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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23화 (123/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23)

―누님께서 상상하고 계신 그런 큰 싸움은 아닙니다. 하하.

―어머, 내가 무슨 싸움 생각한 줄 알고?

―막 주먹질하고, 그런 싸움 생각하신 거 아니었어요?

―세상에, 깔깔. 예찬 씨, 혹시 초능력자예요? 어떻게 알았대! 깔깔깔.

―하하. 그런 싸움은 아니었고…….

‘싸움’이라는 단어가 살짝 오해의 여지가 있었지만, 예찬은 태연하게 웃으며 가볍게 오해를 풀어 나갔다.

정확히는, 풀어 나가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한 장벽이 하나 있었다.

술기운이 짙어진 태현이 나직이 읊조린 한마디.

―저기, 찬.

―응?

―내가 진짜 몰라서 묻는 건데, 쟤들 안 싸운 날이 있긴 하냐.

―어, 어! 어?

태현이 툭 던진 한마디에 예찬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진심으로 당황했다.

평소 지예찬이 대중에게 완벽주의자다운 날카로운 성격만 많이 비쳤던 탓일까.

그간 보인 적 없던 반전 모습에 톡신의 ‘포션’들뿐만 아니라, E%와 일반 청취자들마저도 반응이 뜨겁기 그지없었다.

이후 예찬은 다시 침착함을 되찾고 처음에 이야기하려던 ‘썰’을 풀어 나갔다.

―은호가 은지한테 장난으로 ‘야채와 채소의 차이점’을 가지고 자주 놀렸었거든요.

―야채와 채소요?

시작은 은호가 은지를 놀리려고 이야기를 꺼냈지만, 본의 아니게 옆집으로 불씨가 옮겨졌다.

데뷔 이래, 예찬과 태현 앞에서 단 한 번도 큰 소리를 낸 적 없던 막내 라인.

오현, 주송민, 서승연.

세 사람은 슬슬 단톡방에서 큰 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어느새 단체 그룹 통화까지 하며 진지하게 토론의 장을 열었다.

은지는 진지하게 세 사람의 토론을 경청하고 있었고, 계기였던 ‘야채와 채소’ 이야기를 던졌던 은호는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이모티콘을 올리며 죄송하다 사과하기 바빴다.

예찬이 그날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실시간 순위에는 ‘채소와 야채’, ‘채소’, ‘야채’가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은호는 이마를 짚으며 당황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아무래도 제가 또 콜로세움을 개장한 것 같네요…….

잎과 줄기채소를 야채라고 한다. or 아무거나 써도 된다 등.

비슷한 듯하지만, 왠지 미묘하게 다른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손성희는 ‘그냥 다들 골고루 드세요.’라며 진행자 권한으로 콜로세움을 강제로 닫아 버렸다.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는데.

이후로도 예찬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톡방에서 은호와 은지가 서로 놀리다가 갑자기 진심으로 감정이 상했던 일이라던가.

대뜸 같은 집에 살고 있으면서 ‘현피(현실 PVP) 뜨고 오겠습니다.’라고 사라졌던 일.

그걸 그대로 지예찬이 박 대표에게 일러 한밤중에 박 대표가 기숙사로 찾아간 일 등.

은호와 은지가 하루 한 번은 이벤트처럼 꼭 싸운 탓인지, 정말 끝없이 펼쳐지는 소재였다.

* * *

―톡신과는 어떻게 알게 된 사이에요?

PD와 손성희는 처음엔 대본대로 단순히 톡신과 이응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물으려 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현실 남매 싸움을 직관한 톡신 멤버들’의 이야기에 하나같이 빠져들어 있었다.

뒤늦긴 했지만, 한참 뒤 주제는 자연스럽게 이번 에 대한 인터뷰로도 연결됐다.

―저희 대표님 덕분에 만나 뵐 기회를 얻었었죠.

―오! 참, 이응의 소속사 대표님이 예전에 톡신의 영웅이라던 박창석 팀장님이 대표로 계신 곳이었죠?

―하하. 네. 맞아요.

―톡신분들이 워낙 엄청난 대선배다 보니 긴장도 많이 됐었을 것 같은데.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상상 이상으로 선배님들께서 굉장히 젊으셔서.

―내가 좀 젊게 살지.

아직 통화가 연결된 터라 인터뷰 중간중간에 예찬이 능글맞게 말을 더했다.

―깔깔깔. 어머, 이거 철이 없다는 걸 돌려 말하는 거 아니에요?

―어휴, 아니에요! 아니에요!

손성희가 장난으로 툭 던진 이야기에 은호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은호, 너, 그런 거였구나. 그래서…….

―아니. 형님,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입니까―아. 형님이 그러시면, 저, 저 진짜 그런, 아, 그런 이야기가 아닌데!

거기에 지예찬이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한술 더 뜨며 말을 더했다.

은호가 진심으로 당황하자 스튜디오에 단체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알고 있어. 장난, 장난. 조크, 조크.

―조크 두 번 했다간 제가 조커 되겠어요. 아하하하하.

은호의 말장난에 잠시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 가던 그때였다.

―요! 라임! 뿌뿌뿌뿌~우!

그래도 동생이라고 은지가 합을 맞춰 주며 분위기의 방향을 뒤틀었다.

―커버값은 설거지로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물론 공짜로 도운 건 아니었는지, 스튜디오 내에서 다시 웃음이 터지자 이번엔 은지가 정색하며 말했다.

―예. 두 번 하겠습니다. 맞춰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비스가 좋네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태연하게 은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은호.

왠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모습에 손성희는 자지러졌다.

한참을 잡담으로 떠들썩하게 웃고 나서야 대화는 다시 첫 이야기로 돌아왔다.

―선배님들이 아무래도 저희를 많이 배려해 주셨죠.

―톡신과 이응이 인원도, 나이도, 경력도 정말 많이 다른 그룹인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훈훈하네요.

―아무래도 같은 대표님 아래에서 만들어진 그룹이라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오.

―통하는 부분이 한 가지는 확실하게 있어서.

―맞아요.

가만히 듣고 있던 은지가 고개를 끄덕이야 이야기를 더했다.

―얼마 전에, 아니. 오늘 아침이네요. 아침에 서승연 선배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대표님 잔소리 피하는 법’을 써서 큰 도움 받았거든요.

―어머, 깔깔깔깔! 잔소리를 피하는 법이요?

―네. 저희 대표님이 잔소리를 시작하시면 래퍼 외톨이 님처럼 숨도 안 쉬시고 몇 시간을 막 멈추지 않고 쏟아 내셔서요.

은지가 양팔을 크게 뻗어 가며 ‘몇 시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노력했다.

그때 은호는 크게 공감이 가는 이야기인 듯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있었다.

―깔깔깔깔. 그럼 큰 도움 맞네요!

그 모습에 손성희는 이젠 옆구리가 땅기는 듯 허리를 짚으며 웃었다.

손성희만큼이나 이 바닥에서의 경력이 깊은 PD 덕일까.

보다시피 알겠지만, 방송은 이미 대부분이 애드리브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밝고 재미있는 분위기가 괜찮았던 건지, PD는 제재 없이 이 분위기를 이어 가며 진행을 계속했다.

―사랑하는 도시의 메아리 청취자 여러분들, E% 님들 그리고 우리 포션들! 이번 ‘Wise’에 저희도 참여했으니, 많이 들어 주시고 나중에 나올, 아. 이건 비밀인가?

―왜요? 뭐가 더 있어요?

지예찬이 궁금증만 키워 두고서 말을 하지 않자, 인사를 듣던 손성희가 참다못해 물었다.

―이응이들 응원한다고 우리가 다 같이 붙어…….

―태현아, 야, 야야.

지예찬이 던진 떡밥을 해소한 건 예상치 못하게 취기에 정신없는 태현이었다.

예찬은 급하게 태현을 틀어막으며 끝인사를 외쳤다.

―아무튼, ‘Wise’도 우리 이응이들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당황한 지예찬의 인사와 함께 전화 데이트인지 모를 긴 통화가 끝난 뒤.

워낙 존재감이 컸던 지예찬이 빠져나간 탓일까.

스튜디오에는 잠시간 침묵이 앉을 뻔했다.

―오! XXXX 님께서 질문하셨네요. 은호 씨와 은지 씨는 오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고요?

하지만 PD만큼 오랜 경력으로 능숙한 손성희의 부드러운 진행 덕에 이어서 청취자들의 질문을 받고 답하는 시간으로 연결됐다.

―아, 오튜브. 그게, 저희가 나오기는 하는데, 채널 자체는 저희가 운영하는 건 아니고 최근까지는 대표님이 취미처럼 운영하던 채널이었어요. 하하.

―세상에, 그럼 XXXX 님이 말씀하시는 혹시 영상 편집 같은 것도?

―네. 전부 대표님이 하셨었어요. 그래서 대표님의 고양이 사진 수가 은지 방 더럽, 억.

은호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데미지를 입은 옆구리를 움켜쥐며 입을 닫았다.

사실 처음엔 맞은 만큼 반항심이 생겨서 더 질러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은지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은호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듯 입술을 말아 물며 ‘더 말하지 않겠다’라는 무언의 약속을 했다.

―깔깔. 그나저나 대표님이 오튜브까지. 세상, 세상에, 대단하셔라.

손성희는 감탄을 아끼지 않으며 진심으로 박 대표에게 찬사를 보냈다.

―XXXX 님께서 질문하셨어요. 오튜브에서 부르는 둘만의 애칭이 생긴 계기가 어떻게 되냐 말씀하셨는데. 어머, 두 분 서로 부르는 애칭이 있어요?

손성희의 질문을 들은 은호와 은지는 순간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한 채 서로를 돌아봤다.

‘이게 뭔 소리야?’

‘내가 아냐?’

―깔깔, 아우, 세상에. 여러분 두 분 있잖아요. 깔깔깔. 표정이 ‘이게 무슨 소리야!’ 하는 얼굴이에요. 깔깔깔.

손성희는 둘의 똑 닮은 기겁하는 표정을 보더니 큰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우럭, 호박]

손성희를 따라 웃던 PD님이 조용히 당황한 은호와 은지에게 힌트를 줬다.

익숙한 두 단어를 본 순간.

‘아!’, ‘이거―.’라며 은호와 은지는 그제야 평정을 되찾았다.

―이게, 사실 애칭이 아니고…….

은호는 핑계와 함께 은지가 미디창으로 했던 장난과 눈사람 이야기를 꺼냈다.

동시에 오튜브에 영상이 있다는 말을 더한 덕분인지, 얼떨결에 오튜브 홍보까지도 성공적으로 해내게 됐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였지만, 그날 ‘도시의 메아리’에는 역대급으로 많은 문자가 쏟아졌다고 했다.

사실 PD와 은호와 은지가 처음 이야기를 나눴을 땐 의 홍보만 하고 빠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톡신의 등장 파워가 큰 도움을 줬고, 그 결과 뻔하디뻔한 홍보 계획이 크게 비틀리게 됐다.

한편, 감각 좋은 PD님은 독단적인 판단하에 그냥 이대로 이어 가는 쪽으로 결정했다.

그 결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 조금 정신은 없었지만, 덕분에 방송만큼은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 * *

이용

‘도시의 메아리 (2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밝은 방송 분위기와 반대로 차 안은 의외로 고요한 분위기만 맴돌았다.

방송은 성공적이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그러했다.

다만 거기엔 ‘톡신의 통화’가 크게 이바지했기 때문인 이유가 컸다.

그 이유를 증명하듯 은호와 은지의 이야기로 초점이 돌아오자 눈에 띌 정도로 반응이 크게 줄어들었던 데다, 몇몇은 일부러 읽지 않고 지나쳐서 그렇지.

[톡신 방송 아니었어요? 왜 전화 끊어?]

주객이 전도되었음을 증명하듯 그런 문자들이 적잖이 눈에 띄었다.

손성희 선배님이 밝은 리액션과 더불어 좋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지도가 워낙 높은 ‘톡신’이기 때문일까.

날아오는 문자 내용에서 오늘 라디오의 ‘특별 게스트’ 자리가 톡신인 듯한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는 애초부터 톡신과 함께 제작한 곡인지라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긴 했다.

‘결과는 좋으니까.’

이러나저러나.

결과가 중요한 거니까.

은호는 애써 머릿속의 잡생각을 떨치며 씁쓸한 눈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창밖 풍경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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