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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11화 (111/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11)

분주하게 바뀐 스튜디오는 책상을 물리자 깔끔한 배경의 스테이지가 완성됐다.

환했던 밝은 조명이 갑자기 오묘한 붉은빛을 띠었다.

붉은빛에 고개를 드니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머리 위에 몰랐던 레일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조명은 방송국만큼은 아니지만, 간이로 설치된 등이라도 제각각 색을 바꿀 수 있는 기능이 있는 모양이다.

“하하.”

감정을 잡아야 할 때였는데 분주한 분위기에 순간 웃음이 터졌다.

조명의 방향을 바꾸는 건 수동이었는지 직원분들이 분주하게 사다리를 들고 와서 빛을 쏘는 방향을 바꿨다.

“여기, 화이팅!”

회귀 전에는 이어 마이크보다 핸드 마이크를 쓰는 일이 더 많았다.

그래서일까.

슬기 씨가 건네준 마이크를 받아 들었을 때, 왠지 감회가 새로웠다.

오랜만에 든 핸드 마이크는 듀오로 활동하는 내내 썼던 이어 마이크보다 의외로 익숙하고 편했다.

이은지와 오현 선배, 태현 선배에게도 마이크가 하나씩 쥐여 졌다.

우리 E%분들도, 포션분들도 부디 예쁘게 봐 주셨으면 좋겠다.

라이브 다음 우리가 특별히 준비한 선물까지도.

안무가 현저히 적어진 만큼 대신 노래는 확실하게 할 수 있도록 부족한 시간임에도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

이젠 귀에 익은 느린 심벌 뒤로 윌리저 피아노 연주가 이어졌다.

드이익―

리버브 사운드 이후 쿵 찍고 들어오는 묵직한 드럼.

후.

깊은 한숨과 함께 정신없던 신경을 차분히 정리하며 감정을 잡았다.

울기를 바랄 너를 위해 입꼬리를 끌어 올려

시작은 은지와 오현 선배의 듀오였다.

은지는 애드리브로 ‘입꼬리를 끌어 올려’에 맞춰 손끝을 입가에 대며 꼬리를 올렸다.

다음은 유일하게 준비된 안무가 있는 훅이었다.

내 머리 위 춤추는 Three monkeys

은호는 손을 들어 비어 있는 머리 위를 가리켰다.

아무것도 없던 머리 위로 은지가 팔을 뻗었다.

은지는 세 손가락을 굽혔다 펼치며 나름 춤추는 원숭이를 표현했다.

What are you doing now?

은지는 원숭이를 표현했던 손으로 은호의 머리를 가볍게 짚으며 노래했다.

은지의 파트가 끝난 즉시, 은호는 신경질적으로 은지의 손을 치워 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진심은 아니고 나름 짜 놓은 부분 중 하나였다.

노래가 이어지고 어느새 은지 자리에 태현이 섰다.

저녁이 곧 내게 인사할 거야

Hear no evil

은호가 멜로디를 넣어 ‘Hear no evil’을 불렀다면, 태현은 같은 가사를 중후한 본인 목소리의 매력을 살리며 속삭였다.

목소리를 들었다면 귀를 막아

어느새 뒤에선 은지가 은호의 귀를 대신 막았다.

화면에는 닿은 것 같았지만 각도가 그렇게 보였을 뿐.

어지간히 은호와 닿는 것이 싫었는지 손과 귀 사이의 간격이 상당히 띄어져 있었다.

(See no evil)

그 녀석이 보였다면 눈을 감아

왼쪽은 본인의 손으로 오른쪽은 마이크를 쥔 탓에 은지가 대신 눈을 가렸다.

(Speak no evil)

혹여라도 소릴 낼까 입을 가려

입은 그래도 직접 가리는 쪽이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Three wise monkeys

태현이 특유의 묵직한 싱잉 랩을 하며 자리를 피했다.

태현이 있던 자리에는 다시 은지가 섰다.

이어지는 안무를 위해서였다.

현명한 원숭이가 손을 내밀어

잡아선 안 될 손을 잡아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은호와 은지는 서로 같은 곳을 향해 손을 뻗고, 그 손목을 붙들었다.

이어서 은호는 한 손을 들어 눈을 가리고, 다른 한 손은 마이크를 들었다.

혹시 모르잖아 괜찮을 거야

그동안 은지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귀는 나중에 클라우드 팀 멤버들과 무대에 설 때 막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톡신은 활동 경력만큼이나 이런 곳에 눈치가 좋았다.

최태현은 은호의 귀를, 오현은 은지의 귀를 막아 주며 안무를 맞췄다.

살짝 새어 나온 웃음으로 감사 인사를 대신 했고.

다행히 몰입한 두 사람의 집중을 깨진 않았다.

[와 은지 성량이 마이크를 씹어 먹는데?]

[♥♥ 귀 호강 지린다]

[지지 라이브 처음 듣는데 원래 이렇게 울리는 느낌임?]

[랑이 쩐다 넌 핵이야 개잘핵 ㅠㅠㅠㅠ]

노래는 계속 이어졌다.

은호와 은지는 채팅을 살필 새도 없이 몰입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집중력에 오히려 놀란 건 같이 노래하던 오현과 태현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려던 시작과 다르게 본격적인 두 사람의 분위기에 휩쓸려 마치 제대로 된 무대에서처럼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무서운 점은 자신들이 이렇게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호와 은지의 파트만 되면 두 사람이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었다.

후배를 씹어 먹을 생각으로 노래하는 게 조금 민망한 기분이었던 것도 잠시.

2절을 지났을 땐 정말로 위협을 느껴서 최선을 다했다.

척은 못난 면을 감춰 주지만 완벽하진 못해

얕은 막이 부서지면 파편들이 너를 향해

이번 에는 천장을 뚫는 듯한 고음은 없었다.

다만 그만큼 은호는 귀를 사로잡을 수 있도록 더 많은 기술을 이용해야 했다.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입을 가려도

가사를 따라 한 손으로나마 귀를 막고 눈과 입을 가렸다.

손을 뗄 땐 사뿐한 움직임으로 박자에 맞춰 떨어뜨렸다.

종잇장처럼 흔들리며 멀어진 손은 다시 마이크로 향해 바꿔 쥐었다.

들었던 것이 보았던 것이 말했던 것이

마이크를 쥐고 있느라 들렸던 반대쪽 귀를 검지로 가리켰다.

눈을 가리킬 때는 중지까지 거들어 양 눈을 가리켰고, 입은 이은지를 따라 아랫입술을 검지로 살짝 눌렀다.

별것 아닌 안무였지만, 박자와 가사에 딱 맞아떨어지는 안무는 묘한 쾌감마저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듀오 때와는 달리 안무가 쉬운 덕분일까.

노래를 들으며 몇몇 직원과 톡신 멤버들은 반복되는 안무를 따라 하며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

내 머리 위 춤추는 Three monkeys

(What are you doing now?)

저녁이 곧 너에게 인사하겠지

잠시 후, 브리지에 다다랐을 때였다.

은호와 은지는 서로에게서 등을 돌렸다.

곧, 왼편의 은호를 시작으로 자리를 잡았다.

은호가 정면으로 뻗은 팔을 시곗바늘처럼 째깍거리며 12시 방향으로, 은지의 팔은 정상에 도달한 은호를 따라 3시 방향으로 향했다.

(I'll welcome you on the red carpet)

다시 정면을 돌아본 은호와 은지는 마치 고장 난 인형처럼 삐걱거렸다.

강한 베이스 리듬을 따라 툭,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은호와 은지의 상체가 숙여졌다.

Three wise monkeys

현명한 원숭이가 손을 내밀어

한순간 너는 손을 붙잡아

잠시 후, 다시 몸을 들었을 땐 이전에 했던 데칼코마니 같은 안무를 이어 갔다.

괜찮아질 거야

분명 같은 안무였지만 아까와의 차이점은 씁쓸한 감정을 담아 보던 눈빛이 지금은 광기를 담았다는 것이다.

그럴 거라 헛되게 믿어

이어진 가사에 섬뜩한 웃음이 이해됐다.

Hear no evil

See no evil

Speak no evil

최태현과 오현이 이어 부르는 동안.

은지가 은호에게 했듯 이번엔 은호가 은지의 귀를 막았다.

은지는 박자에 맞춰 마이크를 든 손으로 눈을 가리고 남은 손으로는 입을 가렸다.

현명한 원숭이가 손을 내밀어

혹시 모르잖아 괜찮을 거야

조금 전 눈에 돌던 광기가 거짓말이었다는 듯 은호와 은지는 다정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예쁘게 웃었다.

미안해

사실 난 괜찮지 않아

그것도 잠시.

곧 은호와 은지는 서로를 향해 중지를 치켜들었다.

화면에 비치기로는 손가락이 마이크에 가려지는 절묘한 위치였다.

욕하는 게 카메라에는 보이면 안 되니까.

[아닠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와중에 노래는 또 왜 이렇게 잘하는 건데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ㅋㅋ 진짜 이 비글들]

노래의 끝을 알리듯 ‘이힉’거리며 테이프를 되감는 것 같은 노이즈가 들렸다.

[와 ㅉㅉㅉㅉㅉ]

[아쉽다]

[끝난 건가? ㅠ]

여기서부터는 은지와 내가 E% 위해 준비한 작은 선물의 시작이었다.

이은지와 난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Same day, Same time

Same day, other Crime

팬들은 인사를 하려나 보다 생각한 것 같았지만, 팬들의 뒤통수를 치며 이어진 건 이 자리에서 처음 공개하는 낯선 반주였다.

나서야 했던 새벽길에

걸어야 했던 새벽길을

의 짧은 공개에 ‘헐’이라는 글자가 채팅에 도배됐다.

은지와 은호는 반응을 즐기며 다음 노이즈를 기다렸다.

이힉―

테이프를 되감는 듯한 잡음 소리가 있고 난 뒤, 잠시 후 우리는 바뀐 멜로디에 맞춰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이젠 떨어지지 말자

쉽게 올리기엔 이 무게를 알기에 말하지 않아

함께 할 게 더 오래

후회라는 것을 배웠기에 시간이 모자라

아낄 게 더 많이

다시 시작한 시간에 함께할 것들이 많으니

이힉―

노래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남은 부분을 이어 갈 뻔했다.

갑자기 멜로디가 멈추고 들린 잡음이 있지 않았다면 떡밥을 던지는 게 아니라 완곡을 열창할 뻔했다.

바뀐 멜로디는 이번엔 잔잔한 발라드였다.

여느 다른 곡과 다르게 훅에서 통통 튀는 재미있는 카우벨 멜로디가 특징이었다.

지예찬 선배가 보내 줬었던 두 곡 중 를 제외한 한 곡이기도 했다.

한숨을 숨겨 줄 떨어지는 빗소리가 그리워

지나간 시간처럼 증발한 물 자국처럼

정각에 떠오른 이 해가 지나가면 다시 돌아올까

지금까지 ‘시간’ 앨범에 실릴 새벽, 아침, 점심을 뜻하는 곡까지 달려왔다.

앞으로 남은 건 노을 지는 시간과 저녁, 마지막으로 잠들기 전.

이힉―

이젠 귀에 익어 버린 잡음 소리가 지나고 이어서 노을 지는 시간에 자리 잡은 의 멜로디가 흘렀다.

베이스와 베이스 드럼이 교차하며 만든 중독적인 리듬에 은호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리듬을 맞췄다.

나 나나 나 red Light

나 나나 나 red Night

나 나나 흐트러졌어

지쳐도 놓지 못한 멍청이

Onset 눈 깜짝할 순간에 원샷

이힉―

‘아아악!’ 절규하는 팬분들의 반응에 웃으면 안 되는데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우리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의미가 부디 잘 전달되기를 바라며 바뀐 멜로디를 따라 다음 곡을 준비했다.

원래 저녁 자리에 들어올 곡은 인데 이건 이미 했기 때문에 생략하고 넘어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은지가 약속과 다르게 까지 넣어 버린 듯, 익숙한 훅이 재생됐다.

네 머리 위 춤추는

Three monkeys

(What are you doing now?)

저녁이 곧 네게 인사할 거야

당황도 잠시 은지가 먼저 노래를 시작했고, 뒤따라 나도 호흡을 맞췄다.

이힉―

길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마지막으로 이어질 잠자리를 뜻하는 곡의 반주는 앞서 다른 곡들보다 고요했다.

대부분의 곡이 드럼이 들어갔던 것과 다르게 이 곡의 반주에는 기타와 피아노가 유일했다.

많은 이야기를 아주 많이 줄이고 줄여 담은 곡이라 선택한 악기였다.

이 길 위 끝이 제발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길

내 꿈 같은 하루가 매일 언제 깨어질까

차츰 나아지리라고 믿고 믿어 보자

믿으면 믿을수록 불안은 내 맘을 좀 먹고

몸집을 키워 내 맘을 좀 먹고

마지막 곡의 훅은 여기까지였다.

이젠 ‘이힉’거리던 잡음도 모두 끝나 버려서 반주는 이미 멎은 후였다.

하지만 이런 우울한 가사로 끝내기엔 끝이 아쉬울 테니까.

나는 걷고 또 걸어

날 믿는 너를 믿고서

때마침 내 생각을 알았는지 은지가 노래를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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