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04)
“쟤들은 그냥 1인실 가지고 싸우게 두고, 나랑 태현이랑 트리플룸 쓰려고 하거든. 너만 안 불편하면 같이 쓸래?”
2층 1인실 옆에는 막내 라인은 아예 생각조차 안 하는 방인 트리플 룸이 하나 있었다.
침대가 3개 있는 방이었다.
은호는 조용히 시끄러운 뒤를 돌아봤다.
“서승연, 너 생일 8월이잖아. 내가 형이니까 양보하라고. 형님 먼저 몰라?”
“그렇게 치면 내가 제일 빠르잖아. 나 5월인데?”
“아니지. 너희 왜 멋대로 생일 나누냐? 그럼 12월인 나한테만 불리한 방법이잖아!”
“누가 늦게 태어나래?”
“야, 주송민. 너 그 말 우리 엄마한테 그대로 할 줄 알아!”
저분들 서른 살 맞지?
생일 가지고 누가 더 ‘형이네, 아니네’를 가르고 있던 오현, 주송민, 서승연.
세 사람을 가만히 보고 있던 은호는 고민했다.
‘왠지 여기서 내가 1인실을 쓰겠다고 하면…….’
당연히 더 큰 전쟁이 나겠지.
그렇다고 둘이 같은 방을 쓰자니…….
‘음.’
오현, 주송민, 서승연.
세 사람 중 누구랑 둘이 방을 쓰든, 적어도 지예찬과 최태현 방보다는 시끄러울 것 같달까.
은호는 생각을 정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예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네. 그게 제일 좋을 거 같네요.”
조용한 방이 취향인지라 이쪽을 택했다.
바깥이 시끄러운 와중, 태현과 예찬을 따라 은호는 2층의 트리플룸으로 향했다.
‘이 정도면 오히려 1인실보다 더 좋은 거 같은데?’
방 안에 들어가서 보니 방은 생각보다도 더 넓었다.
제각각 짐을 풀고 쉬고 있는 동안, 내내 1층에서는 세 사람이 시끄럽게 싸우는 소리가 이어졌다.
“니들 이렇게 시끄럽게 굴 거면 다 나가서 텐트 치고 자!”
참다못한 듯, 먼저 방에서 짐을 풀던 대표님이 밖으로 나와서 소리쳤다.
설마하니 걱정했는데, 대표님의 잔소리는 약 30분을 내리 이어졌다.
‘이제 조용해지겠네.’
누구보다 잔소리의 힘을 잘 알기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예상을 깨고 곧 다시 큰 소리가 이어졌다.
대표님이 우리를 잘 다루는 이유가 이전엔 이런 톡신 선배님들을 다뤘기 때문이 아닐까.
대표님의 잔소리 폭탄을 무시하고 계속 싸운다니, 한편으로는 대단한 경지이기도 했다.
세 사람은 놀랍게도 대표님의 잔소리 폭탄 이후로도 약 한 시간 가까이 싸웠다.
결과는, 1인실은 오현 선배가 사용하기로 했다.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게임을 했고, 그걸 이겼다고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남은 2인실은…….
“서승연 선배님 혼자 쓴다고요?”
“응. 왠지 시끄럽다 싶더니 둘이 또 싸웠나 봐.”
새삼 한 번 더 생각이 드는데, 선배님들 30대 맞는 거겠지…….
은호가 저도 모르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은 듯, 지예찬은 은호를 보고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옛날부터 팀장님도 못 말렸어.”
“아…….”
그건 대단할 지경인데.
“그래도 저녁에는 조용해져서 다행이다.”
지예찬은 가방을 뒤적이며 말했다.
“어? 그럼 승연 선배는 어디서 주무신대요?”
“아, 매니저들 쪽 집에 방이 하나 남는다더라고.”
“아…….”
하긴 서승연 선배는 사교성이 워낙 좋으니 어디를 가도 잘 어울릴 것 같긴 했다.
싸움이 멎긴 했는지 고요한 펜션은 분위기가 좋았다.
트리플룸에는 의자에 앉아 딱 바깥을 편하게 보기 좋은 높이의 큰 창문이 하나 트여 있었다.
특별히 마음에 들던 자리인지라, 은호는 일부러 창문 옆 침대를 택했다.
최태현 선배는 창가가 싫다며 가장 안쪽이었고, 자연히 지예찬 선배가 중간 자리를 택했다.
“선배님?”
그동안 지예찬 선배는 뭘 하는 건지 계속 가방 안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침대 위에 크림으로 보이는 화장품들을 하나씩 올려 뒀다.
약통 같은 것도 여러 개 있었다.
그 모습을 구경하다,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은호는 대충 창문 앞에 놓은 검은 탁자에 앉아 작사 노트를 펼쳤다.
저녁이 되어 어둠이 내려앉자 일제히 펜션을 두르고 있던 조명과 가로등들이 빛을 냈다.
‘보기 좋네.’
왠지 감상에 젖기 좋은 풍경이라 배경을 도움 삼아 노트에 가사를 끄적거렸다.
「어둑해진 밤
이 길 위 빛이
고요함이 가라앉아 눈을 감기고」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이번 앨범의 마지막 곡을 위한 가사였다.
때때로는 일단 먼저 쓴 후에 맞춰 가는 방향도 나쁘진 않았다.
노래를 딱히 틀지 않았지만 귓가에 멜로디가 맴돌았기에 시를 쓰듯 가사를 써 내려갔다.
이미 음절을 나누기 위해 수십 번은 들었고, 자면서도, 밥을 먹으면서, 이동하면서. 계―속 끊임없이 들은 탓인 것 같았다.
달칵.
한참 가사를 쓰던 그때였다.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언제 나갔던 건지 태현 선배가 방에 돌아왔다.
태현 선배는 방에 들어왔으면서도 문을 붙잡은 채 지예찬 선배를 빤히 보고 있었다.
‘뭐지?’
은호도 호기심에 지예찬 선배를 돌아봤다.
예찬 선배는 얼굴에 마스크 팩을 하고 가슴에 양손을 고이 포갠 채, 마치 파라오처럼 침대에 누워 있었다.
“왜 그렇게 빤히 봐, 무섭게.”
“아니, 대단하다 싶어서.”
“뭐, 왜, 피곤한 게 얼마나 피부에 안 좋은 줄 알아?”
“그래…….”
“부러우면 너도 줘? 몇 개 넉넉하게 가져오긴 했는데.”
“어.”
“푸헠.”
태현 선배가 너무 덤덤하게 말하니까 그게 뜬금없이 웃겨서 터졌다.
‘아.’
태현 선배와 예찬 선배의 시선이 나한테 꽂혔다.
기분 나쁘셨을까 봐 급하게 죄송하다고 말하려던 그때였다.
“쟤도 줘.”
와중에 예찬 선배는 얼굴에 올린 마스크가 떨어질까 봐 살살 고개 저으며 말했다.
“쟨 어려서 안 해도 돼.”
“그런가.”
“우리같이 늙은 사람들이나 해야지.”
“그렇구나.”
태현 선배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선배님들 액면가는 저랑 별 차이 안 나거든요.”
농담이 아니라, 최태현 선배도 그렇고 특히 지예찬 선배는 더더욱 어디 가서 20대라고 해도 믿을 동안 외모였다.
한편, 그 모습을 보다 보니 이분들이 무대 위에서의 그분들이 맞나 싶다.
무대에서는 잘하는 것을 넘어 왠지 경이로울 정도로 노련함을 자랑하는 분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 선배들은…….
어느새 최태현 선배도 예찬 선배처럼 본인 침대에서 마스크를 붙이고 누웠다.
“줄까?”
계속 보고 있으니 부러워하는 것처럼 느껴진 걸까.
왠지 이 방에서 나만 안 하는 것도 민망해졌다.
“네. 주세요.”
* * *
다른 집에서 짐 정리를 마친 듯, 서승연이 2층을 찾았다.
똑똑똑.
“형, 들어가도 돼요?”
“어, 들어와.”
“형, 뭐 하―…….”
트리플룸 문을 연 순간, 서승연은 말 그대로 얼어붙었다.
놀란 마음이 진정되고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서승연은 소곤거리며 말했다.
“저 무슨 영안실인 줄 알았잖아요.”
영안실.
최태현과 은호는 언제부턴가 얼굴에 마스크 팩을 붙인 채 침대에 차렷 자세로 뻗은 채 잠이 들었다.
그때, ‘영안실’에 터진 지예찬이 애써 웃음을 참으려고 하자, 오히려 몸이 들썩들썩거렸다.
“형, 형, 제발 그러지 마요! 공포 영화에 시체 들썩거리는 거 같아요!”
“하하하하. 넌 형한테!”
지예찬은 더는 못 참겠는지 터져 버렸다.
“하, 승연아, 너 때문에 주름 생겼잖아…….”
마침 마스크도 다 되긴 했던 건지, 지예찬은 마스크를 걷어 내며 말했다.
그런 지예찬의 말에 되려 승연은 당황스럽다는 눈으로 보며 말했다.
“전 형 방금 들썩거릴 때 진심으로 개무서웠거든요? 꿈에 나올까 봐 무섭네!”
시끄러운 분위기에 은호가 눈을 떴다.
“어, 은호 일어났다.”
“아, 선배님, 언제 오셨어요?”
“방금 왔어. 나 방문 열고 무슨 영안실인 줄 알았잖아.”
“영안, 아, 하하하.”
은호가 웃는 동안에도 최태현은 잠귀가 어두운 듯 여전히 꿈나라에 가 있었다.
“그래서 왜 온 거야? 너 다른 건물 갔다며?”
“아―.”
지예찬이 묻자, 승연은 그제야 다시 생각난 듯 본론을 말했다.
“팀장님이 시내 다녀오실 거라고 야식 뭐 먹고 싶은 거 있냐고 묻던데요.”
“꼬지랑 똥집이요.”
“응?”
1초도 안 기다리고 은호가 말했다.
“너 닭 좋아해?”
“네. 굳이 나누자면 치킨보다는 특수 부위라고 해야 하나, 그쪽을 좋아합니다. 어릴 때 한 개에 100원에 사 먹고 그랬었거든요.”
“쫄깃하니 맛있긴 하지. 뭐, 나도 꼬치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걸로 이야기해 줘.”
“네―.”
서승연 선배는 주문을 받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간 것 같았다.
“근데 은호야.”
“네?”
“꼬치를 왜 꼬지라고 해?”
뜬금없지만 많이 궁금했던 모양.
지예찬이 묻자, 은호는 고민하다 말했다.
“그러게요……?”
호기심에 은호는 휴대폰을 열어 검색을 해 봤다.
찾아본 바로는 ‘정구지 찌짐’과 ‘부추전’ 같은 지방 사투리였다.
“사투리라네요.”
“아하. 은호, 너 어디 사람인데?”
“고향이요?”
“응.”
“저, 여기요.”
태어난 곳은 정확히 모르지만 나고 자란 건 이쪽 지방이긴 하니까.
“아, 그래서 말투가 살짝 억양이 있었구나!”
그때였다.
지예찬 말에 무슨 소리냐는 듯 은호가 갸웃거리며 돌아봤다.
“제가요?”
“응.”
“저 완전 서울말이지 않아요?”
“아닌데?”
“어, 맞는데, 아닌가?”
“하하하하. ‘아닌가?’라고 보통 한 계단씩 올라가는 느낌이면, 은호는 ‘아↗닌↘가?’하고 ‘닌’이 위를 찍고 내려와.”
“아닌가? 아―닌가? 아―닌―가?”
지예찬 설명에 은호가 억양만 달리한 ‘아닌가’를 반복하고 있자, 슬그머니 눈을 뜬 최태현이 물었다.
“쟤 왜 고장 났어.”
“내가 전혀 몰랐던 걸 건드렸나 봐.”
이후로 겨우 고쳐질 때쯤이면 지예찬은 장난처럼 은호의 사투리 억양을 잡아내며 다시 은호를 고장 내길 반복했다.
“후배 그만 놀려.”
“재밌잖아.”
“불쌍해.”
“하하. 알겠어.”
최태현은 시달리는 은호가 안쓰러웠는지, 지예찬을 끌고 방을 나갔다.
은호는 박 대표가 시내에서 돌아올 때까지 계속 고장 난 상태였다.
1층에 내려가자 다른 집 사람들도 모두 모인 듯 1층이 바글바글했다.
“스태프분들은요?”
“그분들한테는 내가 따로 드리고 왔어. 먹자.”
“오예!”
맥주 캔을 뜯는 까득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다만 아쉽게도 내일 촬영 탓에 술은 연예인들만 빼고 먹기로 했다.
씁쓸한 눈으로 대표와 매니저들이 술 먹는 걸 구경하던 톡신 뒤로 은호와 은지는 손에 염통 꼬치를 든 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너 ‘아닌가?’ 해 봐.”
“갑자기 왜?”
“아, 해 봐.”
“아닌가?”
“똑같은데.”
“왜, 뭔데.”
“아까 예찬 선배가 서울말은 ‘아―닌―가?’라고 해야 한다 했거든.”
“아―닌―가?”
바이러스가 퍼지듯, 그 동생 아니랄까.
은지도 방에서 은호가 그랬듯, ‘아닌가’를 수십 번 반복하고 있었다.
“아, 몰라. 그냥 살아.”
하지만 은지는 고민하는 걸 즐기지 않는 덕분에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은호는 야식 자리가 마무리되고 모두 제 방으로 돌아간 이후 잠자리에 들 때까지 거기에 꽂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