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97)
은지는 제압하던 조광수의 팔을 풀어 줬다.
조광수도 살았다고 생각한 듯 벌떡 일어나려던 그때.
콱!
뼈에 금이라도 가길 바라며 은지는 마지막까지 원망 어린 심정을 담아 조광수 등을 뒤꿈치로 강하게 내려찍었다.
“컬럭! 콜록!”
이런 걸로 부서질 만큼 약하지 않았지만, 꽤 큰 충격을 받은 듯 조광수는 기침을 터뜨렸다.
은지는 화가 실린 걸음으로 은호에게 다가갔다.
“광수야, 괜찮냐.”
조광수 무리는 그 틈에 우르르 조광수에게 달려가서 놈을 챙겼다.
은지는 은호 앞에 멈춰 서며 눈을 똑바로 마주친 채 물었다.
“오빠, X신이야?”
“……아니.”
“근데 왜 저런, X신도 못될 멸치 같은 새끼들한테 왜! 왜! 처맞고 다녀!”
은지는 화를 담아 은호의 복부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은호는 잠시 배를 움켜쥐었지만 그것뿐이었다.
본인 마음을 본인이 모를 노릇이다.
차라리 조금 전까지의 조광수처럼 아프다고 소리치길 바랐다.
동시에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이은지.”
“X발, 넌 계속 그렇게 X신같이 살아. 난 이렇게 패는 게 더 편하니까!”
평소에 은지가 힘으로 일을 해결하면 은호는 그런 은지를 탓하곤 했었다.
은지는 당연한 레퍼토리였는지 먼저 반박하며 소리쳤다.
“……오늘은 때린 걸로 뭐라 하려는 거 아니야.”
하지만 오늘만큼은 은호의 대답이 평소와 달랐다.
“그럼 뭔데…….”
은호는 잠시 고개를 돌려 은지 너머를 봤다.
뒤에 있는 녀석들은 분주하게 조광수를 챙기며 반대편 뒷길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끼리끼리 논다고 꼴에 친구긴 친구라는 걸까.
은호는 다시 은지에게 눈을 돌리며 답했다.
“……미안.”
“이 X신아.”
“나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었어. 미안.”
“넌 내가 그렇게 처맞고 다니면!”
“열 받지. 때려도 내가 패야지.”
“나도 X발 똑같아! 이, 이 X발! 처맞아도, 나한테만 처맞아야지! 아악! 이 거지 같은 눈물샘은 갑자기 왜 터지고 X랄이야!”
은지는 말을 하면서 감정이 격해지는지 꺽꺽거리면서도 욕은 멈추지 않았다.
은호는 눈가를 벅벅 닦으며 흐느끼는 은지를 가만히 바라봤다.
사나운 외모라든가.
성적이 나쁘다든가.
부모가 없다든가.
보육원에서 지낸다든가.
거지라든가.
진짜인지 거짓인지 구별도 하지 않은 채 재미있다면 일단 옮기고 보는 소문들.
그 소문이 한둘씩 모여서 실제의 우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우리에게 편견이 생겼다.
그런 형체 없는 소문들이 우리 존재 자체를 죄인으로 만들 수 있는 형체를 가졌다.
내 잘못이 아니고, 내 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상황은 굉장히 잦은 편이었다.
「“너희가 한 짓 아니야?”」
문제나 사고가 주변에서 일어나거나 증인이나 증거가 없을 때면 자주 들은 말이었다.
나나 이은지는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기에 가장 위험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그런 오해가 거듭되자 나는 최대한 몸을 사리는 방향으로 조심했다.
반대로 은지는 소문의 내용이 ‘오해가 아니게 해 주겠다’라면서 복수심에 불탔다.
그래 놓고 서는 정작 진심으로 누군가를 해친 적은 없으면서.
“그만 울고 집에나 가자.”
“……응.”
은지는 콧물을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를 안 하면 편하다.
쓸데없이 실망할 일도, 지칠 일도 없으니까.
그 X신들을 잊고 우리만 생각하자. 우리가 잘되면 가장 최고의 복수는 그게 아닐까.
난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 * *
시설로 돌아온 뒤.
내내 정신없던 하루에 지쳐 매트에 대(大)자로 뻗어 있을 때였다.
“오빠.”
“왜.”
“잠깐 들어가도 돼?”
“어.”
은지는 그사이 또 울기라도 했던 건가, 아니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 때문일까.
눈탱이가 아주 그냥 밤탱이가 되어 있다.
“와, 못생겼어.”
“닥쳐!”
소리칠 힘은 있는 걸 보니까 기분은 다 나아진 모양이다.
“근데, 그건 뭐야.”
“아, 이거.”
은지는 뜬금없이 가방을 하나 들고 있었다.
“나 떠나려고.”
“뭐?”
처음엔 내가 뭘 잘못 들었나 했다.
얘가 뭐라는 거야?
“누구 마음대로? 갑자기 뜬금없이?”
“내 마음이지. 원래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어.”
머릿속에선 이미 수십 번이고 ‘안 돼’를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은 이야기를 먼저 듣자.
이은지를 달래기 전에 일단 시끄러운 내 속을 먼저 달랬다.
“왜.”
“나 여기 동네 떠나고 싶어.”
황당함에 헛웃음이 다 터져 나왔다.
“갑자기?”
“응.”
미간에 힘을 주며 이은지를 보자, 무슨 결심이라도 하고 온 건지 이은지 눈빛엔 의미 모를 결의마저 차 있는 것 같았다.
“여기서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도대체가……. 무슨 생각을 해서 그런 결론이 난 건데?”
“오빠 그런 놈들한테 처맞고 다닌 거, 어떻게 보면 다 나 때문이잖아. 다 나 때문이었으니까 나만 없어지면―.”
“헛소리하고 있네.”
말을 자를 생각까진 없었는데 너무 헛소리라서 생각과 동시에 입 밖으로 내뱉어졌다.
“나만 없어지면 오빠도 앞으로 딱히 안 참고 살아도 되잖아.”
“뭔 생각을 하고 이런 얘기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야. 이은지, 너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게 있어.”
“뭐!”
“나는 네가 없었어도 그냥 난 이대로 지냈을 거고, 그게 아니라고 해도 어쨌거나 다 내가 선택한 거야. 너하고는 관계없어. 이상한 착각하지 마라.”
“그래도!”
“그래도는 뭔 그래도야!”
차분히 설명한 것 같은데 왜 말이 안 통할까…….
일단 쥐어박고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랬다간 저 바보가 더 바보가 될 것 같아서 참았다.
“끅, 오빠 나 때문에, 더. 끅, 이미지 관리하는 거니까―.”
“뭔…… 뭐?”
은지의 반질반질하게 부은 뺨에 갑자기 눈물이 주륵 흘렀다.
갑자기 울면서 말하니까 황당함을 넘어서 그냥 말문이 턱 막혔다.
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은지도 미친 개 같은데 나까지 그러면 너무 막장이잖아.
그래서 나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차분해지려고 노력한 거긴 했다.
그런 이유가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100% 이은지 때문은 또 아니다.
그냥 이게 편해서였고, 이게 내 성격인 거니까.
긴 설명을 이어 갔다.
이은지는 인정하지 않을 것처럼 완고했다.
난 차분히 하나부터 열까지 이은지가 내미는 말도 안 되는 항목들에 하나씩 반박했다.
한참이나 이야기를 하고 나서야 이은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꼬박…… 한 시간은 걸린 것 같다.
“하여튼 별 오버를 다 떨어요, 으이그. 코나 풀어, 멍청아.”
푸흥!
대충 휴지를 뜯어 이은지 코에 대자, 이은지는 하필이면 내 손을 붙든 채 코를 풀었다.
질겁하면서 손을 뗐을 땐 이미 끔찍한 촉감이 닿은 후였다.
“미친, 망할.”
난 대충 휴지를 더 뜯어서 슥슥 손을 닦으며 이은지를 돌아봤다.
“히히.”
이은지는 눈물을 그치더니 내 방 한구석에 트인 아치형의 작은 창문을 빤히 봤다.
하아…….
푹 한숨을 내쉬는 걸 보니 이제 조금 진정한 것 같았다.
이젠 눈물도 그친 것 같으니까……라고 안심하려던 그 순간.
“나 여기 동네 떠나고 싶어.”
하여간 방심을 못 하겠다.
은지는 가방을 내던지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딱, 몸만 커졌어. 으이고.’
어릴 때 문방구에서 파는 100원짜리 네모 껌 하나 안 사 줬다고 떼를 쓰던 어린 은지와 조금도 달라진 부분이 없었다.
딱 하나.
그땐 작았고, 지금은 커졌다는 것. 사이즈 차이 정도.
“우리 떠나자아! 떠나자!!!”
“그게, 왜 어째서 다시 그렇게 이야기가 되지요? 이은지 양?”
“아, 듣기 싫어! 안 어울려! 원장님 말투 따라 하지 마!”
“알았어. 알았어.”
코 푼 휴지를 던지려고 하길래 급하게 얼굴을 막았다.
떠나자는 건 정말 빈말로 던진 농담이 아닌 듯, 은지는 진지하게 날 빤히 보면서 진지하게 설득을 시작했다.
“오빠가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 했었잖아.”
“그건 어릴 때지. 지금은 자리를 잡았잖아.”
“이게 자리를 잡은 거야? 주위 사람 아무도 못 믿고 끙끙대는 게?”
“내가 언제 끙끙거렸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오빠 벌써 몇 년이나 여기 살았는데, 학교, 원장님, 선생님, 수녀님, 애들, 다른 오빠, 동생, 언니―.”
이은지는 손가락을 접어 가며 수많은 인원을 세다 포기한 듯 손을 털며 물었다.
“아무튼 이 많은 사람 중에 믿는 사람이 있기나 해?”
“있으면?”
“있으면? 나 빼고 한 명이라도 있다! 그럼 오빠 말대로 여기 자리 잡았다는 거 인정할게.”
“너 빼고?”
“어. 나 빼고.”
어쩜 이렇게 나를 잘 알까.
“있어?”
“없지.”
난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봐!”
이은지는 우느라 땡땡하게 부은 얼굴로도 잘만 웃었다.
“그럼―!”
“하지만 여기를 떠날 이유가 없는 건 똑같아.”
“그 빻은 광어 닮은 걔는!”
광어…….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빵집 아저씨가 횟집에 종종 데려갔을 때 생선에 크게 충격이라도 받은 걸까.
이은지는 싫은 사람을 유독 물고기에 비유했다.
“뭐, 이제 걔도 니가 한 번 혼냈으니까 안 나대지 않을까.”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는지 은지는 입을 비죽이며 투덜거렸다.
“그렇게 학교에 가고 싶냐? 그렇게 학교가 좋아?”
“그닥. 좋지도 싫지도 않아. 그냥, 다 가잖아.”
그게 평범한 거니까.
“어이없네. 다 가서 간다고? 우리가 언제부터 남들처럼 살았다고? 대학이라도 가려고?”
이건 할 말이 없긴 하네.
“넌 대체 어디 가고 싶어서 그러는데?”
계속 떼를 쓰기에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이러나, 들어 보기라도 하려고 물었다.
이은지는 미리 생각해 뒀던 건지 묻자마자 고민도 안 하고 대답했다.
“서울!”
“웬 서울이야. 가 본 적도 없으면서.”
여전히 눈물과 콧물의 여운이 남은 듯 은지는 쿨쩍이며 외쳤다.
“오빠 노래하고 싶다 했으니까.”
“노래는 여기서도 해.”
“거기서는 실제 가수 볼 수 있어! TV에서 서울에 연예인 많이 산다고도 하고!”
아무리 어른인 척을 했지만, 그땐 나 역시 꼬맹이였기 때문일까.
‘연예인.’
어쩔 수 없는 그 동생에 그 오빠인 모양이다.
난 바보 같은 이은지 논리에 혹해 결국에는 같이 가방을 쌌다.
* * *
NRY 엔터테인먼트
생방송이 끝나고 며칠 뒤, 옥탑방이 아침부터 분주했다.
“이것도 챙겨요? 언니, 언니! 이 옷은 별로예요? 이것도 이쁜데.”
“일단은 다 챙겨 가요. 혹시 모르니까.”
안 그래도 난장판이던 이은지 방 안은 옷 폭탄이 터져 있다.
은호는 한심한 눈으로 난장판이 된 은지 방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미리 준비해 두라고 어제 몇 번이나―.”
“아, 이은호! 안 도와줄 거면 조용히라도 하고 있어!”
“…….”
얼굴에 날아든 붉은 색 티셔츠 때문에 말을 끝까지 이어 갈 수 없었다.
얼굴을 가린 붉은 티셔츠를 걷어 내며 은지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까지 챙긴 거라도 내놔 봐. 내가 가방에 넣어 줄 테니까.”
“웬일이래.”
“너 때문에 현우 형님 30분째 차에서 기다리고 계시잖아.”
은호는 방 한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짙은 베이지의 깔끔한 가죽 트렁크를 집어 들며 말했다.
박 대표가 여행을 예고하며 선물해 준 가방이었다.
그것도 심지어 3일 전에.
“이럴 줄 알았다.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