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15)
「이퍼들 중에 은호 님 과거 아는 사람 있어?」
└ 그걸 왜 궁금해함?
└ 너 악개?
└ 사생활 존중 좀요
└ 이런 ♥♥들이 제일 문제야
「궁금할 수도 있지… 이게 그렇게 욕먹을 질문이야?」
└ ㅇㅇ
└ 님 어디 가서 분위기 파악 못 한다는 말 많이 듣죠?
└ 다른 이퍼들은 왜 안 묻는지 모르겠어?
성공적인 의 첫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은호는 E-FAN 어플을 굳은 표정으로 유심히 살펴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뭐 해?”
“어?”
은지가 부르자 은호가 놀라며 돌아봤다.
“뭘 보고 있길래 그렇게 정색하고 있나 해서.”
“내가?”
“어. 막 이렇게 해서.”
은지가 제 눈을 쭉 찢어 보이자, 은호는 그제야 굳어 있던 얼굴을 풀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은호는 입을 열려다 앞자리에 앉은 현우와 슬기를 보며 슬쩍 고개를 저었다.
은지는 여전히 은호의 휴대폰을 빤히 보고 있었다.
‘아.’
은호가 보던 게시물을 확인하더니 짧게 탄식했다.
‘집에 가서 이야기할게.’
‘그러든가.’
대충 눈이 마주친 순간 이렇게 소통이 된 것 같았다.
그거면 됐다 싶었는지 은호는 가사 노트를 덮고 휴대폰 화면까지 꺼 버리며 눈을 감았다.
‘에이슬 이야기를…….’
이번에는 하는 게 좋겠지.
회귀 전.
그땐 이 이야기를 이은지한테는 물론 세상에 평생 숨기려고 했다.
그게 정상으로 향하던 이은지한테는 더 좋은 방법이라고…….
나 혼자서 그렇게 판단해서 행동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나빴다.
굳이 이유를 꼽자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었다는 것일까.
한 명을 틀어막아도 새는 틈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다르게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왕 다시 돌아온 시간이라면…….’
그때 언제 터질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줄줄이 이어진 시한폭탄 같던 일들을 시작부터 깔끔하게 도려낼 수 있지 않을까.
‘그걸 그렇게 진행하면…….’
이은지와 나와 E-UNG 그룹의 인생을 건 도박을 해 볼까 한다.
* * *
에이슬
회귀 전.
‘일’이 터진 건 에이슬과 이은지가 싸운 후였다.
둘의 시작은 의외로 굉장히 단순한 사고에서 시작됐다.
에이슬은 그때 당시에도 지금처럼 셀라스 샵을 자주 방문했다.
지금 은호와 은지가 강미주 원장의 뮤즈가 되었듯.
그때 역시 다를 것 없이 은지는 강미주 원장의 뮤즈였다.
그렇기에 강미주 원장의 최우선 순위가 은지인 건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다.
은지가 셀라스 샵에 들어서자 강미주 원장은 조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손님을 뒤로하고 은지에게 달려갔다.
사실 뒤로한 것도 제대로 된 순서로 다른 스태프에게 맡기고 자리를 뜬 것뿐이었다.
다만 그게 하필이면 에이슬이었고, 에이슬은 그 순간 ‘버려졌다’는 수치심을 느꼈다.
그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저 이름도 모르는 년이 대체 누구길래.’
당시 에이슬은 몰랐지만 은지는 그때도 나름 팬층이 단단하게 잡혀 있는 뮤지션이었다.
에이슬은 TaKa 엔터테인먼트에 뒤지지 않는 DI 뮤직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조카로.
어릴 적부터 어화둥둥 자란 덕분일까.
그녀는 겉으로 보기엔 애교가 많고 해맑은 성격이다.
다만 에이슬이 감추고 살던 내면.
거기엔 본인은 어딜 가든지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마음이 있었다.
은지가 건드린 게 바로 그 부분이었다.
은지와 강미주 원장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에이슬은 질투 어린 눈빛으로 가만히 노려봤다.
그날 무대 준비를 위해 대기실에 혼자 남아 있던 에이슬은 조용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은지라는 여자 있잖아. 걔에 대해서 알아봐 줘.”
에이슬은 힘이 있었다.
열아홉에 DI 뮤직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선물이랍시고 건넨 건 심부름꾼이었다.
잘못된 것이라 가르치는 사람이 없었기에 에이슬은 뒤를 캐는 것에 대한 죄악감 따위는 개나 줘 버린 지 오래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에이슬에게 부탁을 받은 그는 명령대로 은지에 대한 정보를 물어 왔다.
은지는 지난 몇 년간 많은 곡을 발매했으며 꾸준함과 빠른 작업 속도 그리고 높은 퀄리티 덕분에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 은지의 자료를 보는 내내 굳어 있던 에이슬의 입꼬리가 갑자기 히죽였다.
「고아로 이은호라는 친오빠와 함께 길거리 생활을 오래 했었다고 함.」
이어진 정보가 에이슬이 원했던 정보였기 때문이었다.
「학력은 초졸이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는 지금의 대표를 만나 검정고시로 치렀다고 함.」
에이슬은 이 정보를 어떻게 이용할까 고민하다 일단은 저격 먼저 하기로 했다.
적어도 본인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에이슬은 곁에 있던 매니저를 구두 끝으로 툭툭 치며 불렀다.
“언니.”
“……응. 왜.”
매니저는 버릇없는 에이슬의 행동에 잠시 인상을 구겼지만, ‘참자’라며 속으로 화를 삭인 후 대답했다.
“사운드메이트에 연락해서 비트 몇 곡 달라고 연락.”
“신곡 때문에 연락하라는 거야?”
“어! 당연한 거 아니야? 말귀 한 번에 못 알아들어?”
“……이따 연락 넣어 볼게.”
“지금 해.”
“알았어. 그럼 잠시만 통화하고 올게.”
“그러시든가.”
에이슬이 손을 휘적거리자 매니저는 대기실을 나오며 한숨을 내쉬었다.
‘2년 전 데뷔할 때만 해도 저런 애가 아니었는데.’
어린 나이에 폭발적인 성공을 맛본 사람들은 대개 자만하는 부류와 감사하는 부류로 나뉜다.
에이슬은 그중에서도 전자인 아이였다.
‘안 그래도 세상 살며 오냐오냐 커 온 탓에 고생이라고는 모르는 녀석이…….’
연습생 시절 다른 연습생들보다 수업도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적었음에도 에이슬은 그때를 인생 살면서 가장 힘들었다며 회상한다.
에이슬은 그런 아이였다.
삼촌인 DI 대표가 길을 잘못 들인 탓이 컸다.
업계에서는 다들 알고 있지만 쉬쉬한 소문이 하나 있었다.
‘이슬이의 성공에 DI 대표가 개입했다던…….’
DI 대표가 스트리밍 순위에 손을 뻗쳐서 에이슬의 음원이 높은 순위에 자리잡았다던 그 소문.
매니저는 그게 단순히 소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이니까.’
DI 대표가 손을 뗀 순간.
에이슬의 성적은 그제야 제 진짜 자리인 중하위권으로 뚝 떨어졌다.
그마저도 높은 순위의 음원으로 인해 유입이 많았던 덕분에 오른 자리였다.
하지만 이슬이는 그 성적을 본인의 성적으로 착각했다.
‘진짜 운이 좋은 건지…….’
이어서 빈집 털이에 성공하며 두 번째 곡이 또 한 번 대박을 터뜨렸다.
덕분에 에이슬의 그 잘난 콧대는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그렇게 에이슬은 성공만 맛보며 본인의 행동에 책임을 질 나이인 성인이 되었다.
책임을 돈으로 질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 이슬이는 세상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대표가 그 착했던 애를 다 망쳐 놨어…….’
13살.
매니저가 처음 만났던 에이슬은 조금 버릇이 없긴 해도 순수하게 노래를 좋아했던 그런 아이였다.
적어도 19살 이후로 대표가 눈에 띄게 밀어주기 전만 해도 여전히 그랬었다.
‘내가 말리지 못했어…….’
매니저는 대기실 벽에 등을 기대며 흘러내렸다.
울고 싶은 심정인 듯 얼굴을 가리고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매니저의 심정을 알기는커녕 관심조차 없던 에이슬은 은지의 과거 자료를 들추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었다.
* * *
길바닥을 떠돌던 쓰레기가 주제를 모르네
유리알이 비춰 주니 원 가치를 잊었네
You’re a weed
난 널 위해 준비된 Herbicide
밟고 뽑아 흔적조차 뵈지 않게 지워 줄게
그렇게 발표한 온전히 은지를 향한 디스곡.
에이슬도 처음엔 그저 은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살아온 수준과 지금 서 있는 높이가 다르다는 걸 알았을 때, 에이슬은 ‘감히’라는 생각에, 가사 그대로.
은지에게 본인의 위치와 주제를 다시 알려 주려던 생각이었다.
신곡을 발표하고 나흘 뒤.
은지의 답가가 에이슬의 노래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미친 듯이 온갖 상을 휩쓸기 전까지는 그랬다.
세상에서 있는지조차 몰랐던 그런 삶을 살아온 존재가 지금 무대 위에서 보란 듯 웃고 있다.
‘심지어 내가 가장 받고 싶었던 그 트로피를 자랑스럽게 들어 보이면서.’
피라미드 가장 밑바닥에 살던 존재가 감히 나보다 높은 곳에서 나를 비웃는다.
“이건 온전히 에이슬 덕분에 받을 수 있는 상이었어요. 좋은 영감의 미끼를 던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이슬은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 본 수치심이었다.
은지가 나락을 찍길 바라며 순수한 악의로 지시를 내렸다.
“그년 정보 찌라시로 싹 다 풀어 버려.”
에이슬의 기대와는 다르게 의외로 기사는 크게 퍼지지 못했다.
아무래도 삼촌마저 감탄했던, NRY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영향 때문인 것 같았다.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에이슬 씨! 이야기 좀 합시다!”
“이봐!”
“에이슬!”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일이었다.
DI 뮤직 엔터테인먼트 사옥.
에이슬이 오랜만에 회사를 방문했을 때, 그 앞에서 죽치고 그녀를 기다리던 은호가 건물 안으로 들어서던 에이슬을 붙잡고 소리쳤다.
가드들의 거친 방어에 은호는 악착같이 에이슬의 소매를 놓치지 않았다.
“뭘 원해서 이러는 건데!”
제 화에 못 이긴 듯 은호가 소리친 그때였다.
은호의 얼굴을 본 순간.
에이슬은 홀린 듯 은호를 위아래로 훑으며 감탄을 터뜨렸다.
‘뭐야. 냉미남상, 몸도 좋고, 완전 취향.’
조광수 탓에 이미 그런 눈길에 이골이 난 은호는 당장 욕부터 뱉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적어도 대화를 해 볼 기회는 생긴 것 같아서 애써 참았다.
에이슬은 가드들에게 손을 떼라며 신호했다.
“손 떼라고요. 내 손님 맞으니까.”
가드들이 머뭇거리자, 에이슬이 신경질을 내며 말했다.
가드들은 잠시 눈치만 보다 은호의 팔을 놓았다.
은호는 가드의 팔을 홧김에 쳐 내며 구겨진 블레이저를 털어 낸 후 에이슬 앞에 섰다.
에이슬은 은호가 무슨 소리를 외치든 상관없었다.
에이슬은 어릴 적부터 가지고 싶은 것은 뭐든 가질 수 있었고, 은호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이미 머릿속에서는 온갖 망상을 하며 이 남자가 나를 만날 운명이었기 때문에 재수 없는 이은지와 숍에서 그렇게 엮였던 것이라는 등 말도 안 되는 망상을 이어 가고 있었다.
“내가 왜 왔는지 알죠.”
“아니. 모르겠는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라서 이제야 인생 좀 잘 풀려 가는 내 동생한테 X같은 개짓거리를 하나 이유라도 들어 보러 왔습니다.”
에이슬은 헤실거리면서도 여전히 은호를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
은호는 미간을 사납게 구겼다.
입만 안 열었지 온갖 욕을 속으로 하고 있다는 게 눈에 띄게 드러난 표정이었다.
시선으로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에이슬은 멈추지 않았다.
“X같은 눈 파 버리기 전에 사람 그따위로 훑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망할 X아.”
회귀 후 은호였다면 조금 더 참았겠지만, 그땐 지금과 달리 조금 더 격했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철이 든 은호였으나, 성인이 되고 일을 시작하니 은지와 자신의 끊임없는 비교에 감정적으로 예민해진 것이 적잖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욕설에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든 듯한 에이슬은 은호를 훑는 것을 관두며 눈을 마주쳤다.
“하여간, 못 배운 티 내기는.”
은호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에이슬의 도발에 답했다.
“X랄. 너야말로 말하는 거나 하는 행동 꼬라지 보아 하니까 적어도 가정교육은 나랑 별 차이 없는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