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96)
“X발, 별 거러지 같은 새끼들이!”
또 뺨을 때릴 줄 알았는데 조광수는 오히려 은호의 책상을 발로 밀어 버리며 말했다.
“야, 오늘 뒤지기 싫으면 학교 끝나고 분리수거장으로 와라.”
“내가 왜.”
“닥치고 오라면 오라고, 끌베이 새끼가.”
조광수는 애꿎은 멱살만 끌어당기다 손을 털었다.
‘아.’
자주 그랬듯 조광수는 끝까지 뒤통수를 후려치며 교실을 나갔다.
조광수 뜻대로 따라 줄 생각은 없었다.
“야, 끝나고 저 새끼 동생 X 끌고 와.”
나가기 직전에 들린 말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놀라며 문 쪽을 돌아봤을 때.
조광수는 일부러 들으라고 한 말이었는지 히죽거리며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아.’
귀찮은 놈한테 약점을 들켜 버렸다.
* * *
그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이은지 때문에 조광수가 화가 났다는 건 새까맣게 몰랐었다.
그냥 ‘언젠간 터질 일이 드디어 터졌구나!’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
수업이 끝나고 급하게 1학년 교실로 달려갔을 때, 이미 늦은 걸까.
수업이 훨씬 먼저 끝난 1학년 교실은 이미 텅 빈 지 오래였다.
분리수거장으로 가야 할지를 고민하던 그때였다.
“넌 뭐냐.”
“아, 안녕하세요, 쌤.”
“오늘따라 3학년이 왜 자꾸 1학년 교실을 찾아와. 넌 여기 왜 있어.”
“저, 이은지라고 이 반에 있는 키 큰 여자애, 걔 오빤데요.”
“응? 아, 니가 은지 오빠야?”
“네. 혹시 은지네 반 언제 마쳤어요?”
“한참 됐지. 그러고 보니까 은지는 수업 끝나자마자 지네 오빠가 불렀다고 해서 막 띠 가던데.”
“감사합니다.”
대답보다 먼저 몸이 방향을 틀었다.
이미 발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 녀석들은 성인도 아니고 하나같이 고작 이은지랑 비슷한 체격인 놈들이니까.
‘간지러운…….’
뭐.
그것보다는 아팠지만 그래도 나는 맞는 건 자신 있었다.
누구한테 맞든지 적어도 이은지보다는 덜 아파서.
납치 사건 이후부터 이은지는 꼬맹이 시절부터 위험한 사람들한테 엮어,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고수를 찾아 도장 깨기라도 하듯 싸움을 배웠다.
실제 싸움에 써먹을 방법들이라 그런가.
하나 같이 돈을 주고 배우는 체육들처럼 멋있거나 정정당당하진 않았다.
상대에게 쫓길 때 벽돌을 들고 달리다 가장 빨라졌을 때 벽돌을 내민 채 급정지를 한다거나, 싸울 땐 일단 눈부터 공략한다던가 등등 온갖 치사한 방법들이 많았다.
이은지가 내 눈에 모래를 집어 던진 것만 해도 수십 번은 넘을 지경이었으니까.
이은지가 배워 온 이 비겁한 싸움의 시험 상대는 10년 동안 항상 나였다.
이런 걸 딱히 배우고 싶지도 않았건만, 이걸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이은지 덕에 나도 웬만해선 내 몸 하나 지킬 정도로 싸울 줄 알게 됐다.
그런데도 이 귀찮은 녀석들과 맞붙은 적이 없는 건, 누군가를 다치게 하면 결국 한 쪽은 피해자가 되기 때문이었다.
‘선생님들 고생시키는 건 싫으니까…….’
나와 이은지는 아직 후견인이 없다.
시설에 들어온 빵집 아저씨가 보낸 기부금이 있긴 하지만 당연히 이런 데다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럼 곧, 우리가 사고를 치면 이 뒤처리는 누가 할까.
고스란히 현재 보호자의 역할을 하고 계시는 시설 선생님들이 모여서 도와주신다.
‘더 폐 끼치기 싫은데.’
싸움은 가장 빠르고 후련하게 속이 시원해지는 방법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거대한 후유증을 낳는 해결 방식이었다.
싸울 줄 알아도 싸우지 않는 건 이런 싸움의 이면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네가 대가 없이 받은 모든 것이 훗날에 네가 가진 것을 넘어서 너 자체를 집어삼킬 수도 있어.”」
빵집 아저씨의 말씀은 어린 나한테는 법전과도 같았다.
나중에 내가 한 짓들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테니까.
나는 그래서 조심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여기까지 와 놓고서 고민할 정도로 그렇게 살고 있다.
괜히 싸움에 얽혀 봐야 좋을 일이 없으니까.
그래서 안 싸우려고 노력했다.
그런 나를 이은지는 종종 ‘겁쟁이’라고 불렀다.
난 그럴 때마다 오히려 ‘현명하니까 싸우지 않는다’라고 말했지만, 이은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은지는 나랑 다르다.
걔는 상대를 마주한 순간, 가장 먼저 이길 수 없을지를 먼저 판단한다.
만약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선다면 이길 방법을 연구하는 별난 녀석이었다.
반대로, 나는 항상 정정당당하게 법 테두리 안에서 이기는 것을 원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이은지가 옳았던 걸까.
이 거지 같은 학교 안에서 조광수를 정정당당하게 이기는 방법?
X같지만, 이 X같은 지방 촌구석 학교에는 그딴 방법 따위는 없었다.
몰래 피해자들을 부추겨 학폭위가 열리도록 해 봤지만, 2010년.
두 번의 신고를 했음에도 여전히 가해자가 피해자의 교실에 같이 있다.
오늘처럼 갑자기 끌려가는 상황이 생겼는데도 조광수 무리를 치워 주거나 접근을 막아 주는 장치도 없다.
신고, 신고. 지긋지긋한 신고.
신고로 해결될 일이었다면 나랑 이은지는 왜 이런 경험을 하는 걸까.
나는 이미 몇 번이나 신고했었는데 말이야.
신고를 받아 줘야 할 사람이 우리 이야기를 듣질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꼭 이은지를 잃었던 그때 같다.
악을 지르면서 소리치는데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그런 기분.
‘우리가 뒤져야 세상이 바뀔까.’
내가 생각해도 우스운 질문이었다.
인구분포도의 점 하나 조차로도 보이지 않는 내가 죽어 봐야 과연 세상이 달라질까?
그럴 리가.
이젠 화가 난다.
나는 굶어 죽는 것도 싫었고, 맞아 죽는 건 더 싫어서 어린 이은지와 함께 지옥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렇게 이 살아남고 싶어 하는 우리를 세상은 자꾸만 귀한 목숨값으로 저울질한다.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서 나랑 이은지는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말이야.
벌레들이 알을 까고 번식을 하듯, 이런 놈들 역시 그랬다.
그냥 좋게 넘어갔더니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그렇게 반복된다.
본인들의 판단하에 사람을 무시하고 점점 선을 넘는다.
외칠 거라면 진작 외쳐야 했던 걸까.
그런데.
만약 그랬었다면, 우습지만 그땐 또 그 상황의 부작용이 또 나를, 우리를 시험하지 않았을까.
이게 우리 삶이었다.
계속 뒤지기 싫으면 어떻게든 버티는 거.
은지네 담임 선생님은 갸웃거리며 복도에서 멀어지는 은호를 가만히 바라봤다.
“흐으―. 아아악!”
은호는 계속 달렸다.
조광수가 불렀던 분리수거장에 가까워지자, 익숙한 목소리의 울먹이는 듯한 비명이 들렸다.
숨 가쁘게 달리던 은호의 걸음이 늦춰졌다.
은호는 가빠진 숨을 차분히 들이마시고 내쉬며 모퉁이를 돌아 나갔다.
* * *
“광수야, 이건 좀 아닌 거 같다…….”
“어~ 그래. 니가 저 걸뱅이 대신 맞겠다고?”
“아, 아니. 미안.”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조광수는 분리수거장 구석에서 건축 자재에 박혀 있던 끊어진 녹슨 철사를 집어 들었다.
“야, 덮쳐. X발.”
조광수가 히죽 웃으며 외친 그때, 무리의 녀석들이 먼저 도착해 있던 은지에게 달려들었다.
이은호가 종종 뺨에 거즈 같은 걸 붙이고 오거나 이가 아프다면서 뺨을 가리고 있을 때.
그때마다 누군가한테 맞고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조광수가 찾아왔을 때, 은지는 생각했다.
‘찾았다. 너구나.’
멸치를 닮은 조광수 무리 중 한 놈이 찾아와서 은호가 불렀다며 거짓말할 때, 은지는 이미 은호가 불렀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놈들이 부른 분리수거장에 일찍 도착해 있었다.
1학년이 더 일찍 수업이 끝난 덕분이었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는 동안, 은지는 박스를 하나 들고 와 쓰레기 더미 뒤편에 보이지 않게 놓아 뒀다.
이후에는 화단에서 흙 한 움큼을 손 안 가득 쥐었다.
“아아악!”
“캬학! 퉤! X발, 흙 먹었어!”
이때를 위한 준비였다.
기다렸던 둘에게는 흙을 흩뿌렸고, 다른 가까운 거리에 있던 한 명에겐 입속에 흙을 밀어 넣었다.
“한 번 더 먹여 줄까?”
은지가 싱긋 웃으며 흙을 퍼먹인 놈에게 물었다.
“미, 미친…….”
흙을 먹은 놈이 화를 내려다 은지와 눈이 마주치고는 싸울 기력을 잃었다.
강제로 흙을 퍼먹게 된 것에 화를 낼 수조차 없었다.
은지가 노려보는 눈과 웃고 있는 입꼬리는 광기에 가까웠다.
놀이처럼 싸움을 생각하는 사람과 진짜 죽고 사는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달랐다.
은호와 자주 험한 장난을 치며 대부분 그 스트레스를 풀기는 했지만, 은호는 가족이었다.
누구보다 다쳤을 때 가장 속상한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에 지금껏 억눌려 왔던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절대 은호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였다.
은지는 싸움을 원했다.
“X발! 뭐 해? X신들아. 가시나 하나한테 쫄아가지고!”
조광수는 손에 든 녹슨 쇠막대를 바닥에 끌며 주춤하고 있는 녀석들을 밀고 가까이 다가왔다.
“여자애 하나 잡겠다고 사내새끼 다섯에다 무기까지? 이야, 너무 치사한 거 아니야?”
은지는 머뭇거리듯 한 걸음씩 멀어졌다.
목적은 미리 이전에 박스를 준비해 둔 그 자리에 도달하기 위해서였다.
보통 공사를 하다 보면 토대를 다지기 위해서인 듯 모래들이 쓰일 때가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비닐 같은 것으로 덮어 둔, 요긴하게 쓰일 것 같은 모래 산이 있었다.
조광수가 오기 전.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미리 박스에 그 모래들을 담아 옮겨 뒀었다.
서비스로 챙긴 쓰레받기까지.
“뭐―.”
촤학!
은지는 시원하게 부채꼴로 모래를 흩뿌린 후, 무기를 믿고 소리치던 조광수에게 돌진했다.
모래에 눈을 감았던 조광수는 황소처럼 돌진한 은지에게 튕겨 날아갔다.
“악!”
넘어지던 순간 녹슨 쇠막대에 손을 베인 듯 조광수는 찢어진 손을 붙잡은 채 신음했다.
조광수가 넘어진 이후에는 오히려 다루기가 쉬워졌다.
“으아악, 아아아아!”
“맞아. 네가 아침에 나한테 이은호 동생이냐고 물었지.”
“아, 아아아아아! 아파! 아프다고 X발!”
“어. 아픈데 어쩌라고. 근데 우리 오빠랑 나랑은 매일 이러고 놀았는데―.”
“아악!”
“넌 X신같이 이런 것도 못 참으면서 우리 오빠한테 나댔어?”
크게 아플 만한 행동을 한 건 아니었다.
그냥 팔을 뒤로 꺾은 채 어깨에 힘을 실으며 꾹 눌러 준 정도.
“거기, 니들.”
“…….”
“한 걸음만 더 움직이면 나 이 새끼 팔 뽑아 버릴 거야.”
“…….”
“구라 같냐?”
멈추지 않고 다가오는 무리 놈들에게 보란 듯이 은지는 아슬할 정도로 조광수의 어깨를 부러뜨릴 것처럼 눌렀다.
아아아악!
조광수의 비명이 뒤뜰에 울렸다.
“진짜 X된다. 나 장난 아니니까 좋게 말로 할 때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
어떻게 뒤에서라도 은지를 덮쳐 보려던 조광수 무리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절대 농담이 아닌 것을 증명하듯.
“이, X바…… 흐으으, 제, 제발.”
조광수는 발버둥 치는 것도 멈추고 침까지 흘리며 울먹였다.
‘고작 이런 거에 질질 짜는 새끼한테…….’
은지는 이를 갈았다.
‘도대체가!’
이젠 나보다 덩치도 더 커진 놈이 왜 처맞고 다니냐고!
차라리 납득이 되는 놈이면 모를까.
이딴 똥폼만 잡는 X신 새끼들한테─!
“이은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때마침 이은호가 분리수거장에 나타났다.