 봤을 땐 처음에 가게를 떠나갔던 그 여자들인 것 같았다.

한편, 소리는 무언가에 막힌 듯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그들과 조잘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듯 은지가 웃었다.

이내 웃음을 멈춘 은지의 표정은 홀가분한 것 같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마지막에 하늘을 바라보던 은호의 표정과도 닮아 있었다.

* * *

처음 시작 장면에 내 얼굴이 떡 하니 나온 순간.

난 이마에 손을 짚으며 고개를 숙였다.

도저히 두 눈 뜨고 볼 수 없어서였다.

옆을 돌아보자 이은지도 고개를 돌리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차이점이라면 난 굳어 있고, 이은지는 웃음을 눌러 참고 있는 듯 콧구멍으로 ‘큽큽’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는 걸까.

중간에 이은지 얼굴이라도 나오면 똑같이 비웃어 주려고 했는데, 하필 ‘더운 오후’는 나랑 주연 선배와 송민 선배가 부른 노래였다.

덕분에 뮤직비디오 내내 내 얼굴이 자주 클로즈업돼서 부담스러워서 미칠 뻔 했다.

적응해야 한다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한편 힐끔 채팅창을 돌아보자 ‘ㅋㅋㅋㅋ’가 도배되다시피 물결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랑잌ㅋㅋㅋ첫 장면부터 현타 왔닼ㅋㅋㅋㅋㅋ]

[랑아 멋있어ㅋㅋㅋㅋ엌ㅋㄱㅋ]

이게 그 가수에 그 팬이라는 걸까.

절반은 진심으로 칭찬하는 듯 보였지만, 절반은 이은지랑 똑같이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해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심지어 놀리는 건 E%뿐만이 아니었다.

오늘 아침이었다.

“예?”

“생방송으로 리액션 촬영하자고.”

“저 다른 영상은 다 봤어도, 더운 오후 초반은 대표님한테 완전히 다 맡겼잖아요. 그거 진심으로 초반을 차마 못 봐서 다 넘긴 건데……!”

갑자기 대표님이 깜짝 생방송을 열자는 제의를 했다.

뮤직비디오 리액션은 무슨.

<더운 오후>는 내 얼굴이 도배되다시피 나와서 똑바로 보기도 어렵다고 나는 반대했다.

특히 초반에 그 몇 초 동안 내 얼굴만 비추고 있는, 그 장면!

그 장면은 내가 <더운 오후> 뮤직비디오를 편하게 볼 수 없는 하나의 바리케이드와 같았다.

“괜찮아. 은호야. 넌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표님은 밀어붙였다.

“하핰핰, 왜 재밌기만 하겠구만!”

심지어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은지까지.

“이게 지 이야기 아니라고.”

“와, 이은호, 넌 거울도 못 보냐?”

단호하게 밀어붙이는 대표님.

약 올리는 이은지.

‘하아…….’

두 사람한테 당해 버린 난 보다시피 결국 이 자리에 있다.

난 원망을 담아 카메라 건너편에 앉아 있는 대표님을 쏘아 봤다.

‘이거 봐요.’

노려본 대표님의 얼굴은 막 구긴 휴지처럼 구겨진 채 이중 턱을 만들고 있었다.

이은지랑 똑같이 척 봐도 빵 터진 얼굴이었다.

그러면서도 소리가 샐까.

‘쉭끅쉭끅’거리는 바람 새는 웃음소리.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애초에 대표님은 내가 진지한 리액션을 하는 건 처음부터 바라지도 않았다는 걸.

다행히 초반이 너무 강력하게 다가와서 그런지 바리케이드 장면이 넘어간 이후로는 꽤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촬영 때 선배님들과 나눴던 농담들이 크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정각에 떠오른 이 해가 지나가면 다시 돌아올까

한숨을 숨겨 줄 떨어지는 빗소리가 그리워

힘든 장면을 넘어간 이후부터는 내가 쓴 가사인 탓일까.

생각이 많아졌다.

가사 주제를 정할 때.

이은지가 뜬금없이 ‘이별’ 주제를 제시했다.

그래서 가사를 쓸 땐 조금 힘들었던 것 같다.

이건 앞으로도 평생 말할 생각이 없는 비밀이지만, 내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이별은 이은지가 떠난 그날이었으니까.

‘정작 이은지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더운 오후>의 가사는 이은지를 떠나보냈던 그 날.

그때의 내 기분을 담은 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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