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99)
「“톡신 선배님들이 좋아요, 저희가 좋아요?”」
예전에 잡지 인터뷰를 보던 은지가 그런 질문을 한 적 있었다.
당시 박 대표는 추억은 아직 톡신이랑 더 많지만 대신 은호와 은지는 딸, 아들처럼 소중하다며 대답했었다.
하지만 사실 그건 거짓말이었다.
박창석에게 은호와 은지는 진심으로 자식 같은 존재였다.
추억만 놓고 보자면, 오랜 기간 함께한 톡신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걸 추억이라 이야기해야 하나.’
* * *
박 대표는 두 사람의 후견인이 되었다는 법원의 승인이 떨어진 날.
그날 차에 오른 순간 그동안 참던 감정을 터뜨리며 오열했었다.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까지 울어 본 건 처음이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얘들아…….”
화려한 외모와 왠지 모를 남들과 다른 분위기에 다가갔던 첫 만남.
밥을 먹으러 오라던 제안을 한 것은 계약에 대한 욕심도 있긴 했지만, 조금만 다듬으면 보석이 될 녀석들이 이렇게까지 방치된 이유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은호와 은지를 만난 이후 지난 몇 년간은 박창석에게 삶의 깊이가 달라지는 시간이었다.
첫 만남 당시 고깃집에 데려간 후.
박 대표는 둘의 이야기를 들었다.
‘쌍팔년도도 아닌 지금 시대에 그렇게까지…….’
모든 걸 이야기한 게 아니었음에도 ‘말도 안 돼’라는 반응이 먼저 나올 정도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심지어 그 힘든 시기를 두 사람은 별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를 늘어 두는데, 박 대표는 여러모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지금은 나름 나쁘지 않게 지내고 있어요. 키가 크고 나서는 성인으로 보는 사람도 많아서 찜질방에서도 안 쫓겨나고, 그렇지?”
“맞아. 씻을 수 있는 게 제일 좋아. 옷도 덜 더러워지고.”
그건 ‘나쁘지 않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고기 한 점 한 점에 행복해하는 둘에게 굳이 암울한 현실을 인식시켜 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던 터라, 박창석은 조금 혼란스러운 마음도 적지 않았다.
‘돈…….’
TaKa 엔터테인먼트를 나온 뒤, 박 대표는 큰돈을 손에 쥐었다.
지금껏 일했던 대가뿐만 아니라 주식과 부동산 등 말도 안 되는 행운이 붙고 또 붙으며 부는 상상 이상으로 불어났다.
솔직히 기부라든가.
그런 쪽은 생각도 없었다.
내가 고생해서 번 돈이었고, 그걸 잘 굴려서 얻은 귀한 재산이었으니까.
처음 부가 늘어났을 땐 박창석은 여유도 있겠다 시골에 내려가서 텃밭이나 관리하면서 평온한 일상을 보내자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알고 있는 ‘맛’을 잊기는 힘들었다.
앳된 녀석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성장하고 결국 가요계 탑으로 서는 그 순간들.
큰 성공을 이룬 후에도, 그들은 이미 누구보다 높은 곳에 있음에도 자신을 잊지 않는 모습들까지.
그때의 영광이 휴식을 취해 보려는 박창석을 자꾸만 유혹했다.
거기다 특별한 날만 되면 많은 선물과 함께 날아오는 TaKa 대표의 ‘복귀해 주면 안 되냐’라는 부탁.
1년이 흐르고, 박 대표는 이젠 대기업이라 불리는 TaKa 대표의 간절한 부탁과 함께 도착한 선물들을 보며 생각했다.
‘굳이 TaKa에 돌아갈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돈도 있겠다.’
내가 내 회사에서 톡신 애들을 데리고 있는 건 어떨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왠지 해 볼 만할 것 같다는 또렷한 길도 보였다.
‘솔직히 TaKa 대표보다 내가 더 일도 잘했는데, 못 할 건 뭐야.’
자의식 과잉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이었다.
TaKa를 지금 자리까지 끌어올린 데에는 박 대표의 힘이 절대 적지 않았으니까.
업계에서도 TaKa 대표보다 ‘박창석 팀장’, ‘박창석 A&R’이라는 이름이 더 유명할 정도였다.
눈치 빠른 지예찬은 박 대표가 나간다는 소식을 일찍 접하고 재계약을 엎었다.
다만 ‘톡신’ 그룹은 유지하겠다는 조건으로 본인의 소속사를 세웠다.
사정을 모르고 계약했던 다른 멤버들 역시 몇 년 뒤면 계약이 마무리된다.
재계약 시즌이 결국엔 올 거라는 말이었다.
이번에 TaKa 대표가 콜라보를 방해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 심술도 직접 집을 찾아가면서 엎어졌지만…….
톡신의 전 멤버가 2016년이면 TaKa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종료되니까.
‘결국엔 예찬이가 정말 옳았어.’
지예찬은 똑똑했다.
TaKa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던 당시 이런 때를 예상이라도 한 듯,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냐’라던 박창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톡신’의 많은 권한을 모두 ‘톡신’에 챙겨 뒀다.
톡신에게 TaKa는 발판에 불과했을 뿐, 그 주체는 박창석에게 있었으니까.
그래서 TaKa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는 어떻게든 박창석을 TaKa로 돌아오도록 만들려고 했으나, 박창석의 결정은 ‘Necessary’ 엔터테인먼트였다.
‘필연적인.’
모두 제 손아귀로 챙겨 가겠다는 박창석의 욕심이 드러난 사명이었다.
다만 현재 NRY가 된 데에는 박 대표는 영어 발음 문제 탓이었다.
“네써써리. 넷써써리. 넷써쏘리, 젠장!”
적어도 대표가 회사 이름은 똑바로 말해야 하니까.
그냥 줄이자.
NY…….
두 글자는 별로네.
그럼 세 글자로다가…….
그리하여, 짜잔.
NRY 엔터테인먼트가 탄생했다.
원래는 톡신이 오기 전에 몸집을 조금만 키워 둘 생각으로 그럴싸한 신인을 물색하던 중이었다.
TaKa 대표는 그런 박창석에게 조언이랍시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강한 인상의 신인을 찾아라’라고 말했다.
TaKa 대표로서는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박창석은 그의 제안을 꽤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에 회사를 차렸다는 걸 TaKa에 알리고 나온 날.
인사를 마치고 건물을 나섰을 때 운명처럼 은지를 만났다.
강한 인상과 한눈에 봐도 눈에 띄는 강렬한 분위기.
‘이 아이다.’
톡신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강렬하게 느낌이 왔다.
박 대표는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은지의 거절과 함께 뒤늦게 자신이 보지 못했던 거울처럼 닮은 꼴인 은호를 봤다.
은지보다는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이쪽 역시 남다른 분위기인 건 마찬가지였다.
다만 상대적으로 은지의 분위기가 너무 강해서 은호는 그렇게 박창석의 마음에 깊이 들진 못했었다.
그래도 일단 이야기라도 해 볼까 싶어서 둘을 모두 회사로 불렀다.
고깃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이야기가 길어진 탓에 늦은 저녁이 다 됐다.
“갈 곳은 있니?”
“네! 찜질방 가서 자면 돼요.”
“오늘 밥 사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잘 먹었어요.”
은호가 잘 돌봤던 덕분일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은호는 철이 들어 있었지만, 은지는 상대적으로 밝은 성격이었다.
그런 힘든 시절을 겪은 아이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해맑았다.
박창석은 왜인지 그래서 오히려 더 한편으로는 가슴이 쓰렸다.
“시간도 늦었는데, 찜질방보다는 여기 회사 2층에 비어 있으니까 여기서 하루 묵고 가거라.”
차마 이렇게 보낼 수 없어서, 그날 밤.
박창석은 가 보겠다던 둘을 잡아 톡신이 지냈던 2층 옥탑방에 잠을 재웠다.
조금 낡긴 했지만 이불도 물건들도 다 그대로 있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박창석은 깊은 고민에 잠겼다.
두 사람을 애잔한 마음에 잠까지 재우긴 했지만, 데뷔까지는 확신이 없었다.
본인은 봉사자가 아니라 사업가였으니까.
‘동정심에 모든 걸 지원해 주기엔…….’
박창석은 둘에게 또 하나의 상처로 남고 싶진 않았다.
대가 없는 지원은 언젠간 후회와 함께 그만큼의 대가를 바라게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제발.’
다음 날.
날이 밝은 후 박창석은 두 사람이 쉬고 있는 2층으로 향했다.
“노래를, 한 번 해 줬으면 하는데…….”
“노래요?”
“네.”
은호는 곧장 ‘네’라며 답했고, 은지는 의문을 띠었다.
“바로 하면 되나요?”
“그래.”
은호는 기다렸다는 듯 노래를 시작했다.
자작곡인지 들어 본 적 없던 노래였다.
상업적 가치는 많이 부족한 자작곡이었지만 은호의 실력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그런 곡이었다.
그리고 박창석은 크게 놀람과 동시에 안도했다.
일반인과 가수를 나눌 경우, 은호의 실력은 상당히 가수 쪽에 치우쳐져 있었다.
“저는, 노래 잘 못하는데…….”
“괜찮으니까. 편하게 해 보렴.”
“네.”
은지는 조금 긴장하며 ‘후’ 숨을 뱉었다.
그리고 은지가 노래했을 때, 박 대표는 헛숨을 들이켰다.
은지의 깊은 울림이 살아 있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남성의 동굴 목소리와는 또 다른 낮지만 맑고 깊은 음색과 그 울림에 눈이 뜨였다.
“너희 잠깐 1층으로 내려와 줄 수 있을까?”
박창석은 이 두 보석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당장 미리 준비해 뒀던 계약서를 내밀었다.
하지만 박창석이 계약서를 내민 그 순간.
그동안 경계심이 허물어져 가던 은호와 은지에게 다시금 단단한 벽이 세워졌다.
눈에 띄게 짙은 경계심.
“저만은 안 되는 건가요.”
가수의 꿈을 바라던 은호에게는 좋은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을 느낀 데에는 은지 때문이었다.
은지는 자유로운 게 좋다며 얼굴이 알려지길 바라지 않았고, 가수가 될 생각은 더더욱 없었으니까.
하지만 은호가 물은 그 순간.
박 대표의 표정에 눈에 띄게 실망이 떠올랐다.
“그건 좀 그렇구나. 혹시 어떤 이유라도…….”
은호와 은지는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는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계약서는 죄송합니다. 음식값이나 재워 주신 값은 꼭 나중에 치르겠습니다.”
“얘, 얘들아!”
은호와 은지는 조금의 아쉬움도 없는지 곧바로 회사를 떠났다.
처음엔 아이들을 잊으려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사업을 아카데미로 확장시키면서 톡신의 선생이었던 ‘이하늘’, ‘이구름’ 자매 선생님들을 회사에 유입하고, 몇 명의 연습생들을 더 들여 봤다.
하지만 그때 은호와 은지가 눈에 밟히는 탓일까.
그때 그 아이들만큼이나 ‘키울 만큼’ 박창석 눈에 차는 아이들이 없었다.
계약은 했는데 정작 NRY 엔터테인먼트 쪽에선 학생이 안 들어오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던 이하늘은 답답한 심정에 대놓고 박창석에게 물었다.
“그렇게 기억에 남는 아이들이에요?”
“예……. 그때 어떻게든 붙잡아 볼 걸 그랬나 봐요.”
“뭐, 얼마나 특별한 아이들이길래…….”
“하하, 하늘 씨도 들어 보면 내 기분 100% 공감할 겁니다.”
“그러려나요. 근데 아이들이 어디서 지냈는지 들었다면서요?”
“그랬죠.”
“그러면 차라리 거기라도 찾아가 봐요.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박창석은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더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이하늘과 이야기를 나눈 후 며칠 뒤.
말이 며칠이지, 불도저 같은 성격의 박창석은 3일을 참지 못하고 차를 몰아 성당에 딸린 보육원을 몽땅 뒤졌다.
전화로 알아본 곳도 있었지만, 연락이 잘 안 되는 곳도 무수했다.
답답한 마음에 박창석은 연락이 안 되는 곳은 직접 찾았다.
그렇게 4시간가량을 달려 도착한 다섯 곳 중 마지막으로 들른 곳에서 박창석은 은호와 은지가 자라온 보육원을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