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00)
“은호랑 은지요?”
박창석은 놀란 선생님에게 ‘은호와 은지가 이곳에서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며 은근히 떠보는 듯한 질문을 받았다.
“네. 이곳에서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 네. 지내기는 했는데……. 그나저나 아이들은 무슨 일로 찾으시나요?”
“아, 저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이들과 우연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요?”
은호와 은지를 담당하던 선생님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대화를 나눌 땐 왜 이런 반응인지 의문만 들었다.
이어서 담당 선생님이 전한 이야기는 조금 충격이었다.
“그 애들은 낯을 워낙 심하게 가리던 애들이라, 그게…….”
이곳의 담당 선생님은 은호와 은지의 이름과 나이 외에는 무엇 하나 아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박창석 본인보다도 모를 정도였다.
‘적어도 몇 년은 지냈다고 들었는데…….’
겨우 은호와 은지가 지냈던 곳을 찾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소득 하나 없이 떠나려던 그때였다.
“누구신가요?”
성당 입구 앞.
낯선 한 수녀님이 경계하며 박창석을 불러 세웠다.
박창석은 황급히 명함을 꺼내 내밀며 담당 선생님께 설명했던 그대로 상황을 전달했다.
“그래서 은호와 은지를 찾고 있습니다.”
“……잠깐 들어오시겠어요?”
“아, 네.”
창석은 수녀님을 뒤따라 보육원 구석의 응접실로 향했다.
가까이에 숲이 있어서 그런가.
풀벌레 소리와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듣기 좋은 소리가 잦았다.
“원장님!”
아이들이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자한 분위기의 선생님께 달려가 안겼다.
분위기 자체는 지금껏 다닌 곳들 중 가장 좋아 보이는 것 같은데, 그 아이들은 왜 여기를 떠난 걸까.
주변을 둘러볼수록 창석의 머릿속엔 의문만 늘어났다.
응접실 안으로 들어오자, 따스한 시선의 성모 마리아상과 십자가가 있었다.
왠지 정갈해야 할 것 같은 신성한 분위기에 박창석은 괜히 구김진 비뚤어진 넥타이를 다시 한 번 깔끔하게 정돈했다.
“녹차로도 괜찮으실까요.”
“예. 좋아합니다.”
“앉아 계셔요.”
한 응접실에 도착하고 원형의 테이블에 앉자, 박창석 앞에 흰 머그잔이 놓였다.
머그잔 안에는 푸른빛이 맴도는 녹차가 반 조금 넘는 양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혹시 어디서 만나셨나요?”
박창석이 사투리를 못 알아들을까 봐 배려한 건지, 수녀님은 일부러 나름 표준어를 쓰며 물었다.
낯선 어투에 당황도 잠시.
박창석은 이내 간략하게 은호와 은지를 어떻게 만났는지를 설명했다.
“캐묻듯이 물어서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이렇게 찾아온 것 자체가 수상한 사람 같긴 하지요.”
“후후.”
수녀님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상하게 웃으셨다.
나이가 지긋하게 드셨기 때문일까.
행동 하나하나가 이 공간과 비슷하리만큼 신비로운 분이었다.
“저는 여기 원장이에요.”
“아…….”
수녀님의 이야기에 끄덕이던 박창석은 고개가 우뚝 멈췄다.
“어, 하지만 조금 전 밖에서…….”
응접실로 오면서 아이들이 원장님이라고 부르던 분이 계신 탓이었다.
“아이들 시선에 수녀님은 수녀님이죠. 후후.”
창석의 얼굴에 더 큰 의문이 떠오르자, 수녀님은 간단히 설명을 덧붙였다.
이곳 보육원의 원장은 수녀님이며, 현재 보육원 아이들이 ‘원장님’이라고 부르는 분은 부원장으로 계신 분이셨다.
“궁금하신 점에 대해 답을 드렸으니, 이제 제가 여쭤봐도 될까요?”
“아, 네. 말씀하시죠.”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던가요?”
“아…….”
수녀는 진심으로 은호와 은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창석은 잠시 고민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사실을 그대로 전했다.
어떻게 돈을 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많은 양이 아닌 듯 아이들은 굉장히 말라 있었다.
“세상에, 잠은 어떻게 잤다던가요…….”
“시간이 늦어도 키 때문에 성인처럼 보여서인지 쫓아 내지 않는 곳이 있다면서, 거기서 지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머…….”
수녀님의 주름 가득한 눈가에 눈물이 맺혀 갔다.
“어떡하니, 정말…….”
잠시 눈가를 정돈하기 위해서인지, 수녀님은 꽃 자수가 새겨진 손수건을 꺼내며 눈가를 찍어 냈다.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고 숨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경계심이 많은 아이들일 텐데. 혹시 어떻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으셨나요…….”
수녀님은 은호와 은지에게 진심 어린 애정을 표현했지만, 애정을 받아 본 적 없는 아이들은 경계심을 쉽게 풀지 않았다.
조금만 더 이야기를 나눠 보려 노력했다면 이곳을 떠나 그런 고생을 안 하지 않았을까.
수녀님은 남몰래 매일 밤 이곳을 떠난 은호와 은지를 걱정했었다.
그래서였을까, 수녀님은 첫 만남에 박창석이 어떻게 두 아이의 벽을 허물었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박창석은 어떻게 두 사람이 거기까지 찾아왔는지를 고민하던 그때, 떠오른 건 단 하나였다.
“고기를…… 사 주겠다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고, 고기요?”
눈물을 닦던 수녀님의 손길이 멈췄다.
고개를 들었을 땐, ‘아니, 그런 방법이……?’라는 표정이 눈에 띄게 드러나 보였다.
“네. 제 사옥에 온 날, 삼겹살이랑 양념 갈비랑 비빔냉면까지 해서 한 5인분은 먹인 것 같습니다.”
“그, 그리고요?”
“아이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간이 늦어서 찜질방으로 돌아간다는 걸 말렸고, 예전에 데리고 있던 녀석들이 기숙사로 사용하던 2층에서 하루 묵게 했지요.”
“잠을 자고 갔다고요?”
“예. 아, 저는 없었습니다.”
“아…….”
얼마나 철벽을 쳤던 건지, 수녀님은 박창석의 한마디 한마디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싶으셨나 봅니다.”
“그럼요……. 만나 보셔서 알겠지만 그 아이들은 꼭 들고양이 같죠.”
“하하, 예…….”
박창석은 따뜻한 머그잔을 손에 쥐었다.
“아마 은호랑 은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래서, 그래서 더 신경이 쓰이나 봅니다…….”
이제야 무언가가 이해가 된 듯, 박창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머그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고양이라…….’
딱 집에 있는 세 마리의 고양이들이 지금 그 아이들처럼 고생했었다.
그렇게 말라 죽어 가기 전 제 손에 왔고, 박창석은 그 아이들을 길러 냈다.
지금은 흔히 ‘돼냥이’라고 불릴 정도로 굉장히 몸집이 커졌다.
같은 때에 데려왔음에도 적당하게 살집이 붙은 철수 PD네 고양이와 비교하면 월등히 큰 몸.
하지만 여전히 잘 먹는 게 항상 예뻐 보인다.
딱 집에 있는 세 안방 주인님 같은 고양이들처럼, 박창석은 은호와 은지도 더는 밖에서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재능에 대한 욕심도 있기야 하지만 그마저도 그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바람과 같은 방향을 띠고 있었다.
“집에 길고양이 출신인 고양이를 세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귀엽겠네요.”
“예. 귀엽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그래서 더 소중한 아이들이죠.”
“…….”
창석의 이야기에 공감한 듯 수녀님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는 참 조심스럽지만…….”
“말씀해 주세요.”
수녀님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사장님께선 후견인에 관해서 알고 계시는지요.”
“후견인이요?”
그때, 박창석은 은호와 은지가 입에 올리지 않았던 ‘빵집 아저씨’의 존재에 대해 듣게 됐다.
“티는 안 냈지만 아이들을 정말 사랑했었고,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싶어 했던 아이였어요.”
“아이…….”
아이라는 표현에 박창석이 갸웃대자, 수녀님은 희미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설명을 덧붙였다.
“은호와 은지가 그랬듯이 그 아이가 국민학교 시절 때, 저를 만나 이곳에서 자랐었어요.”
“아…….”
다만 ‘빵집 아저씨’는 가진 빚이 많아서 아이들을 책임질 수 없었다.
그래서 본인이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해 줬다.
찾아온 경찰들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일러 줬으며, 세상에는 ‘출생신고’라는 것이 있다는 정도.
경계심이 풀린 이후에는 은호와 은지를 안전한 곳에 인도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워낙 날이 선 탓에 곳곳에서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왔었고, 소식을 우연히 전해들은 수녀님이 거둬들였다던 이야기였다.
“저, 혹시 그분을 만나 뵐 수는 없을까요?”
박창석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은호와 은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걸 알아 두고 싶은 마음에 물었지만, 안타깝게도 수녀님은 고개를 저었다.
“주님의 품으로 멀리 가셨습니다.”
자기가 갈 때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며 수녀님은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울먹이는 목소리에 뒷말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기만 했다.
그래도 창석에게는 닿은 듯, 창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제가 후견인에 대해 여쭸지요.”
수녀님은 촉촉하게 젖은 손수건으로 마저 눈가를 찍어 내며 말을 이었다.
“저는 나이가 많이 들어 버렸어요. 아이들에게는 더 넓은 곳을 보여 주실 수 있는 후견인이 필요합니다.”
수녀님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차분히 말을 계속 이어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때, 박창석이 먼저 선수를 친 탓에 그러지 못했다.
“혹시, 제가 될 수도 있을까요?”
“후견인, 말씀이신가요?”
“네.”
창석의 굉장한 확신에 찬 대답에 수녀님은 도리어 당황했다.
창석이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땐 고민이 많았었다.
그 아이들을 책임지기엔 자신은 너무 냉정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능력이 있는데 못 할 건 뭘까.
‘은호…….’
은호는 가수를 꿈꾸고 있다고 했었다.
그렇게 경계심이 큰 녀석이 TaKa부터 시작해서 많은 오디션에 용기를 내 나가 볼 만큼…….
냉정히 말하자면 본인이 좋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이들의 재능을 마주하기 전에는 분명 부담으로 느꼈으니까.
하지만 아이들과 만나지 못하는 동안 확실하게 깨달았다.
‘나는 그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
그 아이들의 ‘귀인’이 자신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해 주고 싶었다.
돈이야 이미 충분하고 능력 또한 있으니까.
‘적어도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결혼을 염두에 두고 만나는 이성이 갑자기 생길 리도 없으니까…….’
조금 씁쓸한 부분까지 박창석은 온 힘을 다해 수녀님께 자신을 피력했다.
수녀님은 그런 창석을 감격에 겨운 눈길로 바라보며 창석이 하는 한마디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수녀님은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아이들이 다시 사장님께 찾아온다면 오늘 나눴던 이야기를 전해 주세요.”
“아, 그러고 보니 정작 본인들이 없네요…….”
“그렇죠. 아마 아이들도 사장님과의 시간이 소중했다면 한 번쯤은 마주칠 거예요.”
“그러려나요…….”
“그리고 그때가 온다면, 사장님께서 원하듯 아이들도 원한다면, 여기에 같이 방문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꼭 그러겠습니다.”
박창석은 사옥으로 돌아간 날.
대문 기둥에 큰 포스터를 하나 붙여 두었다.
새를 유혹하는 과일나무 그림처럼, 고기를 프린팅해 놓고 아래에는 짧은 글귀를 써 두었다.
[고기 사 줄게, 얘들아.
이 아저씨한테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다오.]
조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로 방문한 고깃집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레스토랑이었다.
진지한 자리에서 창석이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은호는 더욱 의심했고 은지는 울었다.
하지만 은호의 경계심도 눈앞에서 선보이는 불 쇼를 따라 고기가 익듯 의심도 따라 불타 버렸다.
창석은 약속했다.
“계약은 이제 상관없으니 내가 너희에게 더 넓은 곳을 보여 줄 기회를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