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10)
“내가 일단 와 버리긴 했으니까, 촬영은 하고! 어? 그러고 다시 이야기해 보자고.”
대표님은 한마디 한마디가 무서웠다.
이 일을 당장 엎어 버리지 않겠다는 의미를 내포했고, 동시에 당신이 허락할 때까지 집요하게 쫓을 거라는 경고도 함께였으니까.
“자, 잠깐만, 잠깐만!”
이미 일전에 8시간가량을 그 집에 죽치고 있었다고 했던가.
그때의 악몽이 떠오른 듯 TaKa 대표의 말끝이 떨렸다.
역시 이은지와 나만 힘들었던 건 아닌 모양이다.
“아니다. 아니야.”
“에이, 아니기는 직접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거 좋다고―.”
“창석아? 창석아! 잠깐만!”
“에이, 됐어. 거절하지 마. 내가 갈게. 예전에 형님이 그랬잖아? 사람이 대화라는 걸 하려면 역시 직접 얼굴을 똬―하! 어? 맞대고 해야 그게 대화라고―.”
“야, 아니야! 야, 그 말을 한 게 10년도 더 전이야! 해! 하라고! 두, 두 곡해! 대신 그 펜션 여행 간 거까지만……!”
“어허, 뭐, 나도 그 정도 양심은 있지. 하하. ‘펜션 여행’ 안에서 촬영한 것만 쓸 테니까. 동생 밀어준다― 생각하고 도와줘. 응?”
TaKa 대표 또한 한두 번 있던 일은 아닌 듯했다.
문제는, 알고 있었음에도 어쩔 수가 없다는 점일까.
대표님의 수법에 결국 TaKa 대표는 알면서도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이건 한참 나중에 최태현 선배를 통해 들은 이야기였지만, 대표님이 TaKa 대표님의 집에 다녀간 그날.
그 8시간의 이야기의 힘인지, 정말 아―무 짓도 안 하고 떠들기만 하다가 TaKa 대표의 집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TaKa 대표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앓아누웠다고 했었다.
“양심이 있다는 놈이, 너─는. 하아…….”
TaKa 대표는 그날을 떠올리자 끔찍했는지, 한숨을 깊이 쉬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료애가 느껴지는 한숨 소리였다.
“역시 형님. 아쉬우시구먼. 아무래도 내가 직접 가서 뵙고―.”
그에 맞춰 대표님은 이번에 작전을 바꾼 듯, 걱정스러운 양 목소리를 갈며 물었다.
“괜찮아. 괜찮다. 내가 미안하다. 아이고.”
대표님의 말이 채 다 이어지기 전에 TaKa 대표는 살짝 화가 난 듯했지만, 대표님의 생각이 바뀔까.
억지로 웃음을 유지하고 있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말실수를 했다.”
“실수는 무슨, 그래도 선물 한 번 사 들고 형님네 한 번 더 갈게. 고마워서라도―.”
“오지 마!!!”
TaKa 대표는 어지간히 싫었는지 끝내 목에 핏줄을 세운 것 같은 큰 소리를 냈다.
“허참, 거, 서운하게 왜 소리를 질러.”
“오지 마! 절대 오지 말라고! 이눔 시끼야!”
“하하. 짓궂으시기는, 알았어요. 알았어. 가족 같은 사이에 이 정도는 애교로 봐주슈!”
“가족? 가아아족? 이야, 가, 족같은 사이겠지!”
“에이, 형님 또 삐지셔서 그러신다. 또. 하하. 그럼, 오랜만에 ‘우리 애들’하고 잘 놀고 잘 보낼게잉?”
“아우! 니 마―음대로 하세요. 저, 저놈 저저 늙은 여우 놈 새끼 저거. 어우!”
TaKa 대표는 급발진하더니, 결국 질린다는 듯 답도 듣지 않고서 뚝 전화를 끊어 버렸다.
수년간, 고집 있던 그룹과 야생동물 같던 우리 남매를 기른 짬이 어디 가지는 않으신 걸까.
이런 막무가내의 설득(?)이 통할 줄이야.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던 나는 놀라고 있었다.
제발 찾아오지 말아 달라는 뇌물로 받아 낸 펜션 여행 한정 ‘톡신 뮤직비디오 출연권’은 아주 알차게 사용했다.
그날 하루 촬영으로 뮤직비디오 두 편을 뽑으려는 촬영 계획을 철수 PD와 꼼꼼하게 잡아 온 덕분이었다.
대표님은 승자의 미소를 띠며 나를 돌아봤다.
“그래서, 앨범 마지막 곡 가사도 다 썼다고?”
“네.”
“가져와 봐. 보자.”
* * *
깜짝 떡밥
첫 계획대로였다면 <더운 오후>에는 지예찬도 참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예찬은 참여하지 않았다.
뮤직비디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분리된 이유에는 한창 의 편곡을 위해 은지가 지예찬의 작업실을 자주 찾던 날.
그날 남몰래 나눴던 두 사람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은지 양.”
“네?”
지예찬은 가만히 은지가 작업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툭, 특별한 제안을 하나 던졌다.
“내 소원권은 조금 오래가는 걸로 하는 건 어때요?”
“왜요?”
은지가 묻자, 지예찬은 특유의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뻔한 내 곡 말고, 나도 은지 양이 만든 곡에 참여해 보고 싶거든.”
이미 지예찬의 숨을 쉬듯 흘리는 능글맞음을 알던 은지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아! 그럼요, 선배님!”
때마침 떠오른 게 있는 듯 놀란 눈을 하다 손뼉을 치며 말했다.
“제가 지금 곡 한 개 보낼게요!”
지예찬은 흥미가 돋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앉았다.
곧 휴대폰으로 은지가 보낸 곡이 전송됐고, 지예찬은 착용한 헤드셋에서 나오는 곡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베이스와 베이스 드럼이 교차하며 중독적인 리듬.
거기에 장난스럽게 통통 튀는 건반의 멜로디까지.
조금은 정신이 없을 법도 하건만, 바탕이 되는 리듬은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한 C 메이저 코드로만 이뤄져 있다.
그래서일까.
과함과 허전함이 합쳐지니 의외의 완벽한 조화를 이뤄 냈다.
‘이건 은지 양의 특징일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은지는 어떤 밝은 곡을 써도 특유의 씁쓸함과 묘하게 끈적거리는 분위기가 묻어났다.
‘게다가 언제 갑자기 이렇게 성장한 거지?’
‘듀오’를 작업할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편곡에 뛰어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땐 뭐랄까.
배운 것을 활용하여 만든 풋내기 아이가 실험하는 분위기 정도에 가까웠었다.
그래서 솔직히 객관적으로 ‘듀오’를 평가하자면 ‘조잡함’이랄까.
재능도, 능력도 완벽했지만, 경험이 부족한 탓에 아직 ‘완성이 되었다’라는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듣고 있는 곡은 달랐다.
지예찬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은지를 돌아봤다.
강약 조절이 완벽하다.
마치 다른 사람. 아니.
몇 년은 이 바닥을 굴러 본, 본인만의 구역을 만들어 낸 이름 있는 작곡가.
그런 작곡가가 오랜만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의 곡.
‘그래. 딱 그런 느낌이야.’
은호의 회귀 전 그 시기의 기억이 은지에게도 흘러 들어오며 음악에도 영향이 간 것뿐이었지만…….
지예찬의 입장에서는 신입 작곡가가 앨범 한 번 작업하면서 말도 안 되는 성장세를 보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단해!’
노래 감상을 마치고 지예찬은 감탄과 동시에 눈을 뜬 그때였다.
‘엄마야.’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은지가 안 그래도 부리부리한 눈으로 빤히 보고 있자 조금 깜짝 놀랐다.
표정은 여전히 태연해서 알기 힘들었지만, 예찬의 어깨가 들썩인 탓에 유심히 보고 있던 은지는 알고 있었다.
은지는 ‘하하’ 짧게 웃다가 예찬에게 본론을 꺼냈다.
“선배님이 여기 브리지에서 랩을 해 주셨으면 해요!”
“브리지에 랩을?”
“네. 딱 이은호 목소리도, 제 목소리도 다 좋지만 뭐랄까. 하늘에 드리우는 밤하늘? 같은 짙은 색을 강하게 입혀 줄 ‘목소리’가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노래가 아니라 랩을 해 달라?”
“네. 맞아요.”
“……결정이 빠르네.”
적어도 자신이 이런 제안을 하면 생각을 해 보고 나서 곡을 줄 줄 알았다.
본인이라면 그랬었을 테니까.
하지만 은지는 단순하게 생각했고, 계산했고, 결론을 냈다.
“왜 나지?”
질문이 이상하다는 건 말을 하고 난 뒤에서야 알아챘다.
지예찬은 뒤늦게 설명을 덧붙였다.
“랩이라면,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송민이가 더 잘하거든. 나는 그쪽으로는 그렇게 뛰어난 편도 아니니까.”
“아.”
은지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송민 선배님은, 뭐랄까. 덥잖아요. 후끈하고. 그래서 더운 오후가 생각났고, 으음.”
은지의 설명에 지예찬의 능글맞던 가면이 깨지고 표정에 수많은 물음표가 드러났다.
“그리고 선배님은 목소리가 밤이 되기 전 노을이 상상되는 그런 톤이시잖아요?”
“노을?”
“네. 방금 들려 드린 노래가 노을 자리에 들어갈 곡이거든요. 그래서 이게 선배님 목소리가 노을 같으니까, 그게…….”
어떤 의미인지 더 알아듣기가 힘들어졌다.
은지도 더 확실한 전달을 위해 손과 발을 이용하며 몸짓까지 더해 봤지만 의미가 전달되진 않은 것 같았다.
“으어, 이럴 땐 오빠가 있는 게 좋은데…….”
은지는 푹 한숨을 내쉬며 갑갑함을 못 견디고 은호를 찾았다.
아무래도 이런 언어를 은호는 잘 알아듣는 모양이었다.
“아! 참. 선배님, 잠깐 건반 좀 써도 될까요.”
“그래.”
갑자기 건반은 왜일까.
지예찬은 호기심 반, 신기함 반의 심정으로 은지를 뒤따라 건반 옆에 섰다.
은지는 화면과 연결된 건반의 가상 악기를 로즈 피아노로 맞추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재즈에 가까운, 동시에 그 어떤 곳에도 속하지 않는 리듬과 멜로디가 흘렀다.
그리고 음악은 언어가 없이 소통하기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이듯.
지예찬도 은지가 말하는 바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잘 어울리네.”
“그죠! 맞죠!”
은지는 조금 전에 들려줬던 ‘밤이 되기 전 노을’이 떠오르는 브리지의 멜로디를 지예찬이 낼 수 있는 옥타브 범위에서 연주했다.
“죄송해요. 제가 저희 오빠처럼 말을 막 현란하게 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저는 뭔가 떠오르면 보통 이렇게 막, 노래처럼 들려서, 하하. 설명하기가 힘들어요.”
지예찬은 다른 의미에서 허탈한 숨이 터져 나왔다.
‘방금 그 노래가 머릿속에서 이미 완성형이었다고?’
항상 음악이 들리는 머리를 가졌다니!
단순히 작곡의 재능이라 칭하기엔 그 단어가 감히 이 귀한 능력을 다 담을 수 없었다.
항상 노래가 들리길 바라는 자신으로선 굉장히 부러운 능력이었다.
지예찬을 속으로 감탄을 아끼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더 고민은 안 해 봐도 괜찮겠어?”
“네! 보통 제가 좋았던 건 다 괜찮거든요.”
“자신이 넘치네.”
“그게 제 가장 큰 장점이죠. 전 제 귀를 믿거든요.”
은지가 제 귀를 콕 찍으며 말하자, 예찬은 어린 꼬맹이의 풋풋한 자신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볼게. 랩.”
그렇게 지예찬은 현재 제작 중인 시간 앨범에서 ‘노을’을 뜻하는 곡에 참여를 약속했다.
* * *
어느새 생방송은 마지막 의 라이브를 앞두고 있었다.
은호는 무대가 세팅되는 동안, E%들에게 짤막하게 의 비하인드를 하나 풀어냈다.
“사실 이번 ‘Wise’는 지난 활동 곡이었던 ‘듀오’와는 은지도 저도 많이 달라진 마음으로 준비한 곡이었어요.”
사실 이렇게 말을 했지만 다른 건 마음 뿐만은 아니었다.
현실적으로도 듀오를 준비하던 그때가 정말 ‘여유로웠었구나’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녹음에 말 그대로 미쳐 있던 나날이었다.
하지만 이 곡들을 선보일 때를 상상하며 작업해서일까.
정말 힘들었지만, 동시에 어느 때보다 즐거웠다.
우리 E% 님들의 반응이 과연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한편, 그렇게 바쁜 나날이다 보니 듀오 당시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질 높은 안무를 꽉꽉 눌러 넣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이 허전함을 채울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고, 선택한 건 꼼수라기에는 너무 정직한 방법을 택했다.
「“저희 이번 곡 포인트 안무만 하고, 나머지는 애드리브랑 라이브로 하는 건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