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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20화 (120/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20)

역전

찰싹!

“악!”

이은지 손바닥이 등짝을 내리쳤을 때 순간 눈앞에 별이 보였다.

씻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젖어 있는 손이라 그런가 더 아팠다.

“일단 맞고 이야기하자, 이 빠가사리야!”

“아파! 아, 아프다고! 왜!”

은호는 급하게 물러나며 떨어지는 은지의 힘 실린 손을 피했다.

‘불안한데’라고 생각한 순간.

“야, 야야, 야야야야야!”

은호는 은지의 젖은 긴 머리 틈으로 번뜩이는 눈을 보았다.

쾅!

난리가 따로 없었다.

급하게 방 안으로 들어가자, 이은지가 문짝을 부숴 버릴 듯 쾅쾅 두드려 댔다.

“X신 새끼야? 이 미련한 인간아! 그딴 년 비위를 니가 왜 맞춰 주고 있어 이─!”

오래간만에 돌아온 광견병 모드 이은지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은지는 이후로 한참이나 멈추지 않고 욕을 쏟아 냈다.

“아주 그냥 보살 납셨어! 몸에서 사리는 안 나오냐? 어?”

하하하하.

“이게 웃을 일이냐!”

“컥.”

“병신이야? 도시락 치워 버리고 니가 거기 있어야지. 왜 화장실에서 김밥이나 처먹고 있어! 애초에 나한테 말을 했어야 할 거 아니야!”

이은지가 쏟아 뱉는 욕이 왠지 당시 고생했던 내 짐을 덜어 주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그것도 잠시, 슬쩍 방문을 연 그때였다.

이때만을 기다린 듯 틈을 파고 문 너머로 뻗어진 이은지 주먹이 배로 날아왔다.

예상은 했던 터라 일차적으로 팔로 막아 보긴 했지만, 어지간히 진심으로 힘을 실은 듯 욱신거림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하하, 그래서 이번엔 말한 거잖아.”

“그래서? 그―래서? 그때 진작 말을 했어야지! 난 그때 나만 자꾸 일 들어오니까 그게 불편해서 니가 피하는 줄 알고, 개X끼야!”

은지는 욕을 하는 동시에 꼭 울 것처럼 글썽거리는 눈을 하며 이를 악물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때 이은지도 나름대로 속상했던 걸까.

나는 회귀를 했고, 은지는 내가 한 말로 인해 회귀 전의 기억이 돌아왔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난 순간이기도 했다.

“……근데 반년이면 6개월이잖아. 6개월에 6개월 더하면 1년인데?”

“어. 딱 1년이었어.”

“그럼 1년 뒤에는? 에이슬은 어떻게 했는데?”

“어떻게 했긴, 난 항상 똑같았어.”

은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했듯이 나는 항상 똑같이 에이슬을 싫어했다.

에이슬은 내가 싫어하던 장미 향이 나는 향수를 바꿨다느니, 사랑 관련 신곡을 뜬금없이 내는 등.

내 뮤직비디오나 이은지의 촬영장에 커피와 밥 차를 보내는, 부탁하지도 하지도 않은 온갖 짓을 해 대도 나는 항상 처음 그대로, 변함없이 에이슬이 싫었다.

에이슬은 나한테 항상 듣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내 입에서는 ‘왜?’라는 질문만 나왔다.

진짜, ‘왜?’밖에 생각이 안 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게 에이슬과의 관계가 마무리되기 전까지 남은 반년이 흘렀다.

* * *

계약서를 쓴 지 정확히 1년이 지난 날.

갑자기 뜬금없이 죽을 먹고 싶다며 배달을 부탁하길래 평소처럼 심부름으로 죽을 사 들고, 에이슬이 묵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에이슬이 부탁한 죽을 내려 두던 그때, 테이블 위에는 오랜만에 보는 계약서가 있었다.

“간다.”

계약서는 계약서고, 나는 내 일이 끝났으니 몸을 돌려 그대로 나가려던 그때였다.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놔라. 일 가야 하니까.”

어디서 언제 튀어나온 건지 갑자기 나타난 에이슬이 내 옷자락을 붙들었다.

홧김에 뒤를 돌아보자 에이슬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왜 이래?”

“오빠, 처음부터 오빠는 나 좋아하지도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어. 근데 나한테 끌린 적 단 한순간도 없었어? 반년이야. 나 반년 동안 많이 노력했잖아.”

‘노력’이라는 단어에 미안하지만 웃음만 나왔다.

얘 이름 따라 ‘어이’가 없어서.

“심부름꾼으로서 듣기 좋은 말을 해 주길 바라고 묻냐.”

“진심을 원해.”

진심이라.

일말의 고민 한 번 없이 답했다.

“어.”

에이슬 표정이 세상 무너졌지만, 신경 쓸 가치조차 없었다.

난 에이슬 손을 털어 내며 현관으로 마저 걸음을 옮겼다.

“그거, 단 한순간도…….”

질문하는 에이슬의 목소리가 떨렸다.

“……없었다는 내 질문에 한 대답인 거야?”

“어.”

확인 사살에 가까운 깔끔한 대답이었다.

“왜. 나 노력했는데…….”

“니 주둥이에 노력이라는 단어가 담긴 것부터 문제라는 걸 아직도 모르겠냐.”

속이 답답해서 걷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처음에, 내가 오빠한테 못되게 군 것도 다 인정할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사과할게. 미안해. 잘못했어, 오빠.”

에이슬은 어째선지 여기에 희망이라도 건 듯 매달렸다.

“나 오빠 진심으로 사랑해. 제발.”

‘사랑’이라는 소름 돋는 단어에 표정이 저절로 구겨지는 게 느껴졌다.

애써 심호흡을 내쉬며 평정심을 되찾고 입을 열었다.

가장 먼저 터져 나온 건 헛웃음이었다.

내가 얘한테 해 준 거라고는 시키는 걸 그대로 심부름해 준 것뿐이었다.

어디에서 사랑이라느니 말도 안 되는 감정이 생긴 건지, 이해가 안 돼서.

“어이슬.”

“응…….”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뭔 X랄을 해도 옷이 삐뚤거리는 건 똑같거든. 난 그래.”

그게 취향인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난 그런 관계는 싫다.

평생을 전전긍긍하면서 살았는데, 여기서까지 그러고 싶지 않다.

뒷말은 안 해도 알아서 알아들은 건지 에이슬은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일어났다.

일어난 에이슬 얼굴을 보니 무언가 체념이라도 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괴롭혀서 미안했어.”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걱정스럽게 에이슬을 바라봤다.

“그동안 오빠가 철없는 꼬맹이 고집에 놀아 주느라 고생 많았어.”

테이블에 올려 뒀던 계약서에 에이슬이 손을 뻗었다.

치이익.

치익.

에이슬은 계약서를 네 방향으로 갈기갈기 찢어 냈다.

놀랐다.

계약서의 존재는 목줄이었으니까.

에이슬은 페이지 모서리에 찍힌 붉은 내 지장을 보여 주며 말했다.

“의심할까 봐 미리 말하는데, 원본이야.”

찢어진 계약서를 들고, 에이슬은 피우고 있던 향초 앞으로 다가갔다.

향초 위에 종이를 올리자 잘 타올랐다.

화재를 걱정하는 것도 잠시.

워낙 넓은 거실이라 향초 근처에 탈 것이라곤 해 봐야 대리석과 유리 테이블밖에 없었다.

계약을 파기하는 건 좋은데 그대로 다시 과거 이야기로 논란거리를 만들면 어쩌나 싶던 그때였다.

“약속은 지킬게.”

마침 물어보고 싶던 이야기였는데 에이슬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인간은 아니었으니까.

적어도 지난 1년간 원치 않게 가장 최측근으로 지내 봤기에 이게 그냥 하는 말은 아니라는 걸 믿을 수 있었다.

그날로 심부름 노릇이 끝났다.

대표님과 도진 형은 내 부탁 때문에 에이슬이 여자 친구라는 건 은지에게는 비밀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젠 다 끝났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라도 회사에는 다음 날 대충 헤어졌다고 말했다.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걸 밝혔을 때만큼이나 덤덤해서였을까.

대표님과 도진 형은 처음에는 믿기 힘들다는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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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relationship was a mistake

너에게 난 Nightmare

이젠 깨어나

이후 에이슬이 이별과 관련된 노래를 발표했다.

그제야 대표님도, 도진 형도 ‘헤어졌다’는 말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인 듯한 모습이었다.

이후로 선을 봤다느니 에이슬의 결혼 소식을 대표님이 전해 줬었다.

그다지 관심은 없어서 누구랑 결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살라며 빌어 줬었다.

다만 은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난 우리의 과거 이야기가 언제 다시 물 위로 올라올지 몰라서 전전긍긍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하지만 에이슬이 뒤처리까지 해 준 건지, 내가 이 시간으로 회귀하기 전까지 과거 이야기와 관련된 어떤 일도 터진 적이 없었다.

정말 끝까지 적어도 약속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지켰다.

그래서였을까.

회귀한 뒤 우연히 숍 앞에서 그때보단 왠지 ‘학생다움’이 아직 남아 있는 에이슬을 다시 만났을 땐 회귀 전 첫 만남 때만큼 혐오스럽진 않았다.

그냥 오랜만에 본 게 신기한 기분.

딱 그 정도.

애초에 관심이 있어야 뭐라도 감정이 생기는 거니까.

그렇게 말을 마치자, 이은지가 보기 좋게 비웃으며 말했다.

* * *

“이야. 보살 납셨어?”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인데 뭐, 거기다 욕을 하나 뭘 하냐.”

“그래, 그래. 그냥 참 이은호 같네. 딱.”

“뭔 의미야, 그거.”

“그냥 이은호 같다고. 그래서 연애는 할 생각 전혀 없다느니 그랬던 거구나?”

“어.”

“흐음, 근데 그래서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뭔데?”

집에 도착한 뒤.

난 이은지한테 할 말이 있다면서 대뜸 에이슬과 회귀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털어놨다.

처음엔 ‘이 이야기를 갑자기 왜 하는 건데?’라던 이은지는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더니 온갖 욕을 하며 몰입했다.

이야기가 끝나니, 이제야 다시 이 이야기를 왜 꺼냈는지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다.

“요즘 E-FAN에 E%분들끼리 우리 과거 이야기 때문에 내부 분열 난 거 너도 알고 있지.”

“아, 알지.”

“그땐 괜히 혼자 어떻게 해결해 보려다 그 X랄 난 거 같아서─.”

“이야, 퍽이나 문제의 요점을 잘― 알고 계시네요.”

은지가 놀리듯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쳐 댔다.

왠지 기분이 언짢았지만 할 말은 없었다.

지금 내가 그때를 생각하면 나도 왜 그랬나 싶으니까.

“그땐 안 밝혀서 그 고생을 했으니까 이번엔 밝혀 볼까 싶은데.”

“언젠 불쌍하게 봐 달라는 거 같아서 싫다며.”

“싫지.”

그래서 고민을 조금 해 봤다.

에이슬과의 일에서 싸움의 시작은 은지에게 시비를 건 에이슬이었다.

하지만 정작 빌미를 준 그 시작점은 나나 은지가 ‘과거’라는 약점 아닌 약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은지가 세상을 떠난 일을 제외하면 그 시절이 가장 힘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시절을 가장 좋아했다.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뭐랄까.

삶의 힘든 일을 아무렇지 않은 일로 넘길 수 있게 해 주는 데다, 술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평생의 안줏거리가 될 ‘특별한’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굳이 이렇게 세세하게 이야기를 다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어느 정도 필터 거쳐서 전달하면 되지 않을까.”

“어떤 걸로?”

“뮤직비디오.”

“어떤 곡?”

“곡은…… ‘이 길 위’가 딱 맞지 않을까?”

“흠.”

제안을 들은 은지는 고민에 잠겼다.

회귀 전 이은지는 과거를 딱히 밝히고 싶지 않아 했다.

“그래. 그러자.”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을까.

이은지는 회귀 전 그때와 반응이 달랐다.

“부끄러운 이야기도 아닌데, 애초에 그렇게 터질 일이라면 우리가 밝히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부끄럽진 않다.

그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걸 테니까.

다만 그저 우리 메시지를 알아들은 팬들과 세상의 반응이 걱정될 뿐이다.

‘말도 안 된다.’

‘거짓말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에이슬도 실제로 종종 몇 가지는 솔직히 거짓말 아니냐며 묻고는 했었다.

굳이 대답할 가치가 없어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본인이 직접 자료를 모은 에이슬조차 그런 반응이었는데.

난 그게 가장 무섭다.

우리의 경험이 당신이 믿을 수 없다는 이유 하나에 거짓말이 될까 봐.

“오빠 잘하는 거 있잖아.”

“뭐.”

“일단 던지고 알아서 판단하라고 하는 거.”

“너무하네. 내가 언제.”

“회귀 이야기 밝혔을 때라던가.”

“야, 그건 니가 뭔 탐정처럼 파고드는데 어떻게 피해서 가냐?”

“아니라고 할 수도 있던 건데, 하여튼 그게 그거잖아. 그래서 그럼 뮤직비디오로 밝힌다고 쳐. 어떻게 하려고? 우리가 연기해?”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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