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06)
내 머리 위 춤추는 Three monkeys
은호는 노래를 부르며 제 머리 위를 가리켰다.
화면이 올라가자, 그곳에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진 춤추는 원숭이 세 마리가 있다.
은호의 손가락이 세 원숭이 중 한 마리의 뺨을 콕 찌르자, 그 원숭이는 황급히 입을 가렸다.
What are you doing now?
옆에 있던 원숭이가 묻자, 다른 원숭이들은 따라서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
화면이 다시 은호의 얼굴로 내려오고 은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저녁이 곧 내게 인사할 거야
노을이 지고 밤이 다가오는 길을 걷자, 주변으로 검은 연기가 맴돌며 은호에게 속삭였다.
(Hear no evil)
목소리를 들었다면 귀를 막아
은호가 귀를 막으며 웃었다.
귀를 막았던 손을 떼고 어디서 났는지 모를 나무 지팡이를 들고 빙글 돌았다.
이번엔 그 검은 연기가 사람의 형체를 만들며 속삭였다.
은호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무뚝뚝한 표정의 최태현이었다.
(See no evil)
그 녀석이 보였다면 눈을 감아
은호는 곧장 태현에게 등을 돌리며 양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 원숭이들과 같은 자세였다.
최태현은 다시 연기로 다가와 은호의 주변을 맴돌았다.
은호는 그런 검은 구름을 나무 지팡이로 흩어 낸 뒤 공중에 던져 버렸다.
지팡이는 공중에서 사라지며 작은 폭죽처럼 터졌다.
(Speak no evil)
혹여라도 소릴 낼까 입을 가려
은호가 놀라 소리를 지를 뻔한 순간, 입을 가리며 화면을 마주 보고 웃었다.
듀오와는 또 다른 밝은 분위기의 뮤직비디오였다.
다만 노래의 분위기는 내내 의미심장한 가사와 야비하고 위험한 느낌이 맴돌았다.
은호가 발랄하게 손뼉을 치고 누군가의 그림자가 스친 순간 은호는 밝은 주황빛의 꽃으로 바뀌었다.
[저거 금잔화다!]
꽃을 잘 알고 있는 팬인 듯, 그림으로 그린 꽃이었음에도 정확히 맞췄다.
채팅창을 구경하던 톡신와 은호와 은지도 화들짝 놀라며 웃었다.
“와, 이걸 맞춰?”
“이응이네 팬 중에서 똑똑한 사람이 많네.”
“역시! 우리 E%!”
“이퍼?”
“저희 팬 네임이에요.”
은지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다시 화면을 보자, 뮤직비디오 속 금잔화는 지팡이를 날려 버렸을 때처럼 폭죽과 함께 사라진 후였다.
은호 앞을 지나간 그림자는 오현이었다.
오현은 산책로를 걸으며 생각에 잠긴 듯 미간을 구기고 있었다.
Three wise monkeys
현명한 원숭이가 손을 내밀어
잡아선 안 될 손을 잡아
혹시 모르잖아 괜찮을 거야
그 틈에, 최태현은 은호에게 그랬듯 똑같이 속삭였다.
너를 안단 쉽게 뱉은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이 한마디가 내 숨통을 죌까 언젠간 네 목을 죌까
오현은 검은 연기를 홀린 듯 바라보며 말했다.
너한텐 모든 일이 쉽겠지
네 일이 아니니까
너는 울어 내 생각 없는 한마디에 무너져서
화면이 바뀌고, 은지는 오현과 함께 있었던 절반만 보이는 그네 의자에 쓸쓸히 혼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절반이 감춰져 있던 그네 의자에는 은호가 앉아 있었다.
네 머리 위 춤추는 Three monkeys
은호는 그런 은지의 머리 위를 가리켰다.
What are you doing now?
그런 은호를 돌아보며 은지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저녁이 곧 네게 인사할 거야
은호는 그렇게만 대답하며 이번엔 그림으로 그려진 꽈리 가지로 변했다.
은지가 가지를 주워 들자, 가지는 아까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폭죽을 터뜨리며 사라졌다.
다시 오현으로 돌아온 화면은 검은 배경을 비췄다.
비구름 같은 어두운 구름을 뚫고 내부로 들어가자, 안에서 오현이 어둑한 길을 걷고 있었다.
(Hear no evil)
목소리를 들었다면 귀를 막아
(See no evil)
그 녀석이 보였다면 눈을 감아
(Speak no evil)
혹여라도 소릴 낼까 입을 가려
은호에게 그랬듯, 최태현은 이곳에서도 속삭였다.
다만 은호 때와 달리 오현은 해답을 알고 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그저 도망치듯 어떤 곳을 향해 하염없이 달릴 뿐이었다.
빛이 보였다.
Three wise monkeys
현명한 원숭이가 손을 내밀어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는 은호였지만, 정작 오현 앞에서 입을 열고 있는 사람은 최태현이었다.
잡아선 안 될 손을 잡아
혹시 모르잖아 괜찮을 거야
오현이 노래를 부르며 절실하게 손을 붙잡자, 최태현은 그 순간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화면이 멀어지고, 누군가의 손이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누른 후 화면에 리모컨을 비췄다.
척은 못난 면을 감춰 주지만 완벽하진 못해
리모컨의 전원 버튼은 깨알같이 'E-UNG'의 문양이었다.
리모컨을 내던지고 은호의 손 위에는 어느새 유리구슬이 하나 들려 있었다.
은호는 손쉽게 유리구슬을 부숴 버리며 부서진 조각들을 은지 발 앞에 떨어뜨렸다.
얕은 막이 부서지면 파편들이 너를 향해
은지는 고개를 들어 은호를 바라봤다.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입을 가려도
들었던 것이 보았던 것이 말했던 것이
지금껏 장난 가득하던 은호의 표정이 굳었다.
내 머리 위 춤추는 Three monkeys
새하얀 풍경이 거울이 깨지듯 조각 파편으로 떨어졌다.
(What are you doing now?)
저녁이 곧 너에게 인사하겠지
(I'll welcome you on the red carpet)
은지가 웃으며 말하자, 은호도 은지를 따라 씁쓸하게 웃었다.
Three wise monkeys
현명한 원숭이가 손을 내밀어
한순간 너는 손을 붙잡아
오현에게 최태현이 그랬듯, 은호가 은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은지는 각오했다는 듯 웃으며 은호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질 거야 그럴 거라 헛되게 믿어
은호는 하트 모양을 닮은 꽃잔디 꽃잎으로 변해 흩날리는 바람을 따라 사라졌다.
그동안, 처음에 봤던 작은 소동물의 주변에 검은 연기가 맴돌며 말했다.
(Hear no evil)
(See no evil)
(Speak no evil)
소동물은 오현의 역할인 듯, 최태현이 읊는 한마디 한마디를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그때, 은지의 발길질에 주위를 맴돌던 검은 연기가 증발했고, 충격에 놀란 듯 소동물이 도망쳤다.
은지는 떠나는 소동물을 씁쓸한 눈길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현명한 원숭이가 손을 내밀어
혹시 모르잖아 괜찮을 거야
바람이 강하게 불며 은지의 얇은 옷자락이 흩날렸다.
은지가 입을 움직이자, 은호와 은지의 목소리가 함께 흘러나왔다.
미안해
은지는 씁쓸한 눈길로 하늘을 바라봤다.
사실 난 괜찮지 않아
이힉!
테이프를 되감는 것 같은 소리와 동시에 은지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은지의 표정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고상한 드레스를 차려입고서 은지는 하늘을 향해 모자이크된 손가락을 날렸다.
하늘의 구름도 은지와 똑같이 모자이크-凸- 모양을 하고 있었다.
* * *
이 뮤직비디오가 정신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번 뮤직비디오의 연출은 나랑 이은지가 대부분 진행했다.
나는 나를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난 불행을 탈출할 수 있는 다리가 있었고, 죽음 앞에 무너지지 않을 이유인 동생이 있었다.
배가 고플 땐 먹을 것이 있었고, 아플 땐 날 간호해 줄 동생이 있었다.
세상에 답이 없어 보일 땐 빵집 아저씨가 나타났고, 답을 얻은 후에 세상살이에 욕심이라는 것이 생겼을 땐 지금 박창석 대표님을 만났다.
이 가사를 쓰던 당시.
나는 최근 읽은 책에서 본 문장들을 떠올렸다.
무의식중의 지배.
정서적 학대.
그리고 소크라테스 선생님의 진실(眞實), 선(善), 필요(必要) 여과.
파고들다 보니 세 마리의 원숭이를 알게 됐고, 이 원숭이의 뜻이 나쁜 의미로도 좋은 의미로도 쓰인다는 걸 알았다.
뭐, 물론 그렇게 깊이 파악하진 않았다.
나는 배움이 짧다.
유명한 학자님들처럼 거기에 수십 년간 몸을 담아서 자랑스레 떠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건 아니다.
가사 역시 그러했다.
그렇게 내가 공부한 내용을 가사에 모두 담으면?
가사는 지루해지고 누구를 가르치는 노래가 될 뿐이다.
그래서 그만큼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다.
그래야 덜어 낸 뒤에도 남는 것이 있을 테니까.
팬들에게도, 악플러에게도 그러했다.
회귀 전엔 선을 넘어오는 사람들에게 고소장을 선물했었지만, 애정이 어린 비판은 때때로는 가슴이 아프더라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나는 모르니까.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서.
그리고 계속 깊게 파고들다 보니, 모든 것에 공통점은 하나였다.
‘말.’
내가 뱉은 모든 말은 언젠간 어떻게든 돌아온다고.
더 풀면 나쁜 것에 눈을 돌리되, 때로는 부정적인 정보도 들어야 한다는 말이긴 한데…….
간단하게 말하면 결국엔 말조심하자는 이야기.
이은지처럼 나는 천재도 아닌 데다 ‘느낌대로’ 곡을 뽑아낼 수도 없으니까.
대신 나는 만들고 전하고 알릴 힘이 있으니까 그걸 이용했다.
그걸 기준으로 상황을 재구성했다.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처럼 어쨌거나 세상은 내가 조심해도 X을 날릴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따라서 흘러가듯 세상에 웃으며 X을 날리면 되는 거 아닐까.
내 생각은 그러했다.
그리고 보다시피 나나 이은지는 이 우중충한 메시지를 그렇게 진지한 분위기로 전하고 싶진 않았다.
이은지와 내가 노래를 만들 때 게임에서 모드를 선택하듯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면 상담사, 이야기꾼, 광대, 음유시인, 장난감 등등 수십 가지로 나뉠 것이다.
그리고 이번 는 내가 겪은 아픔들과 불편한 주제를 담은 만큼, 그래서 오히려 최대한 덜어 내고 전달하고 싶었다.
우리의 아픔은 우리에게만 아픔이 되길 바라서.
적어도 우리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 우리의 팬들만큼은 우리를 뜯고 즐겨 주길 바라서.
그래서 우리는 광대가 되기를 택했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지만 누구도 진지하게 보아 주지 않을.
어색하지만 밝은 분위기의 연기를 한 것 역시 그런 가벼운 느낌으로 전하고 싶어서였다.
그 결과.
코X처럼 해석에 온 힘을 다하던 E%들의 채팅은 마지막 장면에서 ‘ㅋㅋㅋㅋㅋ’로 도배됐다.
적어도 전하려던 ‘즐거움’이라는 건 확실하게 전달된 것 같았다.
은지를 돌아보자, 이은지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손바닥을 힘껏 부딪치자 큰 ‘짝’ 소리와 함께 이은지의 표정이 웃으며 구겨졌다.
“아프잖아!”
“때려 달라고 든 줄 알았지.”
“아니, 하이 파이브하자는 거였어!”
“어쨌든 이것도 하이 파이브잖아.”
“아팠잖아!”
“알았어. 그럼 로우 파이브 하자.”
장난치며 은지 발 쪽에 손을 펼치자, 이은지는 진심으로 걷어차려고 자세를 잡았다.
“진짜 발로 차려고 하네.”
“차 달라는 거 아니었어?”
하하하하.
여기서도 광대인 건 마찬가지인 걸까.
톡신 선배들과 회사 사람들이 이은지와 내가 투덕거리는 모습을 보며 웃었다.
“그만해. 그만해.”
“왜요. 치고받고 싸우는 것도 아닌데 내버려 둬요, 형. 하하.”
지예찬 선배가 웃으며 은지와 내 사이를 갈랐다.
그런 와중에 서승연 선배는 반대로 우리를 더 싸우라며 부추겼다.
이은지와 난 눈을 마주쳤다.
‘괜히 부추기면 또 하기 싫어지지.’
‘인정.’
고개를 끄덕이자, 이은지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휴전을 알리는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