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03)
오랜만에 가는 곳이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눈에 익은 길이었지만 달라진 것도 많이 보였다.
흙길에는 아스팔트가 깔렸고, 나무가 기이하게 자라 있었던 곳엔 나무의 밑동만 남아 있다,
변화들.
우리 역시 달라졌다.
마지막으로 왔던 게 언제였더라.
‘수녀님…….’
가출을 마무리하고 새 가족이 될 대표님과 함께 돌아간 성당.
단순히 수녀님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 적어도 성당을 조금 관리하시는 높은 수녀님이라고만 생각했다.
우리 보육원 원장님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었다.
“세상에. 은호야, 은지야, 왜 이렇게 멀리까지 갔었어…….”
수녀님은 우리를 반겨 주셨다.
적어도 혼내기라도 하실 줄 알았는데 혼나기는커녕…….
수녀님은 한참 동안 우리를 끌어안고 눈물만 뚝뚝 흘리셨다.
이은지도 수녀님을 따라 펑펑 울었다.
그리고 그때 들었다.
빵집 아저씨가 이 보육원 출신이었다는 걸.
“아저씨는, 지금 잘 지내고 있어. 아저씨도 너희가 자기를 잊고 잘 지내기를 원한다고 했어.”
말씀하시는 수녀님의 눈가가 촉촉이 젖은 게 왠지 불안했다.
하지만 애써 위화감을 무시하며 이은지와 나는 ‘그렇구나’라고 받아들이려고 했다.
때로는 모르는 게 더 나을 때가 있으니까.
우리는 오랜만에 돌아온 방에서 급하게 떠나느라 챙기지 못했던 것들을 챙겼다.
그래 봐야 속옷과 양말 정도가 고작이었지만, 밖에서 떠돌던 때에는 그 어떤 것보다 필요했던 물건들이었다.
그동안 수녀님과 대표님은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잘 지내렴.”
“네.”
“수녀님도요!”
다시 성당을 나온 이후엔, 우린 대표님이 처음 재워 주셨던 2층 옥탑방에서 지내게 됐다.
처음으로 평범하게 먹고 자고를 해 보며 지내는 동안, 대표님은 우리의 후견인이 되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했다고 했었다.
많은 준비를 거친 덕분일까.
그 결과는 우리의 예상보다도 일찍 나왔다.
결격사유가 없던 대표님은 법적으로 우리의 후견인이 됐다.
피가 섞이진 않았지만 처음으로 은지 다음으로 가족다운 가족을, 빵집 아저씨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린 모든 일이 잘 풀린 기념으로 우린 성당에 수녀님을 뵈러 가기 위해 차를 탔다.
그리고 그때.
성당에 웃으며 전화를 건 대표님의 표정이 무너졌다.
* * *
“다 왔다. 내리자.”
밖을 돌아보니, 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진 평온한 땅이었다.
간격을 두고 세워진 비석들 사이를 지나치며 우리는 한 분을 찾았다.
“저희 왔어요.”
미리 준비했던 건지, 대표님은 은지가 인사하는 동안 예쁘게 핀 백합을 자리에 놓았다.
석판 위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다녀갔는지 싱싱한 백합과 다른 꽃들이 많았다.
대표님이 백합을 놓는 것을 보고 은지와 나는 두 걸음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숙였다.
묵념을 하는 동안, 아마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나는 수녀님께 묻고 싶었다.
얼마 전에 생방송을 하다 아저씨가 떠올랐기에 혹시 아저씨는 어디 계시느냐고 묻고 싶었다.
‘나중에라도 찾아뵐 수 있게.’
하지만 이젠 아는 사람이 없다.
“저희 잘 지내요.”
대표님이 저희와 가족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녀님.
대표님이 옆에 있을 때 하기엔 민망한 인사라서 간단히 속으로 이야기를 삼켰다.
“우리 이제 정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고 있어요.”
은지가 말했다.
노래도 하고, 은지도 하고 싶은 작곡 하면서.
은지는 이젠 노래하는 것도 좋아한다.
정말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참, 우리 좋아해 주시는 팬분들도 많아졌어요.”
“…….”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둘러싸인 숲에서 풀 내음 섞인 바람이 불었다.
“자주 오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근처로 내려올 땐 종종 들르겠습니다, 원장님.”
대표님이 말했다.
확실하게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는 주의라서 그렇게 이야기를 전한 것 같았다.
승연 선배한테 말했듯, 오래 있지는 않았다.
간단한 그 인사는 끝으로 다 같이 꾸벅 고개만 숙인 후 우린 묘지를 떠났다.
왠지 뭉클하면서도 속은 가볍다.
꼭 잘 살라는 응원 같은 인사라도 받은 듯이.
* * *
펜션
“저희 이제 어디 가요?”
“펜션.”
“펜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막, 그것도 대표님 거고 이런 건 아니죠? 하하.”
그때, 백미러로 비친 대표님 표정은 ‘왜?’라는 표정이었다.
설마.
“원래 너희랑 종종 내려오면 묵는 별장으로 쓰려고 사 뒀었어.”
“저희랑요?”
“어. 그런데 생각보다 너희가 고향을 딱히 안 그리워하더라고.”
그리워할 리가.
수녀님과 빵집 아저씨를 제외하면 좋았던 기억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곳인걸.
“그래서 별장이 수리할 때마다 쥐 떼 테러 받는 것도 피곤해서 관리인을 써서 펜션으로 돌렸지.”
“와.”
이젠 그냥 감탄밖에 안 나온다.
“혹시 대표님, 돈은 어떻게 그렇게 많이 벌었어요?”
은지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뭘 그런 걸 물어보냐며 말하려고 했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궁금했던 부분이라 조용히 듣기만 했다.
“우리 집 투자법이라고, 시작은 TaKa 주식이었지. 아마.”
비밀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대표님은 편하게 이야기를 해 주셨다.
어떻게든 ‘톡신과 이 회사를 성공시키겠다’라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대표님은 당시 하향세를 타 바닥을 찍기 직전 TaKa의 주식을 샀다.
그리고 TaKa에서 퇴사할 때 가진 주식을 다 팔았다고 했다.
대기업이 된 TaKa의 주식은 생각보다 굉장히 효자였고, 그걸 시작으로 괜찮은 땅을 사고, 건물을 세우고 팔고…….
건축 회사도 생각했지만, ‘돈도 있겠다. 앞으로는 쉬자!’ 하고 지방으로 내려갔다가…….
“허……?”
“…….”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 사람 뭐지?’라는 생각만 떠올랐다.
심지어 지금까지 몰랐는데.
“하늘 쌤이랑 구름 쌤 아카데미가 대표님 거라고요?”
“아니, 인마. 지분이 절반 정도 있다는 거지.”
“그거나 그거나요!”
“그래, 그래. 그냥 어디 가서 떠들고 다니지만 마.”
대표님은 마치 ‘니들 마음대로 생각해라’라는 듯 이야기를 넘겼다.
회귀 전에는 이은지가 세상을 떠난 뒤, 내가 벽을 세우면서 대표님과 사이가 가깝지 않았던 탓에 전혀 몰랐던 이야기였다.
대표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다 보니 어느새 차량은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여러 채의 집들이 모여 있는 곳에 들어섰다.
“얘들아, 눈 빠지겠다.”
펜션이 이런 곳이었나?
애초에 이은지와 난 펜션을 잘 모른다.
회귀 전에도 대표님이 조심히 같이 여행 가자고 제안했을 때, 여행은 무슨 여행이냐며 거절했었으니까.
게다가 당시 난 ‘이때를 빌미로 이은지를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라며 거기에만 눈이 멀어 있었다.
이은지는 아마 곡 만든다고 안 갔던 거 같은데…….
자갈 깔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장미 넝쿨이 감겨 있는 흰 나무 아치를 지나 펜션 안으로 들어섰다.
흰 나무가 메인 테마인 걸까.
이제 막 잔디가 다시 자라기 시작한 푸른 잔디밭 위로 하얀 그네 의자와 포토존이 있었다.
입구 쪽 잔디밭을 지나자 바닥은 흙길이었다.
마당에는 바비큐를 해 먹을 야외용 벤치가 여러 개 깔려 있고, 정면에는 가장 큰 집과 좌우에는 정면의 집보다는 조금 작은 집이 있었다.
이은지는 이미 포토존에서부터 눈이 돌아간 것 같았다.
“대박, 대박! 짱 예뻐!”
빈말은 아닌 듯, 다른 사람들을 찾는 것도 잊은 채 곳곳을 쏘다니며 사진을 찍기 바빠 보였다.
신난 은지를 뒤로하고 난 대표님을 따라 가장 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 오셨어요?”
“대표님! 여기 완전 쩔어요!”
“우리 내일 여기서 촬영도 하는 거예요?”
오현, 서승연, 주송민 선배가 대표님을 먼저 발견하며 물었다.
대표님은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부는 바깥만큼이나 깔끔한 분위기였다.
마치 영상으로만 보던 북유럽을 연상시키는 큰 창과 깔끔한 인테리어까지.
은지만큼 난리를 부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도 이곳이 꽤 마음에 들긴 했다.
“형님?”
시간이 늦은 탓도 있었지만, 오늘 긴 운전을 한 현우와 지예찬은 당장 기절이라도 할 것처럼 정신이 혼미해 보였다.
‘대표님은…….’
은호는 힐끔 박 대표를 돌아봤다.
똑같이 운전했음에도, 이게 헬스광의 운동 효과인 걸까.
대표님은 지치기는커녕 여전히 기운이 넘쳐 보인다.
“건물을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 여기 세 건물 다 한동안 빌린 거예요?”
“음, 뭐, 그렇다고 하자.”
서승연이 묻자, 박 대표는 잠시 고민하다 미적지근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호한 대답에 서승연의 표정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박 대표는 잠시 고민했다.
스태프 중 셋은 남자였고, 나머지 둘은 여자였다.
거기에 김철수 PD와 슬기, 마지막으로 은지까지.
톡신만 해도 다섯 명.
거기에 각자 매니저들, 현우와 영희.
이들의 방을 어떻게 나눠야 할까.
혼자 고민하기는 지쳤는지, 박 대표는 고민을 하다 말고 말했다.
“우측에 있는 집과 좌측에 있는 집은 1층 내부는 여기랑 똑같은데, 2층이 여기는 방이 두 개고, 거기는 방이 하나뿐인 정도만 차이가 있습니다.”
잘 알고 있는 박 대표가 신기했는지, 톡신의 막내들이 눈을 빛냈다.
“와, 여기 내부까지 완전 예쁘네.”
사진 촬영이 이제야 끝났는지 은지가 뒤늦게 안으로 들어왔다.
박 대표는 은지가 들어온 것까지 확인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남자 스태프들과 현우와 영희는 우측 건물.
여자 스태프와 철수, 은지, 슬기는 좌측 건물.
가장 많은 인원인 톡신과 은호와 박 대표는 큰 건물.
처음에는 그렇게 나누려고 했지만.
「“아, X발.”」
박 대표의 머릿속에 순간 은지가 잠에서 깨어났던 그때 영상이 떠올랐다.
그래서 급하게 생각을 바꿨다.
“스태프분들은 여기 근처에 펜션이 많아서, 최대한 괜찮은 곳으로 방 두 개를 따로 잡아 드리겠습니다.”
그 제안이 괜찮았는지 스태프분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박 대표는 곧장 어딘가에 통화를 위해 나갔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박 대표는 스태프분들을 모두 이끌고 다시 떠났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크기는 이곳보다 조금 작지만, 괜찮은 곳으로 안내한 모양.
그리고 현우와 영희는 처음 박 대표가 정한 대로 우측 건물을.
철수와 은지, 슬기는 좌측 건물을 쓰는 걸로 이야기가 끝났다.
“야, 이은지.”
“엉?”
“너, 자고 일어나서 제발 욕하지 마. 제발.”
“…….”
은호는 은지를 보내기 전.
몇 번이나 은지의 머릿속에 ‘자고 일어나서 욕하지 마’를 때려 넣었다.
하지만 몇 번을 이야기해도 은지는 차마 자신이 없는지 은호의 말을 못 들은 척, 먼 곳만 바라봤다.
* * *
한바탕 집 나누기가 끝난 뒤, 다른 집들은 개인끼리 방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인원과 방의 수가 딱 맞아떨어졌다.
문제는 오히려 가장 큰 집인 이곳이었다.
1층에 방 2개 중 하나는 트윈룸이다.
다른 하나는 슈퍼 싱글 사이즈 침대가 놓인 1인실이었다.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1층의 1인실은 박 대표의 방으로 지정됐다.
그리고 남은 건 2층에 남은 1인실 하나.
혼자 방을 독차지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여기서부터 전쟁이 벌어졌다.
거실은 본래 식당으로 쓰였던 건지, 큰 테이블과 크게 트여있는 창 때문에라도 잠은 무리가 있었다.
“은호.”
“네?”
지예찬은 조용히 투덕거리는 동갑내기 셋을 구경하던 은호를 슬쩍 빼내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