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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22화 (122/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22)

티라미수 케이크 선물은 회귀 전 경험을 빌려, 선배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것인 걸 이미 알고 선물한 거였다.

하지만 잘 알고 골랐다는 걸 들키면 혹여나 불쾌해하실까.

은호는 일부러 안심이라는 듯 약간의 과장을 더한 한숨을 내쉬며 모른 척 웃었다.

간단히 짧은 대화를 나누던 사이.

줄줄이 이어지던 광고가 끝난 듯 ‘차르르륵’ 별이 쏟아지는 것 같은 샤랄라한 BGM이 흘렀다.

PD의 딱 맞춰 떨어지는 신호를 따라 손성희는 여유롭게 인사를 이어 갔다.

―과거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대나무 숲이 있었다면, 도시의 메아리가 있다.

―돌아온 도시의 메아리, 2부! 오늘의 특별 게스트! 이은지 씨, 이은호 씨를 모셨습니다! 호―우!

―안녕하세요! E-UNG.

―안녕하세요. E-U.N.G.

시작은 거의 동시에 가까웠지만, 항상 정확히 맞는 법은 없는 ‘E-UNG’만의 인사가 이어졌다.

일부러 노리고 만든 인사는 아니었지만, 어느새 활동하면서 자연히 팀의 상징이 되어 버린 어긋난 타이밍의 인사였다.

“이은호.”

“이은지입니다!”

은호와 은지는 태연하게 앞서 어긋난 소개를 넘기며 인사를 마무리했다.

“깔깔깔.”

손성희는 인사부터 자지러지게 웃으며 멘트를 이어 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꺄아아악!”

두꺼운 방음창을 뚫고 환호성이 쏟아졌다.

스태프들과 PD까지도 놀라며 일제히 창문 쪽을 돌아봤다.

“와, 이응이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나 봐요.”

손성희는 사람들을 따라 창 쪽을 바라보며 장난 섞인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여기서 이렇게 팬분들 함성이 유리창을 뚫고 들어올 정도로 큰 건 처음 들어 봐요!”

혹여 팬들이 민폐를 끼친 건 아닐까.

은호가 걱정하고 있던 그때였다.

[팬분들께 인사해 주세요~]

어떻게 눈치챈 건지 PD가 은호와 은지에게 센스 있는 메시지를 띄워 보이며 웃었다.

은호는 PD에게 짧게 인사 후, 혹 민폐가 될까 못했던 팬들을 향한 인사를 그제야 마음 놓고 건넸다.

양손을 흔들다가 꾸벅 바깥을 향해 허리를 숙이는 은호와 크게 팔을 흔드는 은지.

‘갸아아아악!’

이게 함성일까, 비명일까 싶을 정도로 격한 환호성이 이어졌다.

닮은 얼굴에 그렇지 못한 인사를 보며 손성희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와중에 만족스럽게 팬들의 환호 소리가 담긴 듯 PD가 양팔을 들어 흐뭇한 표정으로 커다란 ‘O’를 만들어 보였다.

―불타는 환호와 어울리는 불금에 이 분위기를 이어, 2부의 꽃! 오늘 밤의~ 라이브― 멜로디!

신곡 홍보 겸 라이브 공연을 하는 시간이었다.

―오늘의 주인공 이응의 신곡 ‘Wise’, 뮤직, 큐!

손성희의 신호에 맞춰, PD는 천천히 볼륨을 높였다.

Three wise monkeys

창문 너머 E%의 응원 버프와 오늘 대표님이 반강제로 밀어붙인 휴식 덕분일까.

은호는 편안한 차림만큼이나 자유분방하게 애드리브를 던지며 ‘Wise’를 이어 갔다.

좋은 컨디션은 은지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은지도 은호의 화려한 애드리브에 밀리지 않고 덤덤하게 제 길을 나아갔다.

매력 있는 깊은 음색에 수많은 가수의 노래를 들어 본 손성희도 어느새 푹 빠진 채 라이브를 감상하고 있었다.

누구 팬인지, 구경을 위해 모인 E%는 꼭 미리 짜 두기라도 한 듯 조용히 멜로디를 따라 머리를 흔들며 감상 시간을 가졌다.

은지가 포인트 안무를 추는 훅에선 다 같이 손으로 포인트 안무를 추며 은지와 합을 맞췄다.

우연히 창밖을 본 은호와 은지는 흔들림 없이 노래하며 E%들을 향해 활짝 웃었다.

홀린 듯 은호와 은지를 바라보던 E%들은 급하게 휴대폰을 들었지만, 카메라는 유리 너머의 은호와 은지의 모습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동영상) 카메라가 신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 아악 ㅠㅠㅠㅠㅠ 저 유리 다 부숴 버리고 싶다

└ 헐 부러워

[위 영상에서 랑이 패션 뭐야…. 랑이는 귀엽고 지지도 귀여워….

우리 이응이들 일상복 보고 심장 두들겨 맞고 지금 가루 돼서 영혼으로 방송국 방문하고 왔다.]

└ ㅇㅈㅇㅈㅇㅈ ㅠㅠ 베이지색 가디건 너무 잘 어울려서 할 말 잃었다.

└ 은지 박스 티만 걸쳤는데 미모 열일 ♥♥어

[얘들아!!! 도시의 메아리 응원 문자 다들 쓰고 온 거지?]

└ 당연하지

└ 이미 내 폰 친구 폰 엄마 폰 아빠 폰 있는 폰 없는 폰 다 끌어모아서 보냈엌ㅋㅋㅋㅋ

[나나 오늘 영천에서 와서 서울 지하철 처음 타 가지고 지하철 헤매면서 환승만 세 번 했는데 ㅠㅠ

진심 힘들어서 집에 갈까 고민하다가 아까 지지 웃는 거 보는 순간 그딴 거 다 잊고 바로 기차표 또 예약함 ㅋㅋㅋㅋㅋ

과거의 나 자신 잘했어ㅠㅠㅠ]

└ 고생 많았어 ㅠ

└ 와 나도 지금 도메 듣는 중! 부러워!!

도시의 메아리에 응원 문자를 보낸 사람 중에는 누구 하나 상상치 못한 사람도 몇몇 섞여 있었다.

[지예찬 ― 지금 도시의 메아리 2부 라이브 멜로디 하는 중인 거 맞지?]

[서승연 ― 형 무슨 소리예요. 지금 엔딩 타임인데?]

[지예찬 ― ? 진짜?]

[주송민 ― 예 너무 늦으셨어요.]

[지예찬 ― 어? 나 이응이네 라디오 한다고 했을 때 알람까지 맞춰 놨는데?]

단체 깨톡 방에서 만나 보기 힘든 지예찬의 진짜 당황한 반응에 톡신 맴버들의 ‘ㅋㅋㅋㅋㅋ’ 또는 큰 웃음을 터뜨리는 이모티콘들이 쏟아졌다.

[오현 ― 쟤들 놀리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닌데 형이 속으면 어떡해요ㅋㅋㅋㅋ]

[지예찬 ― 아… 뭐야 거짓말이구나]

[주송민 ― (약이 오르게 윙크를 날리는 그림판에서 대충 그린 듯한 이모티콘)]

[지예찬 ― 진짜인 줄 알고 놀랐잖아 ㅋㅋ 아까 문자 보냈다고]

[서승연 ― 형이요?]

[지예찬 ― 나 말고 지금 옆에 취한 애가]

[서승연 ― 헐 ㅋㅋㅋㅋㅋ 태현 형이? 문자요? ㄹㅇ?]

[지예찬 ― ㅋㅋ 진짜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지예찬 캐릭터 이모티콘)]

[최태현 ― ㅇㅓㅐ 보냐먄 얀돼?]

[서승연 ― ㅋㅋㅋㅋㅋㅋㅋ]

[주송민 ― 형 지금 몇 신데 벌써 갔어]

[오현 ― ㅋㅋ 형 뭐라고 보냈어요?]

라이브 시간이 끝난 뒤.

최태현이 보낸 문자는 응원 글을 즐겁게 읽어 내리던 은호와 은지에게 난제처럼 불어닥쳤다.

“벌써 불금을 즐기는 분도 계시네요. 어, 애, 디, 고, 앵이 가츠…… 흐음, 이건 암호일까요?”

“어, 이 뒷자리는……!”

“왜 아는 번호야?”

은지가 묻자, 은호는 입 모양으로 ‘태현 선배 뒷번호랑 똑같잖아.’라며 말했다.

‘번호라는 것은 사람 대신 휴대폰이 외우는 것이다.’

……라는 타입인 은지로선 번호만으로 누구 연락처인지 아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그때, 자연스럽게 은호와 은지의 대화에 손성희가 참여하며 물었다.

―아는 분 번호인가요?

은호는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은지를 무시하며 태연하게 손성희와 이야기를 이어 갔다.

―왠지 매주 금요일마다 와인을 즐기시는 제가 아는 형님의 끝자리 번호가 같아서, 그렇지 않을까. 했습니다. 하하.

―오, 가까운 사이?

―같이 활발하게 대화를 하는 단톡방이 있을 정도니까…….

―오오!

―하하, 그쪽에서는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이런 말 하는 건 아닌지…… 조금 민망하네요.

―단톡방이 있으면 상당히 가까운 사이죠! 난 우리 PD님하고 만든 단톡방 안 열어 본 지가 두 달이 넘었는걸.

―하하하하.

스태프 외에도 정작 이야기의 주인공인 PD님까지 웃음을 터뜨렸다.

―참, 그럼 전화 한번 연결해 보시겠어요?

―하하. 저도 워낙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그럼 그럴까요?

도시의 메아리에 참여하기 전에 은호와 은지는 PD에게 특별한 코너가 있는 건 아니지만, 중간에 전화 연결할 기회가 두 번 정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역시 은호는 손성희에게 선물했던 케이크와 마찬가지로 ‘알고 있던 정보’에 속한 이야기였다.

은호는 PD를 돌아보며 신호를 보냈다.

‘‘전화 타임’을 사용하겠다’는 미리 맞춰 둔 수신호였다.

의미를 알아들었다는 듯 PD가 손가락으로 OK를 만들어 보였다.

손성희는 그동안 쌓아 온 무시무시한 경력답게으로 재빠르게 상황을 알아챈 듯, 애드리브를 치며 자연스럽게 상황을 그쪽으로 이끌었다.

은호는 회귀 전 라디오 MC 경력이 있던 덕분인지 손성희에게 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맞장구를 치며 답했다.

뚜루루루루―

왠지 눈에 익은 번호로 전화를 걸자, 연결음으로 익숙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오! 형님! 저 은호입니다!

―어?

―갑자기 연락드려서 죄송해요.

―아, 아니야.

―형님, 저 지금 도시의 메아리 라디오 중인데, 왠지 해석이 어려운 글이지만 형님이 쓰신 응원글 같아서 연락드렸는데, 통화 괜찮으십니까?

―어. 괜찮아.

모니터를 보자 ‘도시의 메아리’는 여러 라디오 방송 중에서도 장수와 더불어 여전히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그 덕분일까.

모니터를 통해 상당히 많은 청취자분들의 반응이 줄지어 올라왔다.

거기엔 E%는 물론.

‘도시의 메아리’의 팬인 청취자분들까지도 호기심 어린 반응을 보였다.

[누구지?]

[헐? 지금 통화하는 사람 설마 최멍뭉?]

[와…. 목소리 너무 좋아]

[운전하다 귀 녹는 줄!]

[나는 포션입니다.]

[누구예요?]

[이 이가 다 썩어 버릴 것 같은 달달 굵직이는 세상에 단 한 명뿐이다]

[ㅁㅊ 설마 톡신?!!!!!]

취기에 흐려지긴 했어도 굵직한 동굴 목소리에 몇몇은 이미 눈치를 챈 것 같은 반응들.

그때였다.

태현과 통화를 하던 중 어깨너머로 들리는 또 다른 익숙한 능글맞은 목소리가 들렸다.

지예찬이었다.

―누구야?

―은호.

―오, 은호야!

―오! 옆에 예찬 형님도 계십니까?

은호는 청취자들이 쉽게 눈치챌 수 있도록 일부러 목소리의 주인을 콕 집어 물었다.

―어.

―태현 형님은 먼저 한잔하셨나 봅니다.

―같이 마셨는데, 쟤만 안 취해서. 응. 한잔하는 중.

안 그래도 빨랐던 모니터에 반응들이 더욱 쏟아져 내린다.

술김에 주저리주저리 중얼거리는 최태현의 목소리를 듣고.

귀엽다는 사람들과 목소리가 좋다는 사람 등.

화면의 약 90%가 태현을 향한 주접으로 가득 했다.

그때, 은호는 건너 자리에서 느껴진 뜨거운 눈길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손성희의 ‘빨리!’라는 무언의 외침이 담긴 눈길이었다.

―스피커 돌렸어. 인사해.

그때 때마침 태현이 말했다.

―형님! 저 지금 도시의 메아리 라디오에 출연했습니다.

―오, 그럼 누님 옆에 계시겠네?

예찬의 입에서 ‘누님’이라는 단어가 나온 그때였다.

손성희는 이미 빛과 같은 속도로 튀어 나가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태현 씨, 예찬 씨!

방송 시작부터 지금까지 ‘차분하고 멋있는 누나, 언니’에서 한 명의 톡신 ‘팬’이 된 손성희의 모습이었다.

은호와 은지는 손성희의 반전 모습에 밝은 웃음을 터뜨렸다.

―은호랑 은지가 예전, 아니구나. 태현아, 그때가 언제였지?

―뭐.

―은호랑 은지 싸운 날.

―싸워요?

이응과 사이가 가까워진 이후.

톡신 멤버들과 이응 사이의 일상에서 생긴 다양한 썰을 풀어 내던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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