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27)
한바탕 난리가 있고 난 뒤 롱잉 프로젝트 사옥의 회의실.
거창하게 말은 했지만, 실상은 한 상가 건물의 칸막이 너머였다.
“안녕하십니까. E-U.N.G, 이은호, 이쪽은 이은지라고 합니다.”
“아, 저, 관계자분들은 왜 안 들어오시는지…….”
회의실에 앉는 은호와 은지를 당황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롱잉 프로젝트의 김명훈 PD.
보통 소속사가 있는 가수들은 오더라도 관계자가 함께 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신인이라면 더더욱 가수가 아예 오지 않는 경우도 꽤 흔했다.
김명훈도 당연히 그럴 것으로 생각했고, 현우와 슬기를 봤을 땐 ‘아하, 두 분이 관계자이신가 보다.’ 생각하며 두 사람을 안내했다.
하지만 현우와 슬기는 밖에서 기다리겠다며 나가 버렸다.
그때부터였다.
김명훈 PD는 당황스러운 눈길로 은호와 은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 하하. 오늘 미팅은 두 분께서 직접 하시나 봅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다행히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닌 듯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김명훈 PD는 애써 태연함을 연기하며 자리에 앉았다.
내릴 때만 해도 투덕거리던 남매는 어디 갔는지, 은호와 은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진지한 태도로 회의에 참여했다.
김 PD는 가장 먼저 두 사람이 어떤 가수인지를 살폈다.
다음엔 언제쯤 곡이 나오는지를 물었다.
처음 당황하며 걱정했던 김 PD의 생각과는 달리 회의는 부드럽게 진행됐다.
은호가 워낙 유려하게 말을 잘한 덕이 컸다.
“일단 곡을 먼저 들어 보고 싶은데요. 가능합니까?”
“아. 네. 가능합니다.”
은호는 어깨로 은지를 툭툭 치며 고개를 까딱였다.
‘뭐.’
‘이 길 위.’
‘너한테 있잖아.’
‘없으니까 너한테 틀어 달라는 거잖아. 너 음원 가지고 있는 거 있다며.’
‘왜 안 챙겨?’
‘니가 챙길 줄 알았으니까.’
‘하…….’
은지는 뒤늦게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 테이블 중앙에 놓았다.
눈으로 대화를 나누던 둘을 갸웃거리며 보고 있던 김 PD는 신기하다는 듯 은지가 내어 놓은 휴대폰을 빤히 바라봤다.
물론 휴대폰이 신기한 게 아니라 은호와 은지의 남매만의 소통법 때문이었다.
사실 김 PD의 아내는 <그는 1+1=1>의 팬이었다.
덕분에 그는 아내가 한동안 흥얼거리던 가 이응의 곡이라는 건 원치 않아도 알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응’이라는 가수는 알고 있었지만 아내가 노래를 잘하는 편이 아닌지라 원곡에는 솔직히,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오늘 이 노래를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어둑해진 밤
이 길 위로 빛이 고요함이
가라앉아 눈을 감기고
통기타 연주와 함께 듣기 좋은 피아노 반주가 깔리고, 잠시 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목소리가…….’
김 PD는 앞에 앉은 은지와 노래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놀랐다.
이미지라고나 해야 할까.
사납기만 할 것 같은 인상과 대비될 정도로 다정하고 덤덤한.
시간으로 치면 새벽쯤에 듣기 좋은 중저음과 깊은 울림이었다.
그때였다.
잘 자렴
어미가 자식에게 아비가 자식에게 하는 인사가 이럴까
상상만 해 봤던 인사를 너한테
김 PD는 놀란 얼굴을 들어 은호를 바라봤다.
조금 전 회의할 때 들은 목소리는 꽤나 낮은 저음이어서 음역대가 그리 높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같은 사람인가……?’
하지만 노래 속 은호의 목소리 달랐다.
눈앞에서 듣고 있으면서도 믿기 힘들 정도로 큰 차이가 있었다.
나는 항상 두려운데
너는 항상 해맑아
내 아픔이 너와는 다르길 바랐는데
어째서 너까지 아파졌을까
처음엔 별생각 없이 듣기 시작하던 김 PD는 훅 몰아친 낯선 감정선에 당황하며 눈을 크게 떴다.
가뿐히 올라간 음역에서 적절한 기교를 써 가며 은호의 목소리는 감정을 전했다.
간드러진 목소리로 슬픔을, 하지만 마냥 우울하지만 않은…….
복잡한 감정이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김 PD는 노래를 들으며 다시 제안서를 읽어 내렸다.
‘아, 이거구나. 이래서구나.’
처음에 이해가 가지 않는, 번잡하게마저 느껴질 수 있을 법한 잦은 장면의 전환들이 그제야 이해가 됐다.
“여기까지입니다.”
노래가 끝나고, 은호가 휴대폰을 거둬들이며 은지에게 전달했다.
‘아.’
김 PD는 아쉬운 마음에 입을 벌렸다가 말을 아꼈다.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김 PD만의 방식 중 하나로.
두 번째로 들었을 땐 혹여나 흐려질 수 있는 이 첫 만남의 느낌을 온전히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쉬익.
은호는 노래가 끝난 은지의 휴대폰을 무심하게 밀어서 전달했다.
그 순간, 미끄러운 회의실 테이블에서 버티지 못한 휴대폰은 그대로 허공까지 날아갔다.
“와악!”
은지는 급하게 휴대폰을 붙들었고, 은호도 그렇게까지 날아갈 줄은 몰랐는지 놀란 눈으로 은지의 휴대폰을 바라봤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지만 천만다행히 은지의 휴대폰은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였다.
‘회의 끝나고 보자.’
‘…….’
은호는 세이프가 되지 못한 듯, 진심으로 부글부글 끓는 사나운 은지는 눈빛에 은호는 일부러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김 PD는 이내 피식 웃음이 샜다.
‘이거, 재밌겠어. 하고 싶어지네.’
처음엔 당황스럽기만 했던, 가수만 있는 이 미팅 자리가 만들어져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다.
김 PD는 욕심이 생긴 듯 은호에게 물었다.
“기간은 언제까지입니까?”
“심의를 포함해서 5월 말까지 나오면 됩니다.”
“그럼 적어도 마지막 주 전까지는 편집본이 나와야겠군요.”
“네. 맞습니다.”
5월 말까지…….
시간이 살짝, 아니.
조금 많이 촉박하다.
잦은 장면 전환, 팝업 북과 2D, 3D에 CG까지.
고생길이 훤한 작업이었다.
“결과물은 괜찮을 것 같은데, 이 정도 시간으로는 예산이 많이 들어갈 텐데요.”
김명훈은 이 문제 때문에 소속사 관계자나 대표가 아닌 가수들만 회의에 온 것을 걱정했다.
“혹시 금액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셨는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이건 ‘사업’이니까.
사업은 손해를 보고 하는 것이 아닌, 이익을 내기 위해 하는 것이니까.
고로 아무리 좋은 작업이라도 수지 타산이 맞아야 즐겁게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부족한 예산으로 욕심만 많은 거라면, 솔직히 그건 사양이었다.
조금 날카로워진 기색으로 김 PD가 물었지만, 은호는 어쩐 이유에서인지 여유롭기만 했다.
은호는 한 손을 들어, 은지에게 보이지 않도록 손가락을 가리며 김 PD에게 금액을 전달했다.
* * *
“괜찮을까요.”
“괜찮을 겁니다.”
“은호 씨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 돈 문제라든가……. 그런 게 있잖아요.”
슬기가 방금 막 사 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현우에게 건네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런 쪽이라면 더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현우는 일말의 고민 없이 대답했다.
현우는 길진 않지만, 이 NRY 엔터테인먼트 안에선 나름대로 가장 가까이에서 박 대표와 남매를 지켜본 사람 중 하나였다.
그래서 현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박창석이 은호와 은지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그리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만큼은 나름대로 봐 온 모습이 있었으니까.
“왜요?”
“대표님이시니까요.”
“아…….”
슬기가 갸웃거리며 되묻는 동안, 현우는 찬 아이스 아메리카노 절반을 단번에 쭉 빨아들이며 말을 이었다.
‘하긴.’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슬기가 이 바닥에 온 지 오래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박 대표와 남매의 사이가 보통 ‘대표’와 ‘가수’의 관계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겠네요. 자식이 망신당하고 오는 거를 두고 볼 분은 아니시죠.”
그런 박 대표다.
박 대표가 은호 혼자 보내면서 부족하게 챙겨 줬을 리가.
* * *
‘헉.’
현우와 슬기의 예상 그대로.
은호가 펼친 손가락을 본 김 PD는 많이 놀란 것 같았다.
눈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그는 입까지 떡 하니 벌리며 헛숨을 들이켰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미 일반적으로 투자하는 액수에 족히 절반을 더 얹었으니까.
“저희 쪽에서는 이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만한 액수를 듣고도 물릴 회사는 정말 작업 자체가 불가능해서 물릴 터였다.
하지만 김명훈 PD는 자신이 있었는지, 금액을 듣자 오히려 고민을 끝낸 듯 후련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 고생길이 훤한 작업이긴 하지만, 아주 좋습니다.”
“NRY는 그만큼의 결과물을 기대하며 아낌없이 투자하려고 합니다.”
“회사는 작지만, 항상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내는 게 저희의 자부심인걸요. 그편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계약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PPM은 이후에 따로 보내겠다는 인사를 받은 후, 은호와 은지는 롱잉 프로젝트 사옥을 나왔다.
현우와 슬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고 있던 걱정을 날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은호와 은지가 듬직한 모습으로 상가 건물 밖으로 나오자, 뿌듯한 눈길로 두 사람을 보고 있던 현우와 슬기.
차마 그 뿌듯함이 오래가진 못했다.
“너 때문에 폰 깨질 뻔했잖아.”
“안 깨졌잖아.”
퍽!
“그래도 한 대는 맞아.”
은지가 먼저 은호의 어깨에 주먹을 내질렀다.
퍽.
“싫어.”
가만히 맞고만 있을 리 없던 은호도 곧 눈 깜짝할 사이에 똑같이 주먹을 휘둘렀다.
“…….”
“…….”
차 안에서 지켜보고만 있어도 둘 사이에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튀는 게 느껴졌다.
“슬기 씨.”
“네.”
지이잉.
슬기는 이미 현우가 하려던 말이 뭔지 알고 있다는 듯, 곧장 창문을 내리며 외쳤다.
“영상 찍어서 대표님한테 보내기 전에 빨리 타요.”
다행히 ‘대표님’이라는 한 단어만으로도 스파크는 잘 차단된 것 같았다.
차에 올라탄 은호와 은지는 마치 언제 으르렁거렸냐는 듯 순한 양 상태가 되어 얌전히 자리에 앉아 벨트를 맸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더운 오후>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기 한 시간 전.
[대기 중 1]
└ 대기 중 2
└ 대기 중 3
└ 대기 중 3
└ 4임
└ 5
└ 6 우리 언니까지 7
[6시 30분 선생님들 현기증 나요 미칠 것 같아요. 지금 시간은? 뭐야 아직도 시간이 안 지나갔다고 실화냐?]
└ 7시까지 28분 전
E-FAN에서 흥분된 대화가 오가던 그때였다.
[헐 이퍼들 모여!!! 생방송으로 모여!!!]
└ 뭔데?
└ 랑이랑 지지 실시간으로 리액션 방송할 거래!!!
<더운 오후> 공개까지 약 20분을 남기고 깜짝 리액션 생방송이 열렸다.
[(생방송) E% 여러분, ‘더운 오후’ MV 이응이랑 같이 감상해요.]
한편, 한 번에 몰려온 인원 탓일까.
잠시 서버가 휘청거렸다.
화면 속 은호와 은지는 어딘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성민이 앉아 있는 방향이었다.
성민이 다급하게 온 힘을 갈아 넣는 그동안, E%들은 합심해서 ‘잠시 채팅하지 말자’라며 호흡을 맞췄다.
대신 비교적 안정적인 자유 게시판 란에서 E%들은 흥분한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다.
[지랑이 오늘 패션 미쳤어…
랑이 위 화이트 아래 블랙
지지 위 블랙 아래 화이트
둘 다 와이셔츠에 슬랙스인데 색 반전 치인다 ㅠㅠㅠㅠㅠ]
└ 실물 영접하고 기절
└ 코디님 배우신 분 ㅠㅠㅠ
└ 저 영롱한 초커 있다는 말 왜 아무도 안 해 줬음?
[위에 이퍼 님
왜 랑이 까만 초커 지지 흰 초커는 말 안 해 줬어요……?
보고 예상 못 했던 거라 숨넘어갈 뻔했잖아!]
└ 깜짝 이벤트 ㅇ.<
└ 미친다 치인다 진짜 ♥♥고 레릿고 ♥쩌는 조합
└ 반전미 뭐야 NRY 당신들 배우신분들 나 응급실이잖아 지랑이한테 치여서
└허억허억 숨이 안 쉬어져요 여기가 바로 극락…?
└ ㅋㅋㅋ위엨ㅋㅋㄱㅋ 주접 ♥♥넼ㅋㅋㅋ
└나는 오늘 이 순간 저 코디를 보기위해 태어났던 거야
└ 감사합니다 코디님 제가 코디님 덕에 삶의 의미를 찾았네요
└ 그만해ㅋㅋㅋㅋ 이 이퍼들앜ㅋㅋㄲ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