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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26화 (126/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26)

다른 느낌

매니저가 피식 웃으며 알람을 보고 흥분한 에이슬에게 물었다.

“너 언젠 이제 이응에 관심 안 가지겠다며.”

“어?”

“이판인가, 이팬인가 그 어플에 글 올리고 난 뒤에 언젠 이응에 관심 끊겠다면서?”

“그, 그건, 과거에 관심을 안 가진다는 거였지. 그, 그리고 언니가 나중에 내가 잘못한 게 어떤 건지 알려 줬잖아. 이해되게…….”

며칠 전, 에이슬이 E-FAN에 올렸던 두 개의 글.

「이퍼들 중에 은호 님 과거 아는 사람 있어?」

└ 그걸 왜 궁금해함?

└ 너 악개?

└ 사생활 존중 좀요

└ 이런 ♥♥들이 제일 문제야

질문만큼이나 댓글 반응은 최악이었다.

「궁금할 수도 있지… 이게 그렇게 욕먹을 질문이야?」

└ ㅇㅇ

└ 님 어디 가서 분위기 파악 못 한다는 말 많이 듣죠?

└ 다른 이퍼들은 왜 안 묻는지 모르겠어?

에이슬은 처음 다른 E%의 댓글을 받았을 땐 화가 났었다.

이어서 빠르게 휴대폰을 두드리며 게시글을 하나 더 올렸고, 이어서 쓴 글에도 당연히 좋은 말은 없었다.

“언니, 언니.”

“응?”

“이거 봐! 너무한 거 아니야?”

에이슬이 제 편을 들어 달라며 매니저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매니저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에이슬이 화면에 켜 뒀던 글을 읽었다.

댓글을 확인할 때 즘에는 이미 매니저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이슬아.”

“응?”

“너 얼마 전에 나한테 했던 말 기억 안 나?”

“어? 어떤 말?”

“‘이응이 이야기를 피하는 거 같아!’라고 이야기했던 거 같은데.”

매니저가 에이슬의 말투까지 직접 따라 하며 말했다.

“푸하하하하. 뭐야, 그거 내 말투야?”

에이슬은 아직 상황이 파악되지 않은 듯 매니저의 성대모사만 듣고 자지러지게 웃으며 물었다.

그것도 잠시, 에이슬은 천천히 웃음을 멈췄다.

“아…….”

사납게 에이슬을 내려다보고 있던 매니저의 무서운 표정 때문이었다.

“우리 이슬이는 은호 씨 과거가 대체, 왜, 궁금했을까?”

“조, 좋으면 궁금해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거 알아보는 게 뭐 그렇게 큰 문제라고…….”

매니저가 화가 나 있다는 부분부터 당황한 건지, 에이슬은 쌍꺼풀이 진한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며 조심스럽게 답을 했다.

“그래?”

매니저는 그런 에이슬의 대답에 가식적으로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슬아.”

“응?”

“네 팬들도 너 좋아하니까 너 중학생 때 이불에 쉬해서 엉엉 울었던 거라든가, 아…… 쉬뿐만 아니었던가?”

“자, 잠깐만. 언―.”

“담배 피우는 거 멋있다고 생각해서 대표님 피우시는 담배 훔치다가 걸렸던 것도.”

“언니, 잘못했어.”

“근데 그거 실패하고 나서도 어떻게든 흉내 내겠다고 담배 모양 초콜릿에 불붙였다가 가방이랑 옷 몇 개 태워 먹었던 것도 궁금하니까 알아내도 괜찮겠네?”

“그, 그건…….”

“아, 그것도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너 한동안 자기가 뱀파이어라는 설정에 빠져서 매일 플라스틱 이빨 끼고 학교 갔던 적도 있었지! 그것도 알아내도 괜찮겠네?”

에이슬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와, 대단하네. 팬들이 이런 거 캐고 다니는 거, 우리 이슬이는 이런 거 다 받아들일 수 있나 봐?”

“아니…….”

매니저는 에이슬을 놀리는 걸 멈췄다.

“좋으면 그래, 궁금할 수는 있지. 근데 싫다는 걸 강요하면 뭘까?”

“나쁜 거…….”

매니저가 차분하게 묻자, 에이슬은 입을 비죽인 채 고개를 들어 매니저와 눈을 맞췄다.

매니저는 웃지도, 화를 내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덤덤히 에이슬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슬아.”

“응.”

“잘못했지?”

“응…….”

“실수는 용서받을 ‘가능성’이 있다지만, 알고 하는 짓은 그럴 자격도 없어.”

“네……. 근데, 언니.”

“응.”

“그, 삼촌은 실수를 인정하면 멍청이라고 했는데, 그럼 처음부터 인정을 안 하면…….”

이걸 어디서부터 교정을 해야 하나.

매니저는 손바닥으로 잠시 아찔해진 머리를 눌렀다.

“이슬아, 이슬아, 어이슬.”

“으, 응.”

“이거 하나만 알고 있자.”

“어떤 거?”

“네가 대표님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난 네 매니저 일 관둘 거야.”

“……어?”

놀라 울먹이는 에이슬을 보며 매니저는 한숨을 흘렸다.

이후, 매니저는 차분히 평정을 되찾으며 약간의 설명을 덧붙였다.

“대표님은 성공한 어른이지.”

“응.”

“하지만 성공했다고 해서 그게 옳은 어른은 아니야.”

“…….”

“그리고 이슬아, 난 이슬이 네가 대표님과는 다른, 옳은 사람이 됐으면 하거든.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톱니바퀴 하나의 방향이 바뀐 순간이었다.

[E-UNG ― ‘더운 오후’ feat. YN, M-IN M/V Teaser.]

에이슬 휴대폰에 더운 오후의 티저 시작 화면이 정지된 채 켜져 있다.

“아직도 과거에 대해서 알고 싶어?”

며칠 전 일을 떠올리며 매니저가 묻자, 에이슬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이젠 안 알고 싶어.”

“진짜?”

“……궁금하긴 하지만, 응. 랑이 오빠가 직접 말하는 게 아니면 그냥, 그냥 모르고 살래.”

시무룩해진 에이슬을 매니저가 싱긋 웃으며 바라봤다.

“그래. 그나저나 얼른 틀어 봐. 궁금하니까.”

매니저가 휴대폰 화면의 재생 버튼을 톡 건드리며 묻자, 에이슬은 급하게 다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며 소리쳤다.

“기, 기다려! 손 씻고 와야 해!”

“응?”

휴대폰을 놓고 떠난 에이슬을 매니저는 황당한 눈으로 좇았다.

진짜 손을 씻고 온 건지, 에이슬은 물기가 조금 남은 손을 탈탈 털며 돌아왔다.

“손은 왜 씻고 온 거야?”

매니저가 황당해하며 묻자, 에이슬은 마치 무슨 그런 당연한 말을 하느냐는 듯 그녀를 돌아봤다.

“경건하고 깨끗한 상태로 랑이님 봐야지!”

“그래, 그렇구나…….”

이 부분에 대해선 이해를 포기한 듯, 매니저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흘렸다.

“이제 볼 수 있는 거야?”

“응. 후우.”

준비를 마친 듯.

에이슬은 전체 화면을 띄운 후 심호흡을 뱉으며 티저를 재생했다.

* * *

하이힐을 신고 대리석 바닥을 걷는 소리.

얼굴이 보이지 않는 길고, 짧고, 곱슬머리의 여자들이 교차했다.

가게 문에 달린 종이 짤랑거리고 그녀들이 밖으로 나갔다.

♪♪♬♪

카우벨 소리가 시작됐다.

카우벨이라는 타악기를 모르고 들을 땐, 제각각 크기와 두께가 다른 유리잔을 막대로 통통 두드리며 연주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갑갑하게 막힌 소리였지만 그런대로 밝고, 맑았다.

12초가량의 티저에는 그 카우벨로 만들어진 리듬만 가득했다.

그동안 영상에는 여자들이 교차하며 보였듯, 남자들 역시 같은 방식으로 비치고 있었다.

다만,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여자들과 다르게 남자들의 얼굴은 정확히 정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남은 6초간 서승연, 주송민, 이은호 순서로 고개를 들어 화면 너머의 시청자를 바라봤다.

훅.

검게 변한 화면 위로 새하얀 가루가 떨어져 내리듯 글씨가 나타났다.

[2015. 4. 9.]

[PM 7:00 (KST)]

깜짝 티저가 공개된 후, E-FAN은 불타올랐다.

[티저… 빨리… 뮤비 내놔…

나 숨넘어가! 빛창석!!! 빨리!!!]

└ 이거 완전 내 마음ㅋㅋㅋㅋㅋㅋ

[YN(서승연) 보고 오~

엠인(주송민) 보고 와 잘생겼어.

마지막 랑이랑 눈 마주치자마자 숨 참음

아직도 참고 있음]

└ 이거 공감 ㅋㅋㅋㅋㅋ 나도 숨 참음 ㅋㅋㅋㅋㅋ

└ 이대로 뮤비 나올 때까지 참는다 빛창석 이퍼들 죽일 거 아니면 빨리 뮤비 내놔!!!

[혹시 NRY 엔터테인먼트 다니는 이퍼 있어?]

└ 왜?

└ 실수인 척 아무나 엔터 좀 쳐 봐

└ 하루 정도 사라져도 괜찮잖아 올려 우리가 책임져 줄게……

└ ㅋㅋㅋㄲㅋㄲㄲㅋㅋ

[이퍼들아… 나 랑이 고개를 들자마자 랑이랑 결혼하고 늙어서 같이 묻히는 상상까지 함.

나만 이랬어?]

└ 삐빅, 정상입니다.

└넌 신혼여행 어디로 갔어? 난 괌 다녀왔어 ㅋㅋㅋㅋ

└ 베네치아 가서 배 타고 스테이크 썰고 왔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앜ㅋㅋㅋㅋㅋㅋㅋ

[왜!!! 옆 동네는 신곡 내기 전에 동네방네 기사 내고 인터뷰하고 하루 죙일 자랑하잖아!!! 왜 우리 지지랑 랑이 자랑 안 해 빛창석!!!]

└ 마자!!!

└ 옳소!

└ 빛창석 책임져!!! 2시간이나 늦게 봤잖아!!!

└ 책임은 응원봉으로 받는다!

└ 헐 그거 너무 좋은 생각

└ㅋㅋㅋㅋㅋㄲㅋ

[헐 이퍼들아 그거 알아? 랑이 얼굴 엄청 오래 보고 있는 것 같았는데 랑이 얼굴 정확히 2.17초 나왔더라…]

└ ♥♥ 나 60년 살고 랑이랑 같이 죽어서 저승사자랑 짝짜꿍했는데 2.17초 평생 체험 쩔었다.

└ 이야 회귀했넼ㅋㅋㅋㅋㅋ

└ 회귀ㅋㅋㅋㅋㄱㅋㅋ

* * *

‘이 길 위’ 뮤직비디오 제작 회의를 위해 롱잉 프로젝트 회사로 회의를 하러 이동하던 그때.

은지는 피식 새는 웃음을 흘리며 E%의 반응을 구경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진짜 이해가 안 되네.”

“응? 뭐가?”

슬기가 갸웃거리며 은지를 돌아보자, 은지는 휴대폰 속 게시글 하나를 슬기 방향으로 보여 줬다.

[랑아, 내 탈모 책임져. 너한테 ‘헤어’나올 수 없게 됐으니까.]

└ 갸악

└ ♥♥냐곸ㅋㅋㄱㅋㅋㅋ

└ ㅋㅋㅋㄲㅋ아앜ㅋㅋㅋ

슬기는 글을 읽고 피식 터진 후, 묘하게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왠지 모를 착잡함이 몰려왔다.

“이 글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슬기가 묻자 은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요?”

“아니, 다들 이은호가 잘생겼다고 찬양하는 게 이상해서.”

“아.”

그쪽을 모르겠다고 하는 거구나.

슬기는 짧은 탄식을 흘리며 웃었다.

은지는 옆을 돌아봤다.

“뭐.”

시선을 느낀 듯 은호가 쏘아붙이듯 묻자, 은지는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저 못생긴 게 대체 어딜 봐서.”

“응~ 너보단 나아~.”

“뭐래, 우럭 대가리가.”

“그 우럭 그만 좀 우려먹어라. 살 다 녹았겠다.”

“넌 왜 안 녹냐.”

“이게 자꾸 오빠한테 맞먹을라고.”

“므요.”

“야, 내가 너보다 두 살이나 많아!”

“먀, 뭬뫄 뭐묘먀 뮤 먈미마 먆먀. X랄.”

“아, 아…… 빡쳐.”

은지가 입술을 까뒤집으며 놀리자, 은호는 그런 은지가 꼴 보기 싫은 듯 잠시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무언가 와르르 쏟아지는 소리와 동시에 은지가 소리쳤다.

“아! 아, 언니! 이은호가 나 때려요!”

“진짜 저게 돌았나.”

“이거 다 이은호 때문이잖아!”

은지가 주섬주섬 쏟아진 물건들을 가방에 담으며 소리쳤다.

“X랄하지 마, 또라이야. 지가 던지려다가 가방 열린 거 못 보고 지 머리에 다 쏟아 놓고는 남 탓이야!”

은호는 그런 은지를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동안 같은 차에 타 있던 슬기와 현우는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산은 산이요, 들은 들이고, 도로는 도로고, 이 남매는 남매로다.’

두 사람의 미소는 왠지 평온을 넘어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보살과 같은 미소였다.

츠즈즈, 바퀴가 아스팔트 바닥에 끌리는 소리와 함께 현우가 운전하던 밴은 각 맞춰 주차를 마쳤다.

“도착했……어요.”

왠지 불안할 정도로 조용하다 싶더라니, 주차를 마치고 뒤를 돌아본 그때였다.

은호는 한 손으로 은지의 머리칼을 쥐어 당기며 다른 한 손으로는 은지의 손목을 쥐고 있었다.

한편, 은호의 손을 타고 도착한 은호에게 잡히지 않은 은지의 한 손은 은호의 구레나룻을 뽑아 버릴 듯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두 사람은 누가 먼저 놓으라고 소리치나 내기라도 하는 건지…….

저러다 잇몸에 피가 터질까 걱정될 정도로 아무런 말도 없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만 좀…….”

현우가 한숨을 흘리며 말하자, 은호와 은지는 서로 눈치를 보며 상대가 먼저 놓기를 기다렸다.

“당장 안 놓으면 대표―.”

뒷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치트키를 사용한 그 순간.

두 사람은 양손을 번쩍 든 채,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뻔뻔하게 큰 눈을 끔뻑거렸다.

최근 철이라도 든 것처럼 바깥에서는 덜 싸우는가 싶었는데, 철은 무슨.

역시나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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