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25)
주말이 지나고,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의 아침 회의 시간.
“그래서, 많이 귀찮은 일이겠지만 E-FAN에 애들 기사, 한눈에 볼 수 있게 블럭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게 좋을 것 같던데, 성민 씨.”
“네.”
“기사는 송주 씨가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했으니까 같이 정리 좀 부탁할게요.”
“네.”
“다음, 보영 씨?”
“네!”
박 대표가 부르자, 일전에 은호와 은지가 제안서를 제출할 때 옆에 있던 보영이 손을 들며 답했다.
“다크오션 연락해 보라던 건 어떻게 됐죠?”
“아, 죄송합니다!”
“내가 어제 이야기해 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네! 연락은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금요일까지는 다크오션 측에서 작업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었는데, 조금 전에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고 답을―.”
“그게 무슨 말이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왜 못 해?”
“‘듀오’ 뮤직비디오를 보고 DI 뮤직 엔터테인먼트 측 한 신인이 뮤직비디오 작업 기간을 길게 잡았다더라고요.”
“그건 어떻게 알아 온 거야?”
박 대표가 예상치 못한 정보력에 조금 놀란 듯 흠칫하며 묻자, 보영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다크오션 측 담당자가 제 지인이라서요.”
“……대단하네. 그나저나 DI 뮤직이면, 거기 대표는 원래 같이 작업하는 곳이 있을 텐데?”
“가수 측 요청이 아니었을까요?”
“신인이라며?”
“네. 신인은 신인인데, 그 다크오션 다니는 친구. 아니, 지인이 DI 뮤직 대표랑 이번에 작업하기로 한 신인이 가족 관계라는…… 뭐,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박 대표는 잠시 생각하더니 정리가 끝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럼 일단 다크오션은 힘들 것 같고. 다들 은호가 올린 그 ‘이 길 위’ 뮤직비디오 제안서는 확인했죠?”
“네. PPT 자료로 제작 후 전 직원들 메일은 물론 회사 홈페이지 공지 사항에서도 확인할 수 있도록 배포했습니다.”
어디 하나 모난 곳 없는 평범한 인상의 기훈이 대답하자, 박 대표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기훈 씨가 해 놨다고 하니까, 혹시라도 확인 안 한 사람은 확인해 보고.”
“네.”
“은호가 이야기한 일정에 맞추려면 시간이 여유롭진 않으니까, 기획팀은 다크오션은 배제하고 다른 곳을 좀 알아봐. 최대한 일정 맞출 수 있고, 작업물 괜찮은 곳으로 골라서.”
“네.”
“참, 송주 씨.”
“네!”
“기사 작업하면서 이응이들 거랑 같이…….”
“네?”
“……톡신 기사들도 알아봐 줘요.”
“아?”
갑자기 등장한 ‘톡신’ 이야기에 송주는 당황한 듯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아, 네. 톡신 기사는 대표님한테 전달 드리면 될까요?”
“그래. 특히 ‘재계약’ 관련으로 나온 이야기 위주로 전달해 줘요.”
“네.”
송주가 두꺼운 뿔테 안경을 치켜올리며 묻자, 박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후 박 대표는 챙겨 온 서류를 다시 한 번 가장 윗면부터 훑었다.
빼먹은 부분이 있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참. 소현 씨, 굿즈 작업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응원봉은 패키징에 들어갔고, 무드 등은 아직 제작 중인 단계예요.”
“앨범 디자인은?”
“말씀하셨던 저녁에 지는 노을 느낌으로 살짝 바 분위기를 더해서 제작됐고, 사내 메일로 전달해 뒀어요.”
“잘했어. 확인하고 수정 사항 있으면 부를게.”
“네.”
“후! 그래…….”
시원한 한숨을 뱉어 내며 박 대표는 두툼한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 뒀다.
“발 넓은 보영 씨 덕분에 최근에 정보 얻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어요. 주말 푹 쉬고 왔으니까 오늘도 힘내 주고. 점점 바빠질 테니 화이팅들 합시다.”
“네.”
“고생값은 이번 주 점심에 간식비로다가 30만 원어치로 대신 할게. 괜찮지?”
“오오오!”
월요병에 찌들어 있던 직원들의 얼굴에 잠시나마 밝은 기운들이 몰려왔다.
* * *
박 대표에게 지시를 받은 후.
성민은 일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칸을 열어 공지 사항을 하나 띄웠다.
[E% 여러분들의 편의성 개선을 위한 점검 및 업데이트 진행 중입니다.]
새로운 칸에 호기심을 느끼고 찾아올 E%들을 위해 화면에서 제대로 공지가 뜨는지까지 확인을 마친 후, 성민은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다.
E%에게 새로운 칸이 공개된 건 점심시간이 다 됐을 때쯤이었다.
「도시의 메아리, 전화 데이트 중 톡신의 리더 지예찬의 깜짝 등장」
「톡신이 말한 재미있는 남매, ‘E-UNG’의 이은호, 이은지는 누구?」
「지예찬, ‘도시의 메아리’에서 전화 데이트 중 ‘E-UNG’에게 관심을 드러내」
「저녁 라디오 ‘도시의 메아리’, ‘Wise’ 라이브 이후 음원 사이트 순위 대격변!」
「어제의 실시간 검색어, ‘야채 vs 채소’? 도시의 메아리가 쏘아 올린.」
「도시의 메아리 남매 아이돌 ‘E-UNG’의 오튜브? ‘대체 뭐길래?’」
성민이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무언가를 옮긴 후 관리자 계정으로 로그인이 된 E-FAN의 어플을 켜자, 휴대폰 화면 속 3/4은 기사들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아래 남은 1/4 부분에는 아직 의미를 모를 빈 검은 칸이 있었다.
“1번 통과, 2번 통과, 3번 통과.”
성민은 수십 가지의 테스트를 거친 후, 마지막 항목에서 ‘제발’을 간절하게 외치며 휴대폰을 두드렸다.
“마지막, 통과.”
A4 용지 속 수많은 항목의 ‘이상 없음’ 칸에 모두 체크를 친 순간.
성민은 오류가 없다는 것에 무언의 환호를 내지르며 신에게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그렇게 오픈된 E-FAN의 새로운 ‘소식란’ 칸.
화면을 보고 있던 성민은 흠칫 놀랐다.
└ 여기는 뭐 하는 곳?
└ 저거 다 이번에 도메 이후에 나온 기사인가?
└ 대박. 편의성 ♥♥다 ㅋㅋㅋㅋ
└ 와 이거 다 이응이 기사야?
대기라도 하고 있던 건지, 벌써 팬들의 댓글이 주르륵 올라오고 있던 탓이었다.
└ 이 할미는 눈물이 다 나요 ㅠㅠㅠㅠ
└ 세상 사람들 이응이 한 번만 잡숴 봐!!!
└ 뭐야 금요일에 내가 야근하는 동안 지지랑 랑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 이거 보고 지금 금요일 도시의 메아리 듣고 있다. 도메 직캠 구해요ㅠㅠㅠ 제발!!!
* * *
박 대표는 성민이 작업한 ‘소식란’을 확인하다 컴퓨터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모니터에는 송주가 따로 전달한 톡신과 관련된 기사들이 빼곡했다.
“하, 하하하.”
박 대표는 화면을 보며 기쁜 건지, 놀란 건지 모를 표정으로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은호가 제안서를 가지고 오기 며칠 전.
지잉, 지잉.
집 안에 차린 헬스장에서 가볍게 60kg 벤치프레스로 몸을 풀던 박 대표는 휴대폰 진동에 바벨을 제자리에 걸며 몸을 일으켰다.
“어, 은호야.”
“대표님, 바쁘십니까?”
박 대표는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는 상상도 못 한 채 개운하게 스트레칭을 하며 전화를 받았다.
“아니, 왜 무슨 일 있니.”
“다름이 아니라,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어떤 거?”
박 대표는 처음엔 평소와 똑같이 은지가 제작한 신곡에 관한 것이거나 가사에 관한 주제일 것이라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은호의 이야기를 들으며 박 대표가 단백질 셰이크 통을 입으로 가져가던 그때.
우뚝.
박 대표는 단백질 셰이크가 채 입에 닿기도 전에 셰이크 통을 다시 내려놔야 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은호가 한 이야기에 박 대표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었다.
전화 너머로 웃음기 섞인 은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네가 말한 대로 한다면 TaKa 엔터테인먼트를 완전히 적으로 두는 게 될 텐데?”
“음. 대표님, NRY 회사 차리시기 전에 시골에 내려가 계셨다고 했었죠?”
“어. 그랬지.”
“그때, TaKa 엔터테인먼트에서 다시 돌아오라는 제안 받으셨어요?”
“그랬지?”
심지어 월급의 몇 배에 몇 배를 더 줄 테니 와 달라고 TaKa의 대표가 빌기까지 했으니까.
“그럼 더 확실하네요. 톡신 선배님들이 NRY 엔터테인먼트에 영입되면 어차피 적이 되는 건 마찬가지이지 않을까요.”
“…….”
할 말이 없었다.
그 이유는 은호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TaKa 엔터테인먼트는 몇 년 전부터 거의 톡신 원툴로 돌아가고 있잖아요.”
“……그랬지.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
은호는 이런 데에 큰 관심이 없던 녀석이었다.
‘애가 펜션에서 지예찬과 사이가 가까워지더니…….’
자식 같은 내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말은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명분도 충분한데, 집어삼키면 NRY 엔터테인먼트가 TaKa 엔터테인먼트만큼 커질 수 있는 ‘기회’잖아요.”
“그건…….”
그렇지.
기회다.
큰 기회였다.
NRY 엔터테인먼트는 원래 톡신을 품으로 데려오기 위해 세운 회사.
그 역할을 해낼 시간이, 기회가 온 것이니까.
“제 이야기는 그렇게 되면 그랬으면 좋겠다는 상상에 불과하니까요. 그나저나…….”
그날의 통화는 금세 언제 이런 이야기를 했냐는 듯, 평소와 같이 밥은 어떤 걸 먹었는지 등 평범한 대화로 연결됐다.
통화가 끝나고 박 대표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원래 이런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녀석이 해서 그런가.
꼭 중요한 인생의 갈림길에 선 채 한 길을 선택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박 대표는 선택했다.
남아 있던 TaKa 엔터테인먼트의 주식들을 ‘나쁘지 않은 금액’에 모두 처분하는 것으로 남은 ‘정’을 정리했다.
그게 신의 한 수였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하, 하하하.”
모니터 속 기사들을 읽은 박 대표는 복잡한 기분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송주가 따로 전달해 준 톡신의 재계약과 관련된 기사들이었다.
「“톡신 선배님들 재계약 문제로 갈등 중이라든가, 예찬 선배님의 G-MISIC으로 이동한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나올 텐데―.”」
박 대표는 소름이 돋았다.
「톡신 재계약 문제로 갈등 중, TaKa와 결별하는 것인가?」
「톡신과의 재계약 불발 소식, TaKa 측 관계자 “아직 이야기된 것이 없어…….”」
「TOXIN, TaKa와의 결별 이후, 역시 지예찬의 ‘G-MISIC’으로?」
보다시피 기사는 은호의 이야기를 그대로 빼다 박아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단 한 가지 다른 점은 있었다.
「톡신의 전속 계약 기간, 재계약 직전에 ‘E-UNG’의 소속사 NRY의 러브 콜?」
「톡신의 재계약 문제에 갑자기 등장한 NRY 엔터테인먼트는 어디?」
「NRY 대표 박창석, 알고 보니 과거 톡신과의 깊은 인연이 있는 사이」
거기에 명확하게 E-UNG이 소속되었다는 NRY 엔터테인먼트의 이름이 추가됐다는 것.
톡신과 은호와 은지가 가까이 지내는 것만으로도 명분은 어느새 완성되어 있었다.
명분과 좋은 결과까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기회.
은호의 말에 의하면 지금이 첫 번째 ‘때’였다.
박 대표는 은호의 감을 믿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은호의 뜻을 따라서 손해는 없었으니까.
[E-UNG ― ‘더운 오후’ feat. YN, M-IN M/V Teaser.]
톡신과 E-UNG의 두 번째 작업 곡이었던 <더운 오후>.
의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티저가 공개됐다.
* * *
“어, 어어, 어어어! 언, 언니!”
작업실에 비트를 틀어 놓고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던 에이슬은 곧 숨넘어갈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매니저를 찾았다.
“언니! 떴, 떴어! 떴어!”
“어떤 게.”
“이, 이응 신곡 뮤비 티저 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