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09)
“맛있냐.”
“우(응)!”
본인이 만든 거라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건가.
다른 선배님들은 아무리 입을 벌려도 두 입으로 나눠 먹은 김밥이었다.
이은지는 입술도 똑바로 못 닫은 채 터질 것 같은 뺨을 하고서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하긴 잠깐 보니까 참치를 미친 듯이 욱여넣던데, 맛이야 있겠지.
‘아, 찌르고 싶다.’
여기서 장난으로 뺨을 툭 건들면 펑 하고 터질 것 같은 뺨이었다.
장난을 치고 싶었지만, 이번만큼은 카메라 앞이라 너무 더러운 장면일 거 같아서 참았다.
다시 아직 남은 태현 선배의 엄지 사이즈 김밥을 마저 입으려 가져가려던 그때였다.
‘……잠깐, 카메라?’
갑자기 든 상상에 순간 눈이 시렸다.
이거 나중에 오튜브에 다 올라갈 텐데, 아이고.
갑자기 머리가 아찔하다.
「지지랑 랑이랑 쌍둥이보다 더 똑같이 생겨서 더 좋아ㅋㅋㅋㅋㅋ」
전에 E-FAN 어플에서 본 게시글 하나와 그 한 팬분의 말에 공감하던 수많은 댓글이 떠오른 탓이었다.
당연히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잘생겼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이은지보단 낫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우리 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ㅋㅋㅋㅋ나도 랑이는 표정 변화가 많이 없어서 지지 웃긴 표정 지을 때 랑이 표정이라고 상상해 봄」
왜 그런 짓을.
내 상상 속 합성된 내 얼굴이 너무 끔찍해서 할 말을 잃었다.
‘제발.’
난 이미 알고 있다.
이은지는 수시로 입안 가득 푸짐한 게 좋다며 본인 입보다 큰 쌈을 욱여넣고는 했었으니까.
그러고 칼로리 초과로 PT를 몇 시간씩이나 더 받는다.
「“덜 먹고 덜 운동하는 게 더 낫지 않냐?”」
「“뭔 소리야. 당연히 먹어야 남는 건데 먹어야지.”」
「“그래. 남겠지, 살로.”」
「“X새끼야!”」
그저께도 이은지는 ‘감히 치느님 앞에서 뭔 X소리를 하는 거야’라는 시선을 노려봤었다.
아무튼.
매일 직관하던 입장이라 모를 수가 없었다.
마치 햄스터가 제 입속에 자리를 만들 듯 뺨을 밀어 가며 한 쌈 푸짐하게 넣던 그 모습.
이은지.
카메라에 그 모습이 찍혔다니…….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런 걱정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먹방과 함께 방송은 좋은 분위기에서 계속 이어졌다.
그 좋은 분위기가 대부분 우스꽝스러운 모습 때문에 ‘ㅋㅋㅋㅋ’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래. 좀 싫은 모습이면 어때. 뭐든 우리로 즐거우면 됐지.’
그렇게 생각하고 넘기려고 노력했다.
김밥을 말 때는 정신이 없었지만, 식사를 하다 보니 다시 채팅창에 눈이 오래 머무를 수 있었다.
그때, 승연 선배가 김밥을 입안에 넣으려다 멈칫하며 한 질문을 읽었다.
“방금 채팅에서 ‘이번 Wise에서 싸우는 연인 역할로 나왔던데 연기할 때 힘들지는 않았어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거 나도 은호 씨한테 물어보고 싶던 이야기네요.”
“저요?”
그 장면에 나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왜 갑자기 내 이야기가 나온 걸까.
“오, 맞아. 그때 은호 아니었으면 촬영 중단할 뻔했잖아.”
“……왜요?”
은지는 빠르게 입을 오물거리며 입속의 것을 삼키고 대답했다.
“음, 이런 말 하기는 미안한데.”
“말해 줘요. 괜찮아요.”
“커플 장면 촬영하던 그때 말이야. 은지 씨가 감정을 잘 못 잡았었잖아.”
“아, 맞아. 하하. 네.”
은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사람들도 한마디씩 이야기를 더했다.
“하하. 뭐라고 했었지?”
“남자 친구라는 단어가 뭐냐고 했었나?”
“맞아. 그랬었어.”
아직 이해가 안 되던 그때였다.
그래도 동생이라고 은지가 조용히 힌트를 던져 줬다.
“떡볶이 말이야.”
“아하. 떡볶이, 그거.”
‘그거였구나’라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은호의 대답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던 걸까.
“응?”
“응?”
“어?”
“갑자기 떡볶이가 왜 나와?”
다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뮤직비디오 속 커플 장면, 총칭 ‘그네’신.
은지와 오현 선배가 커플 의상을 맞춰 입고 서로 화를 내며 싸우는 장면을 촬영할 때였다.
「“남자 친구랑 싸웠다고 생각해!”」
철수 PD님의 설명에 은지는 더 미궁 속으로 빠진 듯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뭐랑 싸웠다고요?”」
「“남자 친구!”」
안 들렸나 싶어서 철수 PD가 한 번 더 크게 설명했다.
이은지는 진심으로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런 단어가 제 사전에 존재한 적이 없어서 감정이 안 잡혀요…….”」
「“응? 무슨 소리야. 애인 있었을 거 아니야.”」
「“저 모솔이에요…….”」
다들 믿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사실이었다.
이은지는 회귀 전에도 일만 했고 연애는커녕…….
좋다고 들이대던 사람도 놀라서 도망가게 할 정도로 까탈스러웠다.
특히 일 쪽으로는 더더욱 그러했었다.
‘일하다 정든다’
흔히 그런 말이 있는데, 적어도 이은지랑은 절대 관계없는 문장이었다.
그 삭막한 작업실 분위기에 정은커녕 매니저조차 ‘식사하시죠’라는 말을 꺼내는 걸 힘들어했었으니까.
연애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까.
‘아.’
은호는 무언가 떠오른 듯, 은지에게 달려가더니 한쪽 구석으로 끌고 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듣던 은지는 울먹이다 갑자기 엄청 화가 났다.
“무슨 소리 하고 왔어?”
다시 카메라 뒤로 달려온 은호에게 승연이 다가오며 물었다.
은호는 장난스럽게 ‘비밀이에요.’라며 대답하고는 다시 은지의 연기를 지켜봤다.
다시 큐 사인이 떨어지고, 은지는 언제 그렇게 어색했냐는 듯 뛰어난 몰입력을 보여 줬다.
팬분들이 이해가 안 되는 걸 배려했는지, 승연은 그때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한 뒤 은호에게 다시 물었다.
“그네 촬영 때.”
“네. 그 연인이 싸우는 장면 말이죠?”
“응. 맞아. 그때 무슨 이야기 했었어?”
잠시 그날을 다시 떠올려 보는 듯, 은호는 잠시 갸웃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니가 좋아하는 떡볶이 생각해 봐.’라고 했던 거 같은데요…….”
스튜디오가 잠깐 싸늘해진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믿기 힘들지만 정말 사실이었다.
「“니가 좋아하는 떡볶이 기억나냐?”」
「“뭔 떡볶이?”」
「“회귀 전에, 아마 몇 년 뒤에 생기는 곳일 텐데, 카레랑 후추맛이 진한…….”」
회귀 전 이은지가 연애라도 하나 싶을 정도로 푹 빠져 있었던, 집 앞에서 팔던 카레와 후추 향이 진했던 떡볶이.
「“X나 맛있겠다.”」
은지는 말만 들어도 침이 고이는지 꼴깍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호는 그걸 은지가 연기해야 할 ‘남자 친구’ 대상에 대입시켰다.
「“그래. 거기서 넌 이제 앞으로 즐겁게 먹을 일만 남았어. 헉! 근데 그거, 네 건반에 쏟아졌다.”」
「“미친?”」
「“니가 뭘 잘못한지는 모르겠는데! 아, 이게 알고 보니까 떡볶이가 담긴 그릇이 좀 아슬하게 생긴 탓도 있어. 근데 니가 살살 놨으면 둘 다 지킬 수 있었는데…….”」
「“짜증 나…….”」
「“그리고 또 어때.”」
「“슬퍼. 짜증 나고 화도 나. 나한테도 나고, 엎어진 것도 화나고, 그냥 다 싫어. 근데 버리는 건 아까워서 어떻게든 담아 보고 싶을 거 같은데.”」
「“그렇지. 근데?”」
「“이미 소스는 많이 흘러서 사라지기도 했고 내 건반에 다 들어갔을 거잖아.”」
「“오케이. 됐다. 그 감정으로 화내고 와.”」
은호는 그날 있었던 대화를 정말 그대로 설명했다.
“진짜 그 연기가 고작 떡볶이로 나온 연기였다고?”
“은지, 떡볶이에 진심이구나…….”
“이건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하찮다고 해야 하나…….”
막내 라인이 한마디씩 하는 그동안, 채팅방에서는 물음표가 파도처럼 쏟아졌다.
“그렇게 비유가 이상했어?”
“아니. 완전, 적절했는데…….”
우리 대화를 이해하고 있는 건 어째선지 우리뿐인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왜 Wise에 참여하는 두 사람 말고 다른 멤버들은 왜 온 거예요? 응원?]
한바탕 갈고리 김밥 파티가 끝난 뒤, 슬슬 테이블과 상황을 정리하고 있던 그때였다.
막내들과 은호와 은지가 테이블을 정리하는 그동안 빠르게 할 일을 먼저 마친 지예찬이 채팅을 하나 읽으며 웃었다.
“뭐 봐.”
“왜요?”
때마침 태현과 은호도 뒤따라 제 할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방송에는 참여한 사람만 와도 될 텐데, 나나 다른 막내는 응원하러 와 준 거냐고 물어보셨어.”
“아아.”
이해했다는 듯 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카메라를 돌아봤다.
“아직은 비밀이에요.”
* * *
사실 오늘 생방송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 촬영 때도 그랬다.
펜션 여행에는 참여하는 오현 선배와 태현 선배만 와도 충분했다.
의 뮤직비디오에는 알다시피 톡신 멤버들 중에 녹음했던 둘만 출연하니까.
하지만 이번에 작업한 곡 중에선 저녁을 뜻하는 외에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점심을 뜻하는 <더운 오후>라는 곡이 하나 더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승연 선배와 송민 선배가 참여했다.
펜션 여행은 고로, 외에도 <더운 오후>의 뮤직비디오도 겸한 여행이라는 말이었다.
물론!
이번 촬영에 TaKa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뜻은 1%도 들어 있지 않았다.
미리 허락은 받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펜션에 도착 후 다음 날.
나는 낯선 곳에 온 덕분일까.
내내 막혀 있었던 가사가 해결되면서 허락을 위해 그날 대표님의 방을 찾았다.
그때, 타이밍이 나빴달까.
아침 일찍부터 대표님의 전화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가사 이야기는커녕 대화조차 한마디 하기 힘들 정도로 시끄러웠다.
벨소리가 아닌, TaKa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버럭 소리를 지르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야! 애들이랑 단체로 펜션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창석이 너 딱 한 곡만 찍는다며!”
“에이, 정 대표님. 섭섭하게 왜 이러셔?”
큰 목소리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뻔뻔하게 대답하는 대표님의 답이 더 가관이었다.
우리 편이지만, 그래도 약이 오르는 어투였다.
“내가 언제 뮤직비디오 ‘한 곡’이라고는 말했어?”
“야! 박창석! 치사하게 그런 게 어디 있느냐!”
“그래서 말했냐니까? 정 대표님, 나 그때 녹음 있어요. 하하.”
“창석이 너 이따위로 나오면 후회할 줄─.”
TaKa 대표가 대기업의 주인으로서 근엄한 모습을 보이려던 그때였다.
통화를 받던 우리 박 대표님은 상황의 흐름이 저쪽에 넘어가도록 두고 볼 생각은 절대 없어 보였다.
“어허, 형, 서운하게 우리 사이에 이러기야?”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나를 힘으로 찍어 누르려는 상대를 나와 같은 높이에 세우는 것.
그게 시작이었다.
대표님은 은근슬쩍 ‘대표님’이라는 호칭을 생략하며 TaKa 대표를 친근하게 ‘형’으로 몰아붙였다.
“창석이 너야말로 서운하게 왜 이러는 거야. 돌아오라고 할 때는 앞으로 이쪽 일은 안 한다고 하더니 갑자기 회사를 차리질 않나!”
TaKa 대표는 덫이 깔린 것도 모른 채 대표님의 구역에 발을 들였다.
이젠 자주 잔소리를 들어서 그런가.
왠지 귀에 익은 대표님의 조련 방식이었다.
상대가 스스로 내려온 이후부터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대표님은 설득(?)을 시도했다.
“아, 이거. 우리 형님이 그게 서운하셨구먼! 하하, 알았어!”
“네가 알긴 뭘 알아!”
“내가 우리 긴 회포를 풀기 위해서 또 한 번 형님네 가야겠구먼!”
“뭣, 뭐?”
TaKa 대표의 정색하던 대답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