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14)
“언니, 저 이건 어디다 하는 거예요?”
은지도 의상을 다 갈아입은 듯 탈의실에서 금색의 솔을 들고 나오며 물었다.
“아, 그거 어깨에 붙이는 거예요. 도와드릴게요.”
“네에.”
슬기가 솔을 받아 들자, 은지는 조금 상체를 내려 키를 슬기의 높이에 맞췄다.
“됐어요!”
“감사합니다.”
“헉.”
은지가 활짝 웃자, 슬기는 과장되게 심장 부근을 움켜쥐었다.
“언니? 괜찮아요?”
은지가 걱정스럽게 묻자, 슬기는 뿌듯한 눈으로 엄지를 치켜들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CK 관두길 잘했다고 감동하는 중이었어요.”
“아? 아, 하하핰.”
은지는 뒤늦게 장난이었다는 걸 눈치챈 듯 슬기를 따라 웃었다.
“언니, 근데 저도 이거 매야 해요?”
“매다니요? 아.”
다 잘 입고 나온 줄 알았는데, 다시 보자 은지는 넥타이를 목이 아니라 손에 쥔 채였다.
“마음에 안 들어요?”
“마음에 안 든다는 것보다 목 부근이 막히는 걸 잘 안 입다 보니 갑갑해서요. 여기서 단추 하나만 풀면 안 될까요.”
“음…….”
슬기는 잠시 고민하다 아직 넥타이를 다시 매고 있는 은호를 돌아봤다.
아무래도 전체적으로 정장 느낌의 제복이라 넥타이가 빠지면 목이 조금 허전한 감이…….
‘아.’
슬기는 갑자기 제 가방을 찾아 뒤적이더니 문스톤이 박혀 있는 깔끔한 은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그럼 넥타이 빼고 단추도 풀죠! 목 부근이 허전한 건 이걸로 대신하면 될 거 같아요.”
은지는 넥타이를 빼기로 한 결정이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슬기의 말을 따랐다.
의상 준비가 끝난 뒤, 메이크업도 오늘 의상을 따라 맞췄다.
은호는 검은색의 차가운 분위기, 은지는 밝은 분위기.
전체적으로는 귀족적인 성스러운 분위기에 초점을 맞췄다.
“오늘 의상 대표님이 정하신 거예요?”
“후후, 제가 정했어요.”
“세상에.”
“잘 골랐죠?”
“네. 앨범 화보 촬영 때 의상 넣어 달라고 보고서 올려야겠어요.”
슬기와 현우 외에도 다른 직원들이 오늘 의상이 너무 좋다며 호들갑이었다.
“드디어 무대네.”
“그러게, 오래간만에 조명 받겠다.”
정작 이야기의 본인들은 ‘오늘 무대’라는 것에만 들떠 있었다.
“나 너무 예쁘다, 오늘.”
은지가 감탄하며 거울을 보자, 은호는 한 걸음 뒤에서 그런 은지를 구경하며 말했다.
“그냥 그림 그린 호박인데.”
“지는 화장한 우럭 같은 게.”
투덕거리는 것도 잠시.
“얼른 마무리하고 출발할게요!”
“네.”
“네!”
슬기가 펄을 들고 자리로 돌아오자 언제 싸웠냐는 양 은호와 은지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마무리를 마친 뒤 은호와 은지는 카메라 리허설을 위해 다시 차로 향했다.
차에 올라타자 슬기는 은호와 은지에게 검은 벨벳 천이 덮인 고급스러운 상자 두 개를 내밀었다.
“주연이가 드리는 선물이래요. 오늘 의상도 그거랑 맞춘 거예요.”
깜짝 선물에 놀란 은호와 은지는 상자를 열더니 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슬기를 쳐다봤다.
마냥 감동인 은호와 다르게 은지는 받은 상자를 꼭 끌어안은 채 울먹였다.
“어떡해. 언니, 저 휴지. 얼른. 흑.”
메이크업이 망가질까 걱정됐는지 은지는 황급히 휴지를 찾았다.
와중에 은호는 선물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슬기에게 말했다.
“감사하다고 꼭 전해 주세요.”
“안 그래도 오늘 무대 보려고 대기 중이래요.”
“진짜…… 열심히 해야겠네요.”
* * *
“아싸!”
주연은 휴대폰을 꺼내, 손목에 쓰인 ‘12’ 번호를 촬영했다.
슬기에게 보내기 위해서였다.
사진을 받은 슬기는 마침 휴대폰을 보고 있었는지 답장이 빨랐다.
[슬기 ― 앞 번호가 좋다 했었나?]
[나 ― 엄청 좋지!]
[슬기 ― 잘됐네 참 너 오늘 휴지 꼭 챙겨라]
[나 ― 왜? 왜? (고개 갸웃 강아지 이모티콘)]
[슬기 ― 너도 선물 비밀로 했으니까 나도 비밀이야]
슬기가 비밀로 했던 이유는 자리를 잡은 후, 은호와 은지가 무대에 섰을 때 알 수 있었다.
은색의 솔이 장식된 검은 제복 차림의 은호가 무대에 올랐다.
은호의 손에는 검은 핸드 마이크가 쥐여 있었다.
평범한 핸드 마이크가 아닌 듯, 몸체에는 솔과 같은 색인 은색 큐빅이 그러데이션으로 조명에 화려하게 반짝였다.
은지는 은호와 반대로 금색의 솔이 장식된 하얀 제복 차림이었다.
은지도 마찬가지로 보석이 그러데이션으로 장식된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차이점으로는 제각각 솔에 맞춘 듯 은지의 마이크는 금색의 큐빅이었다.
주연이 선물로 준비한 마이크였다.
사전 녹화를 구경 온 팬들은 은호와 은지가 등장하자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을 쏟아 냈다.
“세상에, 오늘 오신 분들이 다 E%(이퍼)분들이에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짧게나마 소통할 수 있는 시간.
우렁찬 대답에 은호와 은지가 화들짝 놀라다 웃었다.
“이거 마이크 너무 이쁘죠!”
네!
“오늘 마이크 선물 받았어요. 제복도 저희 코디 언니가 맞춰서 의상 정한 거래요.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
또 한 번 대답인지 정체를 알기 힘든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이 이어졌다.
“이응 팀, 준비해 주세요. 사전 녹화 시작합니다!”
스태프가 소리치자, 은지는 버릇처럼 곧장 ‘네!’라고 외쳤다.
그사이 은호는 여유롭게 팬들을 돌아보며 인사를 건넸다.
“다들 기다리느라 고생했을 텐데 후회 없게 열심히 할게요.”
여러분, 저게 제가 선물한 마이크랍니다.
주연은 포션 때처럼 열렬하게 흔들어 호응할 응원봉이 없다는 점이 갑갑했다.
‘일해라, 빛창석!’
대신 온 힘을 담아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응원했다.
은호와 은지는 언제 대화를 나눴냐는 듯 진지하게 무대에 임했다.
클라우드 댄스 팀도 제각각 자리에서 삐딱하게 선 채 준비 자세를 취했다.
♩♩♩♩
심벌을 시작으로 가 재생됐다.
의미 없이 던진 한마디가 줄이 되어 그를 얽매여
은호와 은지는 벌스가 시작되자 반짝이는 마이크를 들고 자연스레 호흡을 맞추며 노래를 이어 갔다.
은지의 매력은 강렬한 음색에 있었다.
은호 같은 고음은 아니었지만 깊은 바다 같은 짙고 푸른 목소리.
은지의 파트가 지나고, 음원에서는 오현이 맡았던 파트를 은호가 이어 갔다.
웃으며 네가 날리는 비수가 두려워서 나는 웃어
와아아악!
주연은 당장 소리를 지르고픈 마음이었지만 참았다.
훅에서 팬들끼리 맞춰 온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은호는 평소 노래하는 톤과 말하는 톤이 굉장히 다른 편에 속했다.
평소 이야기할 땐 흔히 동굴 보이스라고 불리는 낮은 목소리와는 거리가 있었다.
대신 은지가 노래할 때와 비슷한 저음의, 귀가 편안해지는 차분하고 매력 있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노래할 땐 특유의 높은 톤으로 올라가는데.
‘그 차이가 사람을 미쳐 버리게 만들지…….’
주연이 은호에게 푹 빠져 버린 매력 중 하나였다.
내 머리 위 춤추는 Three monkeys
은호와 은지는 라이브를 이어 가며 생방송에서 보였던 안무를 더했다.
전에 했던 생방송과 다른 점이라고는 오늘은 클라우드 멤버들이 함께인 완전체인 안무를 보이는 날이었다.
은호가 비어 있는 머리를 가리키자, 은지가 손을 뻗어 세 마리의 원숭이를 표현하던 그때.
하얀 가면을 쓴 클라우드 멤버들이 호기심 어린 아이들처럼 얼굴을 들이밀며 구경했다.
이어서 은지의 손가락이 춤추는 원숭이를 표현하며 굽어지는 타이밍에 맞춰, 클라우드 멤버들 또한 몸을 동시에 들썩이며 은지의 손가락과 박자를 맞췄다.
What are you doing now?
은호의 머리를 짚으며 은지가 앞으로 나오자, 까만 지미집 카메라가 은지에게 따라붙었다.
여전히 머리에 얹어져 있던 은지의 손은 은호가 안무에 맞춰 쳐 내면서 떨어졌다.
저녁이 곧 내게 인사할 거야
그때, 클라우드 멤버들은 제각각 놀란 표현을 하며 은호의 노래에 맞춰 대형을 갖췄다.
생방송에서의 허전했던 분위기는 클라우드 멤버들이 더해지며 풍부한 분위기로 돌아왔다.
(Hear no evil)
목소리를 들었다면 귀를 막아
(See no evil)
그 녀석이 보였다면 눈을 감아
(Speak no evil)
혹여라도 소릴 낼까 입을 가려
오현의 파트를 은호가 했듯 저음이 매력이던 태현의 파트는 은지가 대신했다.
태현이 불렀을 때 거대한 대악마의 속삭임 같았다면 은지의 속삭임은 유혹적인 분위기가 더 강한 악마 같은 목소리였다.
다만 이번엔 은지도 노래해야 했기 때문에 톡신과 함께했던 생방송 때처럼 은호의 귀를 은지가 귀를 막아 줄 수 없었다.
그 역할은 클라우드의 로아가 대신했다.
로아는 은호가 부르는 ‘막아, 감아, 가려’ 가사에 맞춰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눈, 코, 입을 가렸다.
한편 다른 멤버들은 그런 은호에게 속삭이는 듯한 역할들을 맡았다.
Three wise monkeys
현명한 원숭이가 손을 내밀어
데칼코마니처럼 은호와 은지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손을 뻗은 그때였다.
클라우드 멤버들이 착착 은호와 은지 뒤에서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팔을 뻗었다.
정면에선 날개라도 펼친 듯 화려한 형상이 완성됐다.
잡아선 안 될 손을 잡아
이어지는 가사를 따라 많은 손이 은호와 은지의 팔을 붙잡을 듯 뻗어 왔다.
손을 이용한 건 안무가인 이구름의 취향이 크게 반영된 안무였다.
은호와 은지가 다시 정면을 향해 몸을 돌린 순간.
은호에게는 로아가, 은지에게는 에나―오별님―가 귀를 막는 역할을 했다.
그동안 은호는 눈을, 은지는 입을 가렸다.
혹시 모르잖아 괜찮을 거야
포인트 안무가 있는 훅이 끝나고, 은호는 다시 여유롭게 손을 떼어 내며 노래를 이어 갔다.
척은 못난 면을 감춰 주지만 완벽하진 못해
얕은 막이 부서지면 파편들이 너를 향해
은호의 가장 큰 무기였던 높은 고음은 없었지만, 주연은 놀란 듯 크게 뜬 눈이 되어 은호를 바라봤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지지님처럼 강렬하게 덮치지는 못하지만…….’
음원은 은호의 매력을 100%를 담아내지 못했다.
라이브였기에 보이는 꽉 잡힌 발성과 여유로운 애드리브.
맛깔나게 치고 빠지는 그 애드리브에 몸이 꼬이며 사람을 안달이 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미안해
사실 난 괜찮지 않아
노래의 끝이 다다르고, 장난스러운 테이프를 되감는 듯한 잡음이 들린 그때.
생방송을 봤던 주연은 옅은 웃음을 터뜨렸다.
엔딩 포즈를 위해서였는지 은호와 은지는 ‘쉿’이라고 말하듯 검지로 입술을 누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톡신과의 생방송 때처럼 엔딩 포즈에서 중지를 세우기엔 공중파 방송이라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노래가 끝나고 분주한 분위기 속에서 은호와 은지는 아쉬움이 담긴 인사를 하며 무대를 떠났다.
팬들 역시 다음 녹음을 위해 일찍 자리를 빠져 줘야 했다.
“제복 최고였어.”
“완전.”
“항상 느끼는데, 이응 무대만 보면 여운 남지 않아?”
“공감. 은호 님, 은지 님 그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가?”
근처 카페로 향하는 길.
같은 공연을 보고 나온 E%인 듯 관심 가는 이야기가 들렸다.
주연도 두 사람의 대화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오튜브 영상은 장난기 가득한 모습이 대부분이다.
매일 싸우나 싶을 정도로, 투덕거리는 영상이 정말 많았다.
그런 가벼운 분위기인 한편.
E-UNG가 내는 노래들의 분위기는 그 가벼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말 프로구나 싶은 안무도 탓도 있지만, 정체 모를 은호 님과 은지 님의 어두운 면이라고 해야 할까.
그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느낌이다.
‘그런 면 때문일까.’
최근 E%들 사이에서는 은호 님과 은지 님의 과거에 관심을 가지는 팬들이 늘어났다.
‘밝히기 싫다면 굳이 억지로 밝혀 내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가 현재는 팽배했지만, 문제는 반대인 팬들이 있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