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24)
결과는 정말 좋았다.
의 성적 역시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곡을 발표하자마자 를 넘어, 음원 사이트의 ‘TOP 10’ 안에 발을 얹었다.
‘듀오’ 때와는 차마 비교조차 송구한 정도의 크나큰 성적 차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심지어는 곧 5위 진입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는 순탄하게 승승장구하는 중이었다.
은호는 질투에 속을 앓는 것 대신.
펜션 여행 당시 짧았지만 기억에 남았던 예찬의 말을 재차 곱씹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 인지도를 이용해서라도 좋으니까, 최대한 빨리 너희 이름을 이 나라에 알려.”」
* * *
다 함께 펜션 여행을 갔던 마지막 날 저녁.
방 안에는 시끄러운 바깥을 피해 먼저 도망쳐 있던 은호가 지정석이나 다름없어진 창문 앞 티 테이블에 앉아, 가사 노트를 펼쳐 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예찬은 자기 전이면 매번 다른 종류의 팩을 꾸준히 얼굴에 올렸다.
그날 역시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얼굴에 팩을 뒤집어쓴 채 침대에 마치 무덤 속 파라오처럼 자리를 잡고 누웠다.
여기까지는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여행이자 촬영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일까.
예찬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는 그랬었다.
“은호야, 넌 살면서 생각하거나 해 봤던 일 중에 제일 미친 짓이 뭐야?”
“미친 짓이요?”
뜬금없는 예찬의 질문에 은호는 머릿속 끝없는 우주에서 겨우 빠져나오며 물었다.
예찬이 ‘응’이라며 태연하게 대답하자, 이번엔 다른 주제로 은호는 다시 고민에 잠겼다.
“선배님은, 아, 이건 조금 그런가요?”
“난 어떤 짓까지 해 봤냐고?”
“네.”
은호가 뒤늦게 불편하시면 굳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이야기를 덧붙이려던 그때였다.
예찬은 괜찮다며 먼저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우리 팀 일화는 워낙 유명한 일이니까 알고 있지? TaKa에 가기 전 회사 일.”
“아, 예. 알고 있습니다.”
“이게, 그때 일인데―, 참, 이거, 다른 애들은 모르는 일이니까 비밀로 하는 거다.”
“예. 당연하죠.”
“그래. 음,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톡신이기 이전에 ‘세더티브’라는 이름이었거든.”
“진정제요?”
예찬에게는 미안한 반응이었지만, 은호는 정말 처음 들어 본 이름인 듯 당황스러운 반응을 차마 감추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하하, 죄송할 거 없어. 똑같이 활동했는데도 불구하고 톡신(독)은 알려지고 그 이름은 알려지지 않은 거 보면 그 회사가 일을 못해서인 거니까.”
예찬은 태연하게 말을 하며 웃었다.
“가장 미친 짓은 그때 내가 벌였던 일인데, 세더티브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낸 첫 앨범이 있었어.”
“아…….”
“난 그걸 끌어안고 죽으려고 했었어.”
평온한 얼굴과 반대로 폭탄 같은 이야기에 은호의 당혹스러움 감추기가 힘들었다.
예찬은 마치 가벼운 농담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로는 그때의 감정이 감춰지지 않는지 여느 때보다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죽음.’
그 두 글자에 은호는 본능적으로 굳어 갔다.
“그렇게 정색할 거 없어. 생각만 했고 다행히 시도에서만 끝났으니까.”
시도에서만 그쳤다는 이야기에 그제야 굳어 있던 은호의 얼굴이 풀어졌다.
“왜…….”
여기서 ‘왜’를 묻는 게 황당하겠지만, 궁금했다.
“……그땐, 절실하게. 정말 절실하게. 나 하나의 죽음으로 우리 애들의 이름이 세상에 한 자라도 알려지길 바랐거든.”
예찬은 장난기를 지워 내며 말했다.
현재의 톡신 멤버들에게 예찬이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가 짙게 드러난 대답이었다.
“우리한테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팀장님은 그래서 나한테 생명의 은인이야.”
예찬의 말을 들으며 은호는 조용히 시선을 노트로 옮겼다.
아래 화이트로 그린 ‘凸’만 없을 뿐.
가사 노트는 은지의 그 일기장과 똑같은 외형의 노트였다.
살라는 한마디에 죽는 건 생각조차 못 하고 살았던 자신으로서는, 차마 팀을 위해 죽음까지 생각했던 리더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할 수야 있었지만, ‘감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제 내 이야기는 했으니까, 어린 후배님 이야기 한번 들어 보자.”
“아, 저는…….”
예찬 선배처럼 그렇게까지 거창한 이야기는 없다.
정작 이런저런 경험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한테는, 내 기준에는 ‘그저 그런’ 일들뿐.
‘그나마 꼽자면…….’
음.
“아무도 못 믿을 것 같은 비밀을 동생한테 털어놓은, 그 정도뿐이네요. 저는.”
‘회귀’라는 단어를 직접 말하기엔 조심스럽기도 했고, 동시에 민망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미친X’으로 보이고 싶진 않아서 그렇게 말한 것도 있었다.
‘음.’
팩을 한 채 누워 있는 선배의 모습은 조금 다른 의미로 진지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랬다.
다행히 예찬 선배는 ‘어떤 비밀’인지는 묻지 않았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그때였다.
뜬금없이 예찬의 휴대폰이 시끄럽게 알람을 울렸다.
무슨 알람인지는 예찬은 얼굴에 붙이고 있던 팩을 떼어 내며 일어나는 모습에서 눈치껏 알 수 있었다.
방 안에 예찬이 얼굴을 섬세하게 두드리는 ‘챱챱’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
보면 볼수록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20대보다도 좋아 보이는 ‘동안 피부’를 가졌는지 알 수밖에 없는 부지런함이다.
은호는 직접 드러내진 않았지만, 첫날 당시 예찬의 제안에 따라서 마스크 팩을 할 때의 갑갑함을 뒤늦게 배웠다.
덕분에 더더욱 예찬의 부지런함을 보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얼굴에 뭔가를 얹은 채 40분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건 상상 이상으로 갑갑했다.
첫날 이후로는 예찬이 더 주겠다고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유에서 매일 거절하는 중이었다.
“후…….”
예찬 선배는 정리를 마친 뒤에서야 이야기를 이어 갔다.
어쩌면 과거 ‘Co-Sign’ 피처링의 연장선인 이야기였다.
“솔직히 예전에 너하고 처음 작업했을 때, 그땐 단순히 팀장님이 ‘새 크루를 만드시는구나’ 싶어서, 도왔던 게 컸어.”
예찬은 쓰레기통에 마스크 팩을 버리며 말을 이었다.
“그랬는데, 이번에 보니까 알겠더라. 은지나 너는 팀장님한테 단순한 크루가 아니라…….”
예찬은 적절한 단어를 고민하는지 침대에 걸터앉은 채 팔짱까지 끼며 고민했다.
그러다 단어가 떠오른 듯, 예찬이 엄지와 중지를 이용하며 손가락을 튀겼다.
“그래. 자식들.”
“자식이요?”
“어. 왠지 사업상 흔히 하는 ‘가, 족같은’ 사이가 아니라, 진짜 ‘가족’.”
이 부분에서만큼은 예의상의 부정조차 하지 않았다.
가장 박 대표와 사이가 가까웠던 예찬이 예상한 그대로, 대표님은 정말 부모님이었고 가족이었으니까.
은호의 조용한 반응을 예찬은 이미 예측했던 건지, 대답이 없었음에도 태연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네 동생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지만, 넌 내가 이걸 ‘무슨 의미’로 말하는지 알 것 같아서.”
예찬은 귀 옆에서 양손 검지를 굽히며 ‘무슨 의미’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우리 인지도를 이용해서라도 좋으니까, 최대한 빨리 너희 이름을 이 나라에 알려.”
이어서 평온한 표정으로 입을 연 예찬이 꺼낸 이야기에,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은호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은 듯 서서히 눈이 커졌다.
진심으로 놀랐다.
지예찬에게 평소와 같은 장난기는 전혀 없었다.
빈말이나 농담은 절대 아니라는 말이었다.
은호는 그게 무슨 의미냐고 물으려고 했지만, 사실 그건 예의상이었다.
「“은호 씨가 잘되면 내가 평생 은혜를 갚아야 할 분께 크게 도움이 돼.”」
답은 굳이 한 번 더 듣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예찬이 신곡 쇼케이스 무대에 서 달라 제안하던 그날.
예찬에게 이미 한 번 들었었던 그 말.
* * *
그래서였다.
예전이면 자존심이니 뭐니 좋은 기회가 굴러 들어와도 굳이 발로 차고 내 실력으로 오르겠다며 떠들어 댔을 텐데.
‘하지만 지금 나는…….’
그때와 지금은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차마 그때처럼 순진무구하게 살기엔 난 너무 많은 것을 배워 버렸고.
이미 알아 버린 그것들을 놓기란 절대 쉽지 않았다.
이 바닥에서 성공하려면 운은 필수에 가까웠다.
회귀 전 당시 은지는 운과 실력, 준비된 앨범과 빠른 작업 속도.
삼박자를 넘어 사박자로써 모든 게 잘 맞아떨어진 덕분에 뜨기까지 오랜 기간이 필요 없었다.
그야말로 눈앞에 성공 가도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이 바닥에서 실력만으로 정상으로 갈 수 있는 그 길목에 서는 것까지에도 턱없이 긴 시간이 걸렸었다.
쏟아지는 전쟁터 같은 ‘신인’의 물결 속에서 겨우 그 ‘운’이라는 것이 나를 겨우 찾아왔을 때.
그땐 쉬이 ‘큰손’이라 불리는 거대 기획사들의 막강한 홍보력에 또 한 번 1등을 코앞에 두고도 밀려나야만 했다.
그 결과, 난 이 순간까지도 정상의 꼭대기는 끝끝내 찍을 수 없었다.
순위는 낮지만, 실력은 좋은, 흔히들 말하는 ‘숨은 명곡’이라는 타이틀.
그게 내 타이틀이었다.
한편, 현재 은지는 이 자리에 있을 녀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자리에 있다.
세상을 떠나기 전이나 후나…….
매년, 매해, 계절이, 특별한 기념일이 돌아올 때가 될 때면 은지의 곡은 순위를 역주행하며 명예의 전당과도 같은 온갖 음원 사이트의 TOP 10에 아주 손쉽게 자리했다.
그래서 더더욱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톡신’이란 이름의 파급력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 대단하다.
대형 기획사의 그 어떤 연예인이라도 쉽게 씹어 먹을 수 있는 이름값을 가졌으니까.
‘좋은 일인 거야.’
조금 많이 씁쓸한 기분이긴 하지만 예찬 선배의 말대로 한마디라도 더 얹어지면 그것만으로 이득이다.
냉정하게 현실을 보기 위해 괜한 자존심은 일찍이 서랍 깊이 박아 버렸다.
이 자존심은 성적이 오른 후에 꺼내도 늦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괜찮았다.
다만 은지는 조금 못마땅한 것 같기도 했다.
은지에게 회귀 전 기억이 돌아왔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그 ‘못마땅함’을 내가 감히 탓할 자격은 없었다.
‘얘는 진짜 혼자 힘으로 성공할 수 있는 녀석이니까.’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또 지독한 열등감 덩어리가 돼서 추해졌을까.
으. 상상하기도 싫다.
물론 이렇게 말을 하는 만큼 지금은 마음가짐이 달랐다.
굳이 이어서 말을 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이미 뒷말을 알고 있는 유명한 그 명언.
‘일단 유명해져라.’
오늘 라디오는 그 ‘일단 유명해지자’의 첫발이나 다름없었다.
‘오늘 이렇게까지 떡밥을 뿌렸으면, 알겠지.’
그들이 우리가 던진 낚싯대에 걸린 먹이를 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때’를 맞춰, 톡신 선배님들과 작업한 두 번째 곡 ‘더운 오후’와 ‘RED’를 이용해, 낚싯대를 끌어 올릴 것이다.
그리고 수면 위로 그들이 드러났을 때, 오늘 아침.
대표님께 전달 드렸던 제안서 제일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두 캐릭터.
‘그것’과 ‘이 길 위’를 이용하여, 아직은 뚜렷하지 않은 ‘E-UNG’이라는 이은지와 내 이미지에 확실한 색을 입힐 것이다.
‘통할 수밖에 없을 만큼.’
밀어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