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01)
지금
은호네와 박 대표네보다 목적지에 가장 먼저 도착한 건 지예찬의 차였다.
벤틀리가 평범한 상가 건물 주차장에 들어섰다.
건물의 주차 관리 직원인 듯, 책상에 발을 올리고 뻗어 있던 남자는 늘어져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놀란 눈을 하며 재빠르게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이고, 사장님.”
벤틀리 창문을 내리자 명품 선글라스를 낀 지예찬의 얼굴이 드러났다.
오늘은 지예찬이 운전을 맡은 듯, 영희는 조수석에서 부지런히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뒷자리에는 관리 직원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창밖을 보고 있는 철수 PD.
그 옆엔 동상처럼 팔짱은 낀 채 정자세로 눈을 감고 있는 최태현까지.
“차는 여기 두시고 그냥 들어가시면 됩니다!”
“아.”
관리 직원은 단순히 주차장 관리뿐만 아니라 발레파킹도 하는 모양이었다.
지예찬은 눈을 흘기며 직원의 이름을 확인했다.
[조광수]
지예찬은 눈웃음을 지으며 차에서 내렸다.
“잘 부탁드려요, 광수 씨.”
“네!”
조광수는 지예찬의 키를 받아 들며 설레는 기색이 얼굴에 드러났다.
‘미친, 내가 벤틀리를 몰아 볼 수 있다니…….’
이따 몰래 사진 한 장이나 찍을까 고민하던 그때였다.
“지예찬.”
“응?”
“은호랑 팀장님한테 연락 먼저 해.”
“아, 참. 그러네. 도착했다고 말하랬지.”
조광수는 놀란 눈으로 지예찬과 최태현을 돌아봤다.
광수의 턱이 빠지지 않을까 걱정될 수준으로 크게 벌어졌다.
‘지, 지예찬?’
톡신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2000년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절대 모를 수가 없었다.
조광수 역시 톡신 곡 중 하나가 노래방 18번일 정도로 굉장히 좋아했다.
“여보세요. 어, 은호야.”
건물 앞에서 통화하는 지예찬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조광수는 귀에 익은 이름에 멈칫했다.
‘하긴 세상에 은호라는 이름이 얼마나 흔한데.’
어린 시절 그 거지 남매한테 조금 짓궂게 굴었다는 건 인정한다.
다만 그때 은호와 은지가 가출을 결정한 이후 학교에선 난리가 났다.
뒤뜰에서 큰 소리가 났었다.
그날 이후로 두 사람이 안 보인다 등의 소문이 입으로 전해지며 ‘조광수가 두 사람을 살해했다’라는 괴상한 소문으로 와전됐다.
이후에 두 사람이 단순히 떠났다는 게 밝혀졌지만, 학교는 ‘사실’에 관심이 없었다.
단순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는 집단이었으니까.
소문의 무게는 생각보다 강했고, 하나둘씩 미안하다며 그날 같이 있었던 녀석들마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함께 다니던 친구들에게 버려졌다.
남은 것이라고는 녹슨 쇠막대에 상처 입은 뒤 손바닥에 남은 흉터 자국뿐.
조광수는 끝내 제 발로 학교를 옮겼다.
그렇게까지 도망쳤음에도 소문은 무섭게 뒤쫓아 왔다.
조광수는 고등학생이 되었을 땐 소문에 못 이겨 자퇴를 결정했다.
중졸.
운전면허를 따고 나니 나름 주차를 잘한다는 걸 알았다.
앞으로 뭘 할까 고민하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남들의 좋은 차를 안전하게 주차장에 모셔 두는 일뿐이었다.
불행 중 다행은 나쁜 직장은 아니었다.
나름 동네에서 가장 좋은 식당에 월급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역시 걔는 아니겠지.’
조광수는 ‘하긴’이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 거지들이라면 나보다 더 쓰레기 인생을 살 텐데, 그건 좀 불쌍하긴 하네. 길거리에서 굶어 뒤졌을 수도 있고.’
다시 일할 시간이었다.
오늘따라 가게에 벤틀리부터 이번엔 척 봐도 연예인이 타고 있을 것 같은 값비싼 밴까지.
‘촬영이라도 있나?’
잘난 사장님들이 줄줄이 놀러 오기라도 한 건지 시내에서조차 보기 힘든 차들이 줄지어 이어 들어왔다.
“사장님!”
조광수는 깍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지이잉.
밴의 창문이 내리고 보인 얼굴은 매니저인 듯, 듬직한 덩치와 평범한 외모였다.
“차는 제가 주차해 드리겠습니다. 여기 두시고 편하게 올라가시면 됩니다!”
옆에는 그러면…….
조광수는 슬기를 보며 ‘이쪽이 연예인인 듯한데 생각보다 평범하네’라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달칵.
밴 뒷문이 열렸다.
“선배님, 저희 근처였어요.”
지예찬과 통화 중이었는지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은호가 차에서 내렸다.
현우에게 차 키를 받는다는 것도 잊은 채 조광수는 놀라 빠질 것 같은 눈으로 은호를 돌아봤다.
은호는 조광수는 발견조차 못 한 듯 조광수를 스치며 곧장 지예찬이 서 있는 건물 입구로 향했다.
그때였다.
“미친 X아, 그냥 흔들어서 깨우면 되지 왜 사람 허벅지를 내려찍어!”
“안 일어나니까 그랬지.”
버럭 소리치는 은지에게 은호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조광수는 은지에게서 눈을 떼질 못했다.
검고 긴 머리칼이 흔들리며 좋은 샴푸 향기가 퍼졌다.
그때도 외모는 꽤 반반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예뻤다.
‘예쁘다’라는 세 글자로는 부족하리만큼 완벽한 외모에 접근하기 힘든 강한 분위기와 날카롭게 찢어진 눈매는 꼭 가시를 가진 장미 같은 느낌이었다.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먼저 올라가 계십시오.”
“네!”
현우는 은지와 함께 슬기를 보내며 말했다.
깍듯한 현우와 대비되는 은지의 밝은 대답.
이 모습에 되려 조광수의 자존심이 무참히 무너졌다.
자신보다 아래였다고 생각했다.
자신보다 못 살고 있을 거로 생각하며 오히려 불쌍하다 여겼다.
그랬던 두 사람이 유명 아이돌 그룹 리더를 알고, 밴에서 내리고, 매니저까지 달고 다닌다.
“하하.”
조광수가 웃자, 근처에 있던 현우와 슬기가 조광수를 돌아봤다.
“야. 오랜만이다, 은호야.”
조광수는 은호가 등 돌리고 있던 건물 입구 쪽을 보며 말했다.
“누구세요.”
은호는 고개를 돌려 조광수의 얼굴을 확인했지만, 어깨를 으쓱이며 갸웃거렸다.
사실 누군지 알고는 있었다.
애초에 사람 얼굴을 잘 안 잊기도 하지만, 이 녀석은 더더욱 잊을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굳이 여기서 반갑게 인사할 사이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모른 척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조광수의 자존심을 건든 걸까.
“이야, 이젠 그지 티가 많이 뱃겨졌네.”
조광수는 왠지 사이가 좋아 보이는 지예찬에게 들으란 듯 말했다.
분명 겉모습에 속아서 쟤가 거지인 줄은 전혀 예상도 못 했을 테니까.
쪽팔리라고 던진 말이었다.
“여긴 직원이 손님한테 거지니, 뭐니, 말이 험하네.”
입을 연 건 지예찬이었다.
“야, 너 나 알잖아, 이은호.”
조광수는 지예찬을 무시하며 말했다.
“나 알아요? 난 그쪽 모르는데.”
은호는 보기 좋게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삐딱하게 올라간 입꼬리는 확실한 비웃음이었다.
“뭐야, 모르는 사람인데 저러는 거야?”
“아, 아아. 기억났다.”
지예찬이 물었을 때, 은호는 그제야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아, 너 걔구나.”
“…….”
“야, 미안하다. 내가 못 알아봤네.”
은호는 천천히 조광수에게 다가갔다.
그땐 큰 차이가 없었지만 180이 넘은 지금, 조광수와의 키 차이는 척 봐도 은호가 월등했다.
“중학교 때, 일진 놀이에 취해 있던 걔구나. 그, 그, 이름이 조광어였나?”
떡 하니 이름표를 달고 있음에도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은호는 조광수 명찰에 손을 뻗었다.
“아, 광수였구나. 반갑다, 광수야.”
명찰을 확인한 뒤, 은호는 천천히 조광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어린 시절, 조광수가 자주 했던 짓 중 하나였다.
“좋아 보이네.”
은호는 조용히 말을 읊으며 조광수 어깨에 툭 손을 올렸다.
은호가 몸을 돌려, 다시 가게로 향하려던 그때였다.
현우가 재빠르게 달려와 조광수와 은호 사이를 막아섰다.
“멈추세요.”
등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현우는 조광수의 주먹을 비틀어 제압하고 있었다.
은호가 아니라 현우가 막았다는 점에서 조광수는 더욱더 열불이 터졌다.
심지어 매니저는 힘이 얼마나 센 건지 팔을 빼낼 수도 없고 밀리지도 않을 만큼 강했다.
뒤늦게 그 자세를 다시 본 은호는 슬쩍 고개를 내려 조광수 귀에 속삭였다.
‘야, 주제를 알아야지.’
조광수가 그때 자신에게 아주 흔하게 했던 한마디였다.
하지만 제일 좋은 건 거울 같은 공격이라고 하던가.
그때, 최태현은 ‘아’라며 짧은 신음을 뱉더니 휴대폰을 들었다.
타이밍이 좋았다.
동영상 버튼을 누른 순간, 조광수가 이성을 잃은 듯 눈에 핏줄이 서선 소리쳤다.
“이, X발 새끼가!!!”
조광수가 큰 소리로 욕을 뱉은 그 순간.
가게의 매니저인지, 잘 차려입은 깔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이게 다 무슨 짓거리고!”
매니저의 시선은 이어서 주차를 기다리고 있는 벤X리와 밴X을 눈에 담았고, 입구 앞에 선 익숙한 얼굴에 숨이 턱 틀어막혔다.
“아이고, 아이고. 죄송합니다!”
매니저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빠르게 조광수에게 달려갔다.
“죄송합니다!”
“…….”
현우는 매니저가 달려오고 나서야 제압 중이던 조광수 손을 놓았다.
조광수는 매니저가 힘으로 목덜미를 눌렀음에도 뻣뻣하게 고개를 든 채 은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광수야, 고개 숙여라.”
매니저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광수는 이가 까득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몸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동시에 주먹도 덜덜 떨렸다.
그런 와중에도 조광수는 천천히 은호에게 고개를 숙였다.
“얼른 죄송하다고 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매니저도 조광수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은호는 그 모습을 눈에 담으며 예전 일이 떠올랐다.
그땐 그렇게 생각했었다.
‘저 X신을 잊고 우리만 생각하고, 우리가 잘되면 가장 최고의 복수는 그게 아닐까’라고.
여전히 그 생각은 유효했다.
다만 오늘 이후로는 ‘이런 것도 괜찮네’ 정도로 선택지가 하나 늘어난 것 같다.
“후, 너 일단 오늘은 돌아가라.”
“네? 하, 하지만…….”
“이만치 대형 사고를 쳐 놓고 뭔 짓거리를 또 할지 어떻게 알아. 가. 빨리.”
“형!”
“가라고.”
가게를 들어가면서, 조광수는 매니저에게 매달리듯 무릎을 꿇고 있었다.
적어도 여기서 더 눈에 띄진 않을 것 같았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매니저는 조광수에게 돌아가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이쪽으로 달려오며 허리를 숙였다.
“직원은 자르거나 저희 쪽에서 확실하게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아이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니저는 죄가 없다는 걸 알기에 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매니저는 이후로도 내내 엘리베이터 앞까지 허리를 굽신거리기 바빴다.
“저, 실례지만 예약하신 분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NRY로 예약돼 있을 거예요.”
함께 가게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랐을 때, 매니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이고! 우짜노. 죄송합니다! 세상에.”
도대체 뭘 했길래 이렇게 경악까지 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매니저의 안내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을 때, 이유를 알았다.
가게의 1층은 고급스러운 검은 벽과 곳곳에 명화들이 걸려 있었다.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에는 여러 원형 테이블이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손님들 또한 적잖게 많았다.
앉을 자리나 있을까 걱정하던 그때였다.
“이쪽으로 오시죠!”
매니저가 안내하고 있는 곳은 2층이었다.
2층은 사람이라고는 유일하게 먼저 올라온 영희와 철수 PD뿐으로, 세팅을 마쳐 둔 테이블들만 즐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